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장 最後의 決戰
1
피보라의 서막(序幕).
싸움은 드디어 시작되었다. 중원 무림의 정사(正邪) 양대고수(兩大高手)들과 서장(西臟) 랍찰파(拉刹巴)의 십대마불 간의 대혈전(大血戰)!
아아, 이것은 무림 수천 년사 이래 아직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공전절후(空前絶後)의 대혈투(大血鬪)였다.
물(水)과 불(火)처럼 절대 상극(相極)을 이룬 전중원(全中原)의 힘 대(對) 서장(西臟)의 마교 랍찰파의 십대마불.
인원수는 중원 측이 훨씬 많았다.
허나, 십대마불의 무서운 공격은 중원의 인물 중 그 어느 누구도 막아내지 못했다.
그것은 엄청난 도륙과 극랄한 참살의 현장이었다.
십대마불(十大魔佛)의 손이 한 번 번뜩일 때마다 수명의 무림고수들이 무참하게 거꾸러졌던 것이다.
그래도 근근히 버티는 고수들은 북해빙백살 용호상, 금천신모, 냉천신군, 그리고 곤륜쌍로 불마신승 등, 단지 그 몇몇 정도일 뿐 대부분의 무림고수들은 제대로 손 한 번 휘두르지도 못하고 지리멸렬(支離滅裂)했다.
헌데 기이한 일이 있었으니, 혈사천로와 지옥귀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단지 그들과 함께 온 우내삼천존만이 악전고투를 면치 못하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2
밖에서 대혈전이 벌어지고 있는 그 시각 황보성운은 그의 방에 좌정(坐定)해 운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막 운공의 최고 중요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마지막 최절정의 관문(關門)!
그는 그 관문을 뚫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그의 주위에는 온통 현란한 금빛의 광채(光彩)가 물들어 있었다.
그 금빛 광채는 흡사 하나의 거대한 원을 연상시키듯 그의 전신 둘레로 점차 찬란무비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는 용취란이 온통 초조와 긴장에 싸인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이었다.
밖에서는 요란하게 병장기가 부딪는 소리와 함께 참혹한 비명이 잇달아 들리는데, 황보성운은 여전히 그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깨어날 줄 모르니…… 그녀는 입술을 바짝바짝 태웠다.
이때 돌연, 황보성운의 전신이 한자나 허공으로 저절로 떠올랐다. 동시에, 전신으로부터 아예 그 빛을 본다면 그만 눈이 멀어버릴 듯한 휘황찬란한 금강(金 )이 커다란 원광(圓光)을 그렸다.
동시에,
우---- 우---- 우---- 우---- 웅!
웅장한 소리가 흡사 천상음(天上音)처럼 방으로부터 온 천지를 은은히 진동시켰다. 계속 그 금강(金 )과 천음(天音)은 더욱 휘황찬란하고 웅후무비하게 울었다.
그러기를 얼마 계속했을까?
어느 순간, 돌연 금강 속에서 웅후한 앙천대소가 터져나왔다.
"으하하하…… 성공했다. 드디어 흑백쌍환의 완전한 비밀, 그 비밀을 풀어내고야 말았다. 으하하하하……"
순간, 금강이 돌연 휘리리릭 회오리치더니 일순간에 사라졌다.
동시에 그토록 웅대하던 천음(天音)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순간, 하나의 천신(天神)같은 사람이 방 안에 현신(現身)했다.
그는 바로 황보성운이었다.
용취란이 만면에 감격의 기색을 떠올리며 황보성운 곁으로 다가왔다.
"성운! 서…… 성공했나요?"
그녀의 목소리가 감격에 떨려나왔다.
황보성운은 입가에 지극히 신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소! 모두가 당신 덕분이오."
"제가 무슨……"
용취란은 당치 않다는 듯 급히 부인했다.
"아니오! 모두 당신 덕분이오."
황보성운은 천천히 용취란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용취란은 자신의 머리를 황보성운의 가슴에 묻은 채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황보성운이 귀에 문득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확연히 들려왔다. 황보성운의 안색이 굳어졌다.
"취란!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났소?"
그제서야 용취란은 생각난 듯 벌떡 황보성운의 품을 뛰어나왔다.
"아! 큰일났어요. 십대마불이 침입해 왔어요."
황보성운은 안색을 대변시켰다.
