▲필자:정태하 (현)구미상록학교장
▶필자약력
▶정 태 하 (1956년생)
▶경북김천시 개령면 서부리 출생
▶국가 검정고시 합격
▶김천 대학교 전자통신과 졸업
▶국립금오공과대학교 산업대학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및국어국문과
▶서울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졸업(경영학 전공)
▶저서)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저서)어둠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리라.
▶자랑스러운 신,한국인 선정 대통령상 수상
▶법무부장관 자원봉사 유공교정위원 표창
▶교육부장관 자원봉사 유공교원 표창
▶경상북도지사 자원봉사 유공교원 표창
▶구미시 자원봉사자대회 수기부문 최우수(대상)
▶제32회 스승의 날 기념교육 현장 체험 수기 공모 은상수상
▶전)법무부김천소년교도소 교정위원 15년
▶현)대구제2군사령부 “무열학교”개교자원봉사자
▶현)대구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육사 2급자격취득
▶현)평생교육사실습지도자
▶현)구미 상록학교장 자원봉사 30년
▶연락처 054-457-3422
▶구미시 백산로 82 (송정동35-1)
이글을 읽는이에게.....
이글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개인적인 인권보호차원에서 모두 가명임을 알려드립니다.
▲ 어둠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리라...
글. 머리에 !
진정 오늘날 내가 이렇게 살아 숨 쉴 수 있게 하여준 부모님 !
그리고 선후배 제위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펜을 들어봅니다.
그러나 막상 펜을 들고 보니 행여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역겨움이나
분노를 자아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가슴이 저려 옵니다.
생각하면은 이제 영원히 추억 속으로 묻어 두고 싶기도 하고
또한 나의 모든 치부를 들어내어 보이는 것 같아 몇 번이나
망설이 다가 용기를 내어 봅니다.
말없이 흘러 버린 지난날들을 추억으로 묻어 두기엔 너무나 숱한
사연들이 많아 못내 아쉬움 을
남게 합니다.
참으로 이사회와 수많은 분들께 물심양면 많은 도움으로
조그만 결실을 맺었다 하여 보잘것없는 글을 쓴다는 것이 어쩐지
건방진 생각 같고 정말 나보다도 진정 어려운 처지에서 지금도
열심히 강의에 열중하고 있을 우리 상록학교 많은 자원봉사 선생님 및
학생들을 생각하면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제의 고난이 있었기에 오늘의 기쁨이 있고, 오늘의 기쁨이
곧 내일의 영광으로 이어 지리라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본인은 행여 이 글이 비록 보 잘것 없는 졸.작이 될 지 언정
아름다운 사회 보다 밝고 건강한 사회가 되는데 미료한
글 이나마 어둠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고자
저의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하여 지금도 전국 어디에서 홀로이 투쟁하시는
모든 독학생 여러분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용기를 심어 주고자
이 글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내,영혼의 노래에는 우리들의 진솔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들의 참 사랑이 스며 있습니다.
그늘진 곳에서 어둠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모여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고 읽으면서 우리의 지난날을 잠깐 뒤돌아보고
다시 한 번 반성과 분발의 계기를 삼아 밝아 오는 내일을 준비하고
설계하고 싶은 충동에서 감히 펜을 들었으니 넓은
이해와 관용을 바라겠습니다.
읽으시는 분들께 !
행여 문장이 서툴고 난필 일 지라도 넓으신 아량으로 관용을 베풀어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 1987년 필자의 야학인 구미향토학교 입학식입니다. (우측3번째)
♡당신은 나의사랑....
지금도 잊지 못할 그해 가을 이었습니다.
"여보! 빨리 갑시다" 오늘도 아내는 술이 취해 방황하는
나를 마치 어린아이 마냥
두 손을 잡고서 야간학교에 데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옛날 김천시 개령면 서부리라는 조그만 촌락에서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난 나는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한 체
신문배달 구두닦이 등을 전전 하다가 낯선 이곳 구미에 내려와
술집 종업원 생선장사 등 닥치는 대로 힘든 삶을 고행해 오다가
스물 세살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혼인식도 올리지 못하고 동거를 하면서
우리 부부는 오로지 내일에 있을 희망의 그 날을 향해 힘차게 달렸습니다.
내 나이 서른이 넘어 춥고 배고픔과 배우지 못한 설움에 몸부림치는
나에게 아내는 남의 집 식모살이라도 해서 뒷바라지 하겠노라며
『구미 향토 학교』라는 야간 학교에 입학을 시켜
내 인생의 전환점을 되돌려 놓았습니다.
그 날부터 나는 남들이 볼세라 마치 죄인인 냥 숨죽여 가며
야간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구미 향토 학교는
모 신문사 사무실 한 켠에서 자원봉사 교사인 금오공대생 5명과
저와 다른 어린 학생 2명 등 모두 8명이 수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자원봉사 선생님들은 곱하기 나누기도 잘못하는 나에게
부분 집합이 어떻고 원소나열이 이렇다면서 아무리 앞에서는
열강을 해도 30년 이상 녹슨 나의 머리는 좀처럼
수학문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습니다.
한달 두 달 차츰 나의 머리에 불이 붙기 시작하였으며
공부 하는 게 신이 났습니다.
이제는 야간에만 공부 하는 게 부족하여 낮에는 국, 영, 수 세과목을
과외공부하고 나머지 암기 과목은 야간 학교에
나가서 배우기로 하였습니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리들이 공부하는 그 신문사 사장님이 도저히 공간이 부족하여 안 되겠다면서
장소를 비워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배우는 학생 입장이라 운영은 누가 하며 어디에서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출강을 나오는지 알지 못할뿐더러
알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들 모두가 저에게 찾아와
"정 사장님 끝까지 가르쳐 드리고 싶었는데 능력 부족이라
저희들이 교실을 구하지 못해 도저히 더 이상 가르쳐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 하고는 모두들 뿔뿔이 흩어져 그만 향토 학교는
문을 닫고는 말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할말을 잃었습니다. 내가 어떡해 해서 이곳까지 왔는데
그동안 얼마나 춥고 배고픔과 배우지 못한 서러움에
남모르는 피눈물을 흘렸는데......(중략)
☛저 하늘에 밝은 햇살이
나는 집에 돌아와 할말을 잃고 시름에 잠겨 있는데 사실은 알고 난
아내가 살며시 두 손을 잡으며
가만히 속삭였습니다.
