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기에 앞서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삼가 작년 할로윈 축제 때 유명을 달리한 분들과 그 유족분들에게 애도와 위로를 전합니다.
십 오 년 전 미국으로 처음 건너와 맞이했던 할로윈은 우리 가족들 모두의 기억 속에 생생한 추억으로 남았다.
그때 그날의 일기를 꺼내 본다.
***
불을 다 꺼버린 어두운 집에서 집사람과 아이들이 블라인드 한 조각씩 조금 열어두고 빼꼼 어두운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또 왔다."
아버지로 보이는 어른이 차를 대기 바쁘게, 차문을 열고 내린 아이들이 친절맨의 집으로 달음질을 쳤다.
친절맨의 집 앞에 켜진 등 아래의 아이들 복장은 각양각색이었는데, 다들 할로윈을 대비해 준비를 했던지 귀신 복장에 해골복장, 어떤 아이는 슈퍼맨 복장도 하고 있었다.
친절맨과 그 부인은 우리가 붙여준 별명에 걸맞게, 집 앞에서 서성이다가 한 무리의 아이들이 달려들 때마다 한 바가지씩의 사탕들을 퍼담아주곤 했다. 때때로 귀엽고 어여쁜 아이들에겐 멋진 목걸이도 걸어주곤 했다. 얼마나 많은 선물들을 준비했던지 아이들의 발걸음이 한참을 이어졌는데도 주는 인심이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찾아드는 아이들을 얼마나 반기며 친절하게 대했던지, 지켜본 집사람과 아이들은 그때의 이야기를 전하며 이렇게 말했었다.
"역시 대단한 친절맨 아저씨야."
올해는 미국 경기도 최악의 상황이라, 할로윈이 다가와도 전혀 들뜨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 들어와 처음 맞는 할로윈, 혹시나 우리 집을 찾아들 아이들을 위해 우리도 큰 사탕 한 봉지는 준비를 했었다.
나는 그날 달라스에 있었고, 아직 미국 생활이나 문화에 서툰 내 가족들은 휴스턴에서 할로윈을 맞았다.
낯선 아이들이 줄지어 집으로 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 많은 식구들은 아주 쉬운 결정을 내렸다.
- 집에 아무도 없는 척 하자.-
집에 전등이란 전등은 다 꺼버렸고, 해가 지던 저녁 7시경, 식구들은 창가로 붙어 서서 제3의 관찰자가 되었다.
현관에 불이 켜진 집들을 골라 아이들이 뛰어들고, 한 무리의 아이들이 가고 나면 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뒤를 이어 뛰어들었다. 우리 집은 아니고... 우리 동네 불 켜진 집들로.
아이들에게 줄 사탕이나 과자가 떨어진 집들은 현관의 불을 소등함으로써 자신들의 역할을 끝냈고, 현관의 전등이 점점 더 많이 소등되어 감에 따라, 할로윈을 즐기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졌다.
동네의 모든 집들이 다 어두워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친절맨 집 앞은 분주했었다.
얼마나 많이 준비를 해두었던 것일까?
우리가 준비했던 사탕 한 봉지는 결국 우리가 다 먹었지만, 그 정도로 아이들을 맞았다간 채 오분도 못 버티었을 것이다.
어둠 속에 숨어 집사람과 아이들은 이 땅에 들어와 처음 맞는 할로윈을 즐겼고, 나는 가족들의 후일담을 들으며 할로윈을 즐겼다.
내년에는 우리도 할로윈을 아주 즐거운 축제로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가족 모두 다 함께, 비록 내 나라 내 땅의 아이들은 아니지만 이 땅의 아이들에게 추억과 사랑을 선물하면서 우리 또한 오래 간직할 추억의 명절로 할로윈을 맞았으면 좋겠다.
***
바람과는 달리 낯선 축제에 쉽게 스며들지 못한 식구들에 의해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할로윈에 우리 집 현관 전등은 꺼져있었고,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집을 정리하고 아파트로 옮기고 난 후부터 할로윈은 그저 남의 나라 축제가 되었었다.
올해 여름 주택으로 이사를 온 후 할로윈을 앞두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았더니 이집저집 경기 탓에 조촐하긴 했지만 성의 있는 할로윈 준비를 하는 것이 보였다.
