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출신 요르고스 란티모스(Yorgos Lanthimos) 감독의 최신작<불쌍한 것들>(Poor Things)은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를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재해석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빅토리아 시대 런던을 배경 무대로 펼쳐진다.
엠마 스톤(Emma Stone)이 어린아이 같은 젊은 여인 벨라 백스터(Bella Baxter)로, 윌렘 더포(Willem Dafoe)가 얼굴에 끔찍한 흉터가 있는 저명한 외과 의사 고드윈 백스터(Godwin Baxter)로 출연했다. 두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영화에는 고드윈의 제자 맥스 맥캔들스(Max McCandles) 역에 라미 유세프(Rami Youssef)가, 고드윈의 변호사 던컨 웨더번(Duncan Wedderburn) 역에 마크 러팔로(Mark Ruffalo)가 캐스팅되었다.
여주인공 벨라는 외과의 고드윈에 의해서 부활한 인물. 자살한 희생자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뇌를 이식해 고드윈이 되살린 그는 고드윈의 제자 맥스의 청혼을 받지만, 성숙하면서 더 많은 자유를 갈망하기 시작하고, 결국 고드윈의 변호사 던컨과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난다. 이를 계기로 벨라는 철학적이고, 성적으로 자기를 발견하는 여정을 보내지만, 과거가 그녀를 따라잡기 시작하면서 여행은 중단된다.
영화는 여러 면에서 매력적이다. 우선 등장인물 면에서 벨라로 분한 엠마 스톤은 어린 시절 투정을 부리거나 초기 성인기에 여과되지 않은 성적인 만남을 시도하는 등 날것 그대로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녀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인간 발달의 모든 단계를 구현하면서 배역에 전적으로 헌신한다. 한편, 윌렘 더포는 숨 막히게 하는 아버지 모습으로, 라미 유세프는 사슴 같은 눈망울의 순진한 모습으로, 의도했든 아니든 그녀 주변의 남자들은 여성을 억압하는 모든 다양한 방식의 분신을 대변한다.
마크 러팔로는 그녀에게 집착하지만, 주체성을 나타내고 자신만의 생각을 갖기 시작하자 미워하기 시작하는 사내로, 제러드 카마이클(Jerrod Carmichae)은 그녀의 이타심과 긍정성을 훼손하려는 허무주의자 해리 애슬리(Harry Astley), 크리스토퍼 애벗(Christopher Abbott)은 잔인함의 화신 알피 블레싱턴(Alfie Blessington)으로 분했다. 이러한 모든 사회적, 사회적 압력이 벨라에게 차례로 가해지는 것을 보면 여성에게 얼마나 많은 상반된 기대가 강요되는지 알 수 있으며, 이 영화와 <바비>(Barbie)가 매우 다른 방식이지만 비슷한 정서를 표현했다는 데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영화는 독일 표현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출처에서 영감을 받아 초현실주의와 의도적인 아방가르드적 무대 연출을 수용한 환상적인 프로덕션 디자인 미학으로 시각적으로도 놀라움을 선사한다. 컬러 팔레트는 벨라의 인생 경험이 확장됨에 따라 더욱 대담하고 생생해지며, 의상 디자인 아이디어도 벨라의 삶을 반영하여 소매가 부풀어 오른 어린아이 같은 옷차림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기묘하게 어울리지 않는 다양한 액세서리를 거쳐, 마지막에는 더 격식 있고 감각적인 선택으로 나아간다.
