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가치와 보람
이두백
한평생을 살아오면서 어떤 것이 가장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일가? 그에 대한 기준은 각자의 인생관과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한 중요한 기준으로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고 그 찾은 일을 어렵고 힘들더라도 다각적으로 진력하여 완수하는 일일 것이다.
1933년생인 이증석 영아가 태어날 때는 엄혹한 일제치하였다. 이증석의 부친 이영구선생은, 1900년 8월 19일 장성군 장성읍 백계리에서 태어나시고 서당에서 공부를 하다가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1927년 신간회가 설립되자 1928년 신간회 장성지부 재정부장을 역임한다. 1929년에는 광주학생운동에 가당하여 투옥 중이거나 도피 중인 학생들을 지원하며 은신처도 제공한다. 1931년 신간회가 해산되자 일제에 수탈되고 있는 경제를 살리자며 장성농민협동조합을 창설해 부조합장이 된다. 이때 일제는 독립운동의 군자금을 협동조합이 지원했다며 탄압에 들어갔고 이영구 선생께서도 1933년 3월 18일 검거되어 7개월의 옥고를 치루면서 중환자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1933년생 영아 이증석이 1935년생으로, 2년 늦게 출생신고가 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후 이영구 선생은 장성읍 의회 1+2대 의장을 역임하고 6.25로 불탄 장성북초등학교 짓는데 전답을 희사하고 10년간 기성회장도 맡아 교육발전이 오래 기여한다. .1963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무너진 황룡강 제방 쌓는 것도 건의 및 협조하여 1970년에 국민훈장 동백장도 받는다.그리고 1980년에 향년 80세로 별세한다.
세월이 흘러 영아 이증석이 90세가 다 되어가는 즈음, 선친에 대한 모든 자료들과 고증물들을 다 동원해 장기간에 걸쳐 정부관계처에 선친의 행적을 살펴봐주기를 청한다. 여러 과정을 거쳐 결국 2023년 독립지사로 추서를 받는다. 그리고 2024년 5월 15일 고향에서 약 150명 참석 하에 <독립지사 남강 송덕비> 제막식을 가졌다. 이 얼마나 가슴 뿌듯하고 보람 있고 즐거운 일인가. 이증석 선생님께선 평생에 거쳐 하고 싶은 일을 92세에 모두 해내신 셈이다.아마 5월 16일 이후엔 매우 편한 마음으로 숙면을 취하여오셨을 것이다. 그리고 저승에 가실 때에는 매우 당당하고 편한 마음으로 선친을 뵈우려 가실 것이다.
<송덕비 뒷면은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나라 위해 흘리신 피
영산홍 붉게 불들이고
생명 지키려 떨구신 땀
황룡강물줄기 이루니
그 높고 깊은 뜻
천년만년 팔양산을 품으리라
당신의 고귀한 뜻을
후손들도 늘 여기고 이어가렵니다.
2024년 5월 15일
첫댓글 이증석 선생님은 내 국민학교,중학교 동창인 친구의 집안 형님이신데,연로 하신데도 가문을 위해 이렇게 큰 일을 하셨군요! 장성에 가면 찾아가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