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제목: 폭파 1초전 시한폭탄 사랑
작 가 명: 펠릿
E-mail : leabbana @ hanmail.net
연재장소: 열매소설① - 30대
총 편 수: 총 55편 완결
장 르: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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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터넷 소설 닷컴 (http://cafe.daum.net/youllso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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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시장역 입구.
암흑속의 하이에나 동혁이 엄청난 부와 권력을 쥐고 있는 비열함의 대명사 염평달에게 일격
을 가한 것이다.
염평달의 최후를 확인하진 못했다. 그래도 우선은 탈출해야한다.
동혁이 전력을 다 해서 계단을 내려가고 있고 그의 뒤에는 그를 쫓는 염평달의
경호원 무리가 있다.
곧 경찰들도 몰려올 것이다.
개찰구를 향해 달리던 동혁이 방향을 틀어 화장실 쪽으로 향한다.
그가 선택한 곳은 여자 화장실.
"어마! "
화장실에는 거울을 보던 여자 한 명뿐.
여자의 입을 막은 동혁이 마지막 칸으로 여자를 끌고 들어간다.
"조용히 있어. 다치기 싫으면."
여자가 물에 빠진 생쥐처럼 온 몸을 떨고 있다.
그 때 화장실 쪽으로 뛰어 오는 여럿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개찰구로 들어가지 않은 것 같아! 화장실 뒤져 봐. 여자 화장실도."
동혁은 여자의 입을 막은 채 벽 쪽에 기대어 서 있었다.
남자 화장실을 살펴 본 사내들이 여자화장실로 몰려 들어왔다.
그들은 프로이다.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 화장실에 숨어 있는 사내 동혁에게 여자 화장실에 있는 이유를
묻지도 않을 것이다.
"마지막 칸이 잠겼습니다."
한 놈이 몸을 숙여 바닥에 얼굴을 댄 채 아래쪽을 보고 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요."
"새끼야. 아무도 없는데 문이 왜 잠겨? 빨리 부숴."
경호원 중 우두머리가 속주머니에서 총을 꺼낸다.
더 이상 지체하면 동혁의 생은 끝이다.
아직 재영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전하지 못했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동혁은 여자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변기에 앉혔다.
그리고 여자의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보았다.
여자는 동혁이 무엇을 원하는 지 알 것이다.
또한 여자의 목에는 이미 칼끝이 살짝 들어온 상태이다.
"아악! 누..누구세요? 여기 여자 화장실이라고요. 소리지를 거예요."
밖에서 문을 부수려던 녀석이 다시 고개를 숙여 아래를 확인한다.
"이거 뭐야. 안에 여자가 있는데요."
"나오라고 그래."
"당신들 누구야! 무..무섭단 말이에요."
"안 열면 그냥 부숴! "
동혁은 이미 죽음을 각오한 상태였다.
여자의 목에 겨누었던 칼을 들어 놈들과의 일전을 위해 자세를 잡았다.
어차피 한 번은 맞이해야 할 죽음.
그러나 영원히 지켜주기로 약속한 재영을 더 이상 못 본다는 것이...
그 때였다.
"찾았습니다. 개찰구 쪽입니다!"
"개찰구? 전철 타기 전에 잡아! 뭐해 정신들 차려. 그 놈 놓치면 우리도 모가지야. 빨리 뛰
어! 빨리 뛰란 말이야!"
녀석들이 화장실을 빠져나간다. 놈들이 무엇을 본 것인가.
용욱이다. 용욱이가 녀석들을 유인하는 것이다.
교통경찰을 피해 급히 차를 몰고 청송시장 일대를 돌고 왔을 때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용욱
은 동혁과 같은 옷을 입고 있다.
동혁은 여자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몸짓을 한 후 얼굴에서 수염과 눈썹 그리고 팩을 뜯어냈
다. 또한 입고 있던 재킷까지 벗어 구석에 처박았다.
화장실을 나온 동혁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유유히 개찰구 쪽을 향했다.
동혁은 개찰구를 통과하며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화장실 앞에 경찰 한 명이 서 있었고 그 앞에는 인질이었던 여자가 있다.
그녀의 손끝이 동혁을 향하고 있다.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수 없는 상황.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며 달려온다.
위험에 빠진 용욱을 구하기 위해 개찰구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열차가 곧 도착할 예정이오니.... 노란 선 밖으로.... "
때 마침 전철이 들어오고 있다.
최대한 빨리 뛰어 내려가야 한다.
전철 문이 닫히는 순간 타면 경찰을 따돌릴 수 있기 때문에.
뛰어 내려가던 동혁이 잠시 멈칫한다. 승강장 쪽에는 염평달의 경호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욱의 행방을 놓친 것이다.
용욱의 신변안전을 확인해 한 숨은 돌렸지만 문제는 뒤에 쫓아오는 경찰.
그 경찰이 소리지르면 염평달의 경호원들이 동혁을 둘러쌀 것이다.
"끼...이이이이익! "
다행이 전철이 멈춰 섰고 경호원들은 전철을 타려는 승객들을 유심히 살핀다.
그러나 용욱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전철에 오르지 않을 것이다.
"곧 열차가 출발할 예정이오니 아직 못 타신 승객께서는..... "
문이 닫히는 순간이다. 전철에 오르면 돼는 것이다. 그러면 탈출이다.
그러나 동혁이 성공적으로 전철에 오르고 문이 닫히려는 순간.
"드르르르륵 ! "
문이 다시 열린다. 뒤늦게 타려던 승객 때문이다.
"호르르르륵! 전철 안에 수상한 자가 탔다! "
동혁을 뒤쫓던 경찰이었다.
"뭐해. 모두 타! "
염평달의 경호원들이 신속히 전철에 오른다.
그러나 그들은 허탕을 친 것이다. 동혁은 이미 열차에서 내렸기 때문에..
쫓아오던 경찰은 출발해서 떠나고 있는 전철의 뒷모습만 허탈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그 경찰의 뒤를 지나 하이에나가 암흑 속으로 유유히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성진물산 대표이사 천성진의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심각한 표정의 보스 천성진.
그의 앞에 목에 난 칼자국 상처를 드러낸 허준구가 서 있다.
"성공했다고 생각하나?"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데?"
"당신 큰 실수 한 거야. 성진파라는 이름도 곧 흔적 없이 사라질 테고."
"생사람 잡지말고 빨리 꺼져."
"염평달 의원 깨어나면 곧 지시가 내려올 걸. 그러면 너희들은 쥐새끼 한 마리
살아남지 못해. 내가 누군지 몰라? 나 허준구야 허준구."
" ....... "
허준구는 염평달의 사냥개다.
수많은 사람들을 먹어치운 돼지 염평달의 앞에는 항상 그 놈이 있었던 것이다.
한 편 동혁이 피신해 숨어있는 곳은 바로 정아의 숙소.
"나 며칠만 신세져도 되겠어?"
"평생 신세져도 돼... 아니야 농담이야 농담."
"네 방은 처음 들어와 보는 구나."
지금 이 순간 정아는 행복했다. 그토록 그리던 동혁과 함께 지낼 수 있다니.
정아는 당장이라도 동혁의 넓은 가슴에 안기고 싶었다.
동혁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어떤 여인만 빼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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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 그녀는 중학생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빚을 대신 갚겠다고 화류계로
뛰어든 효녀 심청이다.
그의 아버지 김도식은 대책 없이 살아가는 개망나니 같은 인물이었다.
술과 도박 그리고 사기근성과 허풍까지 한 가지만 가져도 집안이 거덜난다는
그런 것들을 종합세트로 가지고 있는 인물이 바로 정아의 아버지다.
오죽했으면 엄마가 핏덩어리 같은 어린 정아만 남겨놓고 야반도주를 했겠는가.
"정아 이 가스나야. 엄니가 으찌 세상을 하직했는지 니는 아나?"
"옆집 나리 엄마가 울 엄니 아빠 싫어 도망갔다 하던데요."
"워메. 그 애팬네 사람 잡것네. 잘 들어 두래이. 니 엄니 만삭일 때 의사선상이
이렇게 말하더라. 산모를 택할 거이냐고 안카면 뱃속 아그를 택할 거이냐고."
"그래서 아빠가 내를 택했다꼬요?"
"하므. 내 니를 택했다. 그라이 니가 엄니 몫까지 해둬. 알았나."
어린 정아는 순진하게 아빠의 말을 백퍼센트 수용한 것이다.
아빠는 술만 먹으면 경찰서를 집으로 알고 옷을 벗어제치며 경찰서 문을 연다.
"뭐시여 이 아저씨 또 왔다카이. 이 보소 아저씨예. 여기가 아저씨 집인교."
"니 누꼬? 남으 집에 뭔 놈에 인간이 이리 많소."
그때마다 경찰서를 찾은 건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어린 정아였던 것이다.
"니가 고생이 많테이. 저것도 애비라고 어쩌겠나. 욕보래이."
"아부지 술이 그리 존나. "
"죽은 니 어메가 생각나서 그런다 안카나."
도박해서 있는 돈 다 까먹고 술이 떡이 되도록 먹은 주제에 정아에게는
꼭 죽은 엄마를 들먹인다.
"이보소 김도식씨 여게로 관광레저단지가 들어온다 안카요. 이거 놓치면 조상님들
한테 욕먹소. 돈 좀 끌어 보소 마."
떨어질 돈벼락에 이성을 잃은 정아아빠 김도식씨가 사채까지 끌어 땅을 사들인 것이다. 그런
데 그곳에는 관광레저단지가 아닌 대한민국 육군의 자랑 최강부대가 들어 왔고 사들인 땅은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이 된 것이다.
곧 성진파의 행동대원인 송달수와 박광식이 쳐들어왔다.
"이 새끼야 그 돈이 누구 돈인데 떼먹으려고 수작이야! "
"땅 팔믄 갚는다 안하요. 한 번만 믿어주소."