음악적인 면에서 흥미는 더욱 배가된다. 란티모스가 자신의 영화에 오리지널 스코어를 의뢰한 것은 <불쌍한 것들>이 처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작곡가가 예명 저스킨 펜드릭스(Jerskin Pendrix)로 활동하는 영국 작곡가이자 뮤지션, 프로듀서인 조셀린 덴트 풀리(Joscelin Dent-Pooley)란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영화 <불쌍한 것들>은 특히 펜드릭스의 데뷔작, 케임브리지 대학 졸업 후 런던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서 포스트모던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을 만큼 지역 아트 팝 신에서 활동한 그는 2020년에 펑크 록과 힙합, 바흐와 슈베르트가 혼합된 자신의 데뷔 앨범 <Winterreise>를 발표했고, 이 앨범으로 란티모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펜드릭스가 영화를 위해 악보에 써낸 음악은 기괴하고 무질서하며 거의 공격적으로 추상화된 작품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조율되지 않은 현의 충돌음, 피아노 텍스처, 오르간과 백파이프 연주에 따른 비 음악적 소리 등, 통상적인 음악의 화성과는 괴리가 있다. 하지만 영화의 맥락에 견줘보면 란티모스와 펜드릭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이 악보는 벨라의 마음과 감정, 영화 속 특정 시점에 시냅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거의 문자 그대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벨라가 아기일 때, 벨라의 음성과 걸음걸이 등 그녀의 동작을 통제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영화의 초반에 나오는 음악은 단절과 부서지고 고장 난 것처럼 부조화 일색, 그러다가 벨라의 성장에 따라 음악은 유아와 어린이가 느끼는 상반되고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반영한다. 때론 혼란스럽고, 어쩔 땐 화나고, 또 슬프고,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하다가, 행복할 때도 있고, 모든 복합적 감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식이다.
그런 다음 성숙한 어른이 되어감에 따라 음악은 이제 조율에 맞춰 연주되고 보다 명확한 소리를 내는 악기들과 함께 좀 더 '정상적인' 음악으로 통합되기 시작하며, 종극에서 거의 조화로운 교향곡에 가깝게 이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진다. 이 모든 과정에서 벨라 자신을 위한 테마를 비롯해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기발한 모티프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이는 곧 캐릭터가 겪는 다양한 감정 상태와 경험을 내포한다.
펜드릭스의 악보 음악은 대체로 영화가 촬영되기도 전에 작곡되었고, 란티모스 감독의 촬영과 영상 편집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 실제로 영화에서 펜드릭스는 유람선의 밴드 리더로 등장하기도 한다. 대본이나 촬영에 얽매이지 않고 악보를 쓴 이 영화는 그런 접근 방식이 성공한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곡한 음악을 원하는 장면에 배치하는 식의 시나리오 전개가 아니라, 란티모스와 펜드릭스는 매우 긴밀한 협조를 통해 음악이 벨라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창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세밀한 작업을 했다.
펜드릭스는 모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악적 팔레트가 '공기와 역학에 관련된 악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목관악기, 파이프 오르간, 유일 파이프, 샘플링된 합성 호흡 소음을 다양하게 사용했는데, 이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지만, 처음에는 그것을 완벽히 표출할 수 없는 벨라의 목소리와 같습니다. 뒤섞인 이 호흡과 소리는 그녀를 이해하게 되는 일종의 방편인 셈이죠. 펜드릭스는 그런 다음 벨라의 순진함과 연약함에서 점차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목관악기 위에 말렛과 현악기 등 다양한 악기를 겹겹이 배치해 벨라의 세계관이 넓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앨범을 듣는 경험으로서의 <가여운 것들>에서 펜드릭스의 음악은 음향적인 측면에서 답답하고 당혹스럽고 때로는 성가실 정도이지만, 반복 연주되는 다수의 악상은 악보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오프닝 큐인 ‘Bella(벨라)’는 주제선율을 소개하는 곡으로, 처음에는 하프 연주가 물속에서 굴절되어 들리는 것처럼 들리지만, 지시 곡이 끝날 무렵에는 현악이 갑자기 고조하다가 약해지면서 극적인 감동을 불러낸다. 이 곡은 악보 전체에 걸쳐 여러 번 등장하는데, 특히 투아네트(Toinette) 역의 수지 벰마(Suzy Bemba)의 샹송을 내포한 ‘Bella/Les Yeux Bleus/Estore’s Song’의 첫 부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다른 차원이나 새로운 악상으로 발전하는 변주를 들려주기도 한다. ‘Poor Things Finale and End Credits’에서 다채롭고 화려한 오케스트라에 의해 융기할 때는 모든 음악 요소의 초점이 맞춰진 상태로 종극에 조응한다.