"여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습니다.
" 이러지 말고 어서 용기를 내서 다른 방법을 찾아봅시다.
" 하면서 우리 부부는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누구하나 저에게 선뜻 장소를 빌려주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문뜩 방문을 박차고 들어오면서
"여보! 여보!" 좋은 생각이 있어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옥상에다 조립식 가건물을 지어서
우리가 직접 야간학교를 운영하면 어떻겠습니까?
" 그러면 당신이 공부할 수가 있지 않겠어요?"하면서
제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몇 일간 을 고민에 빠져 있다가 아내와 상의 끝에 옥상에다
조립식 가건물을 짓자고 합의를 하고는 건축 사무실에 찾아가
문의를 하니까 아무리 불법 건축물이라고 하여도 건물을 짓고
들어가 공부를 하면은 괜찮다고 하여 2층 옥상에다
조그만 사무실 3칸을 1.300 만원에 계약을 하고는 일주일 후
드디어 새로운 야간 학교가 우리 집
옥상에 우뚝 솟았습니다.
나는 그동안 흩어진 선생님이며 학생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다시 만난 우리들은 모두들 기뻐 어쩔 줄을 몰랐으며 모두들 새로운 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마음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대형 칠판도 두 개사고 책상과 의자는
손수 앵글 철판으로 맞추었으며 페인트칠도 우리 손으로 손수 칠하고
모든 게 신이 날 뿐이었습니다.
공사가 모두 끝나고 분주하게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있는데
이게 또 웬 날벼락입니까?
내용을 모르는 이웃 주민들이 무허가 건축물을 지었다고
관할 동사무소에 신고를 하여
철거 명령이 떨어 졌습니다.
참으로 못 배운 것도 서러운데 이런 모욕적인 수난을 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그 옛날 원평3동에서 포장마차 할 때에 동사무소 직원들이 날이 새면은 찾아와
얼마나 강제철거를 하였는지 모든게 희미한 주마등같이 스쳐 갔으며 다시금
그 옛날을 생각하니 이름 모를 서러움에 눈물이
봇물 마냥 하염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도저히 이대로는 주저앉을 수 없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동사무소와 구미시청 을 찾아다니면서
애원을 하였습니다.
"우리같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정부 차원에서 야학교를 세워주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강제 철거를 할 수 있습니까?"
하면서 마구 악을 써보기도 하고 큰소리를 쳐보았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 격이며 모두가 한결같이 "사연은 딱하고 이해는 하나
법을 어기는 것을 보고 그냥 방치 할 수는 없습니다.
주위 사람들 여론도 있고 해서" 하면서 요즈음은 민원 신고가
제일 겁이 나는 세상 아닙니까? 하면서
얼버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를 여러 날 그 당시 새로 오신 신동혁 원남동장님이 잠깐 들어와
조용히 이야기하자며 집무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우리는 자초지종 말씀 드리니까 무허가 건물은 짓지 말고
그 대신 동사무소 2층 회의실을 빌려 줄 테니 야간에만 사용해도 좋다는
승낙을 받고 뛸 듯이 기뻐 나는 연신 고개를 숙여
“동장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들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과 같이 부끄럽지 않는
사회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그 당시 구미향토학교 입학식 모습입니다.
나는 조립식 건물을 짓는 것을 포기하고 학생들과 같이 기자재며
살림들을 챙기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었습니다.
제일먼저 전화부터 한대 설치했습니다. 054-454-9737 이름으로 처음 등록하였으며
여러 물품이며 기자재를 구입하느라 또다시 금액이 많이
소요되었지만 아내는 전혀 반대하지 않고
동참을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원남동사무소 2층에서 새롭게
공부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남몰래 숨어서 할 게 아니라 내외적으로 모집광고를 하자싶어
아내와 나는 포스터 5천매를 손수 제작하여 몇날 몇칠을
풀 통을 들고서 벽보를 붙이러 다녔습니다.
공개적인 홍보는 처음이라서 인지 일주일 만에 50명이 접수가 되어
1991년 6월 20일 제4기 입학식을 원남동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그런 대로 조촐하게 개최 할 수가 있었습니다.
학생은 52세의 김정연 아주머니 외 59명 교사 김경식외 20명
등이 등록을 하였습니다 .
그러던 얼마 후 드디어 검정고시 시험일이 되었습니다.
그 날은 나와 학생 7명이 응시를 하고 교사3명이 따라 왔습니다.
시험을 치르고 어느덧 한 달이지나 시험발표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나는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아 합격발표 장에 가질 못하고 교사 중 한사람인
조진만 선생님과 아내한테 대신 차비
줄 테니 갔다 오라고 하였습니다.
조진만 선생이 웃으면서 만약 가보고 12시까지 합격하였으면
전화를 하고 연락 없으면 불합격 한줄 알고 있으라며
집에서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10시가지나 11시가 다가와도 연락이 없어 불안하고
초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드디어 정오를 알리는 시계 종소리가 열두 번을 다 치도록
연락이 오질 않았습니다.
이제는 끝이구나 하는 생각에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으며 모든 것이
수표로 돌아가고 말았구나 싶어 미안한 생각에
아내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
그토록 오늘을 위하여 뒷바라지해 왔는데 너무나 마음이 답답하고
갑자기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아 얼른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마구 중얼거렸습니다.
"도저히 나란 놈은 안돼 어쩔 수 없어 이제 나에게는 더 이상
지긋지긋한 공부는 없다" 하면서 중얼거리며 대낮부터 마구 술을 퍼 마시고 있는데
오후 3시쯤 되어서
아내와 조선생, 황선생 셋이서 술집마다 나를 찾아 나선
모양이었습니다.
"사장님 ! 집에 꼭 붙어 있으라고 했는데 왜 여기서
술을 마시고 있습니까?"
하면서 다짜고짜 조진만 선생이 마구 나무라며
야단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조선생, 황선생 나름대로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여러분 볼 면목이 없습니다."
하고 고개를 들지 못하자 모두를 갑자기 "하! 하! 하!"
