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욕지-통영-거제 탐방 기행문 2회차를 올리네요.. 옛친구들과 모처럼 가는 데마다 경로우대 할인 받으며 그런대로 괜찮게 다녀왔다 여김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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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거제를 꿈처럼 다녀오다 (2/3)
작성자: 김재민
2022. 7. 27.
<욕지도에서의 첫 날 오후>
권마에의 소나타 차를 이기사가 배에서 끌어낸 후 우리는 눈에 보이는 마트 같은 데를 가 내일 아침으로 때울 햇반, 라면, 야채, 과일, 식수, 맥주, 소주, 마른 안주 등을 사서 차 트렁크에 집어넣었다.
그 다음 첫 식사메뉴로 수년 전부터 욕지도에서 성공해 운영하는 바다 위 고등어 양식장에서 키운 활어를 회로 맛보여 준다는 고등어 전문 횟집을 찾아들어갔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 여행경비 좀 여유있게 걷어(최종 정했을 때 1인당 22만원) 괜찮은 팬션에서 숙박하고, 지역 특산 맛집에서 해당 메뉴들을 시식하며 유유자적하게 거닐며 다니자는 것이었다.
이기사가 위 절제로 용량있는 식사를 하지 못하니 남은 세사람용 고등어회 중짜(8만원)와 이기사용 고등어 조림, 공기밥, 소주 한병을 주문해 먹으며 욕지항 입성을 축하했다. 말로만 듣던 고등어 활어회는 타지역에서는 양식이 되지 않아 좀처럼 접하기 어렵다는 희귀성에 힘입어 먹어보니 대단한 별미였다. 이기사도 흔치 않은 욕지도 특산 메뉴라는데 큰 호기심을 내보이며 활어회 몇 점을 시식하고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런데 사실 숨은 카드는 고등어 조림이었다. 고등어가 워낙 싱싱하다 보니 양념도 양념이지만 평상시 집이나 육지식당에서 먹던 조림 맛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잘 안마시던 소주도 고등어 회와 조림 안주 속에 솔솔 들어가 몇 잔인가를 받아 마셨다. 권마에도 얼마 전에 시니어 옷 모델 대회에 나간다고 억지 다이어트를 했다가 대회도 끝나고, 맘에 드는 멤버들과 같이 여행을 하니 편한 분위기에 휩싸여 송박과 나 못지 않게 젓가락질이 바빴다. 이기사는 차를 몰아야 한다는 책임감에 알콜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내일 아침을 위해 함께 나온 김치와 상추, 깻잎, 마늘 등을 떠날 때 싸달라고 하자 주인 아줌마는 흔쾌하게 챙겨주고 김치는 따로 한 비닐봉지 더 싸주는 시골 정을 보였다. 11만원 정도 나왔을 계산을 회계담당이기도 한 이사장이 카드로 치루고 우리는 예약한 숙소로 차를 몰고 가며 수풀 우거진 그윽한 산길 도로와 멀리 펼쳐진 그림같은 바다 경관을 감탄 속에 두루 살폈다. 어떤 숲 장소에는 동남아 열대국들 같은 야자수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일행 모두는 이 섬의 이국적인 수려함에 단박에 빠져 오자고 바람잡은 나도 많이 뿌듯했다.
한 20분 쯤 달려 우리의 첫 밤을 묵을 숙소인 ‘느티나무’ 펜션에 도착했다. 바다로 해떨어지는 석조를 볼 수 있는 언덕배기에 자그마한 세 동의 건물로써 아담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언덕 아래로는 몽돌해변이 보이고 그 옆에는 바다낚시도 할 수 있는 공간이 보였다. 평일 오후에 왔던 터라 우리 일행만 있었다. 주인이 안보여 전화를 했더니 자신은 마침 아랫마을 어느 카페에 있다며 저녁에 올라갈 것이며 우선 방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 위치를 알려줬다.
방에 들어서니 10명은 너끈하게 묵을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실내 화장실과 샤워실, 취침용 이불과 침구들을 확인하고 각자 짐을 풀고는 세수와 소변만 보고는 차를 타고 욕지도 1차 순환 드라이브에 나섰다. 차를 안가지고 왔더라면 어찌 했을까 할 정도로 차를 페리호에 태워온 것이 신의 한 수라 할 정도로 멋진 의사결정이었다. 차를 제공한 권마에에게도 사의를 깊숙이 표하니 흠흠 하면서 흡족해 했다. 좁은 섬이라 택시 같은 것은 눈에 띄지도 않았고, 대중교통 버스도 기본노선만 띄엄띄엄 다니는 것 같아 차가 없으면 비경들은 생 도보로 다니는 수 밖에 없을 듯 했다.
