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담
-자기 이야기를 쓰자
오래 전 일이다. 날마다 내게 이메일을 보내주는 친구가 있었다.
보내주는 건 좋은데 내용을 보면 인터넷 카페 여기저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온갖 ‘거룩한 말씀’들이었다.
참다못해 내가 한마디 했다. 성현의 말씀이나 목사님, 스님 말씀을 전달하는 일 그만하고 자네 이야기나 써서 보내게. 자네가 살아오면서 겪은 이야기나 생각을.
‘명심보감’같은 근사한 글귀를 퍼 나르는 사람을 보면 난 이상하게 여기네. 왜 굳이 그걸 남에게 전하려 하는가? 명심하면서 깨달으라는 건가? 공자도 이런 말씀을 하셨지. 세상 사람들이 지닌 큰 병폐는 무릇 남의 스승 되려고 하는 데에 있다, 고.
그러니 ‘고도원 편지’나 성현의 말씀을 나한테 보내지 말고 서툴더라도 자네 이야기를 써 보내게. 나는 그게 듣고 싶고 궁금하네. 우리 나이가 몇인가?
정 할 말이 없다면 차라리 야한 사진이나 복사해서 보내게. 나는 그게 훨씬 마음에 들고 흥미가 있네. 우리 사이에 무슨 흉이 되겠나.
성현의 말씀을 퍼 나르는 것은 좋으나 자칫하면 상대를 매우 짜증 나게 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막말로 하면 공자 말씀을 베껴 아무에게나 보내는 게 아니다.
적어도 성현의 말씀을 베껴 보내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착각을 하고 있다. 성현의 말씀을 띄워 보내면 자신이 아주 그럴듯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착각을 한다.
한마디로 쏘아붙인다면 <너나 잘 하세요> 다.
함부로 까닭 없이 성현의 온갖 좋은 말씀을 복사해서 보내지 말자. 그건 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상대의 인격을 은근히 무시하는 처사다. 이런 거룩한 말도 좀 알고 살아라, 하고 은근히 훈계하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들리기 때문이다.
차라리 소박하더라도 자기 말, 자기 생각을 써서 보내자. 그러면 오해를 살 까닭도 없다. 제발 설교하려 들지 말자. 설교는 붓다, 예수, 공자, 마호메트로도 충분하다. 우리 같은 중생은 그저 묵묵히 듣고 조금이라도 실천하면 된다. 아직도 그런 말씀 못 들었으면 혼자 책을 통해 들으면 된다.
자기나 나나 부처가 못된 중생이고, 지식도 거기서 거기인데, 누가 누구에게 은근히 가르치려 드나. 상대가 아직 미성년이고, 학교 다니는 학생이고, 어린 나이라면 또 모를까. 듣기 싫어도 인생 선배인 어른들로부터 좋은 말씀은 들어야겠기에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처지에선 상대에 대한 큰 실례다.
인터넷 카페를 조금만 뒤져도 온갖 좋은 말 다 끌어다 도배해 놓은 카페가 수두룩하다. 쓴웃음이 나온다.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올려라. 서툴더라도. 쓸 게 없으면 내가 오늘 책을 봤는데 이런 구절이 있더라, 하고 그냥 옮겨놓고 소감이나 써라.
도나 개나 붓다, 예수, 공자, 마호메트 흉내를 내려고 한다. 그런데 세상은 왜 이 모양인가?
동시를 쓸 때도 자신이 철학자인 것처럼 인격이 고매한 종교인인 것처럼 쓰는 이를 예전에 자주 보았다. 그런데 전혀 시가 되어 있지 않았다.
김춘수 시인이 한 말이 생각난다.
‘시에서 중학생 수준의 철학만 보여도 감동하는 이들이 있다.’고. 특히 동시에서 독자가 아이들이라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교훈 따위를 집어넣는데 참 유치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제발 함부로 동시에서 설교나 훈계를 하려 하지 말자.
스님 앞에서 설법하려는 격이라는 핀잔을 들을 수 있다.
(2008. 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