"이런 미친 새끼. 최강부대 폭파시키고 그린벨트 풀고 나서? "
"그럼 내보고 어쩌란 말이오. 차라리 내 배라도 째소 마."
김도식이 방바닥에 드러눕자 달수가 칼을 빼들고 정말로 배를 째려는 듯 달려들었다. 물론
김도식은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그 때 정아가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우리 아버이 살려주소. 시키는 거 뭐든 할게예."
그래서 정아는 아버지 빚 모두 갚을 때까지 천성진의 노예가 된 것이다.
끌려가는 정아의 뒷모습을 보며 아빠 김도식은 끝까지 대책 없는 말만 늘어놓는다.
"정아야. 이 아빠만 믿으래이. 곧 돈 마련해 니 찾으러 갈 테이까. 엄니 죽이고
니 살린 거 이 아빠는 한번도 후회한 적 없다 안카나."
그러나 아빠는 약속을 지킬 능력도 대책도 없는 인물이었다.
오히려 정아에게 찾아와 용돈까지 챙겨 가는 철면피였던 것이다.
그런 정아에게 세상에서 아빠보다 더 멋진 남자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이
바로 동혁이었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박광식과 한 판 승부를 벌
여 그를 꺽은 것이다.
그때부터 정아는 한 사람만을 마음속에 담고 살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지금 정아의 숙소로 피신한 것이다.
"동혁씨....사람 죽였어?"
" ...... "
"증거 남겼어? 그래서 지금 수배중인 거야? "
"아니. 아무도 몰라. 단지.. 잠시 쉬고 싶을 뿐이야."
"그래 푹 쉬어. 나 요리도 잘한다. 배고프지? 내가 갈비찜 맛있게 해 줄게.
기다려."
정아는 동혁이 머무는 며칠동안 지극 정성으로 동혁을 대해줬다.
동혁이 떠나는 날. 정아는 자꾸 눈물을 흘린다.
"정아 무슨 일 있니? 왜 우는데? "
"내가 너무 한심스러워서. 내 처지가..."
"너 아직 젊어. 앞으로 좋은 사람 만나 결혼도 할 테고."
"누가 나 같은 년을.. "
"그거 아니? 처음 널 봤을 때 얼마나 순수해 보였는지."
" ..... "
"좋은 부모 만났으면 정아 너 지금쯤 멋진 대학생이었을 걸."
"고마워 그리고 다치지 마."
"갈게."
"어서 가 몸조심하고..... 잘 가."
정아가 자꾸 눈물을 흘린다.
동혁도 사내인데 그녀의 마음을 왜 모를까.
그러나 평온한 시간을 끝마치고 다시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 동혁.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인 나이팅게일 병원.
당선된 국민사랑당의 최승희 의원과 당원들이 염평달의 문병을 끝내고
병실을 나온다. 그들에게 정중히 인사하며 배웅하는 사내는 염평달의
맏아들 염상복.
"허전무님 어느 놈의 소행인지 아직 못 잡았나요."
"아닙니다.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어르신을 건드린 자들의 최후가 어찌될지
톡톡히 보여주겠습니다."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의사 말대로 아버지 곧 깨어나십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천성진이 보스답지 않게 너무 무모한 짓을 감행한 것이다.
성진물산 천성진의 사무실.
"놈들의 움직임이 너무 고요합니다."
"허준구."
" ..... "
"허준구를 제거해야해. 그러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죽어."
"하이에나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줄까요?"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이번에 실패하면 자결하라고 해."
한편 자신의 집으로 돌아 온 동혁은 창가에 서서 며칠 동안 지켜보지 못한
재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따라 평소보다 훨씬 늦게 재영이 집으로 돌아왔다.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리는 모습에서 술에 취해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재영이 오늘 무슨 일 있어? 주량을 많이 넘어선 것 같던데."
"끅! 실장님. 제가 얼마나 허전하고 외로운지 그거 아세요?"
"무슨 소리야. 수많은 팬들이 있잖아."
"팬들이요? 팬 좋지요. 하지만 그들이 부모가 될 수는 없잖아요. 그들이
친구가 될 수는 없잖아요."
"너무 취했어. 내가 집까지 부축해 줄게."
창가에서 망원경으로 지켜보는 동혁의 마음이 왠지 불안했다.
정실장이 재영을 현관까지 바래다주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 땡! "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재영을 부축한 정찬홍실장이 그녀의 현관문을 열어준다.
"은채야. 나 너무 갈증이 난다. 음료수 한 잔만 줄래? "
정실장이 재영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음료수를 건네주는 재영의 손목을 잡는다.
"내가...내가. 너를 사랑...해도 될까?"
" ...... ? "
"아니 내 말은... 오늘 너랑 함께.."
"끅! 실장님 오해하신 것 같은데요. 부모도 없고 친구도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있거든요."
"몇 년을 봤지만 다른 남자를 만난 적이..."
"중학교때 첫사랑. 왕따 그 자식.. 난 그 자식 못 잊거든요.."
재영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것인가.
단지 취해서 그리고 정실장을 보내기 위해서 그냥 아무 말이나 한 것인가.
세월이 그리 많이 흘렀건만 그녀는 동혁의 존재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던 아버지를 죽게 한 왕따 동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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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파가 운영하는 자이언트 파라다이스 클럽에 수상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눈에 살기가 가득한 다섯 명의 어깨들이었다.
처음에는 일반 손님들과 다름없이 평범한 술자리로 시작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서서히 본색을 드러낸다.
"야! 웨이터 너 이름이 뭐냐?"
"예 사장님. 3번 웨이터 조용필입니다."
"이 새끼가 장난하나. 본명을 말해 본명을."
"죄송합니다. 본명은 남기셉니다."
"푸하하하! 저 새끼 본명이 남기세란다. 남기세."
"뭘 남길 건데. 이 새끼 술값 바가지 씌우는 거 아니야?"
"저희 영업소에서는 절대로 손님들에게 술값을 속이지 않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정말이지? 그럼 지금까지 먹은 술값 원가만 딱 계산해 와봐."
"그..그건."
"남기지 않겠다며."
"원가말고 정가를 말씀드리는 건데...."
"근데 이 새끼가 꼬박꼬박 말대꾸는. 너 당장 최고로 이쁜 애들로 다섯 만
들여보네."
곧 다섯 명의 아가씨들이 룸으로 들어와서 자기 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실비아입니다. 나이는 스물이고요."
"반갑습니다. 방년 18세 제니퍼라고 합니다."
"그만! 그만! 이 년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접대부야. 그리고 남기세 이 새끼야
내가 예쁜 애들로 들여보내라고 했니 안 했니."
"저희 영업소 대표 퀸카들입니다. 사장님."
"누구를 호구로 보나. 너 당장 바닥에 대가리 박어."
"사장님들 이건 좀 심하신 거 같은데..."
"퍽! 쨍그렁!"
어깨 중 한 놈이 술병을 집어던졌다.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룸에서 나왔고 웨이터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곧 보고를 받고 송달수와 성진파 행동대원들이 몰려왔다.
"손님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네가 여기 기도냐? 눈매가 매섭고만. 왜 우리 잡으려고 왔니?"
"그래 이 새끼들아. 너희 삼거리파 똘마니들이지?"
"알면 빨랑 무릎꿇고 술이나 한 잔 따러 봐 임마."
"왜? 너희들 나와바리에서는 술이 바닥났니? 여기까지 기어 들어왔게."
"야 바늘하고 실 좀 가져와라. 저 새끼 주둥아리 좀 꼬매게."
"그래 내 입 좀 꼬매 줘. 대신 네 주둥아리는 귀밑까지 확실하게 찢어 줄 테니까.
하품하면 뒤집어질 정도로."
신경전이 끝나자 곧 정신 없는 육탄전이 전개되었다.
"퍽! 와장창! 쿵!.... 쨍그렁. 퍽! 쾅 투둑! 쿵. "
힘에서 밀리자 삼거리파 녀석들이 칼을 빼 든다.
"쿡! "
부하의 옆구리에 칼이 박히는 것을 본 달수가 눈이 돌아갔다.
"이런 개새끼들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번개같이 달려든 달수가 칼을 뺏어 찌른 놈의 어깨를 찍었다."
그때였다.
"달수 형님 함정입니다. 짭새들이 몰려옵니다. 피하십시오."
그러나 이미 클럽은 경찰들에게 봉쇄된 이후였다.
비열하게 웃으며 그들 앞에 나타난 자는 바로 강력계 형사 이충복.
몇 년 전 재영에게 찝쩍대다 동혁에게 당한 그 비리형사였다.
"이거 완전히 전쟁터구만. 누구 작품이야? 이 존만구리들 한 놈도 남김 없이
모두 잡아들여."
결국 송달수를 포함한 성진파의 행동대원들이 모두 잡혀 들어갔고 성진파에는
비상이 걸리게 되었다. 물론 허준구의 계획 아래 조작된 함정이었던 것이다.
함께 난투극을 벌인 삼거리파 조직원들은 곧 무혐의로 석방되었고 성진파
행동대원들만 전원 구속되었다.
염평달의 세력은 법을 초월한다. 그의 일가는 이미 경찰의 수뇌부까지도 장악한
권력의 대표주자였기 때문이다. 청송시장 유세에서 일격을 당한 허준구의 복수가
시작된 것이기도 했다.
"허준구 이 놈이 드디어 우리 성진파 죽이기를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래 이제 시작일 뿐이야. 시간이 없다. 더 늦기 전에 허준구 제거해."
하이에나 동혁에게 곧 조직으로의 호출이 전달되었으며 그에게 떨어진 지령은
당연히 허준구 제거였다.
하루 하루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는 시한폭탄 동혁.
그는 말 그대로 폭파 1초 전 시한폭탄 같은 인생이었다.
결국 동혁은 결심했다. 재영을 만나기로.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데 그녀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서글펐기 때문에.