상황에 딱 맞게 차를 제공해 우리에게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이동의 자유를 활짝 펼쳐준 권마에가 ‘인간적 부자’의 표상이라 할 ‘경주 최부자’ 집 후손처럼 후덕하게 여겨져 업어주고 싶을 정도로 맘에 들었다. 거기다 베테랑 기사 이사장이 약간 투덜거리면서도 노련하고 성실한 운짱 역할을 깔끔하고 책임감 있게 맡아주니 초반 여행 분위기가 팍 살았다.
입항한 여객터미널 뒤쪽 지역을 차로 둘러보니 48년 전에는 보지 못한 이 섬의 먼 바다와 함께 어우르지는 후면 경관과 비경들이 속살을 한번에 내보여주듯 눈 앞에 좌악 드러났다. 자연이란 존재의 진실된 본질을 갑자기 우리에게 선사하듯.. 그냥 헉! 하고 넋놓은 채 빠졌다.
그러다 어느 사진 그림이 죽여줄 듯한 포인트 같은 장소에 다다르자 거기에는 마침 중년부부 두 사람이 호젓한 그릴 파티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방해하는 듯 해 우리가 사진만 몇 방 찍고 바로 물러날테니 좀 찍어주시겠냐고 부탁하자 울산에서 왔다는 부부 중 여자분이 흔쾌히 우리 4인용 사진을 위해 여러 컷을 눌러주었다. 아마 낙조가 가까워진 시간이라 사진 빨이 가장 잘 나올거라 말하면서... 나중에 보니 그런 것 같았다.
멋진 초기탐색을 끝내고 펜션 아지트에 돌아와 다리가 아파 더 이상 걸어 이동하는 것은 사양하겠다는 송박은 혼자 머물게 하고 우리 셋은 아까 봐둔 저 아래 몽돌해변으로 걸어 내려갔다. 언덕이 좀 가팔랐지만 충분히 오르내릴만 했다. 해변에 다다르니 낚시꾼들 한 두명과 함께 동행인 듯한 젊은 여인 두 명이 근처에 보였다.
그 사이 어느 틈에 몽돌 해변가를 거닐던 권마에가 사람이 적게라도 있건말건 옷을 벌써 훌훌 벗고 물 속에 뛰어들어 개구리 헤엄을 치는 게 아닌가.. 수영복도 없이.. 독일시절 북독에서 FKK라는 누드비치에 간 적이 있었다는데 그 때도 여학생이 포함된 일행 중 다른 한국인들은 모두 다 쫄아 있는데 자기 혼자서만 올 누드로 독일인 무리에 끼었다는 자랑을 하던 사람이라 여기서의 홀딱 쇼는 아무 것도 아닌 듯 했다.
자신의 호연지기적 일탈성에 스스로 흐뭇해 하던 권마에가 젖은 옷을 걸치고 나오자마자 휴대폰이 없어졌다고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아까 식사했던 고등어 횟집 아니면 울산부부가 사진 찍어주던 그 장소에 놓고 온 게 아닌가가 의심스럽다 했다. 이 문디가 어리버리하는 행사를 하더라도 항상 大兄의 자세로 받아주는 이사장이 그 뒤숭함에 한참 뭐라 하면서도 울산부부 자리에서 놓여진 폰을 본 것 같다며 거기부터 들리려 했다. 송박은 그냥 방을 정리하겠다며 있겠다 하길래 우리 셋은 차로 그 자리를 찾아갔다.
도착하니 부부는 아직 그 장소에 있었다. 그런데 이사장이 얼핏 봤다는 폰은 그 여자분 거였다. 이제는 횟집으로 가는 수 밖에 없었는데 혹시나 하고 송박에게 전화를 했는데 마침 방에 들어가 있던 이 아재가 권의 폰이 방 안에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아이고 문디.. 혼자 홀딱쇼 하며 개폼을 다잡더니만 다른 사람을 이리도 똥개 훈련을 시키다니.. 그냥 한 대 줘패주고 싶었지만 풀이 죽은 채 꼬랑지를 내린 인간을 같이 늙어가며 차마 그리 할 수는 없어 허허 하며 너그러운 체 여행지에서의 첫 해프닝으로 여겼다.
