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굽은 소나무
구순자
어느 궁전에 ‘아뿔사’라는 왕이 살고 있었습니다.그 궁전 인정전仁政殿앞에는 키 크고 곧은 소나무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등 굽은 소나무가 있었는데그 아래에는 긴 의자가 있었고 이따금 그 소나무 아래에는 나라의 살림을 돌보는 대신들이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더운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을 맞아 시를 읊기도 하고 소통하는 그런 장소였습니다. 왕이 하루는 신하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궁전 안에는 곧은 소나무들만 있는데 저렇게 등 굽은 소나무가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오. 저 등 굽은 소나무를 어찌 하면 좋겠소?영의정이 한 말씀 해 보시오?“전하, 모두가 다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살다보면 이렇듯, 저렇듯 모양이 다 달라지니 어찌하겠습니까. 저는 그런대로 운치가 있어 보입니다만 이것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이옵니까?”
“좌의정도 한 말씀해보시구려.” “전하, 저도 한 말씀 아뢰겠나이다. 사람도 환경에 따라서 바르게 자라고 삐뚤어지게 자라는 자들도 있듯이 나무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뿔사 왕은
“그러면 저 등 굽은 소나무는 환경이 좋지 않아서 저 모양으로 등이 굽었다고 생각하오?”
“글쎄요? 자라면서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고 또는 상처가 나서 그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우의정은 어떻게 생각 하시오?"
“전하, 모두가 다 곧고 바르게 자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오나 이미 저렇게 등 굽은 소나무를 탓한다고 저희에게 좋은 점이 무엇이리까?”
아뿔사 왕이 말하였다.
“모두가 곧은 소나무인데 한 나무가 저렇게 등이 굽어 있으니 미관상 보기가 좋지 않소. 그래서 과인은 이 나무를 세상 밖으로 옮겨 심으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소. 모두들 사흘 동안 시간을 줄 터이니 생각을 해 보시오.“
모든 신하들은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어떤 신하들은 자신들 중에 저 등 굽은 소나무처럼 엇나가면 버리겠다고 생각하는 신하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것은 너무 비약해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사흘 후에 아뿔사 왕은 다시 신하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아뿔사 왕은 신하들의 의중을 물었습니다만 의견들이 둘로 나뉘었습니다.
운치가 있으니 그냥 두자는 측과 어울리지 않으니 세상 밖으로 옮겨 심자는 의견이 팽팽 하였습니다.
아뿔사 왕은 결정을 하여 신하들에게 명을 내렸습니다.
짐도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지만 세상 밖에 내다 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드오,
“등 굽은 저 소나무를 둥그레 해변에 심도록 하시오.”
둥그레 해변은 바다 모양이 둥그렇게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대신들은 일제히
“전하, 황공하옵니다.” 대신들은 이곳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상상하며 아쉬움이 컸습니다. 마음을 휴식하며 추스를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관원이 사람들을 시켜 나무를 뽑아 둥그레 바닷가에 옮겨 심었습니다. 등 굽은 소나무는 화려하고 으리으리한 궁전을 바라보고 살던 때를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짠 바람을 맞으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등 굽은 소나무는 궁궐에서 버려진 게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왠지 자신이 슬프고 비참해졌습니다.
그러나 참았습니다.
그래. 그래도 살아 있으니 된 게야.
등 굽은 소나무는 자신의 처지를 혼자 다독이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대신들이 자신의 그늘에 와서 쉼을 얻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때에는 기분이 좋아졌고 자신을 찾는 이들이 그리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곁에는 바람만이 서 있을 뿐입니다.
백성들이 바닷가에 놀러 오면 이 나무는 궁전에서 쫓겨 나온 소나무라고 하면서 등 굽은 소나무를 측은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그 나무를 더욱 아껴 주고 싶은 나무라고 말들을 하였습니다.