"짹짹짹짹....짹짹짹짹.."
새벽 2시. 동혁이 용기를 내어 그녀의 현관 초인종을 누른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날 집에 없었다.
2박 3일 동안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지방으로 내려간 것이기 때문이다.
동혁은 그 사실을 그녀의 열성 팬클럽 홈페이지를 통해 알았던 것이다.
" 부우우우우웅 ! "
그는 바로 차를 몰고 촬영지로 향했다.
운전을 하는 그의 머리 속은 너무 복잡했다.
허준구의 제거계획과 그녀를 만날 방법을 찾느라 쉴 새 없이 두뇌회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직으로부터 비밀리에 받은 혹독한 훈련에는 상대를 효과적으로 제압하는 기술과 탈출방법
들이 있었지만 동혁은 그것을 뛰어넘어 예리한 판단력과 지혜까지 겸비한 상태였다.
그가 촬영지에 도착했을 때에는 재영을 포함한 출연자들과 모든 스탭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였다.
그녀가 머무는 숙소는 강이 보이는 아늑한 모텔.
"툭툭툭툭! 툭툭툭툭! "
잠깐 잠이 들었었던 모텔 지배인이 눈을 비비며 간이 창문을 연다.
"너무 늦게 오셨어요. 오늘은 빈방이 없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창문을 닫으려는 지배인에게 동혁이 수표 한 장을 건넨다.
"글세 따불을 주셔도 방이 없는 걸 어떡합니까."
십만원 권으로 생각한 지배인이 불빛에 살짝 확인한 수표에는 공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일하느라 피곤하시죠? 그거 받으시고 부탁하나만 들어주십시오."
잠시 후 동혁은 재영이 잠들어 있는 503호 방 문 앞에 서있다.
온갖 위기를 경험하며 초인적인 배짱을 겸비한 그였지만 재영 앞에서는 아직도
왕따 시절의 수줍음 많던 소년으로 돌아간다.
노크하는 그의 손에서 미세하게 떨림이 느껴진다.
"똑..똑똑똑! "
"똑똑똑똑! "
피곤에 지쳐있는 듯 다소 짜증 섞인 재영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구세요."
"재영아..."
"재영? 당신 누구야."
"재영아....나야."
"혹시.....동혁...."
"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너를.."
"철커덕! "
문이 열리며 서 있는 재영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있다.
"재영아.. 내가 죽이고 싶도록 밉겠지만. 난....난..."
동혁이 더듬거리며 말하고 있을 때 재영이 갑자기 그의 품으로 달려들어
안긴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반응이었다.
"나쁜 놈. 그래서 넌 왕따야. 내가...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동혁의 심장이 곧이라도 멈출 것만 같았다.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 동혁의 가슴에는
천사 재영이 그렇게 안겨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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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라이프 모텔 503호. 서로 마주보며 서있는 두 사람.
창문을 통해 새벽 어둠 속 잔잔히 흐르는 강물이 보인다.
오랜 세월동안 두 사람 마음속에 싹튼 사랑 그리고 그들의 슬픔.
"나를... 용서하지 않을 줄 알았어."
"용서한 거 아니야. 하지만 널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그만큼 더 보고싶더라.
이러는 내가 우습지?"
"고마워 재영아."
"재영이란 이름도 오랜만에 들어. 네 목소리처럼."
"그리고 늦었지만 축하해. 네 어릴 적 꿈 그거 이뤘잖아."
"십 년 전 우리 쫓길 때 네가 그랬잖아. 언젠가는 꼭 이룰 거라고."
"그랬었나. 그 때 네 아버지... 그리고 너의 불행.. 모두 나 때문에.."
"그땐 나도 어려서 네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어.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그 상황 뭔가 이상했어."
" ......? "
"아빠 차안에서 두 사람을 보고 있을 때 그 사고 낸 차. 그걸 봤는데."
"그걸 봤는데."
"너무 이상했어. 꼭 일부러 그런 거처럼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던 거 같아."
"안에 탄 사람 봤어? 혹시 목에 칼자국 있던 사람.... "
"이미 오래 전 일이야. 기억하기도 싫고."
" ...... "
"넌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네가 실종된 이후 학교에서도 말이 많았어. 일진이었던
강용욱도 자퇴했었거든."
"나 너한테 또 고백할 게 있어. 항상 마음에 걸렸던 거."
"말해 봐. 더 이상 놀랄 것도 없으니까."
"너 입원했을 때...수영장에서.."
"혹시 그거 네 짓이었니?"
"나란 놈.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지?"
"하하하하! 너무 재미있어서. 그까짓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게."
"나한테는.. 아니 내 마음속에서는 그게 작은 일이 아니었거든. 널 밀었다는 거."
"동혁아... "
재영이 살며시 동혁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오래 전 공사장에서처럼...
"인기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외로워지는 이유가 뭘까? 꼭 내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말이야."
"겨울철 따듯한 방안에서 거리를 보면 말이야 발을 동동거리며 추워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갈 때도 있지. 같은 이유일거야."
"그 날 공사장에서 잠결에 들은 네 목소리 아직도 잊지 못해."
" ..... "
"분명 날 영원히 지켜주겠다고 했어."
" ..... "
"그 약속....지킬 거지?"
그때였다. 복도에서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돈에 눈이 돌아 재영의 방을 가르쳐준 모텔 지배인이 불안했었는지 정실장에게
알린 것이다.
" 똑똑똑....똑똑똑똑! 재영아! 너 아무 일 없니?"
"예...왜...왜요? 나 아무 일 없는데요..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그러면 잠깐 문 좀 열어봐."
재영이 동혁에게 눈짓을 했다.
동혁이 재빨리 현관 문 옆벽에 기대선다.
재영은 일부러 문을 활짝 열어 동혁의 모습을 숨겼다.
"무슨 일이세요 이 새벽에."
"수상한 자가 너를 찾았다고 해서 말이야. 아무 일 없었던 거지?"
"글세 별일 없었다니까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오늘은 여자 스탭들 방에서 함께 있어. 알았지?"
"알았어요. 잠깐 준비 좀 하고요."
정실장이 방안을 한 번 둘러본 후 문을 닫았다.
다행이 아무도 동혁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재영아. 너 너무 나약해진 것 같아. 앞가림 정도는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고 큰소리 쳤던
것처럼 강하게 살아야 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영원히 널 지켜주겠다던 약속. 내가 그걸 못 지키더라도 말이야."
"너 무슨 일 있니? 아님 너 위험한 그런 일 하고 사니?"
"나 오늘 너무 행복하다.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 같아."
"......"
"내 마음 속에는 언제나 축제 때 무대에서 노래부르던 꽃다운 재영이가 있어.
그 모습 간직하고 갈게."
"동혁아. 다시 올 거지? 다시 온다고 어서 말해."
"그래. 다시 올게."
동혁은 모텔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그리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재영아 나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 맘껏 사랑하며...."
달리는 동혁의 차 위로 새벽 동이 터 오르고 있었다.
허준구. 성진파 조직을 공중분해라도 시킬 그런 인물이다.
곧 병원에 누워있는 염평달의 의식도 돌아올 것이다.
더 이상 지체하면 감당할 수 없다. 방법은 허준구 제거 뿐.
허준구는 자신의 경호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물론 그 자신도 대단한 주먹을 소유한 유단자이다. 절대로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이다. 그러
나 동혁은 그를 반드시 제거해야만 한다.
그를 제거할 장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들리는 대성사우나.
무기를 숨길 수가 없는 장소이지만 그 만큼 경호도 허술할 수밖에 없는 장소.
맨손으로 해결해야 한다. 정면대결에서는 절대로 급소를 내주지 않을 것이다.
방심하는 순간을 노려 목을 꺾어야 한다.
방법은 나왔다. 때밀이를 부를 것이다. 그때가 기회인 것이다.
결전의 순간이 왔다.
허준구가 앞장서 대성사우나로 들어갔고 그 뒤를 세 명의 거구들이 따른다.
"봉진아! 아까 손님 때 민 값 받았냐? "
"아직 안 나왔어요. 잘 보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저기 나오네요."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있는 낯익은 사내가 있다. 바로 강용욱이다.
동혁이 일부러 입구로 가서 주인에게 말을 건다.
"아저씨 여기 정액제로 이용할 수도 있지요?"
"물론입니다. 매일 오시는 손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게 더 저렴하니까요."
"제가 이사를 왔거든요. 여기 시설도 좋고 다 마음에 드네요."
그때 허준구의 경호원 한 명이 나왔다.
"어이! 때밀이 좀 들여보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동혁은 일부러 경호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과 때밀이는 그런 동혁을 이상하게 쳐다봤다.
허준구는 엎드린 자세로 때밀이를 기다릴 것이다. 목을 꺾어 사망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자세다. 물론 동혁을 때밀이라고 생각하고 경계를 늦췄을 때나 가능
한 일이다. 문제는 주인과 진짜 때밀이.
"이야! 이게 누구야. 너 봉진이 맞지? "
급히 이발소에서 나온 용욱이 때밀이에게 아는 척을 한다.
"누구...세요?"
"용욱이 형이야 임마. 어릴 적 동네에서 얼마나 몰려다니며 함께 놀았는데."
"글세 저는 기억이 잘..."
지금이다. 동혁은 준비한 때밀이 복장을 갖추고 욕탕으로 들어갔다.
오래 끌어서는 승산이 없다. 짧은 시간에 놈의 명을 끊어야 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욕탕 안.
엎드려 있는 허준구의 근처에서 경호원 세 녀석이 사우나를 하고 있다.
때밀이를 찾았던 녀석이 동혁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경계를 푼다.
최대한 빨리 놈의 목을 꺾고 탈출하면 된다.
알몸의 경호원들이 추격하는데는 분명 제약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이변이 생겼다. 보통은 엎드린 자세로 때밀이를 맞이하지만 허준구가
몸을 돌려 앞쪽부터 때를 밀려고 하는 것이다.
