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박명자의 시 세계 서정성의 원류에서 투사(投射)된 해체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낯선 기호들’과 그 의미의 탐색 현대시의 전개과정이나 그 양상은 다변적이다. 일찍이 김춘수 시인이 주창한 무의미시에서부터 해체시, 티카시, 하이퍼시 등등 그 유형과 시법(詩法)이 다양하게 창작하는 현상을 목도하게 되는데 이러한 일련의 시법을 우리 현대시의 발전적인 한 지향점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서구의 시풍(詩風)을 그냥 흉내내는 것인지는 정확하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의례히 시라고 하면 통상적으로 전해지는 시창작법에 따라서 그 구성요소와 발상 동기 그리고 표현법에서 기승전결과 같은 기법으로 주제를 명징(明澄)하게 창출하는 문제들을 깊게 탐색하는 경향으로 우리 시는 정착되어 왔다. 여기 박명자 시인이 상재하는 제13시집『낯선 기호들』을 읽으면서 문득 우리 현대시가 발전해온 경로가 참으로 다원적인 역사와 지향성을 위한 노력들이 이제사 빛나고 있다는 솔직한 심경이 앞서는 것은 왠일일까. 그는 ‘시인의 말-나의 시와 키워드’에서 ‘내가 요즘 시에서 추구하는 시적 테크닉은 기존 관념의 해체이다. 한국시 100년을 꾸준히 지배해온 단선구조의 틀을 선뜻 깨뜨리고 다선구조의 모양새로 디자인 하고자 땀 흘리는 작업에 온통 시선이 꽂혀있다’라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경향을 예고한 바와 같이 그가 집착하는 ‘기존 관념의 해체’는 무의미시에서부터 실험된 시법들의 종합적인 정리단계에 이르고 있다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김춘수의 무의미시는 ‘이미지를 서술적으로 사용하여 대상을 잃음으로써 대상을 무화시킨 결과 자유를 얻게 되는 시를 뜻한다. 그러므로 대상이나 사물을 제거시키고 난 어떤 방심 상태, 그 자유스런 유희의 상태가 곧 무의미시라는 것이다. 무의미시란 결국 허무의 극복에서 비롯되는 시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어느 시론가의 말처럼 시적 대상이나 사물이미지를 무화함으로써 획득하는 ‘자유’나 ‘방심’ 그리고 ‘자유스런 유희상태’에서 ‘허무의 극복’이라는 명제를 탐색하는 것이다. 한편 박명자 시인이 주창하는 ‘해체’는 언젠가 김준오 교수의 시론집 『도시시와 해체시』에서 언급한 ‘해체시는 시인의 세계관이 유보된 상태에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묘사가 아니라 인용하는 형태를 취한다. 언어가 더 이상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다는 언어에 대한 불신에서 전통 시형식의 파괴라는 해체의 충격이 가시화된 시가 바로 해체시이다.’라는 이론을 상기한다면 ‘해체’라는 단순 개념보다는 보다 광범위한 심저(心底)에서 울리는 그의 메시지를 이해하게 된다. 낯선 기호들과 가슴 열고 풀밭에서 해종일 놀았다 기호 @ 기호 기호 F 기호 △ 기호들과 놀다가 깜빡 넘어져서 진흙땅을 짚고 바라본 아침 해 오. 이것은 분명 어제본 태양이 아니네 ! 새 낯빛 새 향기 팽팽하게 긴장된 하늘 한쪽 금박무늬 테두리를 꾸미고 발레리나처럼 위로 솟구치는 그네들 액션 남루한 뜨락을 비추이는 어제의 빛이 아닌 새 아침 하얀 깃털 가벼운 돛대 같은 거 . . . . 낯선 기호들과 가슴 포개이고 하나가 되었다 기호 ! 기호 ? 기호 # 기호 = 이 작품「낯선 기호들」전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낯선 기호들과 가슴 열고 / 풀밭에서 해종일 놀았다’는 어조에서 읽을 수 있듯이 언어의 고유 기능에서 진일보한 특수 사유(思惟)의 세계를 확인하게 되는데 이는 박명자 시인이 지금까지(제11시집 『2시 15분의 청보리밭』에 이어 제12시집 『떠도는 나무』에 이르기 까지) 끊임 없이 탐색해온 ‘해체’의 근간(根幹)을 위한 강렬한 시정신임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 작품은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되기도 하는데 ‘낯선 기호들과 가슴 포개이고 / 하나가 되었다’는 결론의 적시(摘示)는 ‘기호 @ 기호 / 기호 F 기호 △’나 ‘기호 ! 