웃기 시작하였습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 나에게 장난끼 있는
조진만 선생이 짠! 하면서
"사장님 합격입니다. 합격! 그것도 전
과목을 합격하였습니다." "뭐 라고!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질 못하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습니다.
"왜 진작 알려주질 않고 그래" 하니까 사모님께서 사장님
실망하는 모습 보려고
일부러 장난하려고 그랬다고 하였습니다.
어찌되었든 합격했으니 좋다 무조건 좋다 오늘저녁 멋지게
내가 한잔 산다 가자!
.
그날 저녁 우리는 1차 2차 3차 아니 나중에는 어디까지 갔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아마 필름이 끊어져 구미시내 술집이라는
술집은 다 헤매 이었나 봅니다.
새벽녘에야 집에 들어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나는
아내의 두 손을 꼬옥 붙잡고
"여보! 고맙소 무조건 고맙소 오늘의 이 영광을 하느님에게 그리고
이 합격증을 당신에게 드리리라" 하면서 마구 어린아이 마냥 떼를 쓰며
머리를 파묻고 엉엉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어느새 아내도 말없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창가에 비치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아래 아른거리는 아내의 모습이
오늘따라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으며 마치 내게는 하늘이 내려주신 마음씨 착한
천사로만 보였습니다.
어느새 나와 아내의 두 눈에는 이슬이 맺혔으며 이름모를 한없는 서러움에
합격증을 번갈아 만져보며 밤새 서로 부둥켜안고서
울부짖어야 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새벽녘 울려 퍼지는 성당의 종소리에 살며시 일어나
조용히 무릎을 꿇어앉아 아내의 두 손을 살며시 잡아 가볍게
입맞춤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아내와 나란히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나는 어느새 백마를 탄 기사가 되어 아내를 안고서
하늘을 훨훨 날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잠에서 깨어난 아내가 나의 품안에서 살며시
사랑을 속삭였습니다.
나는 신이 나서 휘파람을 불며 노래를 하였습니다 .
아내야, 아내야 사랑하는 내 아내야 너를 만나 내 어이 오늘을 잊을꼬
천년만년 살고지고 두리둥실 두둥실 얼싸안고 춤을 추며 한평생 살자꾸나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많은 기러기떼가 너울너울 춤을 추며
우리들이 부러운 마냥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더욱더 신이 나서 마치 개선장군마냥 이럇! 하면서 더욱더
힘차게 달렸습니다, 아~ 아 하느님 제발 이 꿈에서 깨어나지 않게 하소서 하고
마구 몸부림을 쳐 보았지만 꿈이 깨기도 전에 동녘에는 어느새
찬란한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이튿날 그래도 나는 좀처럼 흥분한 마음이
가라않질 않았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서울대에 합격한 누구마냥 전국방방곡곡 구석구석에
현수막이라도 내걸어 실컷 자랑도 하고 싶었으며 지방 신문이라도
대문짝만하게 얼굴이라도 실려 전국 어디에선가 독학으로 몸부림치는
수많은 만학인 들에게 큰소리라도 치고 싶었습니다.
헤 냈노라고.......
▲『상록수』작가 심훈 선생의 부조입니다.
♣상록 학교는 나의 인생 !
우리는 또다시 형곡동 삼우건설 이완영 사장님이 제공하여 주기로 한 교실로
이전준비에 분주 했습니다.
이영만 선생과 나는 이제 향토학교에서 벗어났으니 학교 이름을 무어라고 개
명할까 하고
몇 날 몇 칠을 고심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영원히 어느 종교 단체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에
새로이 설립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신라의 옛 정기를 이어 서라벌 야학교로 할까 한림으로 할 까 아니면
광명으로 할까 여러가지 교명을 두고 고심하다가 문득 일제치하의
야학교에 대한 농촌 계몽운동을 주제로 한 심훈의 명작『상록수』라는
소설이 생각이 나서 우리도 언제나 늘 푸른 상록학교라는
교명으로 설립하기로 하였습니다.
▲ 심훈의 명작소설 『상록수』의 실제 주인공 최 용신 선생 기념관
♣설 립 취 지 및 목 적 ♣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많은 교육기관이 있지만 여러 가지 개인적·경제적 상
황으로 인하여 교육 기회를 잃은 사람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교육을 통하여 배움을 향한 강한 열망을 가지게 되었으나
이를 충분히 수용하여 근본적으로 문제를 수용할 수 있고 제도적으로
교육을 맡을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으며 지역사회 단체들의
교육 참여 또한 미진한 실정이다.
민족 분단 40여년을 보내고 우리 민족 기상이 세계만방에 뻗어 가는 이때에
기존의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하여 더 이상 침묵 할 수 없음을
통감하고 지금까지 축적해 온 지식과 역량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배움의 길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줌으로서
개인의 지적인 가능성과 삶의 새로운 가치관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마련 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 모두는 공동 운명체라는 자각에서 지성인들이
향토 사회 발전을 위하여 봉사함으로서 민족의 교육적 에네르기를 활성화시켜
사회적 계층적 차원의 대립과 갈등을 화해와 단 결로 전환시키고
민족 통일과 번영을 지향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아울러 본인은 다시는
이 땅에 야학교가 설립되는 일이 없도록 기원하면서
상록학교를 설립한다.
설립자 정 태 하
드디어 93년10월13일 상록학교는 이렇게 해서 출발을 하게 되었으며
또한 우리들만의 교가를 작사 정태하 작곡 송은호 선생님의 도움으로 상록의 꿈 이라는
노래가 탄생 되었습니다.
♣상 록 의 꿈 ♣
보통 빠르게
정 태 하 작사
송 은 호 작곡
상 록 의 꿈 안 고
배 움 의 길 향 하 는
우 리 모 두 하 나 되 어
못 다 한 꿈 찾 아 나 서 세
아 - 아 - 상 록 상 록
희 망 이 가 득 찬
미 래 가 있 는 곳
우 리 들 의 보 금 자 리
언 제 나
높 은 하 늘 처 럼
푸 른 곳 애천 애인 애국 의 교훈 (중략)
▲2008년 경상북도 교육청“대안학교”지정
☛어둠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리라.......
존경 하옵는 우리의 학부모님께.
