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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덕, 순백의 기품
- 문천 권정순의 수필세계 -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I. 로그인
선생은 인간적인 유대가 확인되는 따뜻한 심성의 작가다. 한마디로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활력의 작가다. 선생은 2011년 수필교실에 드나들면서 수필을 배워온 지 1년 만인 2012년 <대한문학>으로 등단하였다. 문단에 나온 지 2년 만에 <가르치고 배우면서>란 수필집을 상재하였다. 비교적 문단경력이 짧아 문학성이 우려되었으나 권정순의 수필집은 그런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좋은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등단 이전부터 글을 써왔던 결과라 하겠다. 선생은 1980년대, 사랑하는 딸을 잃은 슬픔을 수필로 써서 신문의 독자란에 발표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런 이력과 손자를 다 키우고 남는 시간들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찾기가 그녀를 글방으로 이끌게 된다. 언론사 기자로 활동했던 남편 덕분으로 그녀는 자연스럽게 글쓰기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존재자로서 자신의 내면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하던 선생은 80세가 되면 책을 내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그 꿈을 이루어, 2014년 첫 수필집을 상재하고, 평소 소원이었던 오순도순 살아가는 가족 얘기, 손자들 얘기를 이 책에 담았다.
II. 권정순의 작품세계
1. 물결치는 모성원리
문천 선생의 수필 <남편의 무덤 앞에서>를 읽으면, 곳곳에서 흘러넘치는 부부애의 물결을 느낄 수 있다. 5만원을 갖고 시작한 아들이 사업으로 성공하기까지 자녀교육에 쏟은 정성과 기도는 독자를 숙연하게까지 한다. 남다른 감수성과 인간애로 문학교실을 드나들며, 사랑과 비움의 철학을 쏟아놓은 작품이 독자의 눈길을 끄는 건 당연하리라. “여보,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우리 아들이 하는 일이 순탄하게 잘 되기를 당신도 꼭 기도해줘요. 나는 이제 아들에게 해 줄 것이 별로 없답니다. 항상 받기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네요. 당신 옆에 아들이 남긴 예쁜 꽃이 있지만 나도 당신에게 주고 싶어 꽃을 사왔어요. 다음엔 아들이랑 같이 올께요. 그때까지 당신이 우리 아들을 잘 지켜 주시길 바래요.” 라는 남편의 무덤 앞에서 드리는 이 기도는 모성원리의 아름다움을 잘 말해 준다.
남편의 무덤 앞에서 작가가 드리는 기도는 효자상을 받기도 한 아들 사랑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세월이 흘러도 빛을 발한다.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는 선생은 겨울의 혹한을 이겨내고 성공한 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남편의 극진한 사랑이 덧씌워진 아들이 어찌 대견하고 고맙지 않을까.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지만, 그녀는 남편 사랑을, 절절한 기도문 속에 넣음으로써 간접성을 통해 모성원리의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다. 권정순 팔순 기념 수필집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문의 마지막은 “끝으로 나를 항상 따르는 내 손자들과 아들 내외에게도 지면을 통해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로 되어 있다. 여기서 필자는‘나를 항상 따르는’이란 말에 주목한다. 이는 수필 속에서 나오는 어구이지만, 아들이 성균관으로부터 효자상을 받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어머니를 항상 따르는 아들은 둔 권정순 여사님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 아닌가 여겨진다. ‘태산목 깊은 향기처럼’, ‘팔순의 고운 놀빛’, ‘훈풍에 돛단 여생, 노젖는 사공’, ‘고요한 당신의 향기’, ‘늘 한결 같으신 분’ 등의 팔순 축시는 선생의 덕망과 인격을 대변한다.