기호 ? / 기호 # 기호 =’의 ‘기호’와 같이 만유(萬有)의 자연이나 인간들의 생활상이 진실로 융합(融合)하려는 형상으로 발현되고 있어서 우리들에게 생소하면서도 상당한 내면적인 흡인력(吸引力)을 분사(噴射)하고 있다. 그래서 박명자 시인의 작품들은 시의 대상에서 현실을 초탈(超脫)하려는 언어, 혹은 기호로 구성되고 있다. 그는 현실의 노래보다는 현실을 재현한 현실, 이러한 기호의 세계를 노래하고, 다시 기호화하고, 환상이나 제2차의 현실에서 무엇인가 갈구(渴求)하는 개념으로 노래하고 있다. 끈끈한 생의 괄호를 풀고 나와 어젯밤 유채밭에서 한 밤 잤다 내 유년의 다락방 괄호를 열고 일기장을 꺼내 먼지를 털었다 찔레꽃잎처럼 하얗게 떨어져 내리는 내 어리석은 망설임들이여 ! 거실 구석에서 겨울나기한 다육이 화분 괄호밖으로 내몰았다 유월 햇살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시름으로 칭얼대던 게으른 대지의 테마를 괄호를 열고 쫓아 내었다 오 싱그러운 대지의 하이퍼싱이여 ! 여기 작품「괄호를 풀어 주다」에서는 ‘하이퍼싱’에 대한 개념을 도입하여 ‘괄호’라는 묶여진 형태의 우리들 삶의 상황을 풀어주는 어쩌면 그의 철학이 내재된 진실이 현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가 ‘내 유년의 다락방 괄호를 열고 / 일기장을 꺼내 먼지를 털었다’라거나 ‘시름으로 칭얼대던 게으른 대지의 테마를 / 괄호를 열고 쫓아 내었다’는 어조가 비범(非凡)의 범주(範疇)를 초월하는 하이퍼시의 접근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괄호’의 안과 밖의 대칭을 통해서 ‘내 어리석은 망설임’과 ‘게으른 대지의 테마를’ 서로 분리시키는 그의 현실적인 고뇌에서 새로운 사유의 확대를 위한 꾸준한 시적 성취를 위한 노력의 일단으로 보여진다. 이 밖에도 작품「가면 쓰는 사람」에서도 ‘가파른 외나무다리를 가로질러 / 허겁지겁 내 무덤으로 돌아온다’라거나 작품「九月의 江」에서 ‘쭈글쭈글한 자신의 생애를 반듯하게 접고 접어 / 바다의 배꼽 속으로 돌아가고 있다’ 또는 작품「손의 표정」에서 ‘그제서야 손의 표정은 무지개 다리처럼 펼쳐지고 / 나의 디카에는 은유의 깃털 하나가 / 쓱 쏘아 올라갔다’ 그리고 작품「눈 내리는 밤」에서 ‘자수를 한 땀 한 땀 놓을 때 / 나의 세포들은 그녀의 자수 속에서 달콤하게 놀고 있었다’라는 어조는 바로 그가 메시지로 제시하는 ‘낯선 기호들’의 표상(表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시각, 청각 이미지의 조화 박명자 시인에게서는 다시 외적(外的) 사물에 대한 시각적, 청각적인 이미지의 창출로 시적 진실과 연결하는 시법을 선호(選好)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지구보다 무거운 이녘의 삶을 / 지팡이 하나로 밀고 혼자 나아가는 거리의 천사를 보았다(「지팡이 하나로 지구를 밀고 나아가는 사람」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보았다’라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투영하면서 전개하는 시법은 사물이나 상황(situation)을 통한 심연(深淵)의 시적 진수(眞髓)가 발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이처럼 시각적인 어조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 아침 경포호수 둘레 4km를 빠른 걸음으로 / 돌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면 / 벚나무들이 나 보다 빠른 걸음으로 줄줄이 / 따라 온다(「벚나무들의 빠른 걸음」중에서) - 초원에서 혼자 비단 옷자락을 펄럭 펄럭 흔들며 / 신명 깃든 어깨의 곡선을 / 억새 숲에 숨어서 나는 은근히 지켜보았다(「신라 남자」중에서) - 동해비치 7월 / 어디서 금싸라기들이 삐끗 부서져 내려 / 더욱 투명한 7시 10분 / 바다 의 뾰족한 모서리를 스쳐 / 낯선 풍경을 열어 보았을 때(「파도의 한 페이지를 클릭하 다」중에서) - 5월 / 나무들의 행진을 바라본다 / 흰 구름도 꽃잎처럼 흩어지는 날 / 푸른 가지 사이사 이 / 누가 목관악기를 끼워 두었지?