<독일시절의 추억담 공유 타임 밤>
펜션에 다시 돌아와서는 차례차례 샤워를 하고 나왔다. 내가 침구와 베개를 방 공간에 배급하듯 펼쳐놓고, 잠은 각자 자고 싶은 곳에 선착순으로 고르게 했다. 그 사이 다른 친구들은 차에서 내일 아침에 해먹을 라면, 햇반, 과일, 밑반찬류, 소세지, 맥주 등을 옮겨왔다. 권마에가 라면을 이것저것 넣어 부대찌개처럼 끓이는 사이 난 햇반을 비치되어 있는 전자레인지에 넣어 따뜻한 밥을 만들고, 상차림을 거들었다.
식탁에 차려내니 몇 시간 전에 고등어 횟집에서 끼니를 든든하게 때웠다고 여겼지만 여기서의 저녁식사도 페이스를 지킨 이사장을 제외한 세명은 식욕 왕성하게 해치웠다. 먹었던 그릇 후다닥 씻는 걸로 설거지가 마쳐지자 펜션에 비치되어 있던 접시와 과도를 찾아와서 권마에가 참외들을 깎아 낮은 탁자 위에 내놓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송박은 고등어 횟집에서 챙겨온 일회용 종이컵들을 내놓으며 무슨 마른 안주 하나와 함께 테라 맥주 큰 패트병으로 술상 세팅을 마무리했다.
맥주 컵을 돌리며 각자 독일시절의 애환 담긴 얘기와 기억나는 주변 유학친구들의 스토리들을 교환하며 추억의 회상 공유를 시도했다. 예상했던대로 자기와 가까운 바운더리에 있던 독신 유학생들로부터 시작해서 여학생들에 대한 성격과 겪었던 특별한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웠다. 거기다 당시 함부르크 학생사회에서 유명했던 어느 남녀커플의 연애사와 운명적 깨어짐, 그 복합적 원인에 대해 각자가 생각하는 바 견해들을 교환한 뒤 남녀 주인공들의 최근 에필로그에 대해서도 들은 바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다음은 한국에 들어와 각자가 살아왔던 스토리들을 개진했는데 송박은 선박 프로펠러에 대한 박사논문 하나 써내고 한국 와서는 거제에 있는 삼성중공업에 들어가 한 13년 삼성 밥을 먹다 수틀려 나온 뒤는 대전 쪽에 있는 선박연구소에서 자신의 직장 캐리어를 마쳤다 했다. 연도를 헤아려 보니 내가 현대중공업에 근무한 기간과도 상당부분 겹쳤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바로 그 짝이었다.
이 충청도 아재는 성격 강한 자기 와이프와 아들 둘 낳고 장성할 때까지 그럭저럭 파토는 내지 않고 살아왔지만 어째 마음 한 구석에 자아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느껴 2000년대 초부터 기 에너지와 기공 연마술에 몰두해 상당한 채움의 체험을 했다고 실토했다. 두 달 전 부산 우리집에 와서 내 얼굴에 수술 후 기가 많이 빠진 듯 하다며 머리 위에 천공을 열고 기를 불어넣어주는 도술을 펼치고, 약식 천도제를 지내준 것도 다 그 깨달음의 일부를 베푼 일환이었다고 했다. 내가 그 의식을 같이 행하고 나서 심리적으로 상당한 효과를 본 것 같았다는 느낌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자 송박은 기분이 흐뭇해져 내일 아침에 우리 세 사람에게 같은 기공 훈련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전북 익산 출신인 이사장은 소시적부터 생활력 강하게 성장해 독일 유학길에까지 올랐지만 유학 중에 만난 학업과 연애 파트너였던 독일 여인들의 도움 속에 자신도 살아오며 단련된 생존력으로 여행 가이드와 통역 알바 등으로 아헨 공대에서 기계공학 공부를 병행하며 성공적으로 마치자마자 국내에 일자리가 생겨 박사과정은 생략하고 귀국했다는 것이었다. 현대모비스 기술영업 파트에서 나름 잘 나가다가 비윗장틀리는 사건을 맞고는 외국계 IT회사로 옮겨 부사장까지 지내다 2년 전에 퇴임했다는 직장경력을 들려주었다.