"우리도 준비하자."
새집으로 온 후 동네 분위기를 마음에 들어 하던 아내가 전과 다르게 축제에 참여하고 싶어 했다.
마트에 가서 사두었던 초콜릿들을 작은 봉지에 나누어 서른 개를 준비하고, 그중 열개를 현관 앞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할로윈 저녁, 현관 전등을 켰다.
저녁 7시경부터 찾기 시작한 꼬마 손님들은 준비한 초콜릿이 다 떨어진 9시경까지 드문드문 찾아들었다.
한 명 앞에 한 봉지씩 약속한 것처럼 가져갔다.
코로나 이후 얼굴을 대면하며 주고받던 정겨움은 거의 사라졌다.
현관문 안쪽을 서성이다가 손님 방문 때마다 줄어드는 초콜릿을 들락날락 연신 보충해 두며 들떠있는 아내를 물끄러미 보다가, 나로 인해 타국에서의 지난하게 이어지던 상실들로 상처를 받아왔던 아내가 하나 둘 본래의 밝고 선한 심성들을 되찾아가는 것 같아 코끝이 찡해지고 가슴은 따뜻해졌다.
<할로윈> - 마음자리 -
유령들의 잔칫날
산 자는 죽고
죽은 자는 사는
이날 하루는
다리 사이에 머리를 파묻고
땅과 하늘 거꾸로 보며
살아야 해
숨 죽여. 쉿...
첫댓글 ㅎ 사진의 집이 마음자리님의 저택이 아니었군요
웅장한 저택 자랑인줄 알았어요 ~
언뜻 사진을 보고
아고오야 참 앵간하다 젊은 사람도 아닌데 무신 귀신 장식을 ㅡ 요리 생각했지요
다들 처음 자리한 이국에서의 사정이 비슷하네요
오래전 초창기에는 저도 집안의 불끄고 그랬습니다
지금 집으로 이사오고 부터는 두어해는 가뭄에 콩나듯 한둘 아이들이 캔디 얻어러 오더니
이젠 불 켜놓아도 아이들이 오지 않아요 거의 이십년쯤 되나 봅니다
제집의 동네가 외지고 아이들이 거의 없는 동네이긴 하지요
그래서 아직도 이런 풍습은 낯설어 남의 일인가 합니다
오늘 일 나서기 전, 얼른 글 올렸더니 시차가 없는 단풍님께서 첫 댓글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ㅎ
우리 동네에 가장 잘 꾸민 집입니다. 저야 엄두도 못낼 일이지요.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고향 풍습도 점점 멀게 느껴지고 이곳 풍습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고... 뭔가 새로운 기념일들을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ㅎ
마음자리님. 미국 생활에 점점 잘 적응해가는 모습이 보기 좋군요. 죽은자들의 축제일. 이번 북미여행에서 저도 곁눈으로 즐겼습니다.
푸른비님, 어제 가신 것 같은데
벌써 돌아오셨네요. ㅎㅎ
미 동부 유명 도시들과
캐나다 단풍 많이 즐기셨나요?
@마음자리 ㅎ 지금 뉴욕 케네디 공항입니다.
이번에 미국. 가이드를 통해서 미국에서 트레이러 운전 면허증 따기 어렵다는 것. 수입도 대단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자리님 대단하셔요
@푸른비3
먼길을 떠난 재미가 솔솔 하지요.
여행중에도 수필방 댓글에 나오니,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많이 즐기시고, 마음에 많이 담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 오셔요.^^
돈 아꼈다는 말씀은 거두어 넣고요.ㅎ
@푸른비3 아... 같은 하늘 아래 계셨군요. ㅎㅎ
트럭운전면허는 마음 먹기가 어렵지 누구든 시작하면 쉽게 딸 수 있어요.
남은 여행도 알차게 즐기세요~
저는버지니아에서 며칠전
할로윈을 보았습니다
호박을 무섭게 조각해서 문 앞에다 놓고
이것저것 무서운인형들도놓고~~
우리나라 1월15일 보름 동짓날 저녁 잠자면 눈썹희여진다고 하는 풍습하고 이집저집다니며 밥얻어먹는풍습 비스무리하네요
운전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거의 두달 전부터 마트들엔 다양한 호박들을 진열해놓습니다.