(「5월 나무들의 행진」중에서) - 여름 하늘의 흰구름 궁전을 조용히 올려다 보면 / 누가 구름 궁전의 서까래 하나씩을 / 허물어 내리는 걸 볼 수 있다(「양떼구름과 퍼즐놀이」중에서) - 5월 뜨락을 한 바퀴 지신 밟듯이 돌아나간후 / 나는 머무르고 싶은 행복의 소실점을 / 실 눈 뜨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지신 밟는 나무들」중에서) - 울긋불긋한 감나무 서너 그루 웅성웅성 서 있는 / 유년의 풍경 한 컷을 압축캡슐에 담아 놓고 다시 본다(「감나무가 서 있는 풍 경-데칼코마니」중에서) 이와 같이 박명자 시인의 시야에 나타나는 기존의 사물들을 응시하면서 표현에 있어서도 ‘돌아보면’, ‘지켜보았다’, ‘보았을 때’, ‘바라본다’, ‘볼 수 있다’, ‘보고 있다’, ‘다시 본다’는 등등의 시각에서 그가 추구하려는 ‘해체’나 탈관념에 대한 접맥(接脈) 또는 접근에 이르는 시법으로 공감의 영역을 유로(流路)하고 있다. 나무는 가파른 천길 생의 벼랑 끝에 몸을 고추 세우고 울퉁불퉁한 앞길을 건너다보고 있다 < 뛰어 내리려는가 ? > 흰 구름 한송이 흐르다가 비웃음 같은 흰 수건 한 장 놓고 간다 누더기 한 벌로 겨울 강을 건너온 나무 4월 아침 비로소 나무의 맨발은 발광체처럼 한껏 빛이 났다 오늘따라 알싸한 맨살의 향기 신비로운 빛 목피를 스치는 4월 먼지 묵은 손 얼른 씻고 나는 나무 앞에 손을 가만히 내어 민다 이 작품「벼랑 끝에 몸을 세우는 나무」전문에서도 ‘나무는 가파른 천길 생의 벼랑 끝에 / 몸을 고추 세우고 / 울퉁불퉁한 앞길을 건너다보고 있다’는 어조에서 명징하게 읽을 수 있듯이 그의 시각적 이미지의 투영은 그가 탐색하는 ‘해체’를 위한 전주곡처럼 들린다. 그는 ‘누더기 한 벌로 겨울 강을 건너온 나무 / 4월 아침 비로소 / 나무의 맨발은 발광체처럼 한껏 빛이 났다’는 시적 상황과 전개과정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을 초탈하려는 기호의 세계를 ‘겨울 강을 건너온 나무’이거나 ‘나무의 맨발’로 현현되면서 ‘낯선 기호들’의 의미를 더욱 강렬하게 탐구하고 있다. 박명자 시인은 다시 청각에도 예리한 이미지의 창출로 작품의 다양한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는데 ‘산새들도 잠이 들고 풀벌레 소리만 / 높은 G음으로 화음을 연주하는 숲속에 / 씻김굿을 풀어내는 처용 같은 그 남자(「신라 남자」중에서)’, ‘바다 심층에서 누가 쿵 쿵 쿵 . . ./ 해저 3만리 / 밀리고 밀리우는 파도의 페이지들(「파도의 한 페이지를 클릭하다」중에서)’, ‘장단은 물결치듯 찰랑찰랑 흰 버선 발목에 감기고 / 뼈속에 사무치는 시큼한 신음 소리(「탈춤 마당놀이」중에서)’, ‘B교수님 !/ 차이코프스키 소나타 4악장 몽땅 / 받으실래요?(「비창 소나타」중에서)’ 그리고 ‘나무의 사춘기는 때때로 / 귀뚜라미 우는 소리로 촘촘한 보폭으로 / 원색의 계단을 울렁울렁 가버린다(「나무의 사춘기」중에서)’ 등등 헤아릴 수 없이 청각을 열어두고 외적인 요소와 교감하고 있다. 