‘Wee’는 동작에 맞춰 연주하는 미키마우징 효과를 연상하게 하며, 상징적 하프와 현악기, 목관악기와 타악기의 합주가 유아적 발상에 기초하고 있다. 뜯고 튕기고 긋고 삐걱대는 연주의 합이 조화롭지 않고 어색하게 배열되어 있다. ‘Bell and Max(벨라 앤 맥스)’는 유사한 접근 방식이면서도 아이의 목소리와 함께 들리는 악기 질감이 추상적이다. ‘Mother of God(고드의 모)’는 역시 같은 방식을 취하지만, 저음 베이스를 사용해 더 무겁고 어두운 질감을 강조했다. 이 지시 악곡들은 산만하고 이상하게 전해지지만, 벨라의 유아기 상태를 나타낸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분산되어 있고, 정돈되어 있지 않으며, 전체적으로 통제와 조화가 부족하다는 것이 요점.
‘Victoria(빅토리아)’는 런던의 다리에서 자살한 후 고드윈에 의해 발견되어 환생한 여성 '벨라'를 위한 음악을 소개한다. 악보에 쓴 두 번째 테마 중 하나인 이 지시 악곡은 현악 4화음과 조성을 단순 반복하는 건반 연주로 구성했으며, 그녀가 파멸로 뛰어들기 전 느꼈던 절망을 보여주는 날카로운 네 음표의 모티프로 표현했다. 이어지는 ‘Reanimation(소생술)’은 같은 테마를 재편곡했으며, 아이의 예리하고 괴이한 무언의 가창과 함께 어둡고 고뇌에 찬 파이프 오르간을 통해 산산이 조각난 여인의 잔해에서 새로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탄생하는 모습을 표현합니다.
‘Bella and Duncan(벨라와 던컨)’은 던컨을 위한 색다른 6개의 음표 모티브를 소개한다. 술과 도박을 즐기고 방탕한 던컨이 벨라를 보호된 삶에서 벗어나 육체적 쾌락의 세계에 빠지도록 이끄는 테마로 작용하는 지시 악곡. 그의 테마는 다소 왜곡되고 위험하게 다가오는 일종의 산만한 현악의 반복이며, 벨라의 순수하고도 순진한 성향에 대한 음악적 대위법 역할을 한다. 이어지는 ‘I Just Hope She's Alright(난 그냥 그녀가 괜찮길 바라)’는 무언의 여성 보컬과 맥동하는 전자음으로 보강되는 현악의 쾌속 질주가 마치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을 연상하게 하는데, 이는 거의 억제 불능의 흥분된 느낌으로 다가와 벨라가 세상 밖으로 모험을 떠나는 시작을 알린다. ‘Lisbon(리스본)’은 현악과 목관악, 신시사이저 건반 연주가 전위적이고 환상적이며 몽환적인 질감으로 통합되며, 벨라의 새로운 인생 경험을 음악으로 나타낸다.
두 개의 ‘Portuguese Dance(포르투갈 댄스)’ 곡은 아코디언, 기타, 소규모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유쾌하고 비정통적인 댄스 시퀀스의 일부. 첫 번째 곡은 포르투갈 파두 음악의 영향을 받아 선율적이고 듣기 좋게 조율된 곡인 한편, 두 번째 곡은 더 공격적이고 날카로우며 위압적인 곡조로 전개하지만, 조금 빠른 왈츠풍으로 전환하며 묘한 기쁨과 쾌감을 불러낸다. 벨라와 던컨의 광적이고 기이한 춤 장면을 반주하는 사운드트랙. 여기에 보컬리스트 까르미뇨(Carminho)가 극 중 테라스에서 감성적으로 연주하고 노래하는 포르투갈 전통 파두 음악 'Quarto(콰르토)'라는 곡도 있다. 악보의 이 부분은 ‘Duncan and Martha(던컨과 마사)’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기묘하게도 상반된 느낌을 주는 이 곡은 교회 오르간의 웅장함이 던컨의 기묘한 모티브와 대비되며, 독일의 전설적인 연극배우 한나 쉬굴라(Hanna Schygulla)가 환상적인 카메오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교양 있고 세속적인 마사 폰 쿠르츠로크 부인이 벨라의 지성에 미치는 영향과 그로 인해 던컨과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표현했다.
