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둘째주 주님 부활 대축일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마태28.1-10)
죽음의 체험 (김종섭 신부. 안동교구 목성동 주교좌성당 주임)
뒷산에 오른 지 30여분 되었을까? 평상시보다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조금 쉬어 가려 걸음을 멈추었다. 금방 괜찮아질거라 여겼는데 몇 분이 흘러도 가라앉지 않는다.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감지한 수녀님이 묻는다. 누구를 부를까요?
조금씩 메스꺼워지더니 수십. 수백 개의 바늘이 동시에 가슴을 찌르는 듯 고통이 지나간다. 119에 도움을 요청해야만 할 것 같다. 조금만 가면 쉼터가 있어 긴의자에 누워 기다릴 수 있는데. 한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오솔길 옆 낙엽이 쌓인 자리에 누워보지만 차디찬 냉기가 살을 파고들어 이내 몸을 일으켜 등산스틱에 의지한다. 속절없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갔지만. 이상하리만치 마음은 평온했다.
연락을 받은 형제가 길도 없는 가파른 골을 타고 올라왔고. 이어 119와 산악구조대가 도착했다. 들것에 실려 비탈과 밭을 가로질러 이송 차량으로 옮겨졌다. 흐릿한 의식 속에 구급 대운이 묻는 말에 한두 마디의 대답도 힘겹기만 했다. 연락을 받은 동생 신부도 응급실에 달려왔다. 빠르게 진행된 검진 후 심근경색 시술이 시작되었다.
산에서 걸음을 멈춘 지 한 시간간 반이 지난 오후 다섯 시 무렵이었다. 시술을 받는 동안 너무 추워 오들오들 떨었는데 입에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 시각 동생 신부는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긴 복도에 홀로 앉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흘 후 퇴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탄절을 맞이했다. 클라우스 헴멜레 주교의 성탄 묵상이 새롭게 와 닿았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네. 말씀이 심장이 되셨네. 하느님께서 심장을 가지셨네. 하느님의 심장이 뛰시네. 수백만 인간 심장의 맥박 안에서.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네. 사람의 심장 안에 살고 계신 분이 누구신지...
삶과 연결된 모든 것이 한층 소중하게 다가왔다. 생사 갈림길에서의 회복과 죽음의 선구적 체험이 가져다준 선물일까? 죽음이란 단어가 뇌리를 유영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타났다 사라진다. 삶이 조금 더 자유롭고 여유로워지는 듯하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삶에 한 발짝 더 다가서는 것일까? 나약한 의지와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하루하루를 살게 하는 힘이 새롭게 느껴진다.
다시 맞는 부활절이다. 종탑에 오래 앉아있던 새들이 날아오른다. 주님 부활의 메시지를 안고 떠나는 것만 같다. 지난번 산책중에 보았던 강가의 물오른 버들강아지가 아른아른하다. 지금쯤 노란꽃으로 다시 피어났을까?
(가톨릭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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