"뭣이! 그들이……"
그는 문을 박찼다.
"나가봅시다."
그는 급격히 신형을 뽑아 날렸다.
찰나지간, 그의 눈에 한 명의 노화상이 허공을 번개같이 종횡무진하면서 고수들을 죽이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 잔인무도한 수법에 치를 떤 주위의 십여 명 인물들이 동시에 공격해 들어갔다.
순간,
"으하하하…… 무형참미소다!"
그 노화상은 팽이처럼 몸을 회전시키며 지극히 막강한 암경(暗勁)을 사방팔방으로 폭사시켰다.
"으---- 악!"
"크---- 악!"
"악!"
무수한 단말마의 비명이 갈가리 대지를 찢었다. 동시에 허공에 섬뜩한 피보라가 흡사 하늘을 뒤집듯이 낭자하게 흩뿌려졌다.
아, 그것은 너무나 참혹한 광경이었다.
주위에서 득달처럼 달려들던 사람들 중 하나도 살아남은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사지가 산산이 부서지고 배가 터지고 파열되어 그 시신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노화상은 입으로 흉랄한 괴소를 날리며 주위를 흡족한 듯 쓸어보았다.
이때 황보성운의 신형이 그의 앞에 내려섰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잠룡피가 끼워져 있었다.
노화상은 황보성운의 전신을 쓸어내려보며 거만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도 덤비려는가?"
황보성운은 짐짓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너무 악독…… 하구려!"
"후후후…… 중원의 무림인은 모두 죽여야만 한다."
노화상은 음침한 괴소를 흘렸다.
황보성운은 기묘한 미소를 날렸다.
"그것은…… 망상이오!"
"망상?"
노화상은 황보성운을 힐끗 본 뒤 돌연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망상이라도 좋다. 우리는 단지 노력만 할 뿐 그 결과는 생각지 않는다."
그의 안색이 이내 싸늘히 굳었다. 그는 황보성운을 서릿발치듯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소배! 이제 너도 갈 때가 됐다."
그는 무겁게 천천히 손을 앞으로 들이 밀었다.
"죽어라!"
황보성운은 즉각 상대가 무형참미소를 전개한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극성으로 공력을 뽑아 올렸다. 그리고 전력으로 파천기를 시전했다. 찰나,
꽈---- 꽈---- 르---- 릉!
엄청난 폭발음이 울렸다.
동시에,
"으---- 윽!"
노화상은 무려 뒤로 주르르륵 아홉 걸음이나 밀려갔다. 또한 그의 입에서는 한 줄기 피화살이 허공으로 뿜어졌다.
노화상은 겨우 쓰러지려는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입을 열었다.
"네, 네가……?"
"노화상, 이것은 당신의 실수요. 나를 얕보고 팔성 공력밖에 안쓴 것이 잘못이었소."
황보성운은 냉랭한 안색으로 가볍게 조소를 날렸다.
"이…… 이놈……"
노화상은 이를 악물고 쌍수를 끌어올려 공격해 왔다.
"이미 당신은 끝났소."
황보성운은 서서히 쌍수를 끌어 올려 가볍게 후려쳤다.
"현원공공!"
순간,
"크---- 아---- 아---- 악!"
노화상은 수십 장 밖으로 날아가 사지가 분별할 수 없을 지경으로 박살나버렸다.
이때,
"성운! 조심하세요."
용취란의 다급성이 급촉하게 울렸다.
황보성운은 번개같이 신형을 휘돌렸다. 순간, 황보성운의 전신으로 무시무시한 섬광이 번뜩이는 일장이 격습해왔다.
(섬전비혈수!)
황보성운은 번개처럼 다시 파천기를 펼쳤다.
순간,
꽈---- 꽈---- 르---- 릉!
그들은 엄청난 격발력으로 뒤로 일보(一步)씩 물러섰다.
황보성운을 공격했던 노화상이 두 눈에 핏발을 세우며 격노했다.
"네가 열째인 마천불(魔天佛)을 죽이다니……"
"그대는?"
황보성운은 싸늘한 조소를 날렸다.
노화상은 격노에 수염을 떨면서 입을 열었다.
"노납은 셋째인 벽력불(霹靂佛)이다. 너를 죽여 열째 사제의 원수를 갚고 말겠다."
