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잡귀, 잡신의 총 정리
잡귀 잡신 풀이 저자 / 조흥윤
1. 굿에 대한 몰이해의 근원
70년대 대단했던 한국 무(巫) 연구의 열기는 80년대에 들어와 대번에 식더니 이즈음은 별로 이렇다할 연구가 눈에 뜨이지 않는다. 무슨 마음을 먹고 문지방이 닳을세라 찾아다니던 이가 갑자기 발을 끊은 것 같아 마음이 여간 섭섭하고 불편한 게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터이다. 어쨌든 그 같은 열기는 그냥 오르고 말았을 뿐, 한국 무(巫)의 본질 내지 원리라든가 무당의 구체적 생활사라든가 무당과 단골의 관계, 나아가 이 오래된 한국 종교와 사람들과의 관계 같은 문제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밝히 풀어지지 못한 형편이다.
굿 하나만 하더라도 여러 해석이 있어 오지만 굿의 옛 모습과 그 변형에 관한 조사, 굿의 짜임새, 굿의 진행, 굿의 원리 같은 기본적인 문제들이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못하였다.
굿에서는 무(巫)의 세 기본요소가 되는 무당과 단골과 신령이 서로 만나고 그럼으로써 인간(단골)의 문제가 풀어진다. 무(巫)의 가장 필수적이고도 종합적인 이 종교 의례가 바르고 밝게 이해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한국 무(巫) 연구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굿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 내지 몰이해는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즈음 대학에서 축제 때 학생들이 흔히 무슨 무슨 굿이니 하여 내놓는 것은 아마도 그 가장 대표적인 보기가 될 것이다. 그들은 굿이 마치 이른바 민중을 위하여 있는 양 크게 잘못 이해한다.
굿에 등장하는 신령들 가운데 원신(怨神)이 많다. (김열규(金烈圭): 282∼4)든가 "한국의 무당은 원신(怨神)을 모시고 그들을 달래듯이 보통 사람들의 원령(怨靈)을 달래는 것을 그 주요한 기능으로 삼고 있다.
"(ibid: 284)는 등, 학자들의 굿과 신령에 대한 감상적인 이해가 그런 오해에 한 몫을 거들고 있다. 무의 신령이 정녕코 원신일 수 없음을 나는 밝힌 바 있다. (조흥윤, 1984). 이 글에서 그 점이 아주 분명해진다. 잡귀잡신(雜鬼雜神) 가운데 오직 몇몇 무리만이 억울하고 원통스러운 귀신들인 것이다. 그리고 굿이란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아니다. 단골 집안의 문제를 온 조상과 신령의 덕으로 풀고 집안의 조화를 되찾는 종교의식이 굿이다.
신령 이해의 혼란은 위에 언급한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굿의 준비과정의 하나로서 굿 장소를 의례적으로 정화시키기 위한 제차(第次), 부정(不淨)으로부터 어떤 이는 부정신(不淨神)이란 것을 만들어내고 있는 판이다(김태곤(金泰坤), 1969: 73∼4). 한국 무(巫)의 신령은 중부지방에서 뚜렷한 위계(位階)를 가지고 있건만(조흥윤, 1983:94-103), 그렇지 않다느니 미미하게 그런 관념이 보인다는 정도로 넘어가고들 있다. 신령계의 바른 이해는 무(巫)의 신(神)관념, 종교 표상 등과 직결되어 있는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무(巫) 연구와 이해의 이 같은 혼란은 재미(在美) 무속연구가 채모씨(蔡某氏)의 경우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채모씨라 하면 학자가 무당이 되었다 하고(주간여성: 19∼21) 미국에서 여러 차례 굿을 공연하였으며 최근에는 무슨 영화에 주연한다 하여 떠들썩하게 이름난 분이다. 그녀는 1981년 여름 황해도 무당 김모씨를 신어머니로 모시고 내림굿을 하여 애기무당이 되었다고 한다. 김모씨는 근래 매스컴에서도 크게 각광을 받고 큰굿을 많이 하여 이름 높다. 그런데 채모씨는 이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등지에서 여러 번 굿 공연을 하였는데 번번이 입에 거품을 물고 실신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강신(降神) 체험이 거센 것인 양 두루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한다.
