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일 시: 2004년 7월 19일
산 행 코 스:
성삼재-노고단-삼도봉-벽소령-세석평전-
-천왕봉-중산리
날 씨 : 하루종일 안개와 구름
인 원 : 소월산악인 30여명
♣ 새벽 ..잠자리에 들어야할 시간에
일어나 산행을 위한 짐을 꾸리고 장거리
산행의 체력에 힘이 부치지 않을까
잠시 생각에 빠진다.
다행이 남편과 함께 할수 있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주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자신의 체력과 의지이리라..
유성 구청 앞까지 버스를 대주시는
권사장님의 배려에 감사하며 버스에 오르니 아저씨 두분이 이미자리에 앉아 계시고
누리앞에서는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오르신다.
어둠을 뚫고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려 새벽 5시이전에 성삼재에 모두를 안착 시킨다.
동이 트이지는 않았지만 앞사람의 형체가 뚜렷이 보이는 정도의 밝음으로 랜턴은 켜지 않은
채 산행을 시작한다.
성삼재에서 노고단 산장까지는 단체가 움직여도 될만큼 넓다랗게 자갈을 심은 포장도로다.
희부연 시야로 까치수염이며 노루오줌같은 야생화들이 길 양옆에 가꿔놓은 화단처럼 줄지어
피어있다. 산장앞의 나무벤치와 가로등, 거무스레한 단층 건물이 어느 간이역의 역사처럼
새벽공기와 어울려 고즈넉한 풍치로 산행의 초입을 설레게 한다.
이제 정해진 코스로 무사히 완주할수 있기를 다짐하며 노고단을 향한다.
짙은 안개로 사방의 조망이 아쉬웠는데 갑자기 환한 불빛에 설마하며 눈을 돌리니 단체 사진을
찍는이들의 랜턴 불빛이다. 이런 날씨에 일출을 기대한 나의 어리석음이 딱하다.
남편과 함께 오르는 산행이 오랜만이라서 은근히 기분을 돋구려 장난을 건다. 소월카페에서
본 유머 얘기도 해주고, 닭살 돋는 애교도 부려보고..
노고단(1507m) .. 바람이 세차다.
두 팔로 보듬어 보려 다가가지만 돌단에 낙서한 장난꾼들의 글귀가 영 맘에 안든다.
산을 타고 오르내리는 안개 구름이 나뭇잎에 맺혀있다가 굵은 빗방울처럼 간간이 떨어진다.
임걸령을 향한 길의 넓적한 돌들은 물기를 머금어 미끄럽고 흙바닥은 여지 없이 진흙탕이다.
지리산은 야생화의 천국 같다. 산수국이 등산로 옆에 지천으로 피어있고 원추리와
산나리의 붉은 꽃이 초록의 풀밭에서 더욱 돋보인다. 아직은 종주의 기대에 부풀어 힘든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헬기장을 지나 주변이 트인 길섶에서 안개와 원추리꽃을 벗삼아 준비해온
김밥으로 이른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한다. 오늘 산행코스가 긴 관계로 반야봉은 표지판에
눈도장만 찍는다.
삼도봉(1499m)에 이르기까지 한번 올랐던 길이라서인지 가뿐하게 오른다.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에 이르는 세개도의 경계에 세워진 커다란 화살촉같이 생긴 삼도봉
상징표석의 반질 반질한 부분을 나도 손기름을 묻히며 어루만져 본다. 남들 손길 안닿았을법한
아래쪽에 엄지를 힘주어 도장 찍고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본다. 내꺼...
누리에서 타신 인상좋은 아주머니가 바깥분을 못보았냐고 물으신다. 반야봉쯤에서 쉬시고
계시다고 알려드리고 다시 출발.. 여기서 부터는 처음 밟아보는 코스다.
내림길의 시작부터 심상찬케 길고 긴 계단길이 언제쯤 치받는 오름길일지 은근히 겁을준다.