한국기업들이 8, 90년대 독일로 독일 기계류를 사러 올 때 통역을 하며 한국기업 관계자들과 인맥을 다양하게 쌓은데다 귀국후 한국에서의 직장운도 떨어지지 않아 경제력도 쏠쏠했다고 중간 깨알 자랑도 했다. 자식은 딸, 아들을 두었으며 이들이 성장해 수년 전 와이프와 모두 캐나다로 가족 이민을 떠났기에 자신은 지금 신당동에서 홀로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다 했다. 따라서 이런 여행단에는 언제든지 끼일 수 있다며 건수가 있으면 계속 불러줄 것을 시사했다.
<둘째 날 여정>
한밤 중에 내가 소변 서너번 보러 다닌다고 화장실을 들락거렸음에도 특별히 코고는 이나 이가는 사람이 없었든지 일행은 무던하게 하룻 밤을 보냈던 모양이었다. 모두 세상 한 두해 살아본 군번들은 아니기에 사소한 바스락거림에는 크게 과잉반응함이 없이 자기수면 페이스는 확실히 지키는 게 꽤 맘에 들었다.
7시 경 모두 일어났음을 확인하고는 각자가 눈치껏 세면 샤워와 용무들을 마치자 식사하기 전에 송박의 지도하에 氣받음 의식이 진행되었다. 나는 교회나 성당 및 법당에서보다는 이 氣의식에 꽤 깊은 호기심을 품고 송박의 기의식을 대했다. 이 아재의 진지함에 한번 보조를 맞춰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다른 두 사람을 보니 권마에는 여행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예의상 따라해 주는 자세가 역력했고, 이사장은 큰 수술도 했겠다 나와 같은 맘이 들었는지 시종 진지한 자세로 임해 송박 맘에 들어 氣받으려는 폼에서 아주 각이 잘 잡혔다고 칭찬을 받았다.
한 30분 쯤 한 뒤 첫날 아침처럼 라면과 남은 햇반으로 아침 끼니를 때우고 펜션을 떠날 채비를 했다. 펜션 마당에서 먼 바다를 굽어보니 그 경관의 수려함이 참으로 산뜻하고 그 어떤 기품마저 서려 있었다. 우리는 이기사가 모는 차로 유명하다는 출렁다리 3곳 중 두 곳을 눈에 띄는 대로 차를 세워 탐방하고 인증 샷과 함께 다리 위에서 펼쳐진 주변 풍경을 감탄 속에 담았다.
찾아가는 길 옆에 펼쳐진 다양한 경치들이 굽이 돌 때마다 드러나 사람의 숨을 멎게 하더니 유명 사이트들도 확실한 이름 값을 했다. 나 뿐만 아니라 일행 모두에게 이번 여행지들이 어쩌면 일생에서 마지막 방문이 될 지도 모르는 판에 눈과 머리 속에 많이 담아가라고 그 자태들을 마음껏 펼치려는 듯 했다. 특히 음악 연주와 지휘 외에 추상화 그리기에도 한 조예가 있는 권마에에게 상당한 미학적 모티브들을 뇌리 속에 박아 놓았을 것이라 믿어지기도 했다.
출렁다리들을 보고는 어제 차로 욕지도 한바퀴 돌았겠다 따로 더 챙겨 볼 장소가 이제 없는 듯해 1시경에 나가는 페리를 타고 통영으로 돌아가자는 중론이 모여졌다. 그래 오후 한나절은 통영에서 볼거리 살펴보는 게 더 났겠다 싶어 원래의 마지막 출항편 페리선 예약을 취소하고 앞서 가는 편으로 바꾸었다. 뭐 큰 문제 없이 표를 교환해 얼마 안되어 들어오는 페리선에 일행은 차량과 함께 올랐다.
배 위에서 슬슬 멀어지는 욕지섬을 살피니 어째 감회가 제법 오고갔다. 48년 전 육체적으로 팔팔하던 청년이 우연히 여기에 들어와 하루를 묵고는 나온 뒤 이제 60 중반의 노구가 되어 친구들과 함께 방문해 다시 찾아오리라는 오랜 내면의 약속을 이행하면서 비경들을 살펴보고 돌아가는 여정이 나름 그럴 듯 했다. 가는 길에 보여진 한려수도의 경관은 올 때보다는 익숙해져서인지 선실 안에서 살펴보는 것으로 대신하고 배갑판에는 몇 번 나가지를 않았다.