서문의 첫문장은 “지금 이 순간도 가슴이 설렘니다. 아니 한 송이 꽃을 피워내는 마음입니다. 노후에 이렇게 호강을 누릴 수 있다니 정말로 행복합니다.”로 되어 있다. 수필집 발간이 정말로 행복하다는 선생의 말씀으로 보아 얼마나 열정적으로 수필교실을 다니고 성찰의 시간을 많이 가졌는지 알 수가 있다. 수필집 제4부 <권정순 선생의 삶과 문학수필>에 실린 글들을 읽어보면, 선생이 어떻게 살아오고 얼마나 인정을 흘리고 다른 사람들에 잘 대해주었는지를 축시나 축하글의 제목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작은 인연도 안개처럼 부드럽게 감싸는 선생의 심성이 부럽다. 어쩌면 여성적이기도 한 예민한 감수성 탓에 그녀는 문인이 되었을 법도 하다. 선생의 수필 속에는 ‘사랑보다 깊은 사랑’이 녹아 있어 독특한 매력을 불러온다. 아마도 수필 속에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데는 선생의 <내려놓는 삶>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믿는다. 선생의 <가르치고 배우면서> 쓰는 수필은 남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삶의 지표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심기 속에 전류처럼 정이 따뜻하게 흐르는 작가다. 수필을 <내 마음의 다림질>로 형상화한 것은 그녀의 문학적 성취를 의미한다.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야외 나들이를 가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삶들이 자꾸만 뇌리를 스친다. 알 수 없는 비애가 가슴에 또아리를 튼다. 나무와 숲, 꽃과 나비, 구름이 떠가는 하늘, 시정이 흐르는 바람소리를 따라 묘 앞에 섰다. 하얀 국화꽃다발이 공손하게 놓여 있다. 아마 아들이 다녀간 모양이다. 환기장을 만들어놓고 새 공기를 들이 마시는 기분이었다. 심장 밑바닥에서 적요가 심야의 안개처럼 몰려온다. 슬픔과 고통이 화면 뒤쪽에 살짝 뿌려준 향수처럼 방울방울 바람에 섞여 어른거린다.
- <남편의 무덤 앞에서> -
위의 인용 예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선생은 수필을 쓰면서, 수시로 남편의 무덤을 찾는다. 톨스토이가 우물에 빠진 한 젊은이의 낙천적인 모습에서 인생이 무엇인지 깨달은 바와 같이, 선생도 이 <남편의 무덥 앞에서> 슬픔과 고통을 딛고 극복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먼저 아들이 다녀간 남편의 무덤 앞에서, 하얀 국화꽃을 보며, “환기장을 만들어놓고 새 공기를 들이 마시는 기분이었다. 심장 밑바닥에서 적요가 심야의 안개처럼 몰려온다. 슬픔과 고통이 화면 뒤쪽에 살짝 뿌려준 향수처럼 방울방울 바람에 섞여 어른거린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정서를 객관화한 부분으로써 수필의 문학적 성취를 이루는 묘사라 하겠다. ‘안개처럼’, ‘향수처럼’ 등의 비유를 통해 보이지 않는 관념을 구체화하려는 노력만으로도 그녀의 수필적 역량은 빛난다고 하겠다.
말씨와 행동에 품위를 갖춘 수련의 작가 권정순 선생은 여성의 구원성과 영원성으로 황막한 대지를 회생케 하는 작가다. 햇살 내리비치는 볕 좋은 날의 행복한 소녀 같은 작가로서 그녀가 남편 앞에서 느끼는 남편에 대한 감회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문학이란 시대와 사회의 구체적인 표출이어야 하고 그런 사회 속에서 인간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과 이런 경향성 문천의 수필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문학은 인생의 표현이요, 사회의 거울이라고 하는 것도 작품이 보여주는 내용이 작가의 주관으로 들어온 경험의 여과된 재현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선생이 다루는 세계는 다양하다. 그러나 혈육을 소재로 하는 수필만큼 강한 힘을 발휘하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문천이 이 수필에서 다루고 있는 화소는 바로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이다. ‘부부’나 ‘모자’관계는 그 자체가 부분이지만 종합된 하나의 ‘세계’이며 ‘시대’이고 ‘사회사’이자 ‘인간사’이기 때문이다.
부부라는 것은 손과 발 같은 존재다. 다른 사랑은 반드시 거래라는 공식이 적용되지만 부부는 그 계산서가 필요없는 깨끗한 관계가 바로 하늘이 내려준 관계다. 끝없이 사랑을 주어도 아깝지 않고 속상한 일도 한 번의 포옹으로 녹아나는 것이 부부다. 어느 수필가가 말했듯이 목마를 때 마시는 물과 같은 존재가 부부라 했다. 비교를 잊고 오직 한 울타리 속에서 자녀들이란 희망의 꽃밭을 열심히 가꾸는 관계가 부부다.