아니나 다를까 토끼봉(1534m)을 향한 오름길의 시작이 이제 숨쉬기를 고르게 놔두질 않는다.
다시 내림길 .. 명선봉(1586.3m)까지 가파른 계단을 몇개 지나고 연하천 산장에서 잠시
일행들과 얼굴을 마주치고 빈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운다.
아직은 여력이 많이 남아 있는 얼굴들이다.
바지런한 낭군님은 오분이상 쉬는걸 못 견디고 갈길을 채근한다. 에고.. 뒤따라 나서지만 쉬고
싶은 맘이 한보따리다.
형제봉(1433m)까지 가는길에 아들과 함께 산행 하시는 분이 소월산악회
꼬리표를 보시며 일곱번째 만나는 사람이란다. 샘물이 콸콸 솟는 벽소령에서 아깝지만 아까채운
물병을 비우고는 새로 바꿔 채운다. 아까의 물맛보다 훨씬 시원하고 맑다.
아까 마주친 일행들과 순서가 바뀌어 만나 인사하곤 다시 길을 나선다.
덕평봉(1521.9m)을 향한 길에 커다란 길가 바위가
쪼개져 굴러떨어진 잔해를 보자 등골이 오싹하다. 도중에 산악 마라톤을 하시는 대전 주주클럽
회원인 너른숲님과 말을 튼 낭군님은 공동의 소재와 이야기가 있자 신이나서 담소를 나누며
속도가 붙는것 같다.
이야기에 열중하다 아차 발이 미끄러지며 순간 긴장을 했지만 다행이 나뭇가지를 붙들어 무사하시다.
자꾸 말걸어서 그렇다고 낭군님께 은근한 핀잔을 주고는 그분들과 떨어져 산행한다.
칠선봉(1576m)을지나 영신봉((1651.9m)까지 서서히 오르막을 지나며 봉우리에는 주목들의 푸른
모습과 고사목이 간간이 눈에 띈다.
세석평전.. 말로만 듣던 잔자갈이 깔린 평원에서 신라시대 몇천명씩이나
수련을 하던 곳이란 일행의 설명을 들으며 잠시 환청처럼 무사들의 함성을 떠올려본다.
꾸준한 오르막길이 넓은 노폭으로 그리 느껴지지는 않지만 숨이차다.
촛대봉(1703.7m)에 오르자 거짓말 처럼 구름이 벗어지며 지리산의 장엄한 전경이 펼쳐진다.
가슴이 벅차다. 종일을 안개와 근경만을 바라보며 갑갑했는데 마치 스포트라이트의 장면만을
보며 오르다 지금.. 막이 오르고 나의 눈앞에 펼쳐진 장관의 감격은 이제까지의 고통쯤은 순식간에
구름과 함께 날아가 버린다. 아! 지리산! 이병주님의 소설"지리산"을 읽으며 머리속에 상상해오던
바로 그 현장의 능선과 숲길을 되새긴다. 독립을 위해 산을 나는듯이 오르내리며 활동하던 슬프고
강한 민족..감격을 접어 둔채 사진을 찍어주신다는 너른숲님의 배려에 활짝 웃으며 한컷!!
이제 천왕봉의 관문인 장터목이 눈앞이다. 지치고 피곤한 다리지만 목표가 다음 위치임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장터목 산장..언제 부턴가 산장의 이미지는 알프스의 산장 모습을 옮겨 놓은듯 외래풍이다.
잠시 전통미를 살리면서도 실용적인 산장의 모습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어쨌거나 장터목의 바람과
햇빛으로 또 한번 지리산의 전경에 경탄을 한다. 미리 예고해온 천왕봉 오르는 길의 가파름을 몸소
겪으며 다시 걸음을 옮긴다.
천왕봉(1915.4m)을 향해 오르는 길은 지금까지의 피로와 끝없는 오름길의 연속, 한여름임에도 돌풍처럼
몰아치는 바람으로 녹록지가않다. 제석봉을 지나 통천문...