이것은 실로 큰일날 일이다. 내림굿은 원래 성질이 전혀 다른, 그러나 서로 연관을 가지는 두 개의 굿, 즉 허주(虛主)굿과 내림굿으로 이루어진다. 허주굿에서는 무당 후보자의 증세가 정말 신병(神病)인지, 아니면 잡귀잡신의 장난에 의한 정신 이상인지가 판단된다. 신병이 확실하다면 이때 그 내린 정신(正神)을 가리고 있는 허주를 벗겨내어야 한다. 그리고 후자의 내림굿에서는 후보자의 몸주를 모셔내고 그에 따라 그의 무당계급이 결정되어진다(Cho Hung-youn, 1981: 77∼103, 1983: 29∼35). 이것이 내림굿의 옛 법이고 오늘날에는 그 둘을 한데 묶어 약식으로 거행한다. 채 모씨도 하루 만에 내림굿을 하였다 하니 그것이 줄여진 형태였음이 분명하다.
어쨌든 내림굿에서는 허주가 벗어져야 온전한 애기무당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춤을 추다 입에 거품을 물고 실신한다든가 말문을 열지 못하는 것 등이다.
그러니 채모씨는 내림굿에서 허주를 제대로 못 벗은 셈이다. 말을 바꾸자면 그녀의 신어머니 김모씨가 허주를 제대로 벗기지 못하였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하고서도 그 둘이 모두 학계와 사회에 이름이 높으니 모를 일이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형편이라 하더라도 채모씨가 미국에서 한국 무(巫)의 강신(降神) 모습을 입에 거품 무는 그런 양으로 알리고 있는 셈이니 도무지 갑갑하고 답답함을 말로 다할 수 없다.
이런 잘못들을 올바른 연구를 통하여 바로 잡는 일은 시급하다.
이 글의 한 뜻은 거기에 있다. 그밖에 나는 한국 무(巫) 신령의 내력을 밝히는 연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글은 그것을 한 판의 굿으로 잡을 때 모든 부정한 잡귀잡신을 쳐들어 물리는 '부정치기'에 해당된다.
2. 굿의 구조와 용어 및 개념
굿의 구조와 용어 및 개념 문제를 미리 짚고 넘어가는 것이 잡귀잡신의 이해에 좋으리라 여겨진다.
먼저 열두거리라는 개념을 살펴보련다.
종래 굿, 특히 천신(薦新)굿은 12거리로 되어 있다고들 막연히 알아왔다. 연대와 저자가 분명하지 않으나 조선조 말기로 추측되는 무당내력(巫堂來歷)이라는 책에는 굿이 열두거리로 나뉘어 그려져 있다. (천정일(泉靖一): 1967). 그러나 최길성(崔吉城)이 조사한 양주 무당 조영자(趙英子)의 천신굿 거리 수는 열둘을 훨씬 넘는다(장주근(張籌根), 최길성(崔吉城): 139∼151). 그리고 1976년 5월 내가 시도한 전통적인 천신굿의 복원작업에서는 그것이 16 거리와 준비과장과 기타 여러 부속거리(곁거리)로 나타났었다. (조흥윤, 1983: 128∼130).
그 후 계속된 조사연구를 통하여 나는 현재 옛 천신굿의 5 준비 제차(祭次), 18거리, 그리고 27 부속거리를 확인하여 있다. 물론 사흘 놀던 큰굿의 것이다. 따라서 열두거리란 실제와는 다르며 단지 1년 열두 달을 연상시키는 어떤 상징성을 띠는 개념에 불과하다 하겠다. (유동식(柳東植): 296).
그런데 유동식은 그 열두거리를 다음과 같은 순으로 나열하고 그것에 일정한 의미가 있음을 강조한다(ibid.: 316∼7): 1. 부정(不淨)거리 2. 가망거리(이상 서장) 3. 산(山)마누라 4. 별성(別星)거리 5. 대감(大監)거리(재(財)) 6. 제석(帝釋)거리(수(壽)) 7. 성주(成造)거리(영(寧)) 8. 호구(戶口)거리 9. 군웅(軍雄: 또는 구릉(丘陵))거리 (이상 주신(主神)제사) 10. 창부(唱夫)거리 11. 말명(萬明) 거리 12. 뒷전풀이(이상 종장(終章)). 이 가운데 중심부분을 이루는 5, 6, 7 세거리의 신위(神位)는 각기 재복(財福)과 수복(壽福)과 안녕(安寧)을 주관하는 삼대가신(三大家神)이므로 신복(祈福)이 굿의 중심이 된다고 그는 파악한다.