그는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쌍수를 내리쳤다. 그러자 푸른 섬광이 가공할 예리한 경풍과 함께 무섭게 덮쳐들었다.
"웃, 대단하군!"
황보성운은 즉각 잔영보(殘影步)를 전개했다. 그의 잔영보는 이미 최고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삼백 육십 방위로 삼백 육십의 매우 길다란 그림자가 줄줄이 늘어섰다. 물론 그의 신형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푸른 광채의 예리한 경공은 그림자로 내리꽂혔다.
파파파파파팍!
허나, 그것은 모두 허사였다.
이미 그림자가 삼백육십의 방위로 들어서는 찰나 그는 십장 밖에서 미소를 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천현문 조사(祖師)인 현현자조차도 이르지 못한 초절무비한 경지였다.
화상은 갑자기 몸을 멈춰 세웠다.
"아미타불…… 시시한 보법 따위로 노납을 속이려 하다니……"
그는 이어 손을 커다란 원형을 그리며 말을 이었다.
"랍찰파의 지고무상한 절기에 선풍강(旋風 )의 위력을 보여주겠다."
돌연 그의 승포가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의 주위로 오색이 기기묘묘한 경기가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그 경기는 점점 더욱 거세어지더니 급기야 하나의 엄정난 회오리 선풍을 일으켰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광경이었다.
순식간에 주위의 모든 사물들이 허공으로 회오리쳐 올라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웃! 엄청난 압력이다.)
황보성운의 신형이 허공으로 휩쓸려 올라갔다. 그는 전 극성의 내공을 끌어올려 파천기를 시전했다.
허나, 파천기의 힘이 그 오색경기의 선풍과 부딪치는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그대로 퉁겨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흑!"
황보성운은 급급히 찬바람 한 모금을 들이켰다.
(무, 무서운 수법이다.)
그는 가공할 살초(殺招)인 천인수(天刃手)을 시전했다.
꽈---- 꽈---- 르---- 릉!
순간, 엄청난 폭발음이 지축을 경동시켰다. 동시에 허공에 수천 수만의 번갯불이 현란무비하게 피어올랐다.
그러자 노화상의 안색이 대변했다. 게다가 그의 전신이 부르르 진동했다.
찌---- 아---- 익! 찌---- 익!
찌---- 이----- 이---- 익----! 찌----익!
노화상의 승포에 수백 가닥의 균열이 일어났다. 허나 그 노화상은 여전히 끄덕없이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황보성운은 아연실색했다. 그는 곧 안색을 서릿발처럼 굳혔다.
"노화상!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
그는 천인수를 연속 전개했다.
노화상의 두 눈이 일순 핏빛으로 변했다.
"소배! 선풍멸절강(旋風滅絶 )이다. 받아랏!"
그 괴노화상은 엄청나게 휘돌던 선풍을 무시무시한 위력으로 쭈욱 들이밀었다. 순간, 가공할 흡인력과 함께 엄청난 기운이 무시무시하게 회오리쳐 왔다. 그 경풍은 도저히 인간의 능력으로 항거할 수 없는 흡인력으로 황보성운의 전신을 잡아끌어 당겼다.
황보성운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음을 절절히 느꼈다.
순간, 그는 하늘로 왼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천상선기! 백환의 빛이 현신하도다."
순간, 그의 손에서 차마 범접할 수 없는 웅장한 백광이 현란무비하게 뻗쳐올랐다. 그는 지체없이 그 백광을 엄청나게 덮쳐드는 경력을 향해 가공할 속도로 흩뿌렸다.
그러자,
슈---- 슈---- 슉!
현란한 백광이 일순간에 섬전으로 화(化)하더니 돌아치는 경풍을 향해 쏘아갔다.
찰나,
퍼---- 퍼---- 펑!
그 하나의 섬전은 수천만 개의 섬전들로 중간에서 폭발했다.
그리고 마주쳐 들던 경력들이 바람처럼 소멸되었다. 그것은 바로 백환의 서기로 이룬 성천구도(聖天九刀)의 정수였던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광경에 노화상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 그것은 성천구도!"
바로 그 순간 황보성운은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혈천일도(血天一刀)의 일섬(一閃) 아래 제마(諸魔)가 즉사하도다."