용욱이 때밀이를 잡고 시간을 끌고 있지만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허준구가 청송시장 상점 안에서 동혁을 유심히 봤다는 것이다.
변장을 했었지만 안심할 수 없다.
동혁이 다가가고 있을 때 결국 허준구가 눈을 떴다.
그리고 동혁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 25 >>
대성사우나 욕탕.
허준구가 때밀이로 위장한 동혁을 유심히 보고 있다.
그와 같은 시간 강용욱은 욕탕으로 들어가려는 진짜 때밀이를 계속 지연시키고
있었다.
"저기요. 진짜로 기억이 나지 않거든요. 그리고 저 지금 욕탕에 들어가 봐야해요."
"봉진아 너 왜 이러니. 예전에 내가 빌린 돈 그거 때문에 서운한 거야?"
용욱이 갑자기 돈 얘기를 꺼내자 때밀이가 멈칫한다.
"그 돈 갚으면 되잖아. 그깟 돈 백 만원 가지고 우리가 이러면 되겠냐?"
때밀이의 눈이 더욱 더 커진다.
"그..그래요. 이제 생각나는 거 같아요."
"그러지 않아도 마음에 걸렸는데 오늘 그 돈 갚을게."
그때 주인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 든다.
"봉진아 저 손님 사람 착각한 거 인지도 모르니까 동네가 어디였는지 물어봐라."
"그럼 되겠네. 손님 어릴 적 어느 동네에서 자랐는데요."
"나..으응. 그러니까...."
"거봐 손님이 착각하는 거라고 했잖아. 욕탕에 손님 기다리신다."
용욱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끌어야한다. 그러나 후속 대사가 없다. 결국.
"이 새끼가 선배를 몰라 봐?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
"뭐라고? 근데 보자보자 하니까. 당신 나이 몇이야? 어디서 욕을 하고 지랄이야?"
"퍽!... 퍽!"
용욱의 주먹을 맞은 때밀이가 바닥에 나뒹군다.
"일어나 이 새끼야. 선배가 반갑게 인사를 했으면 반기는 기색이 있어야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주인이 몸을 숙여 뭔가를 꺼내는 것이었다.
가스총. 몸을 일으켜 세운 주인에게 들려있는 것은 다름 아닌 가스총이었다.
"당신 누구야. 아까부터 수상했어. 방금 전 앞에서 알짱거리던 놈하고도 한패지?"
"이거 목욕탕 아저씨가 사람을 위협하네. 아저씨 콩밥 먹고 싶어요?"
"콩밥? 그거 누가 먹을 지는 두고 봐야 알 거고. 이놈들 지금 무슨 수작들을 부리
는 거야. 혹시 손님들 지갑 노린 강도들 아니야?"
용욱은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사태 수습 방안
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한편 욕탕 안에 있는 동혁은 손색없이 때밀이 연기를 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동혁이 바가지에 물을 떠서 허준구에게 다가가는 순간이었다.
" 휘이이이익! "
동혁을 향해 날아오는 물체. 어떤 무기인지는 모르지만 동혁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피했다.
그리고 벽에 부딪히며 떨어지는 물체를 보았다. 말아놓은 때 수건.
순간 동혁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것 봐라. 요즘에는 목욕탕 때밀이도 특공무술을 연마하나보지?"
동혁이 방금 취한 자세는 일반사람들의 자세가 아니었다. 동혁도 그것을 안다.
그것을 노리고 허준구가 동혁을 시험한 것이다.
"그래 맞아. 네 얼굴을 어디서 본 것 같았어. 물론 변장을 했겠지만."
어느새 경호를 맡은 거구 세 놈도 일어나 동혁을 둘러싸고 있었다.
"나 죽이러 왔니? 성진이가 그러라고 시키디?"
"손..손님들. 뭔가 오해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하긴. 내가 천성진이라도 제거하라고 시켰을 것 같다. 그러나 탈출은 꿈도 꾸지
마. 입구가 곧 봉쇄될 테니까."
허준구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져 있다. 켜져 있는 상태다. 지금 그들의 대화를 누군가가 듣
고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된다.
"꼼짝 마!"
그때 욕탕 문이 부숴 질 듯 열리며 강용욱이 뛰어들어온다. 그의 손에는 주인에게서 빼앗은
가스총이 들려져 있다.
허준구와 그의 경호원들이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욕탕 안에 있던 손님들이 우르르 밖으로 도망친다. 곧 경찰들도 몰려올 것이다.
"그래? 어디 실력 좀 보자. 청송시장에서 한 방 맞은 게 아직도 얼얼한데."
바닥이 미끄럽다. 중심을 잃으면 진다. 그들은 가스총의 효과도 믿지 않는다.
"이 야야아아아! "
곧 욕탕 안에서는 목숨을 건 난투극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명색이 강천중학교를 주름잡았던 일짱들이었다. 또한 고도의 훈련을 받은 살인병기였
다.
"퍽!...쿵! "
경호원 한 놈이 욕탕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쓰러진다. 머리에서는 피가 터져 흘러나왔다. 순
식간에 물과 피가 섞인 소름끼치는 장면들이 연출된다.
"쿵! 쨍그렁! "
욕탕 유리문이 박살나며 그들의 싸움은 탈의실로 이어진다.
그때부터는 온갖 목욕용품들이 무기로 변한다.
사방에서 갖가지 무기들이 날아다닌다.
경호원 한 놈이 달려가 옷장 문을 연다. 총을 꺼내는 것이다.
"동혁아! 저 새끼 총 꺼낸다. 막아! "
" 퍽! "
허준구의 노련한 이단옆차기에 강용욱이 뒤로 넘어간다.
경호원이 총을 꺼내면 끝장이다. 동혁도 그것을 안다.
동혁이 달려간 곳은 이발소. 그리고 면도칼을 집어 든다.
" 휘이익! "
" 으 아아아악! "
총을 꺼낸 경호원의 눈에 면도칼이 정통으로 박힌 것이다.
동혁은 쏜살같이 달려들어 경호원이 든 총을 발로 찼고 한 바퀴 굴러 그 총을 잡는데 성공한
다.
" 탕! 탕! "
경호원 두 명이 모두 바닥에 쓰러진다.
상황이 불리하게 된 허준구가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린다.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
"지금은 네 코가 석자야 이 새끼야. 끝까지 주절거리기는."
강용욱이 턱뼈를 만지며 허준구를 발로 찬다.
그러나 동혁은 그에게 물어 볼 것이 남아 있다.
"죽기 전에 한 마디만 해라. 한사장을 차로 친 거 네 놈의 짓이었냐?"
"흠...이제 생각나는군. 그때 그 어린놈의 새끼."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너는 죽는 거고."
" 탕! .. 탕! "
입구로 나가면 안 된다. 지금 나가면 몰려오는 놈들과 마주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찰들에게도 포위된다.
급하게 옷을 챙긴 동혁과 용욱이 선택한 곳은 창문.
얼마 후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두 사람.
그들의 모습은 흡사 창공을 나르는 두 마리의 독수리와도 같았다.
한편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재영은 동혁의 소식을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이웃집 여자가 재영을 보자 고백할게 있는 듯 말한다.
"이 봐요 정은채씨. 사실.. 그 때 살인범 잡았을 때.. "
"말씀하세요 아주머니."
"나 문틈으로 다 보고 있었어. 얼마나 무서웠는데."
"나중에 집에서 나가는 사람도 보셨나요?"
"으 응. 남잔데... 한쪽 팔에 문신도 있었던 거 같아."
"동...혁? "
"이제라도 신고할까? "
"아니에요 아주머니. 그 사람.... 제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거든요."
언제라도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 재영을 지켜줄 사람은 이 세상에 동혁 밖에 없다.
이제 재영은 외롭지 않다. 그녀의 곁에 동혁만 있어준다면. 하지만.
"동혁아..제발 돌아와 줘."
아버지를 죽게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될 줄이야.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이겠노라고 다짐하며 재영은 두 손을
간절히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 26 >>
한재영. 그녀는 엔드리스 월드 아파트에 산다.
하지만 주민들과 마주치는 것을 싫어했다. 집에서만은 자유롭고 편하게 지내고 싶어서였다.
좀처럼 집 밖으로 나서지도 않는다.
그런 그녀가 지금 107동 입구 앞에 서 있다. 그것도 한 밤중에.
"어머! 정은채야. 누굴 기다리나봐."
그녀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래도 상관없다. 사랑에 빠진 여인의 기다림에는 두려움이라는 건 없다.
아파트 놀이터 벤치에도 처음으로 앉아봤다. 너무도 마음이 평화로웠다.
차라리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그러면서도 그녀는 107동 입구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그사이 그가 올까봐.
그러던 그녀가 문득 뭔가를 생각한다.
"내가 위험에 빠진걸 어떻게 알았지?"
고개를 돌려 건너편 106동 아파트 7층을 바라본다.
베란다에서 커피를 마실 때 항상 자신을 지켜본 사람이 있었는데 그녀라고 한 번쯤
눈치채지 않았을 까.
그녀가 서둘러 관리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탁탁탁탁! "
"누구십니까."
"아저씨 부탁이 있어서요."
"에구! 이게 누구.. 정은채씨 맞지요? "
"예 맞아요 아저씨."
"안돼요 안 돼. 이렇게 밤늦게 다시시면. 지난번 큰 일도 당했잖아요."
"괜찮아요 아저씨. 한가지만 여쭤볼게요."
한편 동혁은 허준구 제거에 성공한 후 지방 한적한 곳에 있는 천성진의 별장에서
잠시 몸을 숨기고 있었다.
"아직 아무 연락 없냐? "
"왜? 벌써 몸이 근질근질 하냐? 정아 오라고 할까?"
"정아? 정아는 왜."