이 부분을 둘러싼 4와 8은 제액, 그 바로 바깥쪽의 3과 9는 수호의 기능을 담당한다고 한다(ibid.: 318).
굿이 크게 보아서 세 부분으로 짜여 있음은 사실이다.
첫 부분에 준비과장, 가운데에 본 과장으로서의 거리과장, 그리고 끝에는 종결과장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옛 천신굿에서 놀아지는, 또는 오늘날 전통 무에 의하여 진행되는 본과장의 거리순서는 위에 언급된 것과 많이 다르다. 그것을 줄여 적는다면 대개 다음과 같은 정도로 된다.
a. 불사(佛師)거리(또는 천궁(天宮)맞이, 천존(天尊)굿) b. 산(山)바레기(또는 본향(本鄕)맞이) c. 조상(祖上)거리 d. 본향(本鄕)가망거리 e. 전안거리 f. 상산(上山)(마누라)거리 g. 별상(別相)거리 h. 신장(神將)거리 i. 대감거리 j. 제석거리 k. 성주거리 ㅣ. 창부거리 m. 뒷전(거리). 이것과 앞의 것을 비교해 보면 앞의 것에는 a, b, c, d, e, h가 숫제 빠져 있다. 그리고 호구거리는 본래 불사거리의 부속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종래 이야기되던 굿의 짜임새나 그 일정한 의미란 무의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곁들여 잘못된 용어를 간단히 바로 잡으려 한다.
먼저 별성(別星)은 별상(別相)이 되어야 한다. 별상(別相)이란 연산군, 광해군, 사도세자 같이 왕위를 지키지 못했거나 잃은 이들이 신격화된 것이다. (조흥윤, 1983: 98). 별성은 호구별성 또는 마마별성이라 하여 천연두 신(神)을 일컫는다. (ibid.: 99). 그리고 부정은 보통 '부정친다. (치운다)'고 표현되며 일련의 준비과장에 속한다.
이것은 부정과 잡귀잡신을 물리치고 굿판을 정화하는 것이기에 특별한 신령을 모시지 않는다.
따라서 거리가 되지 못한다. 거리에서는 신령이 모셔지기에 반드시 춤이 있고 또 공수(空唱)가 내려진다. 춤과 공수는 그러므로 거리의 필수조건이 된다. 종결과장인 뒷전은 뒷전풀이로도 불리어지지만 여러 잡귀잡신을 모셔 놀려지니 하나의 거리가 되는 것이다. 끝으로 부정과 뒷전거리를 두고 지방마다 부르는 말이 다르기에 그것을 정리해둔다. (뒷전에 해당하는 것에 아래 줄을 주었다)
1. 서울·경기(재수굿, 천신굿): 부정, 뒷전: 화성(재수굿): 부정풀이, 마당굿
2. 충청도, 부여(성주굿): 조왕굿, 수부굿
3. 전북, 고창(성주굿): 안당석(또는 조왕석), 중천맥이: 순창(축원굿): 축귀(逐鬼)
4. 전남, 해남(씨끔굿): 퇴송(退送)굿(또는 거리굿, 해원굿)
5. 경상도, 부산(삼제당굿, 논부굿, 오구굿, 별신굿): 부정굿, 거리굿(또는 시식풀이)
6. 제주도, 제주(불도(彿道)맞이): 초감제(의 새다리), 도진
7. 강원도, 고성(재수굿, 성주굿, 축원굿, <도> 신굿): 부정굿, 거리풀이
8. 평안도, 평양(재수굿): 추당풀이, 뒷전풀이
9. 황해도, 해주(수축원굿): 초부정굿, 마당굿
3. 잡귀 잡신에 관계되는 재차(祭次)
잡귀잡신에 관계되는 제차(祭次)는 그러고 보면 부정과 뒷전거리가 분명하다.
그밖에 옛천신굿에서는 천존(天尊)대감의 부속거리로서 천존뒷전을, / 산바레기의 부속거리로서 산바레기 본향뒷전을 놀았는데 이 두 부속거리 뒷전도 잡귀잡신을 놀리는 거리에 든다.
