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에 눈 뜨고 화장실에 앉는 순간부터 '이원성'이란 말이 화두처럼 뇌리에 박힌 하루였습니다. 지난 일요일 모임에서 선생님께서 우리의 초우주는 사나트쿠마라님께서 이원성의 개념하에 설계하신 우주라는 것과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이원성의 통합'에 있다고 말씀을 해주신게 마음에 깊이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원성이란 말에 생각을 집중하다 보니 과거에 읽었던 유란시아서에서 하보나엔 중앙우주는 삼원성의 개념하에 만들어 졌고 외곽의 일곱 초우주는 이원성의 토대하에 만들어졌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났으며 우리 삶의 모든 곳, 물질에서 의식에 이르기까지 이원성이 깃들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왜 외곽우주를 중앙우주처럼 온전한 빛의 세계가 아닌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계, 선과 악이 교차하는 세계, 기쁨과 슬픔이 끝없이 물결치는 세계로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오전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인간은, 아니 나 자신은 '신이 펼쳐놓은 이원성의 그물에 갇힌 물고기'가 아닌가 하는 의문도 가시지 않았구요. 중생에 불과한 인간이 신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한참을 생각에 빠지다보니 어렴풋이나마 인간의 영적 상승을 위해서 신은 이원성이란 인식의 그물을 펼쳐놓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삶의 과정에서 이원성이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빛을 그리워할 수 있었을까, 선한 삶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물고기가 이원성의 그물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선생님이 말씀하신 이원성의 통합이 그 답인 것 같은데 통합이라는 말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 듯 하면서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때로는 크게 또는 때로는 소소하게 부딪히는 어둠과 악, 슬픔과 고통 등을 어떻게 인식하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할지 참 많이 난감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던중 갑자기 머리에 떠오른 말이 어릴때 읽은 책(아마 논어?)에서 본 '선악개오사'라는 공자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선과 악이 모두 나의 스승이다'라는 이 말이 이원성의 통합을 이루는 한 방법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내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그 사람, 나를 한없이 눈물짖게 했던 그 사람, 내가 미워하고 분노했던 그 사람, 저런 사람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혼탁하다고 비난했던 그 사람이 바로 나의 스승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몰려 왔습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내가 미워하고 비판했던 그 사람이 나의 모습일 수도 있구나, 설령 나 자신은 선의였고 남에게 피해를 입힌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나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수많은 고통을 주고 마음에 멍이 들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생을 함께 한 모든 소중한 인연에게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오늘의 기억을 잊고 지낼 때가 많겠지만 그래도 기억의 파편이라도 남아 저의 삶을 변화시키는 작은 원동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만만치 않은 나의 엉덩이 무게를 군소리 없이 받쳐주며 가끔씩 작은 깨우침을 준 변기통 형제에게도 잔잔한 미소와 함께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보내야겠네요. ^----^ |
첫댓글 지독하게 어려운 잘 풀리지 않는 독약같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나의 간절함이 독을 뚫고 나오리라 믿습니다.
저 시절 함께 했던 인연이 떠오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