"아이고 이 벽창호. 정아가 너라면 사족을 못 쓰는 거 아직도 모르니?"
"나란 놈 뭐가 좋다고."
"너 흰색 옷 좋아한다고 허구 헌 날 흰색 계통 옷만 골라 입는 거 못 봤냐?"
"잘해준 것도 없는데.."
"전 번에 술 마실 때 다미가 말해주더라. 한 번은 술 취한 손님이 정아 옷에 술을
왕창 쏟은 적이 있었데. 물론 흰 색깔이 빨간 색깔로 변했겠지. 그런데 정아 그 계
집애 그 정신 없이 바쁜 시간에 가서 옷 갈아입고 왔다더라. 그 날 네 놈이 영업소 들리는
날이라고."
"정아...불쌍한 애다."
"하긴.. 정아나 우리나 모두 불쌍한 인생들 아니냐."
"용욱아 나 잠시 다녀올 데가 있다."
"미친놈. 지금 움직이면 나 좀 잡아가쇼 하며 감방으로 직행하는 거랑 같아."
"보스한테 연락 오면 말 좀 잘 해줘."
"맘대로 해라... 암흑속의 하이에나가 쉽게 잡히기야 하겠냐."
같은 시간 재영은 불꺼진 동혁의 집 현관 앞에 서 있다.
초인종을 눌러보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1층에선 누가 탔는지 엘리베이터가 작동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재영이 어린아이처럼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 숨어서 지켜본다. 제발 동혁이었으면.
" 땡! "
7층에서 문이 열린다.
그런데 동혁이 아닌 수상한 사내 두 명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701호...여기란 말이지."
"여기 확실합니다. 하이에나 그 새끼가 얼마나 이 집을 구하려고 애를 썼던지.
조직에서 거액 들여 산 집입니다."
"쓸모 없는 놈인 줄 알았더니 밥값 할 때가 다 있구나 너."
"이젠 저를 식구로 받아 주십시오. 두 번 배신하지는 않습니다."
박광식. 어린 동혁에게 패배하고 조직에게서 찬밥신세였던 박광식이 삼거리파로
행보를 옮긴 것이었다.
계단 위에서 숨죽이며 지켜보던 재영은 동혁이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수상한 사내들의 대화가 더욱 그녀를 불안하게 한다.
"하이에나 그 새끼가 그리 잘 싸워? "
"말도 마십시오. 그 녀석 잡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암흑속의 하이에나가 그냥
부쳐진 이름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올 거다. 너 열쇠 전문이라며. 문 따."
"우리 두 사람으론 상대가 안 됩니다."
"알아 이 새끼야. 우루루 움직이면 경찰에 신고 들어가니까 그러지. 우리가 들어가 있으면
우리 애들 하나씩 들어 올 거다. 좁은 공간에서는 우릴 당하지 못할 거야."
얼마 후 동혁의 문이 열렸다.
재영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수상한 놈들이 하나씩 동혁의 집으로 들어갔고 그 수를 셀 수
가 없었다. 너무 무서웠다. 동혁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혹 자신이 그 위에 숨어있다는 것을 놈들이 눈치라도 채는 날이면...
"동혁아 집에 오면 안 돼..."
새벽 늦은 시간.
재영은 계단 창문을 통해서 자신의 집인 107동을 지켜볼 수 있었다. 동혁이 그랬던 것처럼.
얼마 후 어둠을 뚫고 민첩한 동작으로 움직이는 한 사내가 있었다.
재영은 그가 동혁임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예상대로 동혁은 재영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재영이 집에 없다는 것을 알고 동혁이 자신의 집으로 올지도 모른다.
그가 오는 것을 막아야한다.
재영은 급한 마음에 계단을 내려가 7층에 멈춰서 있는 엘리베이터를 열었다.
"드르르르륵! "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실수였다.
"철커덕! "
"눈치챈 것 같아. 어떻게든 유인해."
닫히려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린다.
"드르르르륵!"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자는 바로 박광식.
동혁은 그가 조직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른다.
새벽에 혼자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
여자를 밝히는 박광식이 침을 꼴깍 삼킨다. 그리고 그녀가 톱 가수 정은채라는 것을 알았는
지 그의 눈이 커진다.
몸둘 바를 몰라 몸을 가늘게 떨고 있는 재영.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며 1층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한다.
" 땡! "
1층 문이 열리자 박광식이 쏜살같이 건너편 107동으로 달려간다.
함께 뛰어간다면 놈이 의심할 것이다.
재영은 발만 동동 구르며 가슴을 조리고 있다.
한편 동혁은 재영의 현관문 앞 층계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다.
뮤직비디오 촬영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인가.
다시 지방 촬영지로 내려가야 하는 것인가. 동혁은 갈등하고 있다.
그 때.
" 땡! "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박광식이 내린다.
"하이에나 빨리 타! "
"아니 당신이 여길 어떻게..."
"보스가 지시한 거야. 네 집 근처에 수상한 자들이 오면 보고하라고. 집이 발각
되면 네 정체도 발각된 거니까. 위험하게 여기로 오면 어떻게 해."
동혁은 자신 때문에 재영의 존재까지 알려질 까봐 그것이 걱정되었다.
"하이에나. 네 집은 건너편 아니었나?"
"으 응. 그..그렇지. 나도 이 곳에서 안전을 확인한 후 들어가려 했어."
"엉뚱하긴. 아직 이 곳은 발각되지 않은 것 같으니까 우선 집으로 들어가자."
1층에 도착한 두 사람이 건너편 106동으로 향한다.
동혁이 광식을 따라 자연스러운 척 106동으로 향할 때
106동 입구 옆에 서 있는 여인을 발견한다. 천사처럼 예쁜 재영.
그녀는 최고의 인기 연예인이다. 늦은 새벽에 동혁 자신의 아파트 입구에서 과연 누구를 기
다리고 있는 것인가.
그녀가 자신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얼굴표정이 굳어있다.
뭔가 잘 못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자신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면 안 된
다. 설사 자신이 위험에 처할 지라도.
동혁이 재영을 무심히 지나쳐 광식과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하고 있다.
동혁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 107동으로 올라갔던 사람이다.
그녀의 존재를 발견하고도 그냥 지나쳤다.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재영은 곧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그의 등만 쳐다보고 있었다.
<< 27 >>
광식을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해 걸어가는 동혁.
재영은 분명히 보았다. 그가 손을 살짝 저어 그녀의 접근을 막았던 것을.
그러나 동혁의 집에는 적어도 열 명 이상의 침입자들이 있다.
그가 만약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재영은 어떻게든 그가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저..저기여 아저씨."
그녀를 지나쳐 가던 두 사람이 멈춰 선다.
"이.. 이 근처에 늦게까지 여는 약국 있나요?"
"정은채씨죠? 이거 영광입니다. 노래하시느라 힘드셨던가 보네요. 두통이 심하신
것 같은데.. 이 근처에 두통 약 구할 데 있냐?"
"글세...편의점에 혹시 있을까?"
"들으셨죠? 편의점에 한 번 가보세요. 야.. 뭐해 빨리 가자."
재촉하는 광식을 따라 동혁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탈 때 그녀가 뛰어들어온다.
"아..아저씨. 아저씨 집에는 두통 약 있을 거 아니에요."
이쯤 되면 박광식도 뭔가 수상하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동혁의 옆에서 재영이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다. 그러더니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난..난 몰라. 아까 사람이 열 명도 넘게 들어갔는데...어쩌면 좋아..어쩌면.."
겁에 질린 그녀가 어떻게든 동혁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리려다 드디어 울음을 터뜨리며
사실을 털어놓은 것이다. 물론 박광식이 당황한다.
"아니 이 분이 두통이 심하다더니... 두 사람 혹시 잘 아는 사이?"
"아..아니야. 나야 알지 톱스타를 모르겠어. 이분은 나 몰라."
" 땡! "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701호가 눈앞에 있다.
"집에 두통 약 있으면 정은채씨 좀 드려라. 들어가자."
"너 혼자 들어가."
" 퍽! "
동혁이 발로 광식을 밀어 차 엘리베이터 밖으로 민다.
쓰러졌던 박광식이 벌떡 일어나 엘리베이터 문을 닫히지 않게 몸을 던져 막으며
소리지른다.
"빨리 나와! 하이에나...하이에나 여기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수는 없을 것이다.
동혁이 재영의 손을 잡고 광식을 제친 후 계단으로 뛰기 시작한다.
"철커덩! "
곧 현관문이 열리며 삼거리파 조직원들이 우루루 몰려나왔다.
동혁과 재영은 온 힘을 다해 뛰었다. 1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하이에나 이 개새끼! 너 거기 안 서! "
놈들과 맞서면 안 된다. 경찰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도 재영이 다칠지도 모른
다. 동혁은 아파트 근처에 세워둔 차에 겨우 오를 수 있었다.
"퍽! 툭! "
날아온 야구방망이가 동혁의 차를 부순다.
"투. 투투 툭. 퍽! "
여러 놈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달려들었지만 동혁의 차는 그들을 뒤로한 채 달려가고 있
었다.
재영이 무서움에 떨며 계속 울고 있다.
"재영아. 많이 놀랬니? 진정할 수 있겠어? 괜찮겠냐고. "
"바보. 너 잘못 될까봐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너 다칠까 봐."
동혁은 재영의 손을 꽉 잡았다. 영원히 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는 듯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얼마를 달렸을까. 재영이 발목이 아픈 듯 신음하고 있다.
"끼이이이익! "
"너 다쳤니? 어디야? 어디가 아픈 거야."
"발목이...발목이 너무 아파."
"삐었구나. 어디 봐... 많이 부었잖아."
동혁은 우선 근처 모텔로 들어가 차를 세웠다.
"방 있지요? 그리고 부탁이 있는데요. 구급약 좀 얻을 수 있을까요?"
한편 삼거리파의 보스 조재용의 사무실.