적송지성(赤松智城)과 추엽륭(秋葉隆)이 함께 엮어낸 ≪朝鮮巫俗の 硏究≫ 상권에는 경성무녀 배경재(裵敬載)에 의한 이른바 열두거리의 무가(巫歌)가 담겨 있다. 그 첫 제차인 부정에서는 10 부정, 7 호구, 16 말명, 7 동법(관주), 13 영산, 11 상문이 나열된다. 그 가운데 부정, 호구, 말명의 세부항목을 살펴볼 만하다.
1. 부정
① 외상문(外喪門)부정, 내상문(內喪門)부정 ② 말잡아 대마(大馬)부정
③ 소잡아 우마(牛馬)부정 ④ 물부정 ⑤ 불부정 ⑥ 화재(火災)부정 ⑦ 두엄부정
⑧ 날짐승 길버러지 살생부정 ⑨ 머리끝에 백(白)나비부정 ⑩ 전물(奠勿)부정
2. 호구
① 상단호구, 중단호구, 하단호구 ② 성인(聖人)호구 ③ 본향호구 ④ 부리호구
⑤ 성(姓)주고 본(本)준 호구 ⑥ 조비조상(祖妣祖上)의 말명호구 ⑦ 손각씨 손(孫)호구
3. 말명
① 서울 명도대신 말명 ② 사위 삼당 제당(四位三堂諸堂) 말명 ③ 상산(上山) 말명 ④ 열네 아기 당자 말명 ⑤ 수영반장 말명 ⑥ 육조(六曹)삼말부군(府君) 말명 ⑦ 배옹남산의 불사 말명 ⑧ 화주당(化主堂), 매(應)당왕신(堂王神)의 산활 말명 ⑨ 왕십리 수풀당의 열네아기자겨 말명 ⑩ 대전(大殿) 말명 ⑪ 세자(世子) 말명 ⑫ 도당 말명 ⑬ 안(內)당(堂)의 불사 말명 ⑭ 업위(業位) 말명 ⑮ 터(基)주(主), 원주(苑主), 가주(家主) 말명 16양림가(兩位家)의 선후대(先後代)말명
부정에서는 이렇듯 여러 부정과 잡귀잡신을 쳐들어 집안에 탈 없이 잘되게 도와달라고 빌어진다.
이들 잡귀잡신은 부정에서 한번 쳐들어지지만 굿의 맨 뒷부분인 뒷전에서는 제대로 모셔져 음악과 춤과 음식으로써 대접받고 물리쳐진다. 배경재의 무가(巫歌)에서는 뒷전에 24걸립(乞粒), 8 대감, 20 서낭, 그리고 24 영산이 언급된다(적송지순(赤松智順), 추엽륭(秋葉隆), 1937: 116∼9). 따라서 부정과 뒷전을 합쳐 모두 10종이 들먹여진 셈이다.
이 가운데 부정의 부정은 잡귀잡신에 들지 않는다. 호구는 앞서 이미 말한 것처럼 불사거리의 부속거리로 따로 놀아지니 잡귀잡신의 대열에 넣기 어렵다. 그리고 영산이 부정과 뒷전에 다 들어 있기에 이것을 감안하면 잡귀잡신으로서 손꼽아지는 것은 일곱 종에 지나지 않는다.
비단 배경재에게서만 아니라 채록되어 보고된 무가들에서도 보면 부정과 뒷전에 언급되는 잡귀잡신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 굿당에서 베풀어지는 이즈음의 굿에서는 대부분 줄여서 놀기 때문에 그 수가 더구나 적은 형편이다. 그러나 이지산(李芝山), 부득이 만신, 오토바이 만신 같은 전통무들에게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잡귀잡신의 종류는 본디 훨씬 더 많다. 그럴진대 오늘날의 굿이라는 것은 제대로 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놀아지고 잡귀잡신을 다 물리지 못하여 제가(祭家)나 굿 당에는 그런 것들이 수두룩하게 남는다는 얘기가 아닌가.
4. 잡귀 잡신들의 종류
내가 조사한 잡귀잡신의 종류는 15종. 그들의 성격과 각 종에 속하는 잡귀잡신을 이제 살펴보겠다.
