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마음>(윤홍기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은 서양의 대학에 재직하는 한국인 노학자가 평생 풍수와 환경 사상을 주제로 하여 한국의 문화 지리학적인 현상을 연구한 성과를 담고 있다.
글의 행간에는 국토에 대한 사랑과 우리 땅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절절이 배어 있다. "40년 전 고국을 처음 떠나야 했을 때 나는 차마 고향 땅을 떠날 수가 없어서 어머니 산소 옆에 흙을 한 줌 집어 품고 떠났다. 그 흙은 지금도 꺼내어 보곤 한다"라고 저자는 술회한다. <땅의 마음>이라는 제목이나 글을 구성하고 있는 주제, 내용은 그러한 저자의 마음이 오롯이 투영된 것일 게다.
지은이 윤홍기는 참 특이한 학문적 역정을 지녔다. 그는 1976년에 풍수를 문화 지리학으로 해석한 논문으로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이후로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의 지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줄기차게 풍수에 대한 논문을 영어로 발표하였다. 그의 연구 성과는 영어권에서 널리 인용되고 있어, 그는 풍수 연구에 있어 권위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의 인지도가 낮다. 발표된 글이 주로 영문이어서 널리 읽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에 적힌 "내 나이 예순여섯, 이 책을 통해 한글로 고국에 돌아왔다. 내 생각과 공부를 고국의 선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는 말이 그간의 사정을 잘 표현한다.
이 책 내용의 학술적인 좌표는, 구미의 현대적 지리 사상 및 문화 지리학과 동아시아의 전통적 풍수 지리학의 전통이 만나는 자리다. 서구 지리 사상 및 문화 지리학의 강줄기와 동아시아 풍수 지리학의 강줄기가 만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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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일관하는 열쇳말은 한국의 풍수 사상이다. '풍수 사상 속에서 읽어내는 한국인의 지오멘털리티'라는 부제가 암시하듯이, 한국인이 땅에 대해서 어떠한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풍수적인 시각으로 조명하였다.
한국 사회에서 한때 풍수가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풍수를 주제로 연구하는 연구물이나 책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고, 풍수학이 정규 대학의 학문 체계에 진입하기도 했었다. 매스미디어에서도 큰 관심을 보여, 방영 프로그램이 심심찮게 등장하곤 했다.
대중들은 풍수가 마냥 흥미롭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전통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도 느꼈다. 한국 전통 문화의 다양한 방면에 널리 투영된 풍수의 영향력에 놀라기도 하였다. 실로 한국에서 풍수는 전통 사상과 문화, 공간적인 삶의 모든 면에 파고든 마스터키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풍수가 갑자기 세상에 모습을 보이면서 도대체 풍수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신앙, 민속, 땅에 대한 사유체계, 전통 과학의 측면을 종합적으로 가지고 있는 풍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풍수 연구자의 시각과 입장이 다양하게 전개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러한 정황에서 이 책은 한국 풍수의 정체성이 무엇이며, 한국의 문화 전통에서 풍수는 어떠한 중요성과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보편적 잣대를 제시한다. 한국의 토종이 일찍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대학에 재직하면서 한국의 풍수 문화를 비교 문화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한 성과이기에 그렇다. 이 책은 기존에 나와 있는 책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저자의 글쓰기 방식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가 진지하고 무게 있는 학술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글이 쉽게 쓰여 있다. 그 이유는 저자가 밝히고 있는 대로, 한국에 있는 동료 학자나 학생, 특히 한국의 전통 문화에 애착을 갖고 있는 젊은 문화 지리학 분야 지망생에게 그동안 생각하고 공부한 것을 들려주는 '강의'를 연상하며 이 책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풍수를 다루는 기본적 자세와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지관과 풍수 지리를 연구하는 학자는 확실히 구분되어야 하고 그 차이에 관해서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풍수술을 업으로 하는 지관과 풍수 신앙 현상을 객관화해 연구하는 학자는 다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지만 지관과 풍수학자를 혼동하는 경향이 확실히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은 기존의 풍수서에서 주로 다루었던 풍수 이론이나 현지 적용에 대한 설명보다는 풍수에 대한 역사적이고 사회문화적인 측면의 해석에 치중하고 있다. 특히 풍수를 환경 사상으로 해석하여 풍수가 가진 환경 관리 이론을 밝힌 점은, 국제적으로 인증된 저자의 학문적 성과로 꼽을 수 있다. 서구 학계에서 윤홍기 교수는, 풍수를 기존 '미신'의 영역으로부터 지리학과 문화 생태학적인 연구 대상으로 전환시켰고, 최초로 환경적 중요성과 연관시킨 학자로 인정받은 바 있다.