"이런 병신 같은 새끼들. 놈을 눈앞에서 놓쳤단 말이지?"
"죄송합니다. 형님."
"허준구는 죽고 하이에나는 놓치고 잘하는 짓이다. 잘하는 짓."
"근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이 사태말고 더 이상한 것도 있냐?"
"톱스타 정은채가 하이에나와 관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정은채? 그 유명한 배우 정은채랑 말이지.. 이거 보기보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 거 같은데. 아니지 생각보다 쉽게 일이 풀릴지도 모르겠구만."
한쪽 구석에서는 보스의 눈치를 보고 서 있던 박광식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음 기회를 노리는 듯 두 눈을 빛내고 있었다.
"아야! 아파. 붕대 너무 세게 조인 거 같아. "
"임마. 내가 널 지켜준다고 했지 언제 너보고 날 지켜달라고 했니?"
"헤헤헤. 그래도 나 오늘 큰 일 했지?"
"그래 고맙다 고마워. 그건 그거고 너 어쩌려고 그래? 앞으로 방송스케줄."
"휴가 좀 달라고 하지 뭐. 그러지 않아도 너무 피곤했는데."
"누가 허락해 준데?"
"실장한테 전화해서 당분간 나 찾지 말라고 할거야."
"가수 하겠다고 가출했을 때나 지금이나 어찌 그리 변한 게 없냐."
"나 못된 앤지 이제 알았어? 하지만 나 지금 너무 행복한걸."
그들은 모든 것을 잊고 둘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 듯 했다.
오랜 세월 이렇게 밝은 모습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두 사람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동혁이 너 애인 없어?"
" ...... "
"왕따 진동혁이 어디 가겠냐. 쑥맥. 겁쟁이. 돌부처."
"아니. 나 애인 있다."
"정말? 누군데. 어떤 여잔데?"
동혁이 말 없이 다가가 재영의 입술을 훔친다.
재영은 피하지 않았다. 오직 한 사람에게만 허락한 일이다.
"동혁아. 날...떠나지 않을 거지?"
"절대로...절대로 널 떠나지 않을 거야."
"사랑한다고 말해 줘. 사랑한다고. 못하면 내가 할거야. 어서..어서.."
"사랑해..사랑해...죽을 때까지 사랑할거야. 아니 죽어서도 사랑할거야.."
"날 떠나면 내가 용서 안 해. 동혁이 넌 내 꺼야. 나만의 왕따."
오랜 세월 서로를 그리워했던 슬픈 사랑의 두 주인공.
놓치면 도망갈까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그렇게 사랑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창 밖에선 새벽동이 터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동혁의 가슴엔 가녀린 천사 재영이 얼굴을 묻고 잠들어 있다.
그녀만 보면 가슴 뛰었던 어린 시절의 동혁.
지금은 자신만을 바라보며 품에 안겨있는 천사를 더욱 꼭 안아주었다.
"탁탁탁탁! 저기요 이제 청소해야 할 시간입니다. 정리해 주세요"
이렇게 마음 편히 단잠을 자 본 적이 얼마 만인가.
"아함! 잘 잤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학교 다니랴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하랴 맘껏 자 본적이나 있었겠냐."
"너 솔직히 말해. 언제부터 날 감시했어. 응?"
"모두 다 봤어. 너에 관련된 것들은."
"나빠. 한 번도 앞에 나타나지도 않고."
"네가 나타나지 말라고 했잖아."
"동혁아 나 꼭 가보고 싶은 데가 있는데 내 소원 들어줄래?"
재영이 발을 절룩거리며 동혁을 끌고 간 곳은 파워랜드 놀이공원.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들은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 어린아이들처럼 즐거워했다.
"어마마마마! 이거 뭐가 이리 무서워. 꺄 ~ 악! "
그렇게 신날까. 재영은 놀이공원을 정신 없이 다니며 행복에 겨워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재영을 자꾸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저기 있는 여자 가수 정은채랑 너무 닮은 것 같지 않니? "
"설마. 그 고상해 보이는 정은채가 저렇게 미친 애처럼 뛰어다닐까."
"아니야. 너무 똑 같아. 나 확인해볼 거야."
몇 명의 학생들이 재영에게 다가온다.
"저기여. 혹시 가수 정은채씨 아닌가요? "
재영이 더 즐거워하며 그들에게 대꾸한다.
"그렇죠? 저 정은채랑 너무 닮았지요. 거 봐 자기야. 나 정은채 닮았다고 하잖아."
"으..응 그..그러네."
"나 다음주에 스타 쌍둥이 프로에 출연 신청할거야. 모두 다 속을 걸 아마."
재영의 천진난만함에 다가왔던 학생들이 그러면 그렇지 하며 갈 길을 간다.
"동혁아 나 짜장면 먹고 싶어. 그거 사줘."
한편 염평달의 맏아들 염상복은 평소에 흠모해 오던 정은채가 모습을 보이지 않자
전화를 걸어 정실장을 닦달한다.
"이 봐요. 매니저가 모르면 누가 안단 말이오."
"염사장님 너무 걱정 마십시오. 하루 휴가 달라고 한 거니 내일이면 돌아올 겁니다. 은채 오
면 연락 드리고 찾아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염상복이 두 눈을 감고 재영을 그린다.
문을 열고 들어온 마동수가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잠시 대기하고 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
"정은채씨. 허준구전무를 살해한 그 놈하고 함께 있습니다."
염상복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비열함의 대명사 염평달의 아들 염상복.
그 아비에 그 아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아비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을 그런 위인이었다.
그런 염상복이 점찍은 신부감이 정은채. 바로 재영이었던 것이다.
<< 28 >>
<< 제 5부 사랑 그리고 이별 >>
" 후루룩! 후루루룩! "
"재영아. 너 오늘 꼭 어린애 같다. 입가에 묻은 짜장은 언제 닦을 건데."
"팬들 눈치 보느라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 이젠 내 식대로 살아갈 거야."
"다음 공연에서 그 모습으로 출연해 봐. 정말 파격적일 것 같은데."
"치잇! 사랑하면 그 사람을 닮아간다고 했어. 그러니 너도 나처럼 먹어."
"아참! 그 생각을 왜 못했지? 둘이 그렇게 먹으면 덜 창피 할텐데."
동혁도 재영을 따라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혹시 정은채씨 아닙니까? 정은채씨 맞지요? "
"아저씨 지금 누구 염장 지릅니까? 이 가시나가 정은채 따라간다고 얼굴을 얼마나
뜯어고친 줄 아세요? 성형외과에서 견적 뽑느라 아주 거덜나겠습니다 제가."
"아니에요. 쌍둥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리 닮을 수가.."
"아저씨 저 정말 잘 고쳤죠? 우리 자기한테 말 좀 해 주세요."
"정은채 닮으면 뭐해? 목소리가 음친데."
"뭐야 자기야. 그럼 나 이 자리에서 진짜 노래한다."
"안 해도 바보다. 당장 불러 봐."
" 키스해~ 주세요.. 입술이 뿌루트도록 ~ 껴안아 주세요. 갈비뼈가
뽀사지도록. "
재영이 노래를 정말로 음치처럼 불렀다. 그걸 보던 동혁의 입에서 짜장면이 흘러 나온다. 물
론 지켜보던 남자가 말 없이 발길을 돌린다.
"푸 하하하하! 아까 봤어. 그 아저씨 인상 일그러지는 거"
"넌 뭔 가수가 노래를 그렇게 망쳐 놓냐?"
"재밌잖아. 난 재밌어 미치겠는데."
"너 걱정 안 돼? 예정된 스케줄은 어떻게 할거야. 가수 이제 그만 할 거야?
"동혁아 있지? 네가 이 세상 남자들 중에 제일 나"
" ...... "
"발 냄새가. 약오르지! 약오르지! "
"뭐야? "
"너 나랑 있으니까 편안하지? "
"또 무슨 말을 하려고? "
"지랄하고 자빠져서.. 자빠졌으니까 편안할 거 아니야. 메롱!"
"너 자꾸 이럴 거야?"
"지금 배부르지? "
"그깟 자장면 먹었다고?"
"아니.. 못 돼 쳐 먹어서. 하하하하!"
"이게!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너."
재영이 발을 쩔룩거리며 도망친다. 그런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런 재영을 지나가는 사람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쳐다본다.
"그래도 매니저한테 전화는 한 통 해 줘야겠지?"
"그래. 그 사람 걱정 많이 하겠는데. 저기 공중전화에서 해."
"여보세요. 실장님? 저 은채예요."
" ...... "
"저 발목을 다쳤어요. 몇 일 더 쉬면 안될까요?"
" ...... "
"실장님. 저 못 믿으세요? 뭐 하러 경찰에 신고까지 했어요? "
천진난만하게 웃고 즐기던 재영이 잠시 고민하고 있다.
"동혁아 아무래도 나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래. 어떻게 얻은 건데. 그 노력. 그 고생 모두 아깝잖아."
"함께...갈 거지? "
"나...이제 그 집으로 갈 수가 없어. 그건 너도 알지? 걱정하지 마. 소리 없이
나타나 못 된 재영이 깜짝 놀라게 해 줄 테니까."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마. 난 기다림에 지쳤어."
"발목 아파서 어떻게 가려고."
"실장이 차 가지고 여기로 온데. 동혁아 나 다른 곳으로 이사할 거니까 너도 네 곁으로 와.
집 전화랑 핸드폰 번호 적어준 것 잘 가지고 있지?"
얼마 후 정실장의 차가 도착했고 재영이 뒤를 한 번 돌아본 후 차에 오른다.
동혁은 떠나는 차의 뒷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재영아.... 곧 갈게."
늦은 저녁. 정실장과의 대화를 끝내고 재영이 아파트로 돌아왔다.
재영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란 다짐까지 받고 실장은 돌아갔다.
다리를 절며 그녀가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불을 켰을 때.