1. 걸립(乞粒)
뒷전에서 제일 먼저 모셔진다. 배경재의 뒷전에는 24걸립이 나온다:
(1) 만신몸주걸립 (2) 사위삼당제당(四位三堂諸堂)걸립 (3) 상산(上山)걸립 (4) 용궁걸립 (5) 서낭걸립 (6) 반장걸립 (7) 사신(使臣)서낭 왕래걸립 (8) 육조(六曹)삼말부군걸립 (9) 배옹남산불사걸립 (10) 매당왕신(王神)산활걸립 (11) 열네애기재계걸립 (12) 세자(世子)걸립 (13) 본향부군걸립 (14) 성주걸립 (15) 지신(地神)걸립 (16) 화주(化主)걸립 (17) 시주(施主)걸립 (18) 양위(兩位)몸주걸립 (19) 직성(直星)걸립 (20) 횡수(橫數)걸립 (21) 영산걸립 (22) 귀책(鬼責)걸립 (23) 상문걸립 (24) 동법걸립.
걸립은 원래 무당 후보자가 그의 내림굿을 위하여 인근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서 곡식을 비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 개념이 어떤 경유로 신령화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이 신령은 무당의 형성을 도와주는 일종의 수호신으로 간주된다.
이 하위신(下位神)은 내림굿에서 애기무당에게 몸주신으로 내리는 경우가 있다(조흥윤, 1983: 100)
2. 터주(대감)
지곤(地神)대감으로도 불린다.
이 터대감은 굿의 본과장에서 대감거리에도 끼어 등장하게 되나 뒷전에서는 단독으로 모셔진다. 배경재의 뒷전에는 그냥 '대감'이라 하여 여덟 분이 언급되어 있다: (1) 만신몸주대신대감 (2) 사위삼당제당대감 (3) 천신(天神)대감 (4) 순력(巡歷)대감 (5) 상산(上山)대감 (6) 용궁대감 (7) 제가집몸주대감 (8) 열입대감
3. 지신(地神)할머니
터주가 터의 남신(男神)에 해당되는 반면, 이 신령은 터의 여신(女神)이 된다.
4. 수광대(首廣大)
제가집의 조상 가운데 중이나 무당이나 광대였던 이들을 모셔 논다.
5. 서낭(城隍)
서낭 또는 성황은 각 처處의 서낭을 가리키며 마을의 수호신이다.
배경재는 대략 20 서낭을 열거한다: (1) 만신몸주대신서낭 (2) 용신서낭 (3) 중디서낭 (4) 반장서낭 (5) 왕래서낭 (6) 불사서낭 (7) 사신서낭 (8) 자하문(紫霞門)서낭 (9) 동악당(同樂堂)서낭 (10) 우물서낭 (11) 자지동(紫芝洞)서낭 (12) 우수재(牛首峴)서낭 (13) 노주(路主)서낭 (14) 외대백이서낭 (15) 고물(船尾)서낭 (16) 이물(船首)서낭 (17) 긴대(長竿)서낭 (18) 노절(櫓漕)서낭 (19) 밀물(滿潮)서낭 (20) 썰물(干潮)서낭.
6. 사신(使臣)
조선이나 중국의 사신 가운데 공무 도중에 죽은 이들은 신격화되어 별상거리에 붙여 놀아지나 이곳 뒷전의 사신은 사신들 앞에서 놀던 말뚝이를 가리킨다.
7. 맹인(盲人)
서울 만신 문덕순(文德順)은 뒷전에서 맹인(盲人)공수를 다음과 같이 주고 있다. (김태곤(金泰坤), 1971: 48∼9):
부리맹인에 신에 맹인이라
열맹인에 뜬맹인 아니시리
신장맹인에 부군은 도당맹인이라
곽곽선생 이순풍이 제갈공명
식구대루 눈조릉도 제쳐주구 애조롱도 제쳐가며
열삼에 뜬삼에 외다락지 쌍다락지 가시눈 딸기눈 제치어서
민경에 체경같구 어리새 새起같이
수하청명 맑히어서 받들어 상덕입혀 도와주마
이 맹인(盲人)거리에서는 이처럼 곽각, 이순풍, 홍계관 등의 점복신(占卜神)과 제가집의 조상 가운데 맹인(盲人)들이 모셔진다.
8. 하탈(下滮)
제가집 부녀 가운데 애 놓다가 혹은 애 놓고 죽은 귀신을 일러 하탈이라 한다.