빨리 장식해놓는 집들은 시월 들어서면 바로 장식 시작해요.
한국도 정월 대보름과 단오날 등등 전통명절들을 더욱 활성화 시키면 좋을 것 같아요.
저희도 그래요..
아이 어릴땐
캔디 초콜렛 준비
해놓고
때론 불꺼놓고요
얻으러 다니고
한동안 어른도 애도
달콤한 초콜렛을 ㅎㅎ
먹었죠.
단것을 살짝 피하느라
많이는 안사고
재미로 해요.
올핸 정말 물가도 오르고
무시 못하네요.
한국에 이태원사건
이후 묵묵히 지냅니다.
동네 행사가 있으니
그냥 도네션하고
집에선 불끄고
지나 갔어요.....
경기가 안 좋다해도 잘 모르겠더니
할로윈을 지나보니 바로 알겠네요. ㅎㅎ
매년 분위기가 조금씩 더 가라앉고 있어
걱정입니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
남의 나라 풍습에 익숙지 않은 가족들을 떼어놓고,
타지(달라스)에서 보내야 했던 가장의 마음에
할로윈 저녁을 상기 해보는 마음자리님,
굳셉니다.
그 힘으로 오늘이 있습니다.
맨 마지막 구절에서, 저도 가슴이 울렁입니다.
마음자리님의 가족께 화이팅 !
항상 안전운전하시고,
건강과 건필을 빕니다.
늘 감사합니다.
콩꽃님의 응원이 제 누나들의
응원처럼 큰 힘이 된답니다.
마음자리 님의
15년 이민사가
할로윈 글속에 다 들어 있군요.
가족분들 중에
사모님의 마음고생
들어 내놓지도 못하고
마음속으로 삭였을 지난 날들
이제부터는
좋은 날들만 가득하실것 같아
글을 읽는 동안 기분이 좋았습니다.
글 읽으며 기분이 좋으셨다니
글 쓴 보람이 느껴집니다.
공감과 나눔 주셔서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낯설은 곳에서 낯설은 축제를
겪어내시는 과정이 가족사와 연결되니
마음이 뭉클 해 집니다.
올해는 새집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할로윈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온 가족에게 행복과 건강을!
분주하면서도 서로 흐뭇한 저녁을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민 생활의 애환과
소소한 일상을 그린
글 속에서
마음 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마음 님의 가족이
늘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겠습니다
사는 일에 애환이야 피할 수 없는 것.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앞으로도
잘 이겨내며 살겠습니다.
마음자리님 미국생활과 애환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미국에서 보다 더
행복한 삶이 이루어지시길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할로윈이 우리나라 동지 같은 건지요?
동짓날 아이들이 찰밥을 얻으러 다니잖아요.
팥죽도 귀신 먹이려고 쑤는 거라던데.
그 쪽 할로윈은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축제네요.
여기는 할로윈이 슬픈 날이기도 합니다.
새집에서의 할로윈 축하 드립니다.
동지나 정월대보름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녁부터 밤까지 즐기는 것이라
떠들석하진 않지만 꾸미는 집들의
정성은 대단해 보입니다.
저희도 조용히 참여하고 즐기겠습니다.
새집에서 맞이한 할로윈 축제
지금 이 순간 할로윈 축제를
즐기며 행복해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듯해서요.
괜히 마음이 푸근해 지는 거있죠.
지금처럼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이젠 가까이 있는 행복을
멀리서 찾진 않으려구요. ㅎ
함께 잘 살겠습니다.
참 다감하시고
가족 사랑도 깊으심을 느낍니다.
핼러윈을 맞아 이렇게 옛이야기 하시니
함께 뿌듯해지는 마음입니다.
뿌듯하고 시큰하고...
여러 감정들이 섞였답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우 낯설었던 할로윈이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크리스마스보다 더 인기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진을 보니
뼈다귀가 아이고 무서워라 ㅋㅋ
올해는 작년 일도 있고해서인지
그래도 조용하게 넘어간 편이라더군요.
여긴 아이들 잔치지 청년 잔치는 아닌데... 한국에선 약간 변형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