순간, 그의 오른손에서 흑광(黑光)과 혈광(血光)이 내뻗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황보성운의 오른손에 섬뜩한 흑광(黑光)과 혈광(血光)에 휩싸인 도(刀)가 나타났다.
"혈(血)---- 천(天)---- 일(一)---- 도(刀)----!"
황보성운은 한자 한자 못을 박듯 외쳤다.
쐐---- 애----애---- 액!
혈흑광(血黑光)이 무시무시한 파공음을 일으켰다.
"끄---- 아---- 악!"
찬란한 비명이 허공을 갈기갈기 찢었다.
아---- 아, 혈천일도(血天一刀)!
바로 그 필사(必死)의 가공할 살초(殺招)가 전개되고 만 것이었다.
다음 순간, 그 노화상의 참상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의 가슴이 머리를 집어넣을 정도로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만 것이 아닌가?
그곳으로부터는 피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 노화상은 간신히 쓰러지지 않은 채 두 눈을 까뒤집고 애통한 목소리를 자아냈다.
"처, 천 년 전의…… 흑백쌍환이 또, 또다시…… 우리의 일을 방해 하다니……"
그는 머리를 들어 원망스럽다는 듯 올려보았다.
허나 그것도 일순, 그의 신형이 흡사 거목이 쓰러지듯 앞으로 꼬꾸라졌다. 죽은 것이다.
황보성운은 묵묵히 벽력불의 시신을 응시했다. 왠지 모르게 그의 가슴은 천근처럼 무겁기 짝이 없었다.
이때,
"으---- 아---- 억!"
"아---- 악!"
하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황보성운은 급히 주위를 훑어보았다.
아! 장내는 실로 무어라고 표현하기 힘든 끔찍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미 중원무림 전체에서 모여든 수백 명의 고수 중 절반 이상이 피를 뿌린 채 쓰러져 있었다.
(아! 너무나 처참하다.)
황보성운의 가슴 깊은 곳에서 무서운 분노심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이때 시체들을 살피고 있던 황보성운의 눈이 갑자기 한 곳에 정지되었다.
그의 시선이 머무른 곳, 그곳에는 우내삼천존이 전신에 피칠을 한 채 나뒹굴고 있었다. 황보성운은 내심 길게 탄식을 했다.
(사도(邪道)의 최강고수라 자칭하던 저들도 결국은 이런 곳에서 죽음을 맞는구나.)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비명 소리는 계속 터져나오고 있었다.
황보성운은 주위를 대강 훑어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그는 상황이 대단히 급한 것을 깨달았다.
순간, 그는 소살천공(笑殺天功)을 운공했다. 그리고는 소살삼음 중 두 번째 음인 귀소열(鬼笑裂)을 시전했다.
"우우…… 우…… 우우……"
마치 귀신이 호곡하는 듯한 처절한 음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갔다.
장내에서 싸우던 중인들은 그 음파에 전신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십대마불(十大魔佛) 역시 안색이 변한 채 음이 터져나온 곳을 응시했다. 이때 중인들과 십대마불의 시선은 모두 황보성운에게로 가있었다.
어느 순간 긴 장소음이 멎었다. 주위는 돌연한 침묵에 묻혀 일전의 음향도 들이지 않았다.
이때 황보성운이 웅혼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십대마불이여! 아직 때가 늦지는 않았으니 그만 살생을 멈추고 랍찰파로 돌아가라!"
십대마불 중 첫째인 영가불(靈迦佛) 오비라(烏毘羅)가 차가운 음성으로 물었다.
"소배여! 너는 누구인가?"
"그대들은 나의 명호를 많이 들어왔을 것이다."
그의 얼굴은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다. 완전히 변한 황보성운의 모습, 그것은 천하에서 둘도 없을 듯한 미남자의 모습이요, 영웅의 얼굴이었다.
"나는 옥면신수(玉面神手) 황보성운이다."
영가불의 눈썹 끝이 파르르 떨렸다.
이때 중원들 사이에서도 일말의 소요가 일어나고 있었다.
허나, 곧 그 소요는 커다란 환성으로 변했다.
"옥면신수가 돌아왔다."
"중원 제일인 옥면신수 황보대협이다."
"와아아---- 아"
환성은 갈 수록 커졌다. 천지가 떠나갈 듯 환성은 만웅장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우리의 영웅 옥면신수 만세----!"
"십대마불을 죽여라!"