평양무 정대복(鄭大福)은 재수굿의 뒷전풀이에서 하탈영산이라는 귀신을 들먹인다(김태곤(金泰坤), 1978: 61). 아기를 낳다 죽은 원귀(寃鬼)다. 그러나 이것은 영산에 속하는 잡귀잡신이다. 하탈계(系)는 또 따로 있어서 뒷전에 버젓이 한 거리를 차지하는 것이지만 하탈거리에 관해서는 그 무가가 학계에 아직 보고된 바 없다.
9. 말명
배경재의 부정에서 우리는 이미 16위(位)의 말명을 알았다.
그밖에 서울 경기 지역의 옛 천신굿에서는 뒷전의 말명이라 하여 제가집의 하인이나 종이 죽어 된 귀신을 놀린다. 이들은 말하자면 행세 못하는, 떳떳하지 못한 귀신들이다.
10. 객귀(客鬼)
객귀를 뒷전에서 놀리는 무가가 보고된 것은 아직 없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객지에서 죽은 귀신이기도 하고 또 집안의 다른 귀신을 가리키기도 한다.
11. 영산
영산(靈山) 또는 영산(零散)이라고 쓰는데 참혹하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넋이 이 계열에 든다.
영산은 배경재의 부정에도 13개가 열거되어 있지만 그밖에 여러 지역의 뒷전에서 흔히 놀려지는 잡귀잡신이다. 잡귀잡신 가운데서는 그만치 강하고 독한 것이기에 좀 자상히 알아볼 만하다.
먼저 배경재의 뒷전에 나오는 영산의 목록을 보자(적송지성(赤松智城), 추엽륭(秋葉隆), 1937: 119):
(1) 남(男)영산 (2) 여(女)영산 (3) 부리영산은 조상(祖上)영산 (4) 산에 올라 호(虎)영산 (5) 거리노중(路中)에 객사(客死)영산 (6) 만경창파 수살(水殺)영산 (7) 낳고 간(산후(産後)에 죽은)영산 (8) 베고간(잉(孕)했다 사(死)한)영산 (10) 난리통에 가든 영산 (11) 총 맞고 살(矢) 맞고 가든 영산 (11) 쥐통에 가든 영산 (12) 회통에 가든 영산 (13) 쓰리통에 가든 영산 (14) 덜미치기에 가든 영산 (15) 군문효수(軍門梟首)에 가든 영산 (16) 서소문 네거리에 각(脚)을 뽑고 가든 영산 [17]육시허참(戮屍虛斬)에 가든 영산 (18) 약 먹고 자결한 영산 (19) 목매고 자살한 영산 (20) 남게 치여(압사(壓死)) 목신(木神)영산 (21) 흙에 치여 토신(土神)영산 (22) 돌에 치여 석신(石神)영산 (23) 세네부리 빛 다른 영산 (24) 색다른 영산. (9)없음
배경재의 영산이 제법 고풍(古風)의 귀신이라면 평양만신 정대복의 것은 많이 근대화되어 6·25 사변과 4·19에 죽은 귀신까지 포함한다. 그 대목을 옮겨본다 (김태곤(金泰坤), 1978: 62):
물루 빠져 수두영산 절누가고
목매달아 강건 잿물먹구 가넌 싱
낙낙가지에 목매달아 간겅 바다나서
육이오사변에 사일구사변에
총에 맞어 간 혼신
화살에 간 혼신
외국영산에 타국영산 바다나서
사일구에 학생 죽은 영산 바다나서
12. 상문(喪門)
배경재의 뒷전에 상문이 들어있지 않지만 상문은 서울·경기 지역의 무(巫)에서 두루 쳐들어가는 귀신이다.
배경재의 부정에서 그 성격이 드러난다. (적송지순(赤松智順), 추엽륭(秋葉隆), 1937: 69)
(1) 남(男)상문 (2) 여(女)상문 (3) 늙은이 죽은 망령상문 (4) 젊은이 죽은 소년상문 (5) 머리풀어 발상(發喪) 상문 (6) 은하수 대곡(大哭)상문 (7) 뜰 네 귀에 범한 상문 (8) 사랑(舍廊) 네 귀에 범한 상문 (9) 외행랑(外行廊), 내행랑(內行廊)에 범한 상문 (10) 지촉부의(紙燭賻儀) 왕래(往來)상문 (11) 통부서(通訃書)에 따라온 상문. 상문은 이렇듯 상가(喪家)에서 묻어오고 따라온 것을 가리킨다. 상가에 다녀와 몸이 불편할 때 그것이 상문살에 의한 것이라 판단되면 상문풀이라고 하는 치성(致誠)을 드린다(조흥윤, 1983: 53).