연구 방법에서는 비교 문화적으로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과의 연관 관계를 서술하였다. 연구의 스케일에서는 '동아시아의 범주'에서 한국의 풍수 문화를 조명하였다. 중국의 풍수가 한국 문화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를 살펴보면서, 동아시아 풍수의 기원, 한국에서의 풍수 도입과 풍수사의 시기 구분 등 굵직굵직한 주제들을 포괄하였다. 이와 같이 동아시아의 범주에서 한국의 풍수 문화를 조명하고 비교하는 본격적인 논의는 그간 흔하게 나오지 않았기에 더욱 소중하다.
저자가 활용한 연구 자료의 특징도 지적될 수 있다. 지식인 계층에서 만들어진 문헌을 고찰하였을 뿐만 아니라 특히 민간에 전승된 풍수 설화에 비중을 두어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사람들에게 실천된 풍수 문화에 주목하고 있다. 민간의 풍수 설화 자료가 갖는 의의를 평가하고 한국의 풍수 문화의 해석에 널리 활용한 것은 의미가 크다.
이 책의 열쇳말이 되는 '지오멘탈리티'라는 말도 새롭다. '땅을 보는 마음의 틀'이자 '심성'으로 번역되는 지오멘털리티는 지은이가 지오(geo)와 멘털리티(mentality)를 조합하여 만든 말이다. 이 용어는 이제 세계의 지리학계에서 일반화된 개념어가 되었다. 지은이는 한국인의 지오멘털리티를 이루는 근저에 풍수 사상이 깔려있고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하였다. 중국의 태극도설과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지오멘털리티를 비교 분석한 글은 개념에 대한 쉬운 이해와 함께 재미를 더한다.
이 책의 내용에서 가장 크게 기여될 학술적 공헌은 풍수의 환경 사상적인 해석에 있다. 그 세부 주제로서 풍수 지리의 자연관, 풍수형국 속의 문화 생태, 풍수의 환경 관리 이론, 서양의 환경 결정론과 동양의 풍수 사상 비교에 대한 연구는 동서양 환경 사상의 보편적 토대에서 논의되고 있어 설득력이 크다. 그것은 오늘날 환경 및 생태 사상의 사회적 담론체계에서 전통적인 풍수 사상은 무엇인지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대답이 될 수 있다.
신 문화 지리학적인 새로운 시각 및 해석 방법으로 풍수 문화를 조명하였다는 점도 이 책의 중요한 연구 성과라고 하겠다. 풍수가 어떻게 사회 집단의 이데올로기로 동원되고 기능하였는지를, 일제시기에 조성된 조선 총독부 건물과 근래의 해체 과정과 연관 지어 서술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한국의 풍수 연구사에서 풍수를 매개로 한 정치 사회적 갈등과 집단 관계에 대한 해석의 지평을 넓혔다는데 의의가 있다.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이루어진 풍수 연구 성과에 대한 검토 및 정리가 미약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저자의 주장인 동아시아 풍수의 '황토고원 기원설'은 역사적 고찰과 문헌 고증 연구로 논리적 토대가 보강될 필요가 있다. 근래에 동아시아 각국에서 풍수 연구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에 그 성과는 충분히 검토되고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으로 인해 이제 한국의 풍수 연구는 새롭게 보강된 기틀의 정립과 함께 한 단계 더 도약된 발전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이 한국 풍수 문화의 학술적 기초를 구축하는 초석이 되기를 바라며, 풍수와 지리학에 관심 있는 연구자들과 대중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자료출처 : 프레시안/ /최원석 경상대학교 인문한국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