대망의 새해를 맞이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희망찬
새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나온 한해 돌이켜 보면 은 보람도 있었지만은 또한 후회 없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나 새삼 돌이켜 봅니다.
먼저 학부모님들께 대안학교 [alternative school]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합니다.
대안학교는 공교육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학습자 중심의 자율적인
별도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고안된 특별학교이며
1921년 영국의 교육자이자 작가인 A. S. 닐이
설립한 서머힐 학교가 대표적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우리 대안학교는 자유롭고 자연 친화적이며 공동체적인 삶을
이어간다는 교육목표 아래 비정형적인 교육과정과 다양한
교수방식을 추구하며 주요 특징은 학급수나 학생수를 줄여 학습자와
교사 간의 인간적 교류가 가능하도록 하고, 학습자와 교사가
동등한 자격에서 학습계획에 참여하며, 경쟁주의
원리를 지양한다는 것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한해에 8만 여 명의 청소년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고 합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자발적으로 학교 밖 청소년이 되어 새로운 삶과 배움의 길을
찾는 청소년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 필자의 법무부 구미보호관찰소 청소년범죄예방교육
대안학교의 유형에는 학교 중도 탈락자나 부적응 학생들에게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위탁형 대안학교,
교육과정과 학사운영이 자유롭고 일반학교와 마찬가지로 정규 학력을
인정받는 특성화형 대안학교, 그밖에 계절학교나
주말학교 등이 있습니다.
구미상록학교 속의 대안학교는 정규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위기의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과 인성교육을 통하여 정규학력을
취득하게 함은 물론 청소년범죄 예방에 중점 을 두고 있으며 대부분
정규학교에서 위기에 놓인 청소년들로서 각종 범죄로 얼룩져 검찰청 및
법원 으로부터 보호관찰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상록학교가 2008년 처음 경상북도 교육청으로부터 대안학교 위탁을 요청 받고
과연 나부터 학생들에게 인성교육을 가르 칠수 있을시 고민을 거듭하다가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기꺼이 십자가를
지려고 선택을 하였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정규학교에서 어떠한 사유이든 적응을 하지 못하고
우리 대안학교에 올 때에는 자식을 둔 부모의 한사람으로서
함께 마음아파 하였습니다.
더욱이 졸업을 얼마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도 마구잡이로 소속 학교에서
퇴출을 할 때에는 화가 치밀어 학교장 및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고는 하였습니다.
“당신들은 국가의 공무원으로서 그 많은 월급을 타면서도 최선을 다하지 않고
규칙위반 및 규정만 내세우면서 아이들의 장래는 생각지도 않습니까?
“하면서 악을 써 가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필자의 법무부 김천소년교도소 교정교화활동 교정위원13년 활동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 역시도 어릴 적 혹독한 가난 속에서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청소년 시절을 온갖 장돌뱅이 와 노동으로 자수성가 하여 검정고시를 통하여
정규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자원봉사지만 학교장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안학교인 이곳이 정규학교 졸업장을 취득 할수 있는 마지막
기회 인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학기 초 부터 아이들에게 엄격하게
교육을 시켜 왔던 것 이었습니다.
때로는 혼을 내고 뒤돌아서서 같이 부둥켜 않고서 울기도 하였으며 도저히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오히려 학교장인 제가 옥상에 무릅 을 꿇고
땅에 머리를 박고 너희들에게 교육을 잘못 가르친 죄로 체벌을 받겠다며
아이들에게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은 적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김밥 만들기 체험학습 “부모없는 아이들 홀로서기 음식만들기”
그중 우수한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대안학교에 오게 된 효연,효중이 쌍둥이 형제
다행이도 잘 적응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수능을 치루고 본교로 복귀 한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끝까지 부모로서 자식에게 사랑의 끈을 놓치 않으신
부모님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잘 아시다시피 대안 학교에 오 게된 대부분의 학생들이 1차집단인 가정 에서부터
사랑이 부족하여 잘못이 이루어 졌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성이 예민한 우리 아이들이 허구 헌날 부모님들이 다투고 부부싸움을
보게 된 다면은 또한 그로 인하여 가정이 파탄되어 이혼을 하게 된다면은
아이들이 과연 학교 가서도 집중을 하지 못할 뿐더러 학교를 마치고도 집으로
가기 보다는 PC방 및 노래방 등을
헤메이게 마련입니다.
우리 모두 이 기회를 통하여 우리 아이들을 나무라기 보다는 부모로서
또한 교육자 로서 사랑을 다하여 보듬어주고 최선을 다 하였는지
저와 함께 반성해 보았으면 합니다.
부모의 갈등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부모님의 애틋한 사랑을
노래한 상반기 “사랑의 편지쓰기”최우수작 중등부 정윤이의 글 솜씨는
대상을 받을 정도로 훌륭 했으며 또한 하반기 졸업여행가서
“사랑의 편지쓰기”중등부 주연이 또한 너무나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글귀가 글을 읽는 내내 못내 가슴
즈리게 하였습니다.
학교장인 저는 이 모든 것이 아이들의 잘못된 생각과 사고를 올바르게
가르 칠려고 십자가를 진 것이지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고 행한 적은
결코 없었다고 자부하고 싶습니다.
아무튼 우리 상록학교에서 지난해 28명이 진학 및 졸업을 하였으며
2010년 30명졸업과 2013년 올해 또한 22명이 졸업을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올해 2명을 유급 및
수탁해제 를 하였습니다.
▲청소년 두드림 존 실시“두드려라 그러면 열릴것이다”
지난해 유급을 당하여 한 학기를 더 하게 된 우리 행복이 너무나 달라진 모습에
어느 날 행복이 어머님이 제게 찻 아와 “우리 아이가 이렇게 달라졌어요”하시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 쉴 때에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환희의 미소가 살며시
입가에 짓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행복이 올해 들어 지금까지 결석일수가 10일도 되지 않아 1학기 2학기에도
모범 학생으로 선정되어 표창 및 포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3년동안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잘 버텨준 의성공고 에서온 영찬이
도개고 에서온 진열이 일년 내내 건강상의 이유로 우울증을 앓고 있으면서도
늘 함께 손을잡고 등교를 시켜준 진열이 어머님 당신은 진정 위대한
우리의 어머니 이십니다.