1시간도 안되어 통영항이 눈에 들어왔다. 일행 모두 차에 탑승한 상태로 페리호에서 내렸다. 지세포 펜션에서 내일 아침 먹을 라면, 햇반 등과 저녁 대화시간에 마실 맥주와 안주, 과일 등을 부두 근처 마트에 들어가 구입했다. 그리고는 통영 용화사가 있는 미륵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타는 곳으로 차를 몰아갔다. 케이블카로 산정을 방문한 뒤는 거제로 들어가 해금강(海金剛)을 탐방하기로 했는데 가는 길에 돌틈이 해수욕장도 잠깐 방문하기로 했다. 해금강까지 본 뒤에는 지세포로 내려가 장어구이 저녁을 하고 오늘 밤 숙박지인 스미르 하우스로 들어가는 일정이었다.
(통영에서부터의 여행기는 마지막 회에 계속..)
첫댓글 생선조림은 생선도 싱싱해야 하지만 무우가 더 맛을 상승시킵니다.
고등어회는 갈치회와 같이 참 먹을 기회가 없는ㄷ,사진만으로도 프티알린이 막막 나옵니다.
남자들만의 여행이 더욱더 재미있게 보입니다.
여성동무들이 끼이면 여성 특유의 꼬롬한 이상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길영공은 먹방계에도 한 두가닥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생활지식인의 독보적 거두라 아니할 수 없겠소이다. 난 아직 갈치회와 멸치회가 별미라는 말은 익히 들었지 여태 맛보지는 못했네요.. 언젠가 도전할 날이 도래하기를 기대함다.
말마따나 늙은 남자들만의 여행도 제법 괜찮습디다. 지 마누라나 예전 파트너들 씹어대는 경연대회도 아주 그럴 듯 했고요.. 이 과정을 통해 동류적인 결속감도 많이 강화되었심다. 그럼에도 젊은 여인 가이드가 끼었으면 하는 숨겨진 맘은 결코 무너뜨리지 못합디다.. 길영공이 예전에 읊었던 '늙은 말도 햇콩을 좋아한다' 말이 항상 귀에서 뱅뱅 돌고 있네요..
고등어 회를 보노라니 정말.. 근자 서토가 가진 꿈을 김박사를 통해
이루는듯한..일종의 '드림캄트루' 마저 느끼게 됨미다.
사실 고등어 회는 일반적이지가 않은데..아주 맛깔나게 상을 차려놓았군요.
일에 완전 손을 놓고 나면..한국의 해안가를 돌며 다양한 회를 먹어보는
일정을 가져봐야 겠다는 생각을 간간이 햇엇지요.
북한의 빗장도 머지않아 열릴테니.. 그 때는 북의 해안지역 까지 돌면서
맛난 바닷가 음식을 마음껏 묵어봐야 겟다는 소박한 꿈을 지니고 있슴미다.
그동안 타국 땅에서 얼마나 제대로 묵지 못햇으면...참...^^^
욕지도가 고등어 활어 양식, 감귤 및 고구마 경작이 특히 잘 되는 섬이라 합디다. 고등어는 성질이 급해 잡아놓으면 몇 분도 안되어 죽어버리는 생선이기에 횟감으로 조리하자면 바다 양식장에서 바로 건져와야 하는 어종이라 하데요. 이 바다 양식을 욕지도 어민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성공시킨지가 10년이 채 안된다 합디다.
아무튼 이리 까다로운 양식환경을 만족시켜야 하는지라 당분간은 고등어회가 욕지도의 특산물 같은 지역 별미 음식으로 대접받을 듯 하데요. 그 희소성적인 조건 때문에 여기서 먹는 회와 조림이 많이 특별한 것 같습디다. 서토도 살아 생전에 고등어회 한번 맛보고 이승하직하기를 본 연사 기원함미다아~..
그런데 잘 나가다 왜 이 장면에서 북한 동해지역을 끼워넣는가 하는 행사가 과연 오랜 북빠 고첩 서토답소.. 공작금도 만년 외상이거나 쥐꼬라만큼 받으면서도.. 그 의리와 충성심을 언젠가 알아줄 날 오기를 바라외다..
