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시월을 ‘상달(上月)’이라고 부르는데 일년 중에서 가장 높은 달이란 뜻이다. 이즈음은 한 해 농사일 중 가장 중요한 가을걷이와 타작이 완전히 끝나서 농가에서는 겨울 휴가에 들어가는 때이다. 그러므로 가을일 뒤에 차분하게 지내는 행사가 많았다.
음력 시월을 ‘상달(上月)’이라고 부르는데 일년 중에서 가장 높은 달이란 뜻이다. 즉, 신성한 달이며 하늘을 제사하는 달이란 뜻에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농경민족인 우리 한민족은 예로부터 시월이면 제천의식(祭天儀式)을 거행하였는데 이는 시월이면 한 해의 농사가 끝나 하늘에 추수감사제를 지낼 수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월이 되면 나라에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제의(祭儀)와 점복(占卜), 그리고 금기(禁忌) 행사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이 달을 중국에서는 양월(良月) 또는 상동(上冬)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신월(神月)이라고 일컫는데, 서양의 ‘추수감사절’도 11월에 있는 것으로 보아 모두 수확이 끝나는 계절로서 세계적인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즈음은 한 해 농사일 중 가장 중요한 가을걷이와 타작이 완전히 끝나서 농가에서는 겨울 휴가에 들어가는 때이다. 그러므로 가을일 뒤에 차분하게 지내는 행사가 많았다. 지금은 잊혀져 가는 풍속이지만 이때 농촌에서는 ‘가을떡’을 해서 돌렸다. 필자의 어렸을 때 고향 일들이 되살아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무시루떡을 쟁반에 담아 온 동네의 집집마다 돌린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저녁나절부터 어둠 컴컴한 밤중까지 수십 군데를 다녔는데 이제야 ‘가을떡’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가을떡은 대체로 음력 10월에 드는 무오일(戊午日)을 가려서 했다. 이 무(戊)는 무(茂)와 통하므로 이 날을 ‘무말날’이라고도 한다. 시루떡은 이 계절의 대표적인 시식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멥쌀가루나 찹쌀가루를 교대로 안치고 검은콩이나 팥 삶은 것을 교대로 켜마다 고물로 얹어 찌는데, 멥쌀가루에는 무채와 호박고지를 섞어 넣고 찹쌀가루에는 호박고지만을 섞어 넣고 찐다. 무시루떡을 해서 금년 농사를 잘 짓게 해 준 토주신(土主神)에게 고사를 지내고 온 집안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빌며, 또한 내년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온 동네에 “가을떡 돌린다” 하여 골고루 돌려서 나누어 먹었다. 한편으로 안택(安宅)굿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떡본 김에 굿한다” 든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하는 속담이 생겨나게 되었다. 9∼10월경에 들어서면 밤, 대추가 한창 먹기 좋게끔 익으므로 율란, 조란, 대추초, 밤초 등이 가을철의 별미음식으로 이용되었다. 밤초나 대추초는 밤, 대추를 각각 꿀에 졸여 실백 다진 것을 뿌린 음식이고, 율란은 밤을 삶아 체에 내려 곱게 하고, 조란은 대추를 다져서 각각 꿀과 계핏가루를 섞어 모양을 만들어 꿀을 바르면서 실백 다진 것이다. 또한 국화주가 이때의 계절주로 그윽한 향내를 풍겼다. 우리 나라 풍속에 4대조까지는 집에서 제삿날 기제사를 지낸다. 그러나 5대 이상이면 신주(神主)를 산소에 묻거나 불에 살라 버리기 때문에 신주도 없고 제사를 지낼 근거도 없다. 그러므로 1년에 한번 날을 정하여 제사를 지내는데, 이것이 시제다. 시제(時祭)는 시향, 시사라고도 하는데 대체로 10월 1일에서부터 15일 안에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이때가 들에서 제사지내기에 가장 적합한 날씨이기 때문이다. 시제는 춘향제(春享祭)와 추향제(秋享祭)가 있는데, 춘향제 보다 가을철에 지내는 추향제가 일반적이고 많이 지낸다. 이날은 시제전(時祭田) 또는 시제답(時祭沓)이라 하여, 일정한 농토에서 생산되는 곡식 중 도조를 바칠 만한 분량의 곡식으로 제물을 마련한다. 이것을 해당 산소까지 가져다가 산소 앞에 차려놓고 그 자손들이 모두 모여 성대하게 제사를 지낸다. 이때면 멀리 떨어져 살던 문중의 일가들이 한데 모여서 즐겁게 하루를 보낸다. 시제 때에 많은 자손들이 모이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겼다. 상달의 동제(洞祭)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서 거행되는 공동 제사로 동민들의 편안함과 풍곡(豊穀)이나 풍어(風魚)를 감사하고 빌었다. 동제에는 산신제, 서낭제, 별신제, 거리제, 용왕제, 기우제 등이 있으나 산신제가 대표적이다. 산신제(山神祭)는 마을의 수호신인 산신을 제사하는 것이다. 산신은 특정된 사람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사람 누구나를 보호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운명과 관계되는 것으로 믿어왔다. 그래서 마을사람 모두가 직접 간접으로 참여한다. 산신제는 길일을 택해서 하는데 대개 마을의 뒷산을 진산으로 삼았고 여기에 산신당, 산신각이 있어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동제 때에는 마을사람 모두가 근신해서 부정한 일이 없도록 한다. 제물은 깨끗해야 하기 때문에 우물 근처에 황토를 놓고 금줄을 치거나 거적을 덮어 잡인들이 쓰지 못하도록 하고 이 정수로 제물을 만들었다. 제일이 되면 자정이 지나 첫닭이 우는 시간쯤에 산신제를 지냈다. 화주집에서 제물을 올려다 진설하고 독축(讀祝)을 하며 소지(燒紙)를 올리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마을의 태평, 농사의 풍작, 그리고 마을사람의 건강을 비는 것이다. 산신제가 끝나고 날이 새면 마을사람들은 제물로 음복을 하고 농악을 치며 한바탕 신명나게 논다. 이처럼 상달의 동제는 마을의 협동과 공동체 의식을 이루는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또한 음력 10월에는 각 가정에서 성주제를 지낸다. 집안을 수호하는 가신(家神) 중에서 가장 우두머리격인 성주에게 집안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다. 성주의 모양은 지방에 따라 다르나 대게 대청이나 마루에 모셔져 있으며 주부에 의해서 제물이 마련되고 정성껏 비는데, 때로는 무당을 데려다가 굿을 하는 수도 있다. 이때 ‘성주풀이’가 무가(巫歌)의 중심이 된다
글/강욱(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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