▲“청소년 범죄 이상무!” 더 이상 말썽 피우지 않겠다고 약속한 우리 아이들 입니다.
씨름선수로 몸집이 큰 성찬이 오상고에서 온 광명이 특히 김천 성의중학교 에서 온
재영이 어려운 가정환경을 생각하여 주경야독으로 직장 생활을 할수 있도록
너에게는 많은 배려를
하였단다.
형남중학교에서 온 진선이 천생 중학교의 영희와 진찬이 상모중학교에서 온 정윤이
그리고 안타깝게도 졸업을 하지 못하고 유급을 하게 된 철희와 다정이 및 여러 친구들
정말 미안 하지만 너희들에게는 한번 더 올바른 인성교육이 필요해서
어쩔수 없었단다.
우리 내년에는 후회없는 생활을 했으면 좋겠어...
용운고 에서 온 민영이 또한 부모님의 열악한 가정환경으로 인하여 지금 이시간
주유소에서 시린손을 호호 불벼 아르바이트를 하고있을 진철이
그리고 몃번이나 혼이 난
오상고의 창규와 민선이. 민선이도 내년부터는 어머님 쏙좀 그만 썩이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보여 줄꺼지 어머니 혼자서 밤 늣도록 식당일 하시는거 누구보다도
민선이가 잘 알잖아..
▲청소년 직업체험“구미중앙시장 장사체험”홀로서기
도개고 에서온 우리 연선이 내년에는 철이 좀더 들었으면 좋겠어 솔직히
처음에 선생님은 너에 대해 실망이 많았단다 중학교때 졸업을 하지 못할 정도로
결석이 많아 애를 테우더니
고등학교 진학을 해서도 달라진 모습이 없이 가츨을 하는등 말이야....
부모님과 선생님의 애간장을 테우기 일쑤였고 급기야는 야단을 치는
선생님에게도
눈을 부릅뜨고 반말을 하면서 대 들때는 사실 네가 너무나 미웠단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미 마음을 비웠어 왜냐면은 우리 연선이가
너무나 착해 졌기 때문에..
.결국 이번 게임은 네가 이긴 것이 아니고 선생님이 이긴 거야 우리 연선이가
항복을 하고 열심히 학교 생활에 잘 적응 하고 있잖아.....
그리고 부탁이야 한설이 잘 인도해줘 한설이도 이제는 가출 하지마
어머님이 너무나 속 상해 하시잖아 어머니 혼자서 한설이 뒷바라지 한다고
새벽까지 회사에서 야간근무 하는것 누구 때문에 하는지 알기나해?
앞으로 둘이서 밤늣도록 헤메지 말고 이번 방학기간 제발 사고 치지마
부탁이야 알았지....
금오여고의 민선이,태선 남매임에도 불구하고 다정스럽게 손을 맞잡고
등교하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어,그리고 우리 성규 처음에는
적응을 하지못해 결석이 잦았지만 이제는 열심히 스스로 하는 모습에
철이 들었는지 부모님이 조금 안심을 한단다
내년에는 더욱더 성숙한 모습 보여주길
바랄께,....
▲청소년 직업체험 서울코엑스 미래직업박람회 현장학습
선산여고에서 단임 선생님과 머리채를 붙들고 맞짱을 떠고 왔다며 큰소리치든
우리 지은이 어느새 이렇게 달라져 항상 솔선수범하며 힘 든일 스스로 도 맡아하고
우리 상록학교에 방문하는 모든 분들에게 배꼽 인사를 깍듯하게 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물끄러미 바라 보노라면 선생님은
어느새 눈시울이 앞을 가렸단다. 지은아 마음 비워줘서 너무나 고마워.......
그리고 선산고 에서온 우리 준영이 내내 혼자서 공부하는 모습이
안스러 웠지만 끝까지 준영이의 손을 잡고 등교 및 하교를
함께 해주신 준영이 어머님께도
이 기회 를 빌어
감사들 드립니다.당신이 진정 강한 어머니 시니까요.
▲ “추억 만들기” 구미 삼성전자 임직원 여러분들이 부모가 되었어요..
그리고 군위 에서온 한설이,형곡중 에서온 은자. 은자야! 이번 마지막으로
너에게 반성의 기회를 주는거야 솔직히 선생님은 은자를 한번더 유급시켜
우리 은자의 새로운 모습을 지켜 볼려고 하였는데 은자 부모님이
너무나 안스러웠어
이젠 절대로 가출 같은것 하지말고 부모님 쏙좀
그만 썩혀드려 선생님이 끝까지 지켜 볼꺼야....
경북예천 에서온 창석이 규정을 위반하여 선생님 한테
몃 차레 맞았지만 그것은
너를 끝까지 함께 하려고 체벌을 한것이지 진정 너를 미워함이 아님을
기억해주길 바래 그리고 어머님께 함께 고민해줘서
늘 감사 하다고 안부전해주고....
김천 예술고에서온 동수,오상고의 재영이
인동중의 규찬이,태혁,찬성이,민정이,다선이,아포중의 현욱이
도송중의 주영이. 주영아 졸업 여행때 네가 쓴 편지처럼
지금부터라도 주영이
엄마하고 손가락 걸고 약속을 지키리라 믿어..
▲ “우리들의 추억 만들기” 매월1회 유적지 현장 학습.
천생중의 기은이,오상중의 성도,영천 정보고 에서온 현규,
성주 가천고 에서온 영규,경구고 에서온 동찬이와 재영이,형남중의 영철이
정보 여고의 영현이와 세란이,선주고의 양희 너희들 모두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을 정도로
선생님은 진정으로 너희들을 사랑 한단다.
지난해 두 번이나 밤거리에서 70대 노인에게 몽둥이를
휘둘러(퍽치기)지금은
소년원에서 반성을 하고있을 선이 에게도 지금도 선생님은 먼 발취 서 나마
너의 건강을 기원 한단다.
내년에 건강한 모습으로 출소해서 돌아 온다면 선생님은 너를 다시한번
받아줄 용의가 있고 너에게 한 번더 반성의 기회를 주고싶어...
하루담배를 2갑반씩이나 피우며 온 몸에 문신 자욱이 선명하여 마음과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창백하기만 하였던 중등부 혜진이 구미보건소를 통하여
1개월간 금연침을 맡게하고 건강한 몸으로 돌아 왔을 때에는 함께 부둥켜 않고서
한없는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몰라....