"정은채씨 이제 오셨네."
"어마! 누..누구세요."
"내 얼굴 기억 안 나? 하루 지나면 사람 얼굴도 까먹나?"
박광식이다. 놈은 열쇠 전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소리..지를 거예요."
"광식아 이 아가씨가 지금 소리지르겠다고 하는 거냐? 그러면 안 되지. 정은채씨
목소리 높다는 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 아파트 주민 다 깨면 어쩌려고."
재영의 집에는 이미 여러 명의 사내들이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동혁이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재영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재영이니? 왜 아무 말이 없어."
"재영이? 정은채 본명이 재영이란 말이지?"
"당신 누구야."
"내 목소리도 벌써 까먹었니? 나 광식이야 박광식."
"뭐야. 재영이 어떻게 했어! 어떻게 했냐고!! "
"천하의 하이에나가 여자 하나 때문에 이성을 잃었나. 진정하고 잘 들어."
그렇다. 동혁은 이성을 잃었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그녀 때문인데 어찌 이성을 차릴 수가 있겠는가.
동혁은 앞뒤를 가릴 상황이 아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삼거리파의 아지트. 그는 혼자다.
동혁이 삼거리파의 아지트를 찾은 것은 밤늦게였다.
우선 건물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없다.
예상외로 보스 조재용의 사무실도 조용했다.
다만 그 안에서 들려오는 재영의 음성.
동혁이 사무실 문을 천천히 열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재영의 음성뿐.
"하이에나 오셨네. 혼잔가? 혼자 왔으니 이걸 어째. 하긴 어차피 죽을 건데 여럿
죽을 거 뭐 있어? 혼자 가는 게 마음 편하지."
"재영이 어디 있어."
"나 표범이라고 한다. 하이에나 잡는데 표범만 한 게 없지."
"누가 네 놈 이름 물어봤냐? 그만 씨부리고 재영이 어디 있는지 빨리 말해."
"알고 싶어? 알고 싶으면 우선 날 꺾어 봐."
만만치 않은 상대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그의 자세 그의 눈빛 모두가 범상치 않은 놈
임은 확실하다.
"이야아압! "
"휘리리릭! "
몸의 움직임의 빠르기가 흡사 표범을 연상케 한다.
"툭!... 탁!...휘익! "
표범이란 놈의 자세에서 빈틈이 발견된다. 빠른 놈이지만 그의 움직임을 예상하면 된다. 그
뿐이다.
"휘이이익! 퍽! "
표범이 동혁의 돌려차기에 중심을 잃었다. 이미 승부는 난 것이다.
"퍽!....크윽! "
동혁이 날아 올라 표범의 정수리를 향해 팔꿈치를 날린다.
"쿵!... 욱! "
"어디 있어? 어디 있느냐고!!! "
"역시.. 센데. 옥상..으로 가 봐."
동혁이 옥상으로 달려 올라갔다.
"철커덩! "
적어도 20여명의 삼거리파 조직원들. 그 사이에 재영이 주저앉아 있다.
"오호! 이게 누구야. 하이에나 아니야. 표범도 적수가 못 되나 보구만."
"그 여자 놔 줘."
"아니지 아니지. 우리가 언제 이렇게 예쁘고 고귀하신 톱스타를 한 번 안아보겠어.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지. 네놈 혼자만 즐기려고 했던 거야?"
"이야아아아아아! "
동혁이 이렇게 분노해 본 적이 있었던가.
최고의 싸움꾼은 절대로 흥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혁은 이미 이성을 잃었다.
"퍽!.. 투.투투투 툭! ...휘익! 쿵! 퍽!....쾅! "
순식간에 삼거리파 조직원 대여섯이 나뒹군다. 그의 실력은 신기에 가까웠다.
그런 그의 모습을 재영이 울며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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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아아! "
"퍽!...쿵!......투툭..퍽! "
"휘이익! ....쾅! "
삼거리파 행동대원 놈들이 휘두른 야구방망이가 여기저기서 날아온다.
동혁은 혼신의 힘을 다해 그들과 맞서고 있었다.
" 퍽! "
날아온 야구방망이가 동혁의 얼굴을 강타한다.
"으으으으....으으으."
"하이에나. 이제 그만 포기하는 게 어때? "
"이야아아압! "
동혁은 이미 체력이 소진된 상태였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재영을 구해야한다는 그 일념뿐이었다.
"퍽! 투투투툭! 퍽! "
쉴새없이 날아오는 방망이. 옥상에는 이미 십여 명의 삼거리파 조직원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나머지들도 모두 숨을 헐떡인다.
동혁도 바닥에 한 손을 짚고 고개를 숙인 상태다.
"아직도 힘이 남았나. 그러면 여길 봐. 더 이상 힘쓰지 말고."
동혁의 머리에서는 땀과 피가 섞여 흘러내리고 있었고 숨쉬는 것조차 힘에 겨워 보였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재영을 바라본다.
비열하게 웃고있는 박광식과 한 걸음만 물러나도 아래로 떨어질 듯한 위치에 서있는 재영의
모습이 보였다.
"이거 어쩌나. 이 아름다운 아가씨를 그대로 떨어뜨려야 하나. 원하면 그렇게 하
고. 나도 자꾸 손에 힘이 빠지니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지도 모르겠고."
"박광식...이 개새끼. 죽고 싶지 않으면 재영이 똑바로 해 놔."
벼랑 끝에 서 있는 재영. 오래 전 아버지 대신 희생하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만약 재영이 죽는다면 동혁도 살아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원하는 게 뭐냐? 내 목숨을 원하는 거면 복잡하게 할 것 없다. 그 여자 그만
놔주고 날 죽여. 내가 그 여자를 희생시킬 만큼 큰 가치가 있는 그런 놈이니? "
"하긴 그래. 뒷골목을 헤매는 하이에나 때문에 죽기에는 너무 아까운 여자지."
조직원 한 놈이 동혁 가까이로 천천히 다가온다.
야구방망이를 들어 동혁의 뒤통수를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동혁은 그것을 알면서도 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안 돼! 아저씨.. 시키는 거 다할게요. 저 사람 살려주세요..네?"
"글쎄요. 우리 연약한 아가씨가 뭘 할 수가 있을까요?"
"돈이 필요하세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드릴게요. 그것으로도 부족한가요?"
"정 그러시다면 옷이나 한 번 벗어보지 그래. 톱스타 몸매 좀 구경하게."
"그...그거면 되나요? 벗을게요. 그러니 저 사람 좀 살려주세요."
"철커덩! "
옥상 문을 열고 거만하게 걸어오는 자는 삼거리파의 보스 조재용.
"귀하신 몸들이다. 둘 다 다치지 않게 해라."
건물 지하실.
박광식이 동혁의 두 손을 천장에 묶어 놓고 채찍질을 가하고 있다.
"철썩! ...크으으윽! "
동혁의 등에는 이미 채찍 자국이 가득하다. 살이 터져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 동혁의 등에 박광식이 소금을 뿌린다. 살 속을 파고드는 소금의 쓰라림.
"철썩!...으아아아악! ... 철썩!....으으으으! "
"하이에나 이 새끼야. 내가 너 때문에 그동안 얼마나 자존심을 상했는지 알아?"
"으윽!... 허억..허억! "
"너도 죽이고 성진파도 죽이고 모두 박살을 내 줄 테니까....철썩! 철썩!"
보통 사람 같으면 기절을 해도 열 번은 더 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혁은 기절할 수
없었다. 재영의 안전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사무실의자에 앉아있는 재영에게 조재용이 뭔가를 열심히 설득하고 있다.
"이봐요 정은채씨. 당장이라도 두 사람 죽일 수도 있어 쥐도 새도 모르게."
" ....... "
"그런데 은채씨를 끔찍이 아끼는 분이 있어서 말이야."
" ....... "
"우리 조직도 그 분한테 입은 은혜도 있고 해서..."
"무슨...말을 하려는 건가요."
"그 분이 원하는 건 아니지만 아가씨가 진동혁 살리려고 뭐든지 하겠다고 하니
말이야. 그 새 마음이 변한 건 아니겠지?"
"변하지 않았어요. 그 사람만 살려주신다면..."
"그럼... 내일 당장 그 분 호적에 이름 올려."
" ..... "
"혼인 신고 하란 말이야.. 혼인 신고."
"그 분이라면....누굴 말하는 건지..."
"태성그룹의 염상복 사장."
오랜 세월동안 그리워하던 사람을 만나 그를 사랑하고 그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를 살리려면 그의 곁을 떠나야한다.
재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럴 게요....그렇게 할게요. 그 사람 살릴 수만 있다면...."
같은 시간 지하실에서는 때리다 지친 박광식이 숨을 헐떡이고 있다.
"야 박광식이 너 참 잔인한 놈이구나. 살가죽이 다 벗겨졌어 임마."
"오늘 이 새끼 죽이려고 했는데 못 죽이잖아. 죽지만 않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정말로 하이에나 이 자식도 대단하다. 기절하면 뿌릴려고 물까지 준비하고 있는데
아직도 의식이 있으니 말이야. 가만.. 뭐 할말이라도 있는 거 같은데."
"박...광식... 날 죽여라.... 그것..만이 네놈이...살길이다."
"이 새끼. 아직 주절거리는 거 보니 덜 맞았어. 소금 좀 더 뿌려줄까?"
"그만해 그만. 죽으면 귀신 돼서 나타날 놈이다."
다음 날 새벽.
쓰러져 있는 동혁을 일으켜 세운 조직원들이 그를 끌고 나와 차에 태운다.
" 부우우우웅! "
한참을 달려 인적 없는 공터에 도착한 놈들이 차를 세우고 동혁을 끌어낸다.
"이쯤 던지자."
"죽지 않을까? "
"이 놈 절대 죽을 놈 아니야. 난 겁난다. 다리 하나 부러뜨리자."
