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30. 예수비전교회 주일낮예배 모든 일, 은혜에 풍성하라 유백선 목사
고린도후서 8: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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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을 전공하고 성공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김주원 박사가 쓴 성공학 ❲부(富), 그 사유와 실천❳이란 칼럼에서 말했습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까지 어느 정도까지의 깊이 있는 지식이 필요하다. 부자가 되는 것도 역시 지식이 필요하다. 알기 위해서는 모른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문이 닫힌 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문을 밀어봐야 한다. 씻어야 할 때를 안다는 것은 더러워졌다는 것이다. 먹어야 할 때를 안다는 것은 배가 고프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욕구)을 알기 위해서는 선행자극이 필요하다. 자극은 반응을 유도하고, 반응이 판단을 필요로 한다. 판단이 과거의 경험을 호출하고, 과거의 경험이 기억에 의해 차례로 소환된다. 기억은 경험한 것들 가운데 감정의 강도가 큰 것들의 조합이다. 감정적으로 가장 우월했는지에 따라 기억의 순서가 매겨진다. 인간은 영원히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람들에게 ”부자가 되고 싶은가?“ 하고 질문하면 ”부자? 그냥 평범하게 살래요.“ 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일까? 그것은 부(富)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경험에 의한 감정의 강도)에 의존해서 부(富)에 대한 욕구를 지워버리는 판단을 하고 산다. 부자가 되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게 살기를 작정한 셈이다. 사상가 키케로가 말했다. ”본성에 의한 모든 것은 존경의 가치에 있다.“ 인간의 본성은 부(富)를 추구하는데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확장되고, 발전하고 성장하는 바람직한 욕구이다. 그래서 부는 꼭 공부해야 할 지식이다. ‘부’는 ‘자유’다. ‘자유’는 ‘나로서의 나다운 삶을 살 권리다.’ 부는 돈이 기준이 되어 일, 시간, 소유를 선택당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를 위해 일, 시간, 소유를 선택하는 삶의 욕구를 실현하는 것이다. ‘돈’이 많다는 것은 ‘돈’으로 시간을 사고, 선택을 사는 삶이다. 깨닫지 못한 사람의 인생은 희열이 없다. 혼돈스럽고 미래의 일만을 생각한다. 부(富)는 나에게 자유를 주고 내 인생의 가치를 실현시켜주는 존재다. 관심이 변하면 보이고 들리는 것이 달라진다. 다른 것이 쌓이면 선택도 달라진다. 선택이 다르니 결과도 당연히 다르게 나타난다. 이해한 만큼 소유한다. 부(富)를 알지 못하면 부를 소유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부’의 반대는 ‘빈(貧)’이 아니라 ‘무지’다. 그래서 부(富)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을 해야 한다.”
여러분! 재물(돈)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선을 행합니다. 가진 재물의 보존연한이 얼마나 될 것인가? 선을 크게 키울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선을 크게 키울 가치가 관용, 베풂, 나눔입니다. 스페인의 철학자 발타사르 그라시안이 말했습니다. “돈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되라. 그 가치를 알고 실천하면 돈이 알아서 일을 할 것이다. 돈을 쫓지 말고 ‘너의 가치’, ‘인간의 도리’를 따라 가라. 그러면 돈이 알아서 너를 쫓아갈 것이다.” 재물을 지키려다 소중한 사람들을 잃기도 합니다. 재물에 인색한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곁에 있지 않습니다. 재물(돈)이 삶에 필요한 도구입니다. 그런데 재물(돈)이 삶의 목적이 되면 재물(돈)을 사랑하고, 돈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富)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시험과 올무에 빠집니다.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집니다.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돈을 탐내는 사람들이 미혹을 받아서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습니다.(딤전 6:9-10)
오늘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일, 은혜에 풍성하라.”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풍성해야 할 모든 일이 무엇입니까? 믿음, 말, 지식, 간절함, 사랑, 은혜입니다. 본문 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그리스도인의 모든 일 중에 풍성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믿음이 풍성해야 합니다. 여기서 “믿음(피스테이/πιστει/pistei)”은 “진리의 확신, 구원의 그리스도를 신뢰, 꾸준함, 충성, 성실”을 뜻합니다. “풍성하다(페리슈에테/περισσευετε/preisseyete)”는 말은 “넘치게 되다, 풍부하게 되다, 탁월하다, 증가하다, 나아지다”라는 의미입니다. 무소유공동체 심플웨이(Simple Way) 설립자 쉐인 클레어본이 말했습니다. “믿음은 행동이 증명한다. 믿음이 행동으로 나타나고 실천하여 진정한 믿음을 증명한다.” 믿음이 진리를 확신합니다. 