"죽여라! 죽여!"
중인들의 흥분은 도저히 걷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헌데, 황보성운이 가볍게 손을 흔들자 장내는 순식간에 쥐죽은 듯이 고요하게 변했다.
북태빙백살 등 몇몇 고인들은 그 광경을 보고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무림 역사상 황보성운 만큼 무림인들의 존경을 받은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의 단순한 몸짓 하나하나가 중인들의 모든 심중까지 지배하는 판이니……)
이때 장내에서 황보성운을 눈물 어린 눈으로 보는 몇몇 여인들이 있었다.
설연미, 그녀는 지금 애정과 갈등이 어린 눈으로 황보성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 진정코 사랑하지만 결코 맺어질 수 없는 남자.
설연미는 황보성운의 모습을 보면서 지극한 애정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팽소연, 그녀는 지금 희열과 감동의 파랑이 이는 눈빛으로 황보성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낭군, 자신의 목숨보다도 훨씬 더 사랑한 낭군이었다.
용취란, 그녀는 사랑과 애정, 그리고 신뢰가 충만한 마음으로 황보성운의 행동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토록 위대한 나의 낭군이라니……)
만약 장내에 아무도 없었다면 그녀는 당장 황보성운에게 뛰어가 입을 맞추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어쨌든 지금 황보성운은 정기어린 시선으로 십대마불을 응시하고 있었다.
영가불 오비라는 허연 눈썹을 꿈틀거리며 침중하게 입을 열었다.
"으음! 옥면신수 너는 비록 적이긴 하지만 대단한 인물이다. 확실히…… 천하에서 우리의 적수가 될만한 사람은 오직 너 뿐이다."
"과찬이오."
"소배! 허나 자만하지 마라. 그렇다고 해서 너의 무공이 우리를 능가하는 것은 아니다. 천하의 어떠한 무학도 우리 랍찰파의 무학을 능가할 수 없다."
"그것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는 것이오. 이미 당신이 자부하는 십대마불의 두 명이 나의 손에 의해 죽음을 당했소."
영가불의 눈 끝이 미미하게 떨렸다. 그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노납은 네가 진보한 무학으로 그들을 죽였다고는 믿지 못한다."
"영가불! 당신네 랍찰파가 천 년 전 중원에서 물러난 것은 무엇 때문이오?"
영가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소배! 무엇을 말하려는 것이냐?"
"이것을 보시오."
황보성운이 양쪽 손을 위로 뻗었다. 순간,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그의 양 손으로부터 희고 검은 두 가지 광채가 허공으로 치솟더니 어느새 황보성운의 손에 두 자루의 도(刀)가 쥐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영가불의 안색이 급변했다.
"흑…… 백…… 쌍…… 환!"
"그렇소. 바로 흑백쌍환이오. 천 년 전 당신들의 조상을 중원에서 쫓아보낸 그 흑백쌍환이오."
영가불은 멍한 표정으로 황보성운을 응시했다.
(아아! 이것이 진정 하늘의 뜻이란 말인가? 흑백의 쌍환이여! 너는 어찌 그다지도 랍찰파의 야망을 저지하는가?)
영가불은 문득 아주 오랜 옛날 자신의 어른들이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흑백쌍환이 중원에 있는 한 랍찰파는 여전히 중원으로 들어갈 수 없다.
영가불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다.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 아무리 흑백쌍환이 천고의 기물이라고는 하나, 그 역시 인간이 만든 것임은 분명한 것! 어찌 이대로 물러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뒤에 서 있는 일곱 명의 노화상들을 응시했다.
"칠불(七佛)! 운명에 저항하라! 흑백쌍환이 아무리 신물이래도 인간의 의지에는 당하지 못한다. 랍찰파의 무서운 무공을 보여줘라."
칠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에는 모두 비장한 결심이 서리고 있었다. 칠불과 영가불, 즉 팔대마불은 황보성운을 중심으로 서서히 에워싸기 시작했다.
이때 중인들 사이에서 소요가 다시 일었다.
"어찌 황보대협 혼자 놈들을 상대한단 말인가?"
"우리도 합공하자."
"흑백쌍환이 있는 한 겁날 것이 없다."
"와---- 아! 죽여라!"
황보성운은 중인들의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여러분! 잠깐만 진정하십시오."