"안 돼 임마 보스가 절대 죽지는 않게 하라고 했잖아."
"다리를 부러뜨리면 걷질 못할 테니까 안 되겠고 팔이라도 한 쪽 부러뜨려야겠어."
"맘대로 해라. 겁쟁이 녀석."
" 퍽!... 퍽! "
"임마 그만 해. 가루를 내려고 그러는 거야?"
"알았어. 알았어. 이젠 그만 아래로 굴려."
"타탁..타타타탁....쿵! "
동혁의 몸은 온 통 피투성이다. 대충 입혀 놓은 옷이 등에 달라붙어 있다.
한쪽 팔은 부러졌는지 심하게 꺾여있다. 살아난다는 것이 기적일 지도 모르는 일.
며칠 후 스포츠 신문 일면을 가득 메운 기사가 있었다.
최고의 스타 정은채. 비밀리에 태성그룹 염상복 사장과 혼인신고.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채 혼인신고부터 한 그녀의 내막에 대해서 사람들은 몹시 궁금해했
다.
엔드리스 월드 아파트 107동 701호 베란다.
그녀가 울고 있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린다.
베란다 창문까지 열려있고 그녀가 곧이라도 아래로 떨어질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창문에서 물러나 주저앉는다. 그리고 다시 소리내어 운다.
"동혁아. 어디 있는 거야. 제발...한 번만...한 번만 만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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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는 이가 없다.
그래서 씹을 수가 없다. 먹이를 발톱으로 찢어 먹거나 통째로 삼킨다.
그 중에서 뼈나 털과 같이 소화할 수 없는 것들은 뱃속에서 굳게 뭉친 상태로
하루에 한 번씩 토해낸다. 올빼미가 토해낸 그 덩어리. 그것을 펠릿이라고 한다.
인간에게도 펠릿이 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소화해내지 못하고 폭발시킬 때 나오는 보이지
않는 덩어리. 인간의 펠릿. 죽음을 부르는 피의 소나타.
어둠이 찾아오면서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자취를 감춘다.
그 어둠이 지상을 감싸기 시작하며 어느새 적막감만으로 가득 찬 저녁.
어둠을 뚫고 들어오고 있는 한 대의 차량.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한 사내가 급한 볼일이 있는 듯 차에서 내린다.
"차만 타면 오줌이 마려우니 이 놈을 끈으로 묶던지 해야지 원."
그런데 운전자도 없는 빈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부우우우웅! "
"어? 저거 뭐야. 차가 왜 움직여? 누구야. 어떤 놈이야!"
사내가 급히 지퍼를 올리며 차를 쫓아가지만 어느새 멀어지는 차의 뒷모습.
어둠. 주위는 온통 암흑 천지이며 자신의 삶과 죽음조차 느끼지 못하는 혼돈.
죽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사람들이 경험한 사후세계.
아무라도 좋다. 누군가가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 시켜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
동혁의 눈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한다.
"동혁아! 살아난 거니? 눈 좀 떠봐! 정말로 살아난 거냔 말이야?"
가늘게 열린 시야에 들어온 뿌연 세상의 흔적.
그러나 의식을 놓으면 다시 죽음의 문턱을 넘어갈 지도 모르는 처절한 생존투쟁.
의식의 고리를 놓지 않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재영.
"쿨럭! 쿨럭! 으으으으! "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그렇게 다시 살아나면 되는 거야."
"여기가...여기가 어디야."
"임마. 난 죽은 송장이 온 줄 알았어. 도대체 그 몸으로 어떻게 차를 몰고 왔지?"
"차?....그래 차를... 탔었지."
"별장에서는 도저히 널 살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조직과 거래하는 병원으로
데려온 거야."
"그럼...여기가.. 병원?"
그때 문이 열리며 의사가 들어온다.
"기적입니다. 처음 왔을 때는 시체나 다름없었어요. 심장박동수며 맥박과 체온 모두가 절망
적 상태였는데 지금은 회복되는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릅니다."
동혁이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써 보지만 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임마 가만히 누워있어. 등가죽은 모두 벗겨졌고 팔이 두 군데나 부러졌어."
"맞아요. 출혈이 심한 상태였거든요. 수혈을 꾸준히 했지만 정상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
다. 등에 새 살이 돋는 데에도 역시 많은 시간이 걸릴 겁니다."
인간의 의지력은 무한하다. 살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명을 연장시키기도 한다.
동혁은 살아야할 이유가 아직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살아있기 때문에..
피곤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재영에게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정은채씨 결혼 전에 혼인신고를 먼저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 겁니까?"
"저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건 제 사생활이니까요."
"수많은 팬들이 정은채씨의 말 한 마디를 기다리고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정해진 순리대로만 살수는 없잖아요. 지금은 저도 많이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언젠가는 팬 여러분들도 아시게 되겠지요."
재영은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였고 그런 그녀의 마음을 차지하기 위해 염상복의 구애는 계속
되고 있었다.
"은채씨를 향한 나의 마음을 하늘이 알고 도와주었나 봅니다. 정말 영광입니다."
" ...... "
"이 세상 어떤 신부의 것보다도 더 멋진 드레스와 화려한 결혼식을 준비하겠습
니다. 천사 같은 은채씨를 얻게 되다니.. 설마 이게 꿈은 아니겠지요?"
천사?... 재영은 염상복의 입에서 나온 천사라는 말을 듣자 온몸에 벌레가 기는 듯
한 불쾌감을 느꼈다. 자신의 큰 후원자였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뿐이다.
염상복은 정말로 동혁과 재영의 관계를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연기를 하는 것인지
재영이 혼인신고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연일 연예관련 기사에서는 재영의 기사가 빠지질 않았고 자신의 기사를 읽은 재영은 번번이
신문을 찢어버리곤 했다.
한편 성진파의 보스 천성진은 깊은 실망감에 쌓여 있었다.
"박광식 이 개자식! 무능하고 여색만 밝히는 놈 거둬주고 보살펴 줬더니 이제는 조직을 배신
하고 내 뒤통수를 때려?"
"문제가 심각합니다. 예전의 삼거리파가 아닙니다. 너무 많이 컸습니다."
"감방간 우리 애들은?"
"민변호사가 다방면으로 애쓰고 있지만 워낙 염평달일가의 견제가 심해서..."
"허준구 제거했는데도 산 넘어 산이구만. 팔다리 다 잘린 기분이야. 에잇!"
"지금은 때가 아닌 듯 합니다. 돌아가는 상황을 잘 살펴본 후 계획을 세우심이.."
"하이에나는 좀 어때?"
"워낙 상처가 깊어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것도 의문입니다."
하지만 병원에 누워있는 동혁은 병세가 나날이 호전되어가고 있었다.
"동혁아 이 기사 좀 봐라. 가수 정은채가 태성그룹 염상복이랑 결혼하기로 했단
다. 하여간 돈이 최고다. 원하면 정은채 같은 톱스타까지도 차지할 수 있으니."
동혁은 상처가 회복되면 회복될수록 그 만큼의 분노도 함께 커가고 있었다.
어느 날 그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또 한 명의 여인 정아가 병원에 찾아왔다.
"동혁씨....내가 다치지 말라고 했잖아. 나 지금..너무 가슴이 아파."
"걱정...하지 마라. 나 그렇게 쉽게 쓰러질 놈 아니니까."
"나한테 뭐 부탁할 거 없어? 동혁씨 위해서라면 내가 뭐든지 할게."
"정아야. 너 박광식 알지? 너한테 찝쩍대다 큰 코 다쳤던 그 놈."
"으..응. 그런데 박광식이 왜?"
"너만 보면 침 흘리던 놈이다. 그 놈 좀 꼬셔봐라."
동혁은 아직 한 쪽 팔을 못 쓴다. 그러나 더 이상 분노를 억누를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있
었던 것이다.
다음날 저녁 정아는 동혁의 부탁을 바로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살...살려주세요."
"이게 누구야. 너 자이언트 파라다이스의 정아 맞지?"
"당신은..박광식씨?"
"그런데 누가 연장 들고 따라오기라도 하냐?"
광식이 정아의 뒤편을 살펴볼 때 사내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도망가고 있었다.
"하하하! 네 기둥서방이라도 하고 싶은 놈인가 보다. 안 그러냐?"
"부탁이 있어요. 나 숙소까지만 좀 바래다주세요. 무서워서 그러니까."
"대신 조건이 있는데 나랑 술 한잔하자. 그럼 바래다줄게."
정아의 계획대로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광식이 정아를 데리고 찾아간 술집은 성진파와도 삼거리파와도 관계없는 룸싸롱이었다. 조직
을 배신한 덕에 박광식의 주머니도 두둑해 졌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룸에 들어간 광식의 말투가 변한다.
"하이에나가 죽지 않고 살아있나 보지?"
"그게 무..무슨 말.."
"이년이 누굴 호구로 아나. 네 년이 하이에나하면 사족을 못 쓰는 걸 삼척동자도 다 아는
데. 하긴 상관없겠다 살아도 반병신 됐을 텐데 뭐."
"나..그냥 갈게요."
"그냥 앉아 있어라. 네 면상 보려고 우리 동생들도 와 있으니까. 야! 모두 들어
와! 형이 술 사줄게. "
박광식은 역시 비열한 놈이었다. 살아날 구멍은 항상 남겨두고 있었던 것이다.
삼거리파 조직원을 불러 하이에나로부터의 위험에서도 보호받고 그 전부터
흑심을 품어왔던 정아까지도 차지하는 일석이조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제목: 폭파 1초전 시한폭탄 사랑
작 가 명: 펠릿
E-mail : leabbana @ hanmail.net
연재장소: 열매소설① - 30대
총 편 수: 총 55편 완결
장 르: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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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터넷 소설 닷컴 (http://cafe.daum.net/youllso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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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릿] 폭파 1초전 시한폭탄 사랑 [ 21 ~ 30 ]
바보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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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18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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