나의 생 앞에 놓인 울퉁불퉁한 점과 푸른 선들의 집합을 차례로 밟으며 고봉밥을 찾아 걸어 나갈 때 소용돌이치던 이웃여자들의 웃음소리가 까무르륵 사라지죠 박명자 시인의 ‘해체’에서의 결론은 이 작품「탈 쓰고 나가는 여자」중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나의 생 앞에 놓인 울퉁불퉁한 점’에 관한 현실과의 융합과 화해를 위한 갈등이나 고뇌가 그의 뇌리에 상당한 영역으로 점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언어의 기능에서 화해하는 시법 박명자 시인이 명민(明敏)하게 접근하는 시법의 원천(源泉)에는 언어의 기능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일찍이 논어(論語) 자장편(子張篇)에는 ‘일언이위지 일언이부지(一言以爲 知一言以不知)’라고 해서 단 한 마디의 말로써 지자(知者)도 되고 무식자도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언어는 대단히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T. S. 엘리엇도 시인이 자기가 뜻하는 바로 언어를 틀어 맞추고 필요하다면 전용하기 위하여 더 포괄적이며 풍류적인 간접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러한 시와 언어의 불가분성은 우리들이 많은 창작 체험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지만 우리 시인들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단순 개념으로 ‘시는 언어의 예술이다.’라는 의식을 더욱 고차원으로 확산하는 기능은 우리 시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언어를 매개체로 한 메시지의 전달의 폭이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시인들은 그 기능에 의존하면서 화자(話者)를 통한 어조로 음향과 억양 등의 결합으로 오묘한 조화를 이루게 된다. 온 몸에 수박씨앗 같은 말들이 촘촘 박혀있는 3월의 표지를 열어 보다가 나 이제 낯빛 창백한 3월의 눈발들 결코 따라 잡지 않을테야 싸락 싸락 눈발 틈새기로 막 도망쳐서 지구 밖으로 나는 금방 나와 버렸다 --「3월에 내리는 눈」중에서 「 생이 목마르다 」고 나는 말한다 지금 난 맨발로 새로운 말에 새하얗게 쫓기운다 드디어 난 마지막 코너에까지 밀리우고 있다 진땀이 무관심의 속살을 몽땅 적시고 있다 --「누군가 나를 쏘아 보고 있다」중에서 그렇다. 박명자 시인의 언어(혹은 말)는 그냥 시의 언어로써의 기능이 아니라, 작품 속에 대화나 말의 현장을 직접 가미함으로써 작품의 주제나 이미지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그의 시법임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앞의 작품에서 유념하게 되는 것은 ‘온 몸에 수박씨앗 같은 말들이 / 촘촘 박혀있는 / 3월의 표지를 열어 보’는 일이다. 그 ‘말들이’ 적시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바로 그가 과제로 수행하고자 하는 ‘해체’에의 한 방법론으로의 진입이다. 그것이 다시 ‘나 이제 낯빛 창백한 3월의 눈발들 / 결코 따라 잡지 않을테야’라는 어조의 부정적인 메시지이다. 그리고 ‘막 도망쳐서 / 지구 밖으로’ 탈출하는 그의 심리적인 화해를 구현하고 있다. 그는 다시 ‘누군가 나를 쏘아 보고 있다’는 위기감을 통해서 ‘생이 목마르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난 맨발로 새로운 말에 / 새하얗게 쫓기운다’는 형상으로 말(언어)과의 위기감이 상관하면서 ‘나를’ 무섭게 훔쳐보는 상황은 말에서 말로 관류(灌流)하는 시법을 이해하게 된다. 그의 언어와의 해법은 작품「나무 한 그루 컹컹 짖으며 뒤 따라 온다」중에서 ‘주머니 가득 빵빵하게 쳐담은 / 수상한 말들에게 스스로 찔리우듯 / 컹컹컹 짖으며 이내 따라오던’이라든가 작품「철새들의 방언」중에서 ‘소련 블라디보스톡 해안에서 날아온 / 겨울 철새들 / 우리 해안에 볼록한 방언을 떨구기도 하였다’, 작품「천리향 그대여」중에서 ‘말꼬리 글씨체 삐죽이 열어 / 잔잔한 눈웃음치며 기어코 / 말문을 트시렵니까’ 그리고 작품「아침 파도」중에서도 ‘어느 방향에서 유죄 할 것인지 / 우리는 시시비비를 쑥떡 거리지 말일입니다’라는 말과의 소통을 통해서 시적인 감응(感應)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탐색하고 있다. 4. 