‘Alexandria(알렉산드리아)’는 제로드 카마이클의 허무주의 철학자 해리와 함께 벨라가 굶주린 아이들의 모습에서 처음으로 인간의 진정한 고통을 마주하고, 그녀가 느끼는 감정을 처리하지 못하는 장면을 강조하는 흥미로운 지시 악곡이며, 이에 조응해 펜드릭스는 슬픔에서 곧 고뇌와 고통으로 바뀌는 감정을 현악에 담아냈다. ‘Paris(파리)’는 던컨과 헤어진 벨라가 매춘 업소에서 일하게 되고, 그녀의 삶과 남성과의 전반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성적 경험을 표현한 곡. 이 전개 장면에 쓰인 음악은 광란적이고 혼란스러우며, 현악기, 플루트, 하프의 물결치는 텍스처와 음 소거된 사운드 디자인의 불협화음 부분으로 강조되고 절제되어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벨라는 병든 고드윈 백스터를 방문하기 위해 'London(런던)'으로 돌아오는데, 이 시퀀스의 음악은 빅토리아의 테마를 반전시킨 듯한 부드러운 바순과 율리언 파이프(uilleann pipes)로 고드윈을 위한 테마를 연주하는 등 따뜻하고 포근하며 감상적인 곡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펜드릭스의 최종 캐릭터 악상은 벨라의 부활 전 남편으로 밝혀진 알프레드 블레싱턴 장군의 테마로, 애초에 벨라가 자살할 때 도망치려 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Alfie(알피)’는 통제, 소유욕, 잔인함, 고통에 대한 무관심 등 최악의 남성적 특성을 모두 묘사한 펜드릭스의 음악으로, 거칠고 어둡고 뭉개지고 부서지는 소리, 불편할 정도로 날카로운 백파이프 소리가 특징이다. 'Alfie and Victoria(알피와 빅토리아)'에서 빅토리아의 현악기 테마는 알피의 테마의 어둠과 조화를 이루며, 부부가 빅토리아가 자살하고 결국 벨라로 변신하기 전과 똑같은 지점에서 관계를 음악으로 뽑아냈다.
‘Bella, Max and God(벨라, 막스 그리고 고드)’의 잔잔한 결말 이후 ‘Poor Things Finale and End Credits(불쌍한 것들 피날레와 종영 인물자막)’는 벨라의 테마를 오르간과 합창단, 오케스트라의 협화음으로 표현한 곡. 이 모든 인생 경험의 결과로 벨라는 이제 영화 초반의 상처받고 조율되지 않은 인물에게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지적인 여성으로 완전히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캐릭터의 성장 과정을 반영하는 이러한 음악적 전개는 이 악보를 매우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음악의 개념과 맥락적 적용으로 볼 때 <불쌍한 것들>은 작곡가와 감독이 협조해 독창적이며 영화와 완벽히 결합한 음악을 만들어낸 일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촬영과 디자인을 강조하는 측면에서도 음악은 절묘하기 그지없다. 영화적 맥락에서 분리해 들으면 그 자체로 난해하다고 할 있지만, 예술과 미학적인 면에서 아카데미의 취향과 경향을 고려했을 때 저스킨 펜드릭스가 오리지널 스코어 부문 음악상 트로피를 거머쥐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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