우리 혜진이가 올해 3월에 도개고등학교 입학을 하고 백옥같이 하얀
교복을 입고서 교장 선생님에게 제일먼저 인사드리러 왔다면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와락 품에
안길때는 너의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멍하니 한참을 바라 보았단다.
혜진아 고마워 이렇게 예쁜모습 보여줘서......
▲ 우리아이들의 요리실습 "우리는 예비요리사"현장학습입니다.
!그리고 깜빡했네..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3층옥상에서 뛰어내린 우리 규은이
온몸에 중상을 입고 몆개월간 사경을 헤멜때 너의 부모님과 선생님은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 왜 그랬어?
아직 까지도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못해 아르바이트 하면서
자취생활을 한답시고
집을 나와 있으면 어느 부모인들 마음 편하겠니...
너희 아빠 몆번이나
선생님에게 찻아와 상담을 하면서도 시름에찬 얼굴에 내내
한숨만 내쉬는 모습이
너무나 안스러워 말문이 막힐 정도야 규은아 하루빨리 엄마하고 갈등해소하고
가정으로 돌아가길바래......중략
지난2013년02월 어느날 이었습니다. 교무실을 열면서 충성!을 외치며
어느 군인이 저를 찻아 왔습니다. 눈이 흐릿하여 “ 누구신가요?” 하니까
“교장 선생님 저 예요 제가 충성입니다.
”충성이는 지난해 군에 입대해서 오늘 첫 휴가를 맞아 제일먼저 교장선생님께
달려 오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난날 충성이가 우리 대안학교 다닐때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아무 말없이 부둥켜 않고서 서로 눈시울을 붏히며
그저 장하다고 그리고 찻아줘서 고맙다고 말없이 속삭이며 충성이의
어께를 어루 만지고 있었습니다.
3년 전이었습니다. 선산고등학교 막 입학한 충성이를 어머니가 데리고 와서
구미에서 선산까지는 교통이 불편하고 멀어서 통학을 할수 없다고
우리 대안학교에 다니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절차를 거쳐 우리 충성이를 우리 대안학교 학생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우리 충성이는 평소 품행이 단정할뿐 아니라 언행이 올바르고
항상 모범적인
학생으로 저에게는 각인이 되었습니다.
▲ 우리 충성이가 늠름한 모습으로 군인이되어 찻아왔어요......
그러나 충성이의 가정환경이 넉넉하지 못하여 1끼 식대비 4,000및
월 운영보조비 5만원을 내지못해 늘 부모님과 실강이를 벌여야 했으며
나중에는 부모님이 전화마저 단절한체 어디론가 흘쩍
이사를 가고 말았습니다.
도저히 참다못해 부모님이 괘씸해서 저는 충성이를 상담실로 불러서
조용히 이야기를 했습니다.
“충성아 오해는 하지말고 잘 들어라 충성이 너를 봐서는 네가 졸업을
시켜주고 싶지만 부모님이 하는 행동 봐서는 도저히 용서 할 수가 없단다.
그리알고 내일부터 학교에 나오지 말거라”하니까 충성이는 아무런 말도 없이
자리를 일어나 가방을 들고서는 훌쩍 떠나고 말았습니다.
충성이가 떠난 빈자리....
무엇인가 찡 한 마음에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그만 자리를 박차고
근처에 있는 포장마차에 들려서 평소 즐기는
독한 술을 나도 몰래 마구 털어넣고 말았습니다.
그러기를 여느날 우연히 창밖을 바라보던 단임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 저기보세요”
“저기 충성이가 전봇대 뒤에 앉아 있어요” 손길을 따라 창밖을 보니까
우리 충성이가 전붓대 뒤에 앉아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습니다.
▲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 현장 학습을 다녀 왔어요.
순간 저는 무엇이 목에 걸려 체 한것 처럼 가슴이 메워 오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동안 우리 충성이는 우리 대안학교에 오고싶어 매일을
아침일찍 학교앞에 와서 교실에 들어오지는 못하고 매일 전봇대 뒤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신을 가다듬고 즉시 긴급회의를 소집해서 담당 선생님 및 행정실장인
아내에게 타이르듯이 말했습니다.
“모두들 저기 전봇대 뒤에 있는 총성이를 보세요” 우리 충성이가 얼마나
학교에 오고 싶었으면 매일을 저기 숨어서 지켜보고 있으면서 우리를
얼마나 원망하고 있었겠습니까? 저는 항변을 하듯이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 충성이가 3년간 고등학교를 졸업 할때까지 식대비 및
운영 보조비등 모든 비용을 일체 부담주지 마세요” 하면서 마치 죄인인냥
가슴이 콩당콩당 뛰는것을 억누르며 간신히 내 뱉고 말았습니다.
저는 어릴 적 기성회비를 내지못해 학교를 다니지 못한 기억들이 주마등 차럼
스쳐 갔습니다.
우리들은 충성이에게 다가가 멎적어 하는 충성이를 간지럼 태우며
“충성아 교장선생님이 생각이 부족했다 용서하렴” 하면서 서로 팔짱을 끼면서
충성이를 교실로 데려 왔습니다.
▲ 그 당시 우리 충성이는 늘 말이 없는 아이였어요......
순간 저는 무엇이 목에 걸려 체 한것 처럼 가슴이 메워 오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동안 우리 충성이는 우리 대안학교에 오고싶어 매일을 아침일찍
학교앞에 와서 교실에 들어오지는 못하고 매일 전봇대 뒤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신을 가다듬고 즉시 긴급회의를 소집해서 담당 선생님 및 행정실장인
아내에게 타이르듯이 말했습니다.
“모두들 저기 전봇대 뒤에 있는 충성이를 보세요” 우리 충성이가 얼마나
학교에 오고 싶었으면 매일을 저기 숨어서 지켜보고 있으면서 우리를
얼마나 원망하고 있었겠습니까? 저는 항변을 하듯이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 충성이가 3년간 고등학교를 졸업 할때까지
식대비 및 운영 보조비등 모든 비용을 일체 부담주지 마세요” 하면서
마치 죄인인냥 가슴이 콩당콩당 뛰는것을 억누르며
간신히 내 뱉고 말았습니다.
