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를 슬픔이라고 불렀다
오늘 나는 지는 꽃, 하나를 보았다
한 여자가 기대어 울던 담장 옆에서 덜 익은 햇살 아래 떨어지는 붉은 슬픔을 보았다 슬픔은 두 번째 목울대를 넘길 때에야 비로소 눈물이 고였다
저녁은 성급하게 왔고 그녀는 새의 울음처럼 자주 깨물렸다
슬픔은 새의 울음을 따라다니며 불안해진 구름의 한 귀퉁이를 쪼아 물었다 바람의 길이 깊어지면 슬픔의 씨는 빗방울 끝에서 사선으로 무너지거나 모호해진 새벽의 불안을 움켜쥐거나 다시 돋은 희망을 숨겨두었다
가시는 담장을 벗어난 새를 놓쳤다
숨을 가진 것은 대부분 슬픔의 씨를 갖고 태어났다
자궁 밖으로 밀려날 때부터 슬픔은 이미 붉어지기 시작했다 새의 부리가 닿는 끝마디에서 담장 밖을 따라 떠돌던 속삭임은 지나친 과오였다 덜 자란 태양을 향해 아랫입술을 벌리고 잘 익은 꽃술은 달콤했다 식탁 위의 달콤한 키스처럼 그 가장 환한 마디를 접을 때 슬픔은 비로소 제 키를 줄이곤 했다
저 붉은 울음은 그녀가 손을 내주며 따뜻하게 눈을 맞추었던 순간 밖에 머물거나 나쁜 프러포즈를 받거나 새가 떠난 등 뒤로 밤이 몰려들거나 할 때, 사랑에 실패한 모자를 눌러쓴 담장 밑에서 이별이라는 깨진 단어를 깨물거나 할 때 더욱 말랑해졌다
담장을 타고 오르며 사랑을 늘릴 때마다 새는 뾰족한 부리를 파먹었다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후회, 구겨진 각이 많을수록 눈물은 커졌다 뜨거워진 꽃잎은 바삭바삭 마르다가 부서졌다 자멸은 불완전한 버짐처럼 산만하거나 불량했다 겹을 늘린 슬픔의 씨는작은 바람에도 혓바닥이 돋았다
저 붉은 슬픔을 다 말리지 못한 나는 오래도록 담장을 따라가며 붉은 슬픔을 똑똑 분질렀다 까치발로 담장 끝에 서서 새의 부리 끝에 매달려 있는 장미의 눈물을 털어냈다 붉은 꽃잎 하나 지는 일은 한 슬픔이 지는 일이었다 장미가 기댄 담장 밑에선 못다 이룬 사랑을 발설하지 않았다
다시 날아온 새의 눈 맞춤은 단기 기억상실 그리고 눈물이 고이지 않는 낯선 방,
꽃이 지자 오월의 슬픔도 끝났다
새가 물어간 슬픔은 내 몫이어서 공중은 꺼이꺼이 울고 있었을 것이다
한승희, 『아주, 가끔은 꽃의 이름으로 걸었다』 , 2024년
사랑은 ‘응급실’처럼 위급한 것이어서, ‘응급실’*의 가사를 필사해 보기도 하는 밤입니다.
“숨을 가진 것은 대부분 슬픔의 씨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나의 슬픔은 금세 들키고 마는 것이어서, “새의 울음처럼 자주 깨물렸”습니다. 말은 씨가 되는 것이어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여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름다움이 있다면, “지는 꽃,”, “붉은 슬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루이제 린저처럼, 전혜린처럼, 윤심덕처럼….
“담장을 벗어난 새를 놓”친 이후, 아니, “담장을 벗어난 새를” 놓아버린 이후, “겹을 늘린 슬픔의 씨는 작은 바람에도 혓바닥이 돋았”습니다. “붉은 슬픔을 다 말리지 못한 나는 오래도록 담장을 따라가며 붉은 슬픔을 똑똑 분”지를 것입니다. 당신은 파도에 흘러가는 눈부신 햇살처럼 닿을 길이 없습니다. “장미가 기댄 담장 밑에선 못다 이룬 사랑을 발설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새가 물어간 슬픔은 내 몫이어서 공중은 꺼이꺼이” 오래도록 “울고 있”을 겁니다.
오래도록 그럴 겁니다…. (홍수연)
* izi
🦋 다시, 시작하는 나비 🦋
< 한승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