등 굽은 소나무는 궁전을 떠나온 것이 슬펐지만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슬픔을 걷어내고 새롭게 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차츰 설움도, 슬픔도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소금바람을 맞으며 점점 강한 바람과도 싸우고 견디어 나갔습니다. 등굽은 소나무 곁에는 바람꽃과 복수초가 봄을 알리려고 피어났습니다. 저 아름다운 꽃을 보니 자신의 어렸을 적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자신도 곧은 소나무처럼 바르게 자라고 싶었지만 어느날 자신의 옆구리가 아파왔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상처를 입을 때마다 몸이 곧게 자라지 못하고 엇나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화가 많은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하지만 어찌 압니까? 등 굽은 소나무는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등 굽은 것이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져 속상하기도 합니다. 상처가 날 때마다 몸은 바르게 자라지 못하고 자꾸만 곁길로 갔습니다.아뿔사 왕은 사실 그 등 굽은 소나무 아래에 모여서 신하들의 쑥덕공론 하는 소리들을 어떡하면 막아 볼 수 있을까 해서 궁리한 것입니다. 미관상 좋지도 않았지만 말입니다.아뿔사 왕은 신하들이 그곳에 삼삼오오 앉아서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별로 달갑지 않게 여겼습니다.
나라 안에는 이상하게도 이 등 굽은 소나무를 옮기고 나서 좋지 않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크고 작은 일들이 밀려와 왕과 신하들의 머리를 편하게 해 주지 않아 모두들 근심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해결하기가 무섭게 또 다른 일이 생겼습니다. 아뿔사 왕에게는 예쁜 공주가 있었습니다. 공주는 날이 갈수록 예뻐만 갔습니다. 얼굴만 예쁠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예뻤습니다.걷다가 잘못 넘어져 몸이 아팠고 그 후유증으로 오른팔이 마음대로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상처로 인해 고생을 하고 있는 하나 공주의 마음만은 변하지 않고 예뻤습니다. 오른 팔이 아프니 밥은 왼손으로 먹고 있었습니다. 아뿔사 왕은 공주에게 왔습니다. “오, 하나 공주! 좀 어떠냐?” “아바마마, 괜찮사옵니다.”사실은 팔이 쏙쏙 쑤셔오고 아팠지마는 아바마마가 자신 때문에 염려할까봐 선의의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공주는 그 후로 독서에 전념하고 자신의 교양을 쌓는 일에 열정을 쏟았습니다.피곤하여 잠을 청했는데 하얀 구름 속에서 할아버지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공주야, 아픈 데는 괜찮으냐? 상처는 너를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것 같구나. 성경의 인물 중에 다윗이라는 왕이 있는데 그는 고난을 당했지만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하다“라고 했느니라.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아프면서 성숙하게 자란단다. 이 궁전의 등 굽은 소나무도 너처럼 상처가 나서 몸이 휘어졌단다. 그 상처를 통하여 등은 굽었으나 그의 마음은 여전히 너처럼 아름답단다. “너는 등 굽은 소나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하나 공주가 대답 하려고 하였으나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나 공주는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깨었습니다. 다음 날 또 잠을 자는데 똑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 공주는 이 꿈을 고민하다가 아바마마에게 말씀을 올렸습니다. 이 꿈은 예사로운 꿈이 아닌 듯 했습니다. 아뿔사 왕은 대신들을 모아 놓고 이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신들도 이상하다며 등 굽은 소나무를 궁궐 안에 다시 옮겨 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여봐라, 공주가 똑같은 꿈을 세 번씩이나 꾸다니 내가 옮기게 한 것이 잘못 한 것이 아닌가 싶소.”
아뿔사 왕은,
“아뿔사, 내가 어리석었도다. 고난 없이 어떤 영광을 볼 수 있을까 상처는 곧 영광의 흔적인 것을. 등 굽은 소나무를 등이 굽었다 하여 바깥 세상으로 밀쳐낸 내가 어리석었도다. 내 자식을 또는 내 신하가 아프다고 내칠 수 있으랴. 허물을 덮어주고 상처를 싸매 주어야 하는 것이 아비가 베풀어야 할 인정이며 신하도 마찬가지로 허물과 상처를 용서하고 치료해 주며 선정을 베풀어야 하거든, 하물며 등 굽은 소나무를 뽑아 옮겼으니 등 굽은 소나무가 나한테 뭐라고 했을까. 곧은 소나무도 아름답지만 등이 굽었어도 그런대로 운치가 있는 것을.”