- <남편의 무덤 앞에서> -
선생은 영롱한 빛살들로 가득 찬 그리움의 세계를 가진 작가다. 권정순 문학을 이루는 또 하나의 견고한 줄기는 근원에 대한 본능적 편향성, 전통적 아내로서의 지향성이다. 작품 하나하나에 부부관계의 새로운 정의가 없는 게 없다. 한마디로 절절한 부부애다.‘부부라는 것은 손과 발 같은 존재다.’와 같은 비유가 주는 미학은 그녀의 수필을 문학적 성취로 끌어 올려준다. 이 수필의 부부란 무엇이가에 대한 나름의 정의가 바람직한 삶을 추적한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 이처럼 바람직한 부부상의 제시는 모든 문학작품의 지향적 목표라는 점에서 주제적 가치를 지닌다 하겠다. 사랑하는 한 사람의 일상사에 담긴 추억이 긍정적이며 순명적인 그녀의 인생관과 버물어져 탄생한 것이어서 공감을 준다. 인연의 시작에서 한 맹세를 지키고자 의지를 불태우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선생은‘거래’, ‘계산서’, ‘비교’가 없는, 삼무를 부부관계의 멋이라 정의한다. ‘희망의 꽃밭을 가꾸는’것은 작가의 의도와 의미를 감각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징과 비유라는 문학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있는 언술 양상이라 하겠다. ‘자녀들’을 ‘희망의 꽃밭’으로 환치함으로써 더 깊은 문학적 울림을 주고 있다.
수필은 현실과 언제나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수필이 체험적 이야기이건 아니건 간에 수필과 현실은 상호 밀착되면서 수필적 화자를 자기 속에 밀어 넣는다. 수필은 언제나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새로운 질서를 창조한다. 작가는 부부가 인간답게 사는 길을 열고자 한다. 그것은 인간의 존재론적 해명이면서 새로운 삶과 역사 진전의 지평을 가시화시켜 인간과 삶과 역사를 상승시킴으로써 새로운 현실을 전개함을 말한다. 그것은 문학이 사회나 역사성의 수용에 의한 전파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부부관계의 개념을 화소로 수필을 풀어내고 있는 선생은 일차적으로 문학의 치유적 성격을 잘 인식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 수필에 나타난 것처럼 선생은 자녀를 바르게 키우는 일을 인생의 한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위의 인용 예문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인간과 인생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바른 삶에 대한 접근을 바탕으로 해서 삶의 가치를 투시하는 작가의 인식이 각覺의 경지에 도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나는 부모란 이름 하나만으로 아들로부터 너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앓는 소리 한마디만 해도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게 하고, 음식을 제대로 들지 못하면 온갖 신경을 써서 나를 대접하려 든다. 난 그런 아들내외를 바라보며 여생을 어떻게 살아야 받은 정을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을 까 매번 걱정을 한다.
살다보면 좋은 일 나쁜 일 겪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아들 내외는 지금까지 안색 한 번 변한 적이 없다. 내 남편이 살아 있을 때도 아들은 다정다감한 성품으로 부모에게 잘도 대해 주었다. 남편이 병이라도 나면 손수 목욕을 시켜주며 옆에서 늘 지켜준 아들이다.
노인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가보면 자녀들보부터 소외당하고 사는 노인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참으로 슬픈 풍속도라 아니할 수 없다. 여생을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참 복 많은 노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옛말에 “부모를 보면 그 아들을 안다”고 했다. 그만큼 내 아들을 남편이 반듯하게 길러 놓았기에 내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모든 게 다 남편 덕이다.
- <남편의 무덤 앞에서> -
이 수필은 인생이라는 의미를 깊이 반추하게 한다. ‘내 아들을 남편이 반듯하게 길러 놓았기에 내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모든 게 다 남편 덕이다.’라는 진술을 통해서 작가는 사랑 속에 놓여 있는 수많은 가치 중에서도 한 사람의, 또 하나의 사랑에 대한 깨끗한 사모의 가치를 우리로 하여금 음미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운명을 다하는 삶이 또 다른 생명에의 기여로 나타날 때, 참다운 삶이라 할 수 있다는 작가의 시각은 생명의 존재론적 건전성을 삶을 목표로 두고 있음이다. ‘내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진술에는 작가의 겸허하고 겸손한 인간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거기에는 작가의 남편과 아들에 대한 경외와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부분은 미적 인식과 사유가 개입될 여지가 있다는 데서 대단히 문학적 진술이다. 수필의 묘미는 작가의 체취를 느끼는 데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 수필은 문천 선생의 정신세계를 파악하는 결정적 단서로도 작용한다.
인간에게는 현재적 삶 그 이상의 역할이 부여되어 있음으로 해서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수필은 말하고 있다. 선생의 작품세계는 주제 지향성이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뉜다. 하나는 패밀리즘의 정신이요, 다른 하나는 참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주는 모성원리의 발현이다. 그녀의 수필은 ‘가족애’와 ‘사랑’을 재료로 하고 있다. 하나같이 가족을 사랑하는 정신과 인간성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현상은 가족을 둘러싼 사회를 그리면서, 작가나 독자를 구원하는 문학의 본질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당연한 결과다. 선생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 얻은 감동을 구체적 형상으로 제시하여 자기 발전의 초석으로 삼았다. 일그러진 현실과 부서진 세상의 한 단연을 그려냄으로써 작은 감동도 준다. 삶의 바다에 낚시 바늘 같은 물음표를 던져 인생의 지혜를 얻어내려 하지 않고 어찌 사랑이라고 하는 절묘한 정서의 영토를 만들어 큰 감동을 줄 수 있겠는가.