중인들은 금방 입을 다물고는 황보성운을 응시했다.
황보성운은 주위를 훑어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일은 중원의 대사(大事)이기도 하지만 또 천 년 간 흑백쌍환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중원과 서장의 결산이기도 합니다."
황보성운의 어조는 웅혼하기 짝이 없었다.
"제가 부탁하건데 그 누구도 이 속에 끼어들지 마십시오. 만약 이를 거역한다면 저를 무시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중인들은 모두 놀란 표정으로 황보성운을 응시했다. 그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황보성운의 결심을 꺾을 수 없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황보성운은 즉시 시선을 영가불에게로 돌렸다.
"대사! 시작해봅시다."
영가불은 지그시 황보성운을 응시했다.
그런 그의 두 눈에서 어떤 감동의 빛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소시주! 그대와의 싸움 결과가 어떻든 노납은 그대에게 가장 큰 경의를 표하는 바이오."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창노하게 부르짖었다.
"시작해라!"
드디어 싸움은 시작했다.
무림 역사상 두 번 다시 보기힘든 아니 아예 볼 수도 없는 희대의 대결투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신형이 움직였다. 그것은 실로 육안으로 보아서는 도저히 분간할 수도 없는 모습이었다.
팔대마불과 황보성운, 그들은 바로 번갯불보다도 빨리,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정확하게 몸을 움직였다.
한 치의 오차가 목숨을 빼앗는다.
그런 생각 아래에서 그들은 움직였다.
어떤 마찰음도, 어떤 파공성도, 숨소리도, 그 어떤 음향도 없이 그들은 무형 속에서 싸웠다.
백 초…… 이백 초…… 오백 초…… 천 초……
일세의 영웅 황보성운, 그는 지금 최고 경지에 이른 지고무상의 도법 성천구도(聖天九刀)로 팔대마불의 모든 공격을 차단시키고 있는 것이다. 팔대마불의 공격이 아무리 거세기로 성천구도의 도광은 도저히 뚫을 수가 없었다.
영가불은 차츰 초조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사제들을 바라보며 크게 부르짖었다.
"대불개안(大佛開眼)!"
나머지 칠불도 처절하게 말을 이었다.
"천불혈세(天佛血洗)!"
순간, 황보성운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팔불의 몸이 그대로 허공으로 붕 떠오르더니 허공 그대로에서 황보성운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도는 것이 아닌가?
황보성운은 이 수법이 랍찰파 최후의 수법임을 직감했다.
그는 내심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제…… 끝날 때가 왔다.)
이때 영가불의 마지막 음성이 절규처럼 들려왔다.
"쳐라!"
순간, 허공에서 돌던 여덟 명의 마승들이 곧 바로 황보성운의 전신을 노리며 쳐들어왔다. 천지는 순식간에 암흑 속에 감기고 오직 처절무비한 악마의 울부짖음만이 들려왔다.
그 순간 황보성운이 양 손에 들고있는 두 개의 칼을 허공으로 날려보냈다.
"혈천유성탈백심(血天流星奪魄心)----!"
아아, 혈천유성탈백심(血天流星奪魄心)!
-암흑(暗黑) 속을 한 줄기 붉은 유성(流星)이 빛살처럼 흘러가며 모든 마(魔)의 혼백(魂魄)을 빼앗는도다.
이것은 바로 지난 한 달 동안 황보성운이 모든 힘을 기울여 알아낸 흑백쌍환의 최후 비밀이었다. 흑백쌍환으로 만들어진 두 개의 칼을 동시에 날려 쌍도(雙刀)의 위력을 최극성으로 발휘하는 전무후무한 무공.
천 년 전, 랍찰파의 마승들이 중원에서 물러난 것도 바로 이것 때
문이었다.
하늘을 나는 두 개의 칼은 이 세상의 모든 빛을 흡수하듯 천지 사방을 온통 암흑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처절한 비명이 연속적으로 터져나왔다.
그리고 곧 세상이 밝아졌고, 무서운 적막이 주위를 휘감았다.
"……"
"……"
팔대마불 중 일곱 명은 이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시신이 훼손된 채 죽어있었다.