정말 여기를 통하면 하늘에 오를 수 있는 것일까?
속으로 자신에게 물어보며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아! 이높은 곳에 야생화의 꽃밭이 펼쳐져있다.
한무리를 이루어 살아간다는 것은 이토록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느끼게하나보다.
겨레.. 고향.. 마을..가족.. 동호인.. 등등..드디어 천왕봉의 표지석을 끌어안고 감격스런 만남을 한다.
오늘의 고단함이 한 순간에 몸을 감싼다. 목표에 이르고 난 후의 소강상태..
너른숲님 일행과 정상주를 나누며 준비해온 삶은 계란과 번데기를 안주로 내놓는다.
머리속에 여러장면이 스친다.
나는 마시지 않은 정상주를 끝내고 일행은 하산을 시작한다.
이상하다. 오른쪽다리가 뻣뻣하게 굳은듯이 무릎이구부러지면 정확히 짚을 수 없는 통증이 느껴진다.
이런 일이 없었기에 얼마만큼의 위험증세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법계사 까지 오름길이 1시간 30분.. 내림길은 1시간이면 족하리라던 길을 시간 반이 지나도록 법계사는
보이지 않는다.
일행은 먼저 내려가고 남편은 동반산행에서 이런적이 없던 나를 독려하며 천천히 하산을 유도해 본다.
올라온 만큼의 내림길이라면 말 하지 않아도 가히 상상이 가는 긴 여정 일텐데 5시를 넘긴 시각이
마음에 걸린다.
아무래도 안되겠던지 남편은 등산가방을 나에게 매게하고 등에 업히라한다.
시각에 쫓기는 심정이라 어쩔 수 없이 업히지만 마음이 무겁다.
다리의 통증이 조금 가라 앉은듯하여 다시 내려 살살 걷는다. 이렇게 걷다 업히다를 반복하지만
거북이 속도다. 일행중 침을 가진이가 있다고 법계사에서 기다리겠다며 어르신이 앞서 내려가신다.
법계사가 가까운가?
조금 힘을 얻으며 내려가 보지만 여전히 통증과의 싸움에서 이내 무너진다.
뒤따라오던 소월님들이 하나 둘 먼저 내려 가시고 설송님이 가지고 계신 진통 에어파스를 뿌려주신다.
일어나 걸어보니 걸을만 하다. 법계사를 향한다.
로타리 대피소에서 신발을 벗고 찬물에 발을 담근다. 시원하다.
침을 가지고 기다리신다던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내려가 보자. 반은 내려 왔을테니... 더욱 느려진 속도에 시간은 점점 흐르고
남편도 이제 기운이 빠져 보인다.
차라리 내가 혼자 천천히 가고 있을테니 가방을 차에 내려놓고 다시 올라 오시라고 반 협박하여
남편을 내려 보낸다. 오른발을 땅에 디디면 통증이 뼈를 타고 전신으로 오른다.
스틱을 접고 뒤로 돌아 네발로 기어 내려가 보기도 하고 아예 깨금발로 오른발을 안쓰며 내려가 보지만
나아가는 길이 얼마 안된다. 이제 쉬고 싶어도 앉을 수가 없다.
다리가 접히질 않고 접으려 하면 전신이 소스라칠정도로 아프다. 얼마 안된시간에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아! 하산지가 가까운 모양이다. 기쁨도 잠시, 다른분이 가방을 매주셔서 일찍 올라오게 되었단다.
업고 내려가는 남편의 등이 따뜻하지만 가시방석이다.
가파른 산길을 아무리 가벼운 무게라도 업고 보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119구조요청 팻말을 지나며 유혹을 느낀다. 폭이 높아 위험한 곳에서 잠시 내려 나무에 등을
기대고 쉰다. 앉았다 일어설수 없어 선채로 휴식을 한다. 한 쪽 다리마저 아파온다.
통증을 참으며 앉아 다리를 뻗고 있자 남편이 주물러주기 위해 손에 힘을 주자 까무라칠 정도로
통증이 온다.