13. 수비
수비는 수배(隨陪)라 쓰며 (적송지운(赤松智順), 추엽륭(秋葉隆), 1937: 127∼8; 1938: 114) 수비하직으로도 불리는데 주신(主神)에 따라 다니는 잡귀잡신들이 그것이다.
부여지역 축원굿의 마지막 거리인 수부굿이란(김태곤, 1971: 143∼4) 바로 이들 수비를 놀리는 거리이다.
서울·경기 지역의 옛 재수굿에서는 뒷전에 반드시 수비를 쳐든다. 1930년대 조산(鳥山)박수 이종만(李鍾萬)의 부정에서는 수비의 종류와 규모가 드러난다(적송지순(赤松智順), 추엽륭(秋葉隆), 1937: 127∼8):
“상청(上廳) 서른여덟 수비/중청(中廳) 스물여덟 수비/하청(下廳)은 열여덟 수비/우중간(右中間) 남(男) 수비/좌중간(左中間) 여(女) 수비/벼루 잡던 수비, 책 잡던 수비/군웅왕신(軍雄王神) 수비/손신별성[客神別星] 수비/해산영산(解産靈山)에 간 수비/수살영산(水殺靈山)에 간 수비/먼 길 객사(客死) 수비/언덕 아래 낙상(落傷) 수비/염병질병에 돌아간 수비/쥐통객사에 간 수비/고뿔감기에 간 수비/열삼애삼에 간 수비/여러 각 항 수비들아, 많이 먹고 네 가거라.”
14. 잡귀(雜鬼)
잡귀는 잡귀잡신의 줄인 말이 아니라 잡귀잡신의 한 종류이다.
뒷전에 99 도귀(都鬼), 53 떼귀신이라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우주만물의 잡종 99 귀신이 여기에 든다.
15. 동법
배경재의 부정에 동법이 나오거니와 문덕순의 재수굿 뒷전공수에도 동법이 쳐들린다. (김태곤, 1971: 49):
나물달어 목신(木神)동법이라
흙을 달어 토신(土神)동법 돌을 달어 석신(石神)동법
인살에 태살동법 아니시랴
헌 재목에 새 재목을 만지구 다룬 동법
새 재목에 헌 재목을 만지구 다룬 동법…
동법은 이렇듯 집안의 목(木), 토(土), 석(石) 재료로 탈난 것을 가리킨다.
5. 정신(正神)들을 한꺼번에 몰아 부쳐서야
위에 살펴본 바 15종 잡귀잡신이 모두 원한을 가진 것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걸립, 터주, 지신할머니, 서낭은 수호신의 성격을 띠고 있다. 동법과 상문은 각기 동법살과 상문살이라 불리는 만큼 오히려 어떤 악독한 기운을 가리키고 있음직하다. 원한을 지닌 잡귀잡신이라면 하탈, 영산, 말명, 객귀, 그리고 잡귀가 손꼽힌다.
신분사회에서 천민으로 천대받았다는 점에서 수광대와 사신이 원한품은 잡귀잡신에 억지로 집어넣어 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 무(巫)의 잡귀잡신 가운데 원한을 가진 것이 이처럼 반 정도에 불과한데 굿의 본과장에 모셔지는 정신(正神)들을 한꺼번에 몰아붙여 원한 운운하는 것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인식이 이같이 분명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감정과 감상에 놀아나는 것, 실로 통탄할 일이다. 연구하는 이들이 그러하거늘 하물며 일반 대중이야 일러 무엇 하겠는가. 잡귀잡신에 관한 무지와 그에 따른 혼란을 두어 가지 보기로 살펴보자.
이즈음 사람들이 집에서 숨을 거두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워낙들 바쁘다 보니 대개 밖에서 죽는다. 그리고 사회복지와 의학이 발달해서인지 거의 모두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숨을 거두고, 그러면 자동적으로 병원 한 구석의 영한실로 옮겨져 장례가 치러진다.