'자연이란 존재의 진실된 본질을 갑자기 우리에게 선사하듯.. 그냥 헉! 하고 넋놓은 채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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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의 풍경이..그리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임미다.
권마에란 분의 수영장면을 읽다보니..이전 대학시절 강원도 소금강 폭포에서
완전 발가벗고 물에 뛰어들던 장면과...
홍도에 도착하여 해안가 자갈밭에 짐을 풀자마자.. 옷입은 그대로 바다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때가 생각이 나는군요.
저도 툭하면 발가벗고 물 속으로 뛰어드는 경우가 제법 있는 바..
그 때마다 상당한(?) 자유함을 크게 느끼게 되더군요.
수영팬츠 하나를 걸치느냐 마느냐에.. 그런 큰 차이점이 - ^^
오밀조밀한 여행 내용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편을 또 기대하게 됩니다.
권마에가 김모를 무작정 좋아하는 것, 일탈적 내면을 자주 주체하지 못하는 것, 여인 복이 특별하다는 점에서 서토와 닮아보이는 구석이 많은 아재 같소이다. 이번에도 여행 중에 뒤숭한 짓이나 소리 할 때마다 내 못된 혀로 참교육을 많이 시켰지만, 그때마다 부산놈 특유의 오바하는 무식체 말투에도 내면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안동지역 양반가 자제답게 삼켜주는 인내심이 서토와 비스무리한 심성인이라 여겨졌네요..
3부에서 소개하겠지만 이 아재도 첫 결혼은 어째어째 깨어졌지만, 한국에 돌아와 집안좋은 주한 독일대사관 여외교관(영사급)을 외국녀 합창단 지도하다 건져 처가의 강력한 반대에도 콩깎지 씌인 독일녀 맘을 사로잡아 대박성 재혼으로 연결시켰지요. 하지만 25년째 딸 셋 낳고 키우며 찌지고 볶는 생활로 인해 인생의 희로애락도 잘 알게된 양반임다..이쪽 얘기도 개인적 프라이버시 너무 깊게 건드리지 않으며 내가 보는 시각을 조심스레 단디 기술해 보리다.
노땅들이 몰겨다니면서 옛날이바구에 뭐 기공훈련 기타 등등...
철없는 시절 비슷한 구석도 있으면서 과거회상적인 면도 있고 하여간 쏠쏠히 재밋게 다니는 것이 눈에 선합니다.
지박사가 잘 봤소.. 기공술사, 일탈적 광대, 사막에서도 살아남을 생존능력자, 어중개비 먹물로 구성된 요 멤버들로 모이니 딱 거기에 맞게 꼴리는대로 발가는대로 먹고, 자고, 방문하며 싸돌아 다녔지요.. 사람들이 이번에 오랜 밥벌이 사회생활하며 묶었던 때들을 제법 털어냈을낌다. 마크 트웨인 작 '톰 소여의 모험' 소설에 나오는 천방지축 아그들을 늙으막에 꿈꾸면서 말이지요....
여행기를 읽어 보니 새삼 느끼는 게 한국이 저 촌구석 섬동네까지 여러가지로 시설이라든가 인성이 많이 발전하고 세련됐구나 싶네요. 김박이 풀어내는 세 사람의 이야기 내용은 물론이고 한국 사람들의 경험의 지평이 많이 넓어지고 다양해졌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우리가 어릴 때는 참 우물안 개구리 같이 좁은 세상에서 겁 먹고 살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신에 잃은 것도 많고 새로운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적인 가식 없는 자상한 기행문은 어디서 찾아 보기도 쉽지 않은 것이란 생각에 감사~ 일종의 세밀사로 시대적 증거가 될 법도 합니다.
벌써 다녀온 지 열흘이 다 되어가지만 이번 여행은 꽤 속닥했던 노익장 젊은이들의 도서여행으로 기억될 듯 함다. 법사 말대로 예전하고는 비교가 안될만큼 우리 도서지방의 인프라나 현지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엄청나게 발전했음을 인지하게 해주데요.
40년전 독일시절 돈 없던 유학생들의 허리 졸라매었던 절약여행과는 달랐던 풍성한 특산음식 시식과 안락한 숙박수준의 상승에서도 상당한 격세지감을 느꼈심다.. 법사가 미시사적 기행문으로써 가치가 있을 것 같다고 평가해 주니 작은 보람을 얻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