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우정
4월 첫째 주는 설렘으로 보냈습니다. 고등학교 동기인 K형이 오사카 여행을 계획하고 소요 경비를 부담하겠다고 해 L형과 부산에 사는 O형이 함께 떠나기로 했습니다. K와 L형은 시골에서 늘그막에 혼자 사는 나를 찾아와 하루를 보내고 훌쩍 서울로 떠나기도 하는데 새삼 우정이란 이런 것인가 하고 느끼게 해줍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럭저럭 할 일도 있을 것이고 만날 사람도 있을 터인데 가깝지 않은 거리를 차를 몰고 달려온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나는 누구에게나 그런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자랑합니다. 물론 그런 수고를 아끼지 않는 친구에게는 늘 미안하며 집에 도착할 때면 고개가 숙어지고 공연히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둘째 주는 부산서 시작하는 배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소풍 가는 아이처럼 밤잠을 설치고 서울역에서 만나 KTX 열차로 부산에 도착해 O형을 만나 점심을 든 후 오사카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L형은 평소 차멀미를 해 운전을 도맡는 나를 걱정하며 은근히 걱정하는 듯했어도 실은 놀리는 눈치였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현해탄(玄海灘)의 높은 파도에 식은땀이 솟고 속이 울렁거려 야단이 나겠다고 지레 걱정하던 차입니다. 친구의 권유로 멀미약을 먹어 둔 것이 효과가 있어서 아무 일 없이 파고를 넘었습니다. 문제는 나를 놀리고 은근히 즐기려던 L형이 견디지 못하고 심한 멀미에 시달리다 못해 드러눕고 말았습니다.
악명 높은 파랑(波浪)은 다섯 시간이나 계속되어 친구는 시체처럼 지내야 했습니다. 다행히 일본 영해에 들어섰을 때 물살이 잔잔해져 그나마 견딜 수 있었습니다. 여행이란 여러 가지 경험을 가져다주지만, 시작부터 멀미라는 덫에 걸려서 고생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멀미도 여행의 한 부분이어서 뭍에 내리고 난 후에는 웃음거리가 되어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L형은 내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합니다. 나는 농담 삼아 걱정한 것이 아니라 즐기려 했으니 그 죗값을 받은 것이라고 이죽거렸습니다.
여행은 언제나 어느 곳을 가나 즐거운 것입니다. 닷 세를 머무는 동안 2백 리 정도를 걸었어도 돌아올 힘이 남았다는 것은 여행이 주는 즐거움과 설렘이 작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시작부터 게으른 여행자(Lazy Traveller)를 자청했으니 급할 것도 모자랄 것도 없었습니다. 가다 쉬고 쉬다 가고를 반복했습니다. 경치가 좋은 곳이 관광지요, 머무는 곳이 쉼터였습니다. 우정 마지막 날은 와카야마 온천장을 찾아 하룻밤 머문 것 말고는 어느 곳을 특별히 정하고 간 곳은 없습니다.
굳이 기억해 내자면 생각나는 곳이 없지는 않겠지만, 친구와 함께 유유자적 오사카 거리를 어슬렁거린 것, 미세 먼지로 가득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맑은 하늘과 청명한 공기를 마실 수 있었던 것, 잘 정돈되고 깨끗한 거리를 어디서나 만날 수 있었던 것, 누구든 길을 물으면 친절하고 정성껏 안내해 주려고 했던 기억, 관광지가 아니면 영어 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 등을 떠올립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인들이 입에 올리는 친일은 무엇이며, 반일을 무엇인지 아리송해지기도 했습니다.
여정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두 가지 화두 중 하나는 어제 다시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고, 그다음은 우정에 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K형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고 실행할 수 있었을까 하는 놀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평생 누구에게 손바닥만한 우정 한번 펴 보이지 못한 나에게는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돈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이를 우정이라고 이름을 걸었지만, 솔직히 미안하니 붙인 이름일 터이고 우정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고맙고 한편으로는 쑥스럽기만 합니다.
지금은 집에 돌아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여전히 무슨 말로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우정이라고 말하려니 이 또한 여전히 쑥스럽고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나는 저들에게 우정이라 불릴만한 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K형은 통장에 친구를 만나면 쓸 돈을 넣어두었다며 만날 때마다 식사비며 모임 경비를 독차지합니다. 어쩌다 찻값 한 번 내는 것도 눈치가 보입니다.
어느 날 저녁 잠자리에 누워 생각해 보면 이런 호사도 있나 하는 생각에 잠이 달아나기도 합니다.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했기에 이런 호사를 누리나 하고 생각하면 친구가 뭔가 잘못 본 것일 거야, 하는 걱정 아닌 걱정에 고개를 가로졌기도 합니다. 참 좋은 친구를 만나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는데 친구는 베푸느라 애쓰니 세상 참 불공평합니다.
나이가 칠십을 넘었으니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 백 세 시대 운운해도 몸이 늙어가는 것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뒤에서 걷다 보면 다리를 끌기도 하고 절기도 하면서 구부정히 걷는 모습이 딱하지만 이렇게라도 함께 세상 주유하며 즐기는 것은 자랑할 만합니다. 저들보다 먼저 세상을 뜨는 것이 소원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저렇게 좋은 친구를 먼저 떠나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다니는 중 오사카성 벤치에 앉아 문득 시구 하나가 떠올라 적어두었습니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도 우정은 튼튼하구나.
그래서 눈물이 나누나.
첫댓글 선생님께서 전생에 친구분에게 많이 베푸셨을겁니다. 공짜는 없습니다.
그 친구분이 더 기쁘셨겠어요. 주는 기쁨이 훨씬 크고 여행 함께 할 벗이 있다는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셨을거 같아요~~
그랬다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신세 지는 기분이라서 부담이 됩니다. 갚지 못하고 말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