자연 서정에서 조명하는 ‘나’ 박명자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나의 시는 다 자란 애벌레가 한잠 자고 나서 껍질을 벗듯이 낡은 허물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날개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러나 나는 시 작업에서 늘 자유롭고 신나는 게임을 즐기듯 혹은 굿판의 무당처럼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를 종횡 넘나들면서 상상의 폭을 이중구조로 실타래처럼 엉키게 한다. 나의 시는 일종의 신들린 나비의 유희라고 생각하면서 독자 앞에 얼굴 붉힌다’라는 ‘해체’에의 지향성을 천명(闡明)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천성적인 서정성을 한꺼번에 버리지 못한다. 넝쿨장미 울타리 그 집 앞을 지나올 때 나는 두 눈을 꼭 감는다 층층이 하늘 계단을 오르는 꼿꼿한 관능의 그녀들 손톱과 유리가루처럼 흩어지는 웃음 소리..... 한순간 아찔해 버린다 송이송이 말문을 열어 폭죽처럼 솟구치는 교성이 겁난다 그녀들 꽃뱀의 혀 같은 덩굴손이 나란히 다가 올 때 나는 몸을 조그맣게 움츠린다 가시덩굴 사이사이로 막 도망쳐 나올 때 가슴이 콩 콩 콩 뛰었다 --「넝쿨장미 울타리」전문 그의 서정성은 ‘넝쿨장미 울타리 그 집 앞을 지나올 때 / 나는 두 눈을 꼭 감는다’는 상황이나 ‘가시덩굴 사이사이로 막 도망쳐 나올 때 / 가슴이 콩 콩 콩 뛰었다’는 순박한 정서에서 발현되고 있다. 그의 서정적인 사유의 깊이는 그가 자연 현상과 동화(同化-assimilation)하는 순정에서 그 진수를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박명자 시인은 순수한 서정시인이다. 근간에 와서 실험적인 요소를 가미하면서 ‘해체’니 탈관념이라는 경향에의 접근을 시도하면서도 그의 체질에 흠뻑 배어있는 서정적 진실의 탐구는 이탈(離脫)할 수가 없다. 이러한 그의 서정에는 ‘나’라는 화자가 비정적인 타자가 아니라, 실재(實在)의 자신을 투영하는 자존(自尊)의 확립이며 자아의 성찰과도 맥을 함께한다. 이는 그가 작품「벚꽃 잎들은 진눈깨비처럼」중에서 ‘제멋대로 옷깃 날리는 꽃잎들에게 / 나의 자존은 흔들리며 찢기운다 // 꽉 다문 나의 일상의 괘도에 / 가득히 쳐들어오는 낙화 // 몇 개의 바이러스처럼 꽃잎들은 / 내 핏줄에 상륙한다’는 자존과 자아(自我)의 형상화가 명징해 지고 있다. 이렇게 ‘나’와 상관하는 서정적자아의 모습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 나는 꽃잎들 틈새기로 / 막 도망친다 - 나의 유년시절 우리집 지붕 위에는 / 조팝꽃처럼 사계절 노오랗게 / 가난늬 꽃이 피어 있 었어. - 투명한 물방물 무늬를 몇점 남겨두고 / 나에게는 아찔한 현기증을 안겨주고 - 내 삶의 빛깔은 오늘따라 불현듯 이가 시려 온다 - 내 가슴에 릴 하나 찍 긋고 있다 - 나의 몸과 마음은 / 아득히 지하로 침몰 하는 것 같아 - 배추들 귀때기에서 찬바람 소리가 / 내 오지랖을 방금 스쳐 지났다 박명자 시인의 서정적 시법은 작품「내리는 눈의 리듬」「한 잔의 커피」「창밖의 3월 풍경 한 컷」「4월 바람의 템포」「가을 날의 유희」「잎새 하나에 대한 생각」「리듬 타는 가랑잎의 유희」등등으로 자연 서정에서 창조하는 시적 진실은 불변의 시정신이다. 그가 시적 기의(記意)나 기표(記票)의 방식으로 ‘낯선 기호들’의 본질을 탐구하는 이상형의 시법을 지향하고 있으나 그의 천성은 휴머니즘을 향한 존귀의 인간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시혼(詩魂)이 존속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실험시가 됐든, 해체시, 티카시, 하이퍼시 등 다양한 모습의 작품들을 많이 보여주기 바란다. 거기에서 우리들은 박명자 시학의 진수를 음미(吟味)하게 될터이니까. * |
댓글0추천해요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