신음을 참으려 고개를 숙이지만 잇사이로 울음이 빠져나온다.
끄윽 대며 우는 나를 보고 어찌할바 모르며 당황하던 남편의 얼굴도 눈물과 땀이 뒤엉켜 차마
바라볼수 없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온 산에 우리 둘만 있는 듯 고독하고 서럽다. 다시 등에 업혀 몇걸음을 걷자 업히면
조여야하는 오른쪽 넓적다리의 통증으로 이제 업힐수도 없다.
이러다 남편도 탈진하겠다. 119에 구조 요청을 한다.
권사장님께 현재의 상황을 알리려 통화시도를 하지만 전화기만 혼자 울린다.
한참을 시도해 현재의 입장을 얘기하고 몇사람 보내 줄것을 염치 불구 부탁한다.
구조대원이 단신으로 무전기만을 갖고 내려온다. 순간 허탈하다. 남편은 들것을 기대했고 압박 붕대와
스프레이파스만을 가져온 구조대원을 망연자실 바라본다.
그러나 지금의 입장이 도움을 받는 입장이니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하기에 응급으로 파스를 뿌리고 붕대를
감아 본다. 다리를 건드리면 비명이 나온다.
아까보다도 더 심각하다. 구조대원도 갈피를 잡지 못하다 다시 산장으로 올라가 1박을 하고
내일 헬기를 부르자 한다.
남편은 대꾸도 않고 아직 해도 떨어지지 않았고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업고 내려가겠다고 버티며 다시
나를 등에 업는다.
압박되는 통증을 이를 악물고 참으며 목을 감은 팔에 힘을 준다.
마음 좋아 보이는 구조대원은 뒤따라 오며 다시 설득을 시도 하다가 잠시 쉬는사이 교대를 해준다.
등치가 커다란 불곰만한 대원은 나를 업고도 내림길을 나는 듯이 내려간다.
어떻게 하면 업은 사람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줄수 있을지 매달린 팔에 힘을 줘본다.
몇 차례 교대로 업히기를 하며 미안해하는 내게 구조대원은 목마르지 않냐며 비닐봉지에 계곡물을 떠다준다.
부풀어 오른 봉지의 맑은 물처럼 등치와 안어울리는 순박한 친절이 고맙다.
저만치 아래에서 올라오는 매표소 사람과 처음엔 구조요원인줄 알았던 멋있는 젊은이가 올라와 멜빵을 매고
다시 업힌다.
모두들 산사람이어서인지 등에 업힌 사람이 무색케 잘도 달린다.
다시 몇몇 소월님들의 걱정스런 얼굴이 뒤따라 올라오고 랜턴을 비춰주며 어둠길을 편하게 해준다.
고맙다.
뭐라 다른 말이 필요 없이 세상에 태어나 온전히 타인의 도움으로 움직여본 시간에 동참해준 여러분들이
그저 고맙다. 매표소에 도착해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정신이 들자 온통 이 신세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몸둘바를 모르겠다.
반가운 소월 버스가 올라온다.
눈물이 피잉 돌며 송구스러움에 몸둘바를 모르는 나에게 괜찮으냐는 걱정 들만 물어오신다.
다시 너무 고맙다. 미안한 맘을 덮어주시는 걱정과 배려의 물음에 나라면 그럴 수 있을지 부끄럽다.
차에 올라 남편이 죄송하다는 인사를 하고 권사장님은 예상보다 빠르게 출발한다며 오히려 위로 하신다.
귀한 시간을 나로 인해 소모하신 여러 소월님들!!
다시한번 감사하고 죄송함을 전합니다. 이번의 경험은 저에게 커다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세상은 절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몸소 겪었고, 어려울때 힘든 사람을 배려하는 산처럼 넓은 산사람들의
마음가짐을 배웠고,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에 무심해선 안되는 가까운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앞으로의 산행에 내내 안전과 평안한 기쁨이 함께 하시기를 온 마음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