사실 내 아들은 지금까지도 내게 목소리 한번 크게 질러 본 적이 없는 아들이다. 게다가 집안의 어려운 친척들을 일일이 돕는 자상함도 갖고 있고 보면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으랴.
나는 남편 무덤 앞에서 기도를 한다.
“여보,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우리 아들이 하는 일이 순탄하게 잘 되기를 당신도 꼭 기도해줘요. 나는 이제 아들에게 해 줄 것이 별로 없답니다. 항상 받기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네요. 당신 옆에 아들이 남긴 예쁜 꽃이 잇지만 나도 당신에게 주고 싶은 꽃을 사왔어요. 다음엔 아들이랑 같이 올께요. 그때까지 당신이 우리 아들을 잘 지켜주시길 바래요.”
꽃이 피기 위해서는 겨울을 만나야 한다. 그 겨울의 혹한을 잘도 견뎌준 아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 <남편의 무덤 앞에서> -
선생은 누구보다도 순수한 정신을 가지고 그에 상응할 만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다. 선생은 ‘자식 자랑은 팔푼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자랑하지 않고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 혼자만이 그 기쁨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선생은 자식 자랑을 한다고 하지만 전혀 자랑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사랑하라고 하는 절대절미한 정서를 잘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문학을 진정한 부부애, 모성애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한, 그녀의 수필은 언제까지나 독자의 사랑과 관심을 끌 것이다. 생은 자기표현이다. 수필가는 각각 자기의 개성적인 언어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자기를 표현한다. 선생은 아들이 집안의 어려운 친척들을 일일이 돕는 자상함도 갖고 있는 데 대해,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에도 없다고 단언할 정도다. 산다는 것은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뜨겁게 사는 사람은 뜨겁게 표현하는 것이요, 아름답게 사는 사람은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다. 선생은 진실하게 사는 사람으로서 진실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III. 로그아웃
좋은 수필은 평범한 소재일지라도, 그것을 보는 눈과 가슴이 인간적일 때, 가치를 지닌다. ‘꽃이 피기 위해서는 겨울을 만나야 한다.’는 지배적인 정황에 이어지는 ‘그 겨울의 혹한을 잘도 견뎌준 아들에게 고마울 뿐이다.’는 우리의 미의식을 자극할 수 있는 미적 인식으로서의 마무리 장면이다. 선생은 지배적인 정황이 전제되지 않은 결말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믿는 것 같다. 문학은 삼화다. 정화, 순화, 승화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야 하는 길을 비추는 등불이어야 하고, 동시에 현대인이 살아가는 사회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선생의 수필은 사랑의 가치를 통해 인간을 구원하는 글로서, 인생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길잡이가 되고 있다. 따뜻한 인간적 감동으로 우리를 구원해주는 작가이기에 진실하게 살아나가는 것 외에 위대한 것이 없다고 말해 준다. 이런 면에서 이 수필은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잊고 있었던 생의 가치에 대한 응시를 통해 ‘참의 가교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중요한 작가의 사명인 것이다.
이 수필은 부부 또는 자식이 가져야 할 인간적인 자세가 어떤 것임을 엿볼 수 있게 해서 인식 구조로서의 문학적 역할, 즉 자식-되기, 부모-되기, 부부-되기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하겠다. 작가의 인품과 덕성이 거울에 비치듯 드러나 있어서 유난히 인간적 향기가 짙게 풍긴다. 수필가로서의 짧은 활동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무덤 앞에서>가 보여주는 수필적 가치는 높다. 남편에 대한 따듯한 연민의 정서가 녹아 있는 이 작품은 내용적으로 훌륭할 뿐만 아니라 치환을 통한 미적 울림장치의 건재가 문학적 성취로 남는다. 이런 강점은 오랫동안 수필교실을 다녔던 차원에서 연유한다고 하겠다. 정의 문학으로서 수필적 특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이 수필은 그녀의 다음 작품에 더 기대를 걸게 한다. 인본적인 태도를 지향하면서, 부드러운 필봉을 휘두를 때, 권정순은 뜨거운 인생의 열기를 부둥켜안고 있는 작가로서 크게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좋은 수필을 위한 작가의 노력이 우리들의 기대에 크게 부응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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