유일하게 살아서 서있는 자는 영가불 뿐이었다. 허나, 그의 가슴엔 혈천도가 꽂힌 채 피가 샘솟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가불은 가슴에 꽂힌 칼을 응시하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소시주, 이것은…… 이미…… 노납이 두려워한…… 최후의…… 결과요. 허나, 불행히도 노납의…… 추측이 맞아 버렸소."
그의 음성은 끊어질 듯 희미했다.
"앞으로…… 영원히…… 랍찰파는……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오. 영원히……"
황보성운은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처, 천마이로는 랍찰파의 반도들이오…… 노납은…… 그들이…… 이곳에 오고도…… 다시 우리가 두려워…… 도주한 걸 알고있소…… 허나…… 그들은 한 가지를 모르고 있소. 나…… 영가불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 그들 역시 지옥의…… 겁화(劫火) 속에 한 줌의…… 재가 됨을……"
피 한 모금이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이제 끝이오…… 영원히……"
영가불의 몸이 고목처럼 앞으로 쓰러졌다.
"아----!"
누군가의 입에서 긴 탄식이 터져나왔다.
(모든 것이 끝났다.)
황보성운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황보성운은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했다.
팽소연, 용취란…… 아름다운 여인들이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사랑이 가득 잠긴 시선으로 황보성운에게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헌데, 설연미는 없었다.
그녀는 어디로 갔는가?
3
설연미는 슬픔을 씹으며 천천히, 그리고 무작정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무척이나 괴로웠다.
(그래…… 모든 걸 잊는거야…… 모든 걸 잊고 이 세상을 떠나는 거야.)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다가 문득 설연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바로 앞 커다란 고목 아래에 한 명의 면사를 쓴 청년이 비스듬히 어깨를 기대고 있었다.
설연미는 그에게로 간 시선을 거두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헌데 그녀가 그의 옆을 지나려는 찰나,
"소저…… 잠깐만 실례하겠소!"
설연미는 움찔했다.
그녀는 시선을 돌려 면사청년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무슨 일로 저를 불렀죠?"
"낭자는 내가 누군지 아시오?"
설연미는 차갑게 냉소했다.
"내가 어찌 그것을 알 수 있죠?"
"후후후…… 낭자와 나는 무척 밀접한 관계가 있소. 나는 바로 자하장에서 왔소."
"다, 당신이…… 당신이……"
면사청년은 나직한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설연미는 주춤주춤 물러났다.
"연미! 왜 나를 피하시오? 나는 엄연히 당신의 남편인데……"
설연미는 전신을 경련했다. 면사청년의 손이 설연미의 어깨에 닿은 것이다. 설연미는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형식적이지만 이미 그는 자신의 지아비가 아닌가?
면사청년의 손이 설연미의 턱을 받쳐들었다.
"연미! 당신은 아직도 아름다움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구려."
면사청년의 입술이 천천히 다가왔다.
설연미의 안색이 계속 변했다. 입술은 벌써 닿을 듯 말 듯 다가와 있었다.
이때,
"안돼요!"
설연미가 갑자기 면사청년을 힘껏 밀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용서하세요. 저는 도저히 저의 마음을 속일 수가 없어요. 저에게는 이미 당신을 받아들일 만한 마음의 공간이 없어요. 저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녀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흐느꼈다.
이때 그의 귀에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부드럽게 들려왔다.
"연미! 나를 보시오."
"……?"
설연미는 고개를 들었다. 청년은 이미 면사를 벗고 있었다.
고인 눈물 때문에 상대의 모습이 흐릿했으나, 시간이 흐를 수록 상대의 모습은 점차 뚜렷해졌다.
"아……!"
누구인가?
그렇다. 그리운 얼굴, 사랑하는 얼굴, 황보성운 바로 그였다.
설연미는 망연히 그를 바라보았다.
황보성운이 부드럽게 웃었다.
"연미…… 비록 초야를 지내진 못했지만 우린 분명 양가의 축복 아래 혼인을 했소."
"이럴 수가……"
"이제 당신이 피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소."
설연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황보성운은 여전히 미소를 띄운 채 다가왔다.
설연미가 그의 품 속으로 뛰어들었다.
"공자님!"
두 남녀의 몸이 하나로 합쳐졌다. 영원히 그리고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늦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사랑하는 연인들의 머리 위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찬란히……
그들의 펼쳐진 행복을 축복이라도 하듯이……
대단히 감사합니다.
첫댓글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동안 잘 보았습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