믿음이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신뢰합니다. 믿음이 풍성하면 예수님을 아는 신성한 성품을 소유합니다. 믿음이 풍성하려면 믿음이 더욱 자라나야 합니다. 믿음이 더욱 커지면 문제를 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믿음이 더 커지면 생각의 방향, 생각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믿음이 커지면 문제를 이길 담력이 커집니다. 욥이 육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태어날 때 아무 것도 가져온 것이 없었다. 죽을 때도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주신 분이 여호와시다. 가져가신 분도 여호와시다. 그래서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기 원한다.”(욥 1:21) 욥은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를 신뢰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믿음이 풍성하려면 주의 은혜가 풍성해야 합니다. 믿음이 풍성하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주의 은혜가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게 합니다.(딤전 1:14) 믿음이 풍성해야 기적을 체험합니다. 믿음이 탁월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됩니다. 믿음이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이 풍성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히 11:1) 믿음이 커야 기적을 행합니다. 믿음이 풍성해야 서로의 유익을 추구합니다. 성장하는 가정, 성장하는 교회, 성장하는 기업은 장기 믿음이 있습니다.
둘째는 말이 풍성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로고스/λογος/logos)”은 “말씀, 교훈, 예언, 언변력, 교리, 이성, 정신적 사고능력”이란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합니다. 그래서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갭니다.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히 4:12) 그래서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아야 합니다.(히 6:5) 말씀이 풍성해야 마귀를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 말씀이 풍성하면 항상 마음에 그 말씀을 두고 삽니다. 말씀을 마음에 둔 사람이 그 말씀을 실행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는 사람이 재앙을 당합니다.(출 9:21)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면 순결하게 합니다.(시 12:6) 하나님의 말씀이 정직하게 합니다. 말씀이 풍성한 사람은 그 행사가 다 진실합니다.(시 33:4) 말씀이 풍성하면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 말씀을 찬송합니다.(시 56:10) 주의 말씀을 왜 마음에 두었습니까?(시 119:11) 주의 말씀이 곤란한 가운데 위로를 주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입니다.(시 119:50) 그 말씀의 맛이 달기 때문입니다. 꿀보다 더 단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시 119:103) 주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기 때문입니다.(시 119:105)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열어 빛을 비춰서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시 119:130) 그 말씀에 주의하여 좋은 것을 얻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잠 16:20)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입니다.(눅 1:37)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면 말의 영향력이 있습니다. 말하는 센스가 있습니다. 말의 품격이 삶의 품격을 높입니다. 말을 듣는 사람에게 은혜를 끼칩니다. “사람이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배가 부르게 됩니다.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만족하게 됩니다.(잠 18:20) 그래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기 원하는 사람은 혀를 금하고, 악한 말을 그쳐야 합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화평을 구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향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십니다.(벧전 3:10-12)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켜서 인내로 결실하는 사람입니다.(눅 8:15)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눅 11:28)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하고 왕성하여 세력을 얻습니다.(행 19:20)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갖는 것입니다.(고후 6:7)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면 믿음의 말을 합니다. 항상 긍정적인 말을 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갑니다.