순간 저는 어릴 적 기성회비를 내지못해 학교를 다니지 못한 기억들이
주마등 차럼 스쳐 갔습니다.
우리들은 충성이에게 다가가 멎적어 하는 충성이를 간지럼 태우며
“충성아 교장선생님이 생각이 부족했다 용서하렴” 하면서 서로 팔짱을 끼면서
충성이를 교실로 데려 왔습니다.
▲저는 우리 충성이에게 용기를 내라고 각종 장학금을 추천해 주었어요....
교실로 데려오자 그동안 함께 햇던 우리 아이들이 와! 하면서 환영의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그러자 겸연쩍어 하던 충성이가 머리를 글적이며 “교장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짜식 고맙기는” 하면서 머리를 어루만지며 토닥여 주었습니다. 그날부터 우리 선생님 모두는 충성이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선 저는 평소 잘 알고 지내는 구미 주유소 사장님께 찻아가 여러 가지 사정을 예기하고 우리 충성이를 아르바이트 요원으로 써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날부터 충성이는 1달에 90만원 이라는 거금을 받게 되었으며 다른 아이들보다 출근 시간이 늦지 않게 1시간 일찍 보내주었으며 집에가서 먹으라고 매일 반찬통에 점심때 남은 반찬을 골고루 담아 주었습니다.
그러던 충성이가 2012년 졸업을 하고 대구 영진전문대학에 입학을하여 휴학을 하고는 군에 입대를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
존경하옵는 우리의 학부모 여러분들 이렇게 충성이와 아름다운 사연을 간직한 제가 어떻해 우리 충성이를 잊을수 있겠습니까 “ 어떻해 우리 아름다운 아이들의 초롱총롱한 눈망울을 저버릴수가 있겠습니까?
▲처음으로 우리 아이들과 사진관에 가서 기념 촬영을 했어요....
우리 충성이가 군에서 훈련을 마치고 첫 휴가때 부모님 보다도
꼭 교장선생님께 제일먼저 달려오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면서 충성이는 살며시 제게 말했습니다.
“교장 선생님 이담에 꼭 성공해서 다시 찻아 오겠노라고
말입니다.”
충성아 군 복무 열심히 마치고 훌륭한 사회인이 되길
진심으로 기도할께....
오늘 이렇게 저는 올해 우리대안학교 졸업을 하게 된 자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한없는 찬사를 전하고 싶고
그동안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가족의 이름으로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부모님 여러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상록의 기도
오늘 이렇게 저는제32회 스승의 날 기념 제3회 교육 현장
체험 수기 공모를 맞이하여 다시 한번 졸업을 한 자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한없는 찬사를 전하고 싶
고 그동안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가족의 이름으로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부모님 여러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옵는 학부모님 그리고 우리 청소년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고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제 이곳을 떠나 멀고먼 항해를 할 지라도 맞 잡은
두손을 뿌리치지 말아 주십시오 저 역시 미약하나마 더욱더 밝고 건강한 사회를
이룩하는데 선봉이 될것을 약속드리며 언제나 푸른 인간상록수로
길이 남을것을 약속 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언제나 푸른 상록수입니다.
글을 맺으며 !
그토록 40도를 오르내리던 지난여름 폭염도 전국의 숱한 농민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였던
참으로 지긋지긋한 무더위와 가뭄 속 그늘도 어느덧
모두가 떠나가 버렸다.
언제인가는 몇십년 만에 최대의 홍수가 어떻고 매스컴을 시끄럽게 하더니 최고의
무더위와 가뭄이 50년 만에 처음 이란다.
자고 나면 또다시 조간신문 가득히 실린 끔찍하기만 하는 대형 사건사고 들
오늘 하루는 무사히 지내려나 하는 조바심도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오랜만에 맑게 개인가을 하늘 싱그럽게 펼쳐진 가로수를 누비며 하얗게
피어나는 뭉게구름을 쳐다보니
모두가 언제 인 냥 싶다.
누우런 황금빛 물결이 넘실거려 춤추고 먼 산의 단풍잎이 한잎 두잎
곱게 물들어 갈 때 마지막 잎새와 함께 농부들의 이마에는 잔주름이 하나둘
늘어가고 속절없이 흘러간 무심한 우리네 인생살이가
또다시 우리를 슬프게 한다.
희망찬 새봄을 맞이하여 글 을 맺고 나니 자꾸만 나 자신이 쑥스러워 지는 것 같다
행여 누군가 비웃지는 않을까 ?
손가락질이나 하지 않을까 ?
하지만 이제는 주사위는 던져 졌다. 아쉬움이 있다면 조금 더 진솔 되고
솔직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언제인가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 모든 것 아낌없이 들려주리라.
그래도 마음 한켠에는 모든 것 훌훌 털 고나니 한결 마음이 새롭고 가볍게 느껴지는 것 같다.
가슴한구석 10년 묵은 체중이 쑤욱
내려가는 기분이다.
살며시 눈을 감고 회상을 해본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나의 검정고시
여러 추억들 하지만 목표를 향해 쉼 없이 자신을 독려하던 그 시절을
되돌아 볼 때마다 언제나 신선한 감동을 내게 준다.
내 인생에 다시 한번 그와 같은 결단과 노력이 주어진다면 그때와 같이
온몸으로 부딪히며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용기가 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반문해 본다.
생각하면은 어떻게 그 어렵고 험난한 길을 걸어 왔는지 뒤돌아보니 아득하기만 하다.
하지만 고생 뒤에는 영광이 있다고 하질 않았던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그러나 나는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이후 모진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오늘이 있기 위해 참으로 외로운
투쟁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그러나 또한 보람된
길을 걸었습니다.
젊어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속담에 저 또한 그 어려운 역경과
고난을 견디어 왔으며 눈물의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인생의 의미를 모른다는
격언 또한 저를 충분히 새로운 인생을
걷게 하여 주었습니다.
가난하고 못 배운 게 죄인이 아니고 그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잘못
이라는 것을 비로소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춥고 배고픈 자의 설움과 고통은 격어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든 흉내 낼 수 없으며 배우지 못한 자의 설움 또한 아무나 흉내 낼 없는
너무나 뼈저린 아픔이었습니다.
