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에서 은퇴한 하워드 웹 주심
“FIFA가 형편없는 프리미어리그
심판의 수준을 알아봐줘서 기쁘게
생각한다.”
“전혀 놀랍지 않은 뉴스다.”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심판들
의 수준은 최악이다.”
80년 만에 한 명의 심판도 월드컵 본선에 나서지 못하게 된 잉글랜드 축구의 소식을 전한 BBC의 소셜미디어 등에 보인 현지 팬들의 반응이다.
FIFA는 이틀 전,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경기를 진행할 심판진 99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36명의 주심과 63명의 부심 명단이다. 눈에 띈 것은 축구 종주국으로 오랜 세월 심판진을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내세웠던 잉글랜드가 단 한 명의 심판도 러시아 월드컵에 보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잉글랜드 출신 심판이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르지 못한 건 무려 80년 만의 일이다. 193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처음 있는 일로 근래 접하지 못한 뉴스다. 잉글랜드 출신의 하워드 웹 주심이 2010월드컵 결승전을 맡았고, 마크 클라텐버그 주심이 유로2016 결승을 진행한 기억을 떠올리면 이례적인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정작 잉글랜드 현지 팬들과 미디어들은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는 분위기다.
프리미어리그 오심률 2.5%?
근래 프리미어리그는 심판 판정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마찰을 거듭했다. 지난해 초엔 스완지와 번리전을 진행한 앤서니 테일러 주심이 자신이 내린 페널티킥 선언을 두고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있었다. 올 초 리버풀과 토트넘전을 진행한 조너선 모스 주심의 판정을 두고 전 프리미어리그 주심인 마크 할시가 공개적으로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주심의 판정 논란은 아니었으나 맨유의 FA컵 경기에선 그림판 수준의 VAR 그래픽으로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꼽기도 쉽지 않을 만큼의 부정확한 판정과 오심 논쟁이 이어지면서 리그 심판 판정의 신뢰도가 추락했다.
잉글랜드 심판 당국의 발표 하나가 그렇지 않아도 프리미어리그 주심 판정에 부정적 기류가 강한 여론에 불을 지폈다. PGMOL(Professional Game Match Official Limited)라는 조직이 있다.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 FA컵, 풋볼리그 등의 경기를 진행하는 심판진을 육성, 관리하는 곳이다. 2001년 만들어져 현재 109명의 주심과 206명의 부심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PGMOL은 얼마 전 프리미어리그 판정의 오심률을 공개했다. PGMOL에 따르면 프리미어리그의 오심률은 2.5%였다. 정확도가 97.5%라는 말이다. PGMOL의 설명은 이렇다. PGMOL는 프리미어리그 주심들은 경기 평균 245번의 판정을 한다고 했다. 22초마다 한 번 꼴의 판정이다. 이 중 단순히 공이 나가고 하는 등의 장면 말고 신체접촉과 징계 조치에 해당하는 판정이 200번이다. 이 중 오심은 평균 5개라고 했다. 오심률 2.5%의 근거다.
하지만 PGMOL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심판들의 조직인 만큼 팔이 안으로 굽는 것처럼 최대한 심판에 유리한 통계와 발표라는 것이다. 실제 일부 언론사들이 따로 정리한 결과에 따르면 프리미어리그의 오심률은 15% 안팎이라는 자료도 있다.
입장과 관점에 따라 수치는 달라질 수 있으니 이 자체를 따지기보단, PGMOL을 포함 잉글랜드 심판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 곱지 않다. 이유는 변화를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이익을 쫓는 내부 카르텔에 있다. 대표적인 게 잉글랜드 심판들의 고령화되는 더딘 세대교체와 은퇴 규정이다.
고령화하는 프리미어리그의 심판들
지난 3월 트랜스퍼마켓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주심들의 평균 나이는 42.2세다. 유럽 주요리그 중에 주심의 평균 나이가 마흔 이상인 건 프리미어리그가 유일하다. 독일이 36.9세, 스페인이 38.2세, 이탈리아가 38.3세, 프랑스가 37.3세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1경기 이상 진행한 주심 중 20대는 한 명도 없다. 30대가 8명이며 40대 이상이 가장 많은 11명이다. 4명의 50대 이상이 포함된 수치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최연소 주심인 스벤 자블론스키(27살)를 비롯해 유럽의 주요리그들이 젊은 심판들을 중용하는 것과 배치되는 프리미어리그의 흐름이다. 단순히 젊은 심판들에게 기회를 줘야한다는 게 아니다. 최적의 판정과 경기 진행을 하려면 선수 못지않은 체력이 필수다. 때문에 심판들의 세대교체와 나이 관리는 자연스럽기까지 한 일이다. 경기 템포가 빨라진 요즘 축구라면 심판들에게 더 요구되는 능력이기도 하다.
스카이스포츠에 따르면 프리미어리그 주심들의 경기 평균 이동거리는 11~12km다. 경기를 뛰는 웬만한 선수보다 많은 양이다. 더더욱 프리미어리그 경기의 속도는 5년 전에 비해 20%포인트 증가했다고 한다. 빨라진 경기 탓에 짧은 거리를 질주해야 하는 심판들의 스프린트 횟수도 8시즌 전에 비해 70% 포인트나 늘었다고 한다. 강한 체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버티기 힘든 환경이 된 것이다. 심판이 제대로 뛰지 못하면 문제 장면을 가까이에서 정확히 보지 못하거나 잘못된 판정을 내릴 위험성이 그만큼 커진다. 심판 교육에서 체력 테스트를 강조하는 이유기도 하다.
유럽의 다른 리그들이 주심의 나이를 낮추려 노력하는 것도 이와 같은 ‘판정의 질’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걸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일정한 나이를 넘긴 심판에겐 쌓은 경험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른 역할을 맡기고, 선수처럼 뛰지 않고는 버텨내기 쉽지 않은 현장엔 젊은 심판을 활용하는 현실적 정책인 것이다. 유럽의 주요리그들이 더 나아가 아예 주심의 은퇴 나이를 제도화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페인 라리가는 45세, 독일 분데스리가는 47세를 주심 은퇴 나이로 하고 있다. 프랑스 리그1은 따로 명시해두고 있지 않지만 43~46세 사이에 심판들이 자발적으로 물러나는 문화다. 실제 잉글랜드를 제외한 유럽 4개의 주요리그에 46세 이상의 주심은 없다.
나이를 제한하는 게 직업 선택의 자유 등에 위배될 수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있으나 현실적으로 일정한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심판의 역할과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어 줄기차게 변화를 요구했지만 잉글랜드 심판계는 꿈쩍하지 않았고 결국 국제무대에서 평판이 추락하는 현실을 맞고 말았다. 심판의 고령화, 부족한 심판 숫자, 쌓이는 판정의 불신, UEFA와 FIFA의 낮은 평가 등은 때문에 잉글랜드 심판계가 스스로 부른 추락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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