셋째는 지식이 풍성해야 합니다. 여기서 “지식(그노시스/γνωσις/gnosis)”은 “행위를 아는 것, 학문, 이해의 중요한 지식, 그리스도의 지식”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식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행동을 달아보십니다.(삼상 2:3)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있어야 부와 재물과 존귀와 영광도 얻게 됩니다.(대하 1:12) 그래서 지혜가 있는 사람이 말을 듣고, 지식이 있는 사람이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욥 34:2) 지혜가 있는 사람이 듣고 학식이 더합니다. 명철한 사람이 지략을 얻습니다.(잠 1:5) 하나님의 지혜가 마음에 들어가고, 지식이 영혼을 즐겁게 합니다.(잠 2:10)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세상에서 나를 넓혀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키우고, 그 사랑을 실천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소통하고, 마음을 재발견하게 합니다. 지식이 인간행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리더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리더의 크기가 조직을 크게 키웁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왜 풍성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다.”(막 3:35)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기 때문입니다. 본문 1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여기서 “뜻(그노멘/γνωμην/gnomen)”은 “인식, 견해, 충고, 마음, 판단, 목적, 의지, 지적 능력, 마음, 이성, 판단력”이란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인식하는 사람이 목적을 지향하는 삶을 삽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유익한 삶을 삽니다. “유익하다(쉼훼레이/συμφηρει)”는 말은 “함께 가져가다, 기여하다, 모으다, 이바지하다, 돕기 위해 모이다, 오히려 좋다, 이롭다, 적절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무엇을 알리기 원했습니까? 선한 일에 참여하기를 원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준 예루살렘교회가 박해와 기근으로 성도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안디옥교회와 빌립보교회가 어려움 속에서도 예루살렘교회에 구제금(연보)을 보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비교적 여유가 있어서 기근에 처한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구제(연보)를 하겠다고 1년 전에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작정한 구제를 실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모든 일에 풍성하기를 원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도 풍성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께 영적인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것, 기뻐하시는 것,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합니다.(롬 12:1-2) 그리스도인이 거룩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4:3)
넷째는 간절함이 풍성해야 합니다. 여기서 “간절함(스푸데스/σπουδης/)”은 “속도, 열심, 진심, 성실함, 부지런함”이란 뜻입니다. 간절함이 열정을 이깁니다. 그래서 간절함이 성공의 원동력입니다. 천양희 시인이 말했습니다. “간절함 앞에서 언제나 무릎을 꿇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무엇에 간절해야 합니까? 간절히 주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갈망합니다.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는 것입니다.(시 63:1) 하나님께서는 간절하게 주를 찾는 사람을 만나주십니다.(잠 8:17) 간절하게 선을 구하는 사람이 은총을 얻습니다.(잠 11:27)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앞에 두고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기도하셨습니다.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하게 기도하실 때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과 같이 되었습니다.(눅 22:41-44) 우리는 기도할 때 땀이 핏방울과 같은 기도를 해보셨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왜 긍휼히 여기는 간절함이 풍성해야 합니까? 간절함을 가지고 사랑의 진실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여기서 “사랑의 진실함(아가페스 그네시온/αγαπης γνησιον/agapes gnesion)”이란 “사랑의 합법성, 사랑의 성실성, 사랑의 진지함”이란 의미입니다. 사랑을 담은 구제가 사랑의 행동이요, 진실한 사랑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랑(아가페/αγαπη/)”은 “애정, 자비심, 애찬, 선의, 자비, 사랑의 제사”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구원의 은혜입니다. “사랑은 수고가 증명한다.” 사랑의 실천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치료약입니다. 그런데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말했습니다. “진실한 사랑의 행보는 결코 순조로울 수 없다. 사랑이 깊을수록 사소한 염려도 두려움이 된다. 사소한 두려움이 커지는 곳에 큰 사랑이 자란다.”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왜 사랑의 간절함이 풍성해야 합니까? 사랑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성취하러 오셨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준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것을 알 것이다.”(요 13:34-35)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 제자의 배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면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본문 1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구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대로, 처음에 마음에 주신 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그리스도인이 성취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성취하려면 예수님의 사랑 안에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사는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킵니다. 그 사랑 안에 기쁨이 있고, 그 기쁨이 충만합니다.(요 15:10-11) 사랑이 모든 율법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풍성하면 환난과 곤고함과 핍박을 이깁니다. 기근과 적신, 위험, 칼의 위협을 이깁니다.(롬 8:5-37)
다섯째는 은혜가 풍성해야 합니다. 여기서 “은혜(카리스/χαρις/xaris)”는 “호의, 마음에 주는 신성한 영향, 선물, 자비, 너그러움, 기쁨, 감사할 가치가 있는, 선한 의지, 긍휼, 자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출 33:19)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십니다.(신 5:10)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는 사람이 잘 됩니다. 그 일을 정의로 행합니다.(시 112:5)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잠 3:34) 그리스도인이 왜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요 1:17)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합니다.(롬 5:2) 본문 9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인해 믿음의 사람을 부요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통해서 은혜의 부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가난해져야 구제와 나눔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흑인 노숙자 가정의 딸이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장학금을 받고 공부해서 미국 하버드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에 합격을 하고,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분량대로 이웃들에게 나눔으로 세상과 사람들과 모든 일에 풍성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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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비전교회91 원문보기 글쓴이: bsy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