영국의 역사 철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는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법칙에 의하여 발전하며 창조적 소수에 의하여 건설된다고
갈파하였듯이 모든 값진 인생은 결국 창조적으로 자기의 환경을 극복하고
개척해 나가는데 있음을 저는 확신합니다.
흔히들 자신의 불행한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현재의 상황을 환경 탓으로 돌리는데
그것은 결국은 나약한 자기 자신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아울러
우리인생의 삶이란 끝없는 도전과 투쟁이기도 합니다.열 번 찍고 백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비록 작은 힘이나마 <하면 된다!>라는 이 구절만큼은 지금도
우리 상록학교 혹은 전국 어디에서든 열심히 만학에 불타고 있는 모든 독학생
여러 분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이제는 배우지 못한 설움을 모두다 저 뭉게구름에 실어 보내고 어두운 그늘 속에서
몸부림치는 우리 상록학교 소년 소녀 가장 및 불우 청소년들과 늘 함께하면서
언제 어디서든 밝고 건강한 사회가 되는 길이라면
언제라도 달려갈 것이며
나의 분신인 구미 상록학교와 구미 대안학교 아이들을 제 가슴속 한켠에 영원히
묻어 것을 약속드리며 오늘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싱그러운 햇살을 가르며
김천소년교도소 수용자 및 보호관찰소 아이들에게 출강을 하기 위하여 힘차게
폐달을 밝으며 달려가고 있으며 저는 언제나
어둠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어 늘 푸른 인간 상록수로 길이
남을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 이 글은 제32회 스승의 날 기념 제3회 교육 현장 체험 수기 공모 은상수상작입니다.
잃어버린 추억을 찻아서............
▲쨔잔! 오늘은 화이터데이 쵸코렛 먹는날
▲저는 차마 아이들을 체벌하지 못해 오히려 몽둥이로 맞기도 하였어요.
▲ 자연보호 쓰레기줍기 구미 금오산 일원
▲ 무주레져스쿨 레프팅을 다녀왔어요....
▲ 무주레져스쿨 켐핑 불고기파티장 입니다.
▲ 무주레져스쿨 켐핑 신나는 파티장 입니다.
▲“농촌 일손돕기 봉사활동” 경운기몰기 노작체험
▲“농촌 일손돕기 봉사활동” 배추를 심어서 우리 손으로 김장을 담았어요.
▲“국가공인자격시험 도전기” 졸업할 때 각종자격증 취득“ 기회제공
▲저는 가끔씩 우리 아이들에게 감짝 파티를 열어 주었어요.
▲쨔잔! 월1회 당구장 가는날 “우리 대안학교 아이들 많의 특권이죠”
▲쨔잔! 롯데 시네마 극장가는날 “우리 대안학교 아이들많의 특권 이랍니다”
▲ "병영체험" 자랑스러운 우리아이들 입니다.
▲ 졸업여행기념 1박2일 병영체험 “우리 말썽쟁이 성현이 랍니다.”
▲쨔잔! 즐거운 요리시간 "떡뽁이만들기"우리 손으로 만들었어요...
▲월1회 “생일없는 소년” 우리 아이들에게 합동생일상을 차려 주었어요..
▲짜쨘! 이번달은 민무.예찬,창현이가 생일이었어요.
▲ 규정을 위반한 아이들에게는 봉사활동을 시켰어요...
▲ 짜쨘! 우리의 자랑스러운 상록의 F-4입니당..
▲ 짜쨘! 우리도 이젠 예비 숙녀랍니당....
▲ 3.1독립운동 기리기 현장학습입니다..
▲ 짜쨘! 청소년 보컬밴드 "비상"
▲사춘기 성 고민은 이제그만 매월1회 청소년 성교육 실시
▲ 대구 H 대학교를 당당히 합격한 효정이가 반갑게저를 찻아왔어요...
▲우리 상록학교가 2009년“교과부주최 전국평생학습대상 우수기관에 선정”되었어요.
▲대구 제2작전사령부 MOU업무협약체결 “무열학교 개교”검정고시교육
▲법무부 김천소년교도소 MOU업무협약체결 교정교화활동
▲법무부 대구서부보호관찰소 MOU업무협약체결 청소년범죄예방교육
▲ 구미보호관찰소 청소년 복학 설명회 및 인성교육
▲ 김천보호관찰소 청소년 복학 설명회 및 인성교육
▲ 대구서부 보호 관찰소 청소년 복학 설명회 및 인성교육
▲ 청소년 범죄예방교육및 유예약물예방교육
▲ 청소년 범죄예방교육및 유예약물예방교육
▲ 청소년 범죄예방교육및 유예약물예방교육
▲ 너와나의 약속
어둠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리라...
▶저 자 : 구미상록학교 ▶발행인 : 정 태 하 ▶펴낸곳 : 한솔고시기획
▶등록번호:128-91-50621 ▶연락처:054-457-3422
첫댓글 대단합니다. 양반낭자 천상배필 조선시대애기같네 그려. 고생도많이 했어. 사람사는게. 함들때는 곁에 사람이없어요. 모자라고 힘들때 정말 정말 천사같은 그대 그래도 당신은 복받은 사람일세. 한세상그렇게살다 가면 돠는곳을. 하느님 말씀대로. 살면 최고 삶이 아닐지. 건강하고 행복여생 사시길. 항상 내가 나자신을 자키려할때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구구절절 그대 삶 느껴집니다. 원망도 미움도 알아요가난에 스쳐가는 필수과목이 아니든가. 지나고 나며. 나의 역사가 되어있지. 앞으로 더 열심히 힘든이 손을잡아주면서 살아가보세. ^^. 나도 잘쓰지못하는 글. 남모른 아픔안고. 글에위로받으면 산다네. 많이들 봐주고해서 얼마나고마운지. 가슴이 여미네. 한세상이 그리 녹녹한 삶은 아닐 진대. 그래도 좋듯 싫듯 명까지는 살아야하지.왔으면 떠날줄도 알아야지. 안가려고발부둥 치면 인생너무초라해진다네. 석양이붉게물들며 벗둘도하나둘 보아지않겠지. ㅋㅋ잘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