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친글] 새롭게 시작해 본다 / 정희연
2022년 봄 대전으로 발령 받았다. 그동안 광주에서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거리가 멀어 근무지 가까운 곳으로 옮겼다. 9월 1일 이른 시간 병원에 도착해 원무과에 접수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탈의실에서 가운을 걸친 후 종합 검진 센터로 들어갔다. 먼저 온 사람이 몇 보였다. 검사실은 열다섯개가량 되어 보였다. 특별한 순서 없이 비어 있는 검사실에 검진표를 건네면 검사가 이루어졌다. 문진표를 작성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검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엑스레이, 혈액검사, 초음파 그리고 기초 검사를 받았다. 결핵, 신장, 간질환, 당뇨, 혈압, 암 등 건강 상태를 알아 보려는 것이다. 예약을 했던 터라 여덟 시 20분 접수해서 검사가 아홉 시 30분에 끝났다.
20년 전부터 꾸준하게 추가 건강 검진을 받아 왔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고혈압이란 말이 내 몸과 연관 되어 들리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은 볼 때마다 술과 몸무게를 줄이고 운동을 하라고 했다. 몸무게가 늘어나는 원인은 잦은 술 때문이었는데, 숙취로 힘들어하지도 않고 업무에 방해가 되는 일이 없어 무시해 왔었다. 그런데 이제는 당뇨가 하나 더해졌다. 가족들도 튀어나온 배를 볼 때마다 걱정이 되었는지 건강에 신경을 쓰라고 직·간접으로 이야기했다. 괜찮다,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만 되풀이할 뿐 특별한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핑계와 변명만 늘어놨다.
내 몸무게는 82kg이다. 표준 체중은 1.76X1.76X23=72kg이므로 평균 체중보다 10kg이 많다, 결혼 이후 살이 찌기 시작했다. 아들 나이가 스물 넷이므로 배불뚝이 기간도 이와 얼추 비슷할 것이다. 지금껏 말라깽이로 살다가 살이 오르니 몸 전체가 토실토실해 좋아 보였다. 지금 그 살은 아랫배로 모여 들었다. 사진 속 모습은 ‘이게 아닌데’ 할 정도였다.
카톡음이 울렸다. 코로나 시대를 건강하게 살아가는 기적의 ‘맨발 걷기’ 유튜브 동영상이었다. 5일째 되었다고 맨발 사진을 올렸더니 바로 작은누나가 보내온 것이다. 가까이 있으면서 동생 건강을 신경 써 주는 사람 중 하나다. 앞으로 건강이 중요한 때라 걷는 운동을 하고 있다면, 맨발로 바꿔 보라고, 잊을 만하면 이야기했다. 적당한 장소를 찾으려 주변을 살폈다. 넓고 좁은 도로는 아스팔트로와 콘크리트로 덮여 있어, 걸을 만한 흙길은 찾기가 어려웠다. 내가 근무하는 현장은 산업 단지에 진입하는 연결 도로로, 기존의 철도 노선과 나란히 도로가 놓이며, 하천과 철도를 횡단하는 다리 공사 구간과 일반 구간으로 나뉜다. 지금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다리를 만들고 산을 깍고 도로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중 황토와 마사토로 농지를 메워, 성토 작업을 끝내고 포장 공사를 하려고 준비 중인 폭 10m 길이 600m로 반반하고 깨끗한 곳이 있다.
월요일 아침 서둘러 출근했다. 승용차로 2~3분 이동 후 한쪽에 차를 세웠다. 양말을 벗고 차문을 열었다. 여름철이라 몸이 더워서 그런지 차가운 땅의 기운이 발끝으로 전해져 왔다, 시원해 참 좋았다. 그것도 잠시 차에서 일어서는데 82kg의 무게가 발바닥으로 그대로 옮겨졌다. 콩알보다 약간 작은 부순 모래가 발바닥을 파고들었다. 따끔하고 아팠다. 천천히 한 발을 옮겼다. 꾸부정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는 내가 봐도 우숩게 보였다. ‘이것도 참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생각하며 발 앞만 보고 걸었다. 멈추고 걷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발바닥이 화끈거렸다.
‘젊었을 때 건강을 챙겨라’ 할머니께서 내게 귀가 닳도록 들려주던 말이다. 어린 나이에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로 여겼다. 영원할 것 같은 청춘도 지나가고 이제 중년의 위치에 서 있다. 100세 시대에 “감히 네가 중년에 끼겠다고?” 할지 모른다. 반환점을 돌아 원점을 향해 다섯 살 나이로 다시 서 있다. 아침 7시 15분, 20량쯤 되는 긴 케이티엑스(KTX) 열차가 계룡에서 서울을 향해 지나간다. 1.8리터 플라스틱병에 담아온 물로 발을 씻고 시동을 건다. 나도 같이 출발한다. 새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