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사람들이 바빠서 그냥 돈을 처들여 병원에 환자를 맡겨 끝까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는 것이 마치 효(孝)나 되는 듯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가족들에게야 모든 것이 편하겠지. 돌아갈 이의 뜻은 이런 경우 식구들의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밖에서 죽으면 집에 들이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 관념이다. 그것이 객귀(客鬼)다. 내가 아는 이의 어머니가 병원에서 돌아가시자 그 자식들은 병원 영안실에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운구차(運樞車)을 집 앞에 대고서 어머니를 집안으로 모시지 못하고 그토록 서러워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이렇게 간혼은 그러면 무엇이 되는가. 객귀가 되지. 아니면 경우에 따라 참혹하고 억울하게 가셨기에 영산이 될 것이다. 이즈음 살아가는 투가 모두 그럴진대 그 많은 객귀와 영산은 다 어찌할 것인고.
세계가 분노한 저 KAL기 피격사건을 우리는 잊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들 작은 나라의 아픔과 서러움을 한데 모아 울음을 터뜨렸다.
이들은 한국 무(巫)의 잡귀잡신 계열에서 영산에 든다.
감정에 북받쳐 분노하고 서러움만 되씹어서는 안 된다. 이들이 어떤 귀신이 되었는지, 그 죽음의 내용을 냉정하게 알아서 하나 하나 그들을 풀어주고 또 우리는 부지런히 앞으로 갈 길을 가야할 것이다.
6. 맺음말
굿의 한판이란 곰곰이 들여다보면 완벽한 짜임새를 갖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준비과장에서 부정을 쳐들어 물리치고 난 뒤 굿판을 정화하고 모든 조상과 신령을 모신다. 본과장에서는 조상님, 집안의 수호신, 마을신, 우리 사회와 나라의 조상인 수호신, 산천의 모든 신령, 천신(天神),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 왔으되 우리에게 덕을 끼친 신령까지 모두 모셔서 즐겁게 놀려드리고 그들의 도우심을 확약 받는다.
그리고 뒷전에서 갖가지 잡귀잡신마저 그 성격과 식성에 맞추어 대접해 보내기에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들 조상, 신령, 잡귀잡신을 한편으로 하고 또 다른 편에서는 제가집의 양주(兩主)집안 식구, 친척, 이웃들이 골고루 굿판에 자리하여 무당의 중재로 모두 어우러져 노니 이 어찌 완벽한 조화라 아니 하겠는가. 굿의 원리, 무(巫)의 원리란 단골 집안의 금간, 깨진 조화를 다시 도로 회복시키는 바로 그 조화에 있는 것이다.
그런 굿판의 뒷전은 원래 뒷전무당이 있어서 그것을 전담하였었다.
그에게 내린 신령이 걸립, 말명, 맹인(신장), 성황, 사신, 삼대신(三大神) 따위와 같은 것이니 어쩔 도리 없이 뒷전무당이 되었던 것이다. 이들 신령은 한국 무(巫)에서는 하위신(下位神)이므로 저들 뒷전무당은 자연히 낮은 무당계급을 가졌었다(조흥윤, 1983: 99∼100). 따라서 옛 굿에서 그들은 굿판의 마루에 감히 걸터앉지도 못하고 다만 마당 한구석에서 뒷전이 오기만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나 해방을 맞고 온갖 급격한 사회변동을 겪으면서 그런 법은 흔들리다 녹아 없어지고 말았다.
어느 무당이 그런 낮은 계급에 만족하고 머물러 있으랴. 모두가 자유스럽고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에 다들 살고 있지 않는가. 또 무당도 단골도 모두 바쁘다보니 계급이나 옛 법 같은 데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는다. 적당히 하기만 하면 되는 세상이다.
옛 법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무당을 나무라서는 아니 된다.
물론 어느 정도의 책임이야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 근본책임은 급변하는 사회에 있는 것이다.
무당은 개인만 아니라 사회의 상태를 그대로 정확히 느껴 알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민감한, 강신(降神)의 전문가들이다. 사회가 바뀌는 만큼 저들도 꼭 그만큼 변해야 될 줄 알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뒷전무당이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누가 저 잡귀잡신들을 제대로 풀어 먹여 우환 없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나의 잡귀잡신 풀이는 그래서 있는 것이고, 다음의 뒤물림으로 끝맺는다.
식상거완(食床巨椀)에 많이 먹고 즐겨 놀고
고픈 배 불리고 마른 목 적시고
가든 길 역림(歷臨)하고 오든 길 퇴성해서
다시 집안에 집착 없이 도와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