아뿔사 왕은 딸의 꿈을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시에게 명령 하였습니다. 내시는 91번 국도를 통과하여 그 등 굽은 소나무에게 갔습니다. 등 굽은 소나무가 바다를 바라보며 짠맛을 느끼고 있을 때에 내시가 나타났습니다. 내시는 등 굽은 소나무가 잘 있는지, 몸은 괜찮은지 살펴보았습니다. 내시를 보고 등 굽은 소나무는 반갑고 황송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시는 등 굽은 소나무에게
“아뿔사 왕께서 너를 다시 궁궐로 옮기라고 명하셨단다.”
등 굽은 소나무는 꿈을 잃지 않고 묵묵히 소금바람을 맞으며 참고 인내로 견디며 살았던 자신을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노을이 지고 있습니다.
등 굽은 소나무는 궁전을 향하여 아뿔사 욍께 큰 절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바닷가에서 보는 노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생각했습니다.
낙조를 보며 아쉬운 생각이 들어서 시 한 수를 생각해 냈습니다.
말없이 / 바다 속으로 / 쏘옥 / 꺼져가는 / 저 / 불덩이 /
나도 / 저처럼 / 아름답게 / 익사할 수 / 있을까.
<낙조> 전문
내시는 궁궐로 돌아와서 아뿔사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전하, 잘 자라고 있나이다.“
아뿔사 왕은 대신들과 날을 정하여 다시 궁궐 안으로 옮기기로 하였습니다. 왕이라고 해서 생각이 다 옳은 것은 아니며 대신이라고 해서 다 틀린 것은 아니므로 왕은
”허어~, 허어~.“
하고 탄식을 했습니다. 아뿔사 왕은 자신이 잠시 생각을 잘못하여 등 굽은 소나무를 옮겼던 것을 반성하고 다시 제자리로 옮겨 놓았습니다.
궁 안의 크고 작은 일들은 대부분 잦아들었습니다.
아무리 한 나라의 왕이라고 해도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가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공주의 꿈도 있고 허니 왕과 대신들은 이 날을 ‘政治의 날’로 세우고 이 날을 기념하기로 했습니다. 아뿔사 왕은 등 굽은 소나무를 보며 이 날을 기념 삼아 대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무슨 일이든지 충분히 생각한 후에 결정하고 나라의 모든 일을 잘 맡아 행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반듯한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아뿔사 왕의 오랜 소원이기도 했습니다. 등 굽은 소나무 아래에는 다시 관리들과 궁궐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래. 등 굽은 소나무야! 너도 좋으냐”
관리들은 한 마디씩 하였습니다.
첫댓글 내가 등굽은 소나무가 되고 싶은 착각이 드네요.
아름다움과 시사성이 잘 섞어진 명품입니다.
옛 말에 등이 반듯하게 자란 소나무는 땔감이고,
등 굽은 못난 소나무는 천년 만년 사랑받는다고.
아뿔사!
선생님, 감사합니다.
집 앞에 등 굽은 소나무가 있길래 '저 소나무는 왜 등이 굽었을까, 생각하다가 찾아보니 상처를 입게 되면 등이 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동화를 쓰게 되았답니다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 가을 날마다 행복 하시길요.
등굽은 소나무가 많은 울림과 교훈을 줍니다.
옹달샘님의 낙조는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시 입니다.
'등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는 어르신들의 말처럼 등이 굽어도 멋있는 소나무는
우리 옹달샘님의 모습입니다.오늘 아침 아주 훌륭한 글을 읽습니다.
와~~ 대단한 상상력 놀랍습니다.
많이들 읽어보기를 바랍니다요. 좋은글 많이 쓰세요.
옹달샘에서 물 한모금 먹고 갑니다요. ^^*
부회장님, 너무 극찬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글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집니다
부회장님,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모든 님들도 건강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