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지 새우젓볶음
딸이 가끔 엉뚱한 음식을 찾을 때가 있다. 할머니가 그리워지면 그 손맛이 함께 떠오르나 보다.
“엄마, 그거 있지? 우거지에 새우젓 넣고 볶은 거. 그게 먹고 싶다.”
“응, 그거? 그거 맛있었지.”
“그거 한 가지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인데~”
“내가 만들 수 있을까?”
몇 번 시도해봤지만 번번이 그 맛이 나지 않아 숙제인 상태였다. 도대체 노인네가 뭘 넣고 어떻게 만들었길래 그런 맛을 낼 수 있었을까? 우리 모녀는 밥상 앞에서 할머니 얘기를 제일 많이 나눈다. 어떤 음식을 만들든 할머니 맛과 비교하는 내 딸, 할머니와 짝짜꿍인 내 딸은 유난히 더 그런다. 우리 입맛을 이렇게 오랫동안 사로잡을 거였으면 만드는 법이나 가르쳐 주시지, 부엌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한 우리 어머니다. 가끔 음식 만드는 어머니 옆에서 돕고 싶어 얼찐거리면 들어가라고 손사래를 치셨다. 왜 그랬을까? 자신의 영역을 뺏기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아니 틈만 나면 딸이 쉬기를 원했고,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맛있다고 달게 먹으면 그것만 좋아서 행복해 하던 우리 어머니다. 그래서 내가 육십 후반이 되도록 부엌은 우리 어머니 성지였고 음식 만들기는 어머니 담당이었다. 얼마나 오래 내 곁에서 나를 보살피시려고 그런 고집을 부리셨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때는 그런 나를 모두들 부러워했다. 구김살 하나 없는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출근한 날은 입을 모아 한마디씩 했다.
“그렇게 손질 힘든 블라우스를 어떻게 입으세요?”
“우리 어머니가 다려주시니까 입고 나오기만 하면 돼.”
“세상에 아직도 어머니가 다려 주세요?”
나에 관한 모든 것, 먹는 것, 입는 것, 신는 것, 들고 다니는 가방까지도 챙겨주던 우리 어머니다. 어머니가 내 곁에 없으면 나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 어머니가 지금은 내 곁에 없다. 안 계시는 그 세월 동안 그 입맛을 그리워했고, 그 체취를 아쉬워하며 살았다. 나보다 내 딸은 더하다.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내 딸은 아예 할머니를 제 분신인 양 사랑한다. 노인네가 아이한테 얼마나 사랑을 퍼부었으면 저 정도일까. 샘이 날 때도 있었다. 특히 음식 솜씨에 관한 한 양보가 없다. 내 딴에는 온갖 정성을 다해 몇 시간이나 걸려서 만들어놔도 딸애가 “아닌데~” 하면 아니다.
그놈의 우거지 새우젓볶음은 나를 더 난감하게 한다. 생각날 때마다 지치지 않고 만들어보지만 도대체 그 맛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음식 만들기 고수인 주변 사람들에게 묻기도 하고 식당에 가서 그와 비슷한 음식이 나오면 주인에게 물어보기도 하지만 레시피가 정확하지 않고 그들이 일러 준 대로 만들어봐도 그 맛이 아니다.
우거지 새우젓볶음에 대해 포기하고 원재료인 우거지와 새우젓이 문제라는 것으로 딸과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 후부터 나는 우거지만 눈에 띄면 사다가 쌓아 놓는 버릇이 생겨 여행을 가서도 그곳 아낙들이 말려서 파는 우거지만 있으면 무조건 사고 본다. 그렇게 사다 놓은 우거지가 몇 상자인지 모른다. 언젠가는 그 맛을 내 보겠다는 의지의 행위다.
웬만큼만 만들어도 엄지를 들어주는 딸인데 이 우거지 새우젓볶음만은 항상 점수 미달이다. 그 맛이 어떤 맛인지도 떠오르고 음식 모양, 냄새 모두 생생한데 그 맛을 낼 수가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런데 어제저녁 인터넷을 보고 있던 딸이 묻는다.
“엄마, 우리 묵은지 있어?”
“응, 있어. 작년에 누군가 갖다준 김치가 아직 김치냉장고에 있을걸.”
“아무래도 이게 할머니 그거 같은데 돼지고기 목살, 묵은지, 새우젓만 있으면 돼.”
나는 흥분해서 딸이 주욱 읽어주는 레시피를 잊어버릴까 봐 기억 안에 꼭꼭 눌러 담는다.
도대체 잠이 오지를 않는다. 만들어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나는 살그머니 일어나 김치냉장고를 열고 맨 아래쪽에 있는 묵은 김치통을 꺼냈다. 해묵은 김치 두 포기가 하얀 골마지를 덮고 군내를 풍기며 담겨 있다. 그것을 꺼내 물에 담갔다. 군내 가시라고 물을 갈아가며 씻으니 김치 포기에 있던 무채며 양념들이 모두 씻겨나간다. 오롯이 배추 줄기만 살을 드러내는데 그럴싸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세 시, 우선 물에 담가놓아 군내를 우려내기로 하고 양념을 만들었다. 마늘 2큰술, 생강 1작은술, 새우젓 1큰술, 정종 3큰술, 올리브유 1큰술을 고루 섞어 양념장을 준비한 후 멸치 육수를 만들었다. 다시마까지 몇 장 넣어 끓이니 구수한 냄새가 부엌 안에 가득하다.
1차 재료 준비를 마친 다음 방에 들어가 등을 폈다. 아무래도 묵은지의 군내를 빼려면 몇 시간은 물에 담가 놓아야 할 것 같아서다. ‘어떻게 만들어야겠다’라고 생각하니 빨리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나지만 기다렸다. 눈을 감고 누워 있어도 머릿속은 온통 음식 만들기 순서만 맴돌고 있다.
창밖이 환해지기가 무섭게 부엌으로 나가보니 김치 두 포기가 물에 담긴 채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중 한 포기를 꺼내서 다시 한번 흐르는 물에 씻은 다음 물기를 꼭 짜서 볼에 담고 만들어놓은 양념옷을 입혔다. 손으로 훌훌 털어가며 묻히니 양념이 고루 잘 묻는다. 그리고 돼지고기 목살을 꺼내 잘게 썬 후 마늘 양념 기름에 볶다가 멸치 육수를 한 국자 넣고 자글자글 끓이니 돼지고기가 하얗게 익는다. 거기에 후춧가루를 조금 뿌려 누린내를 없애고 양념에 재둔 묵은지 배추 줄기를 안쳤다. 그 다음 멸칫국물을 자작하게 붓고 중약불에서 바글바글 끓였다. 새우젓 향이 묵은지 향과 어우러지면서 그럴싸한 냄새가 부엌 안을 채운다. 20~30분쯤 끓였을까? 이제 다 익은 것 같다. 불을 끄고 들기름 한 숟갈을 뿌려 마무리한 후 배추 줄기 한 가닥을 꺼내 입에 넣어 본다. 어쩐지 어머니 맛과 비슷해 진 것 같다. 난 조급해서 잠이 덜 깬 딸을 재촉해서 부엌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그 입에 배추 한 잎을 뜯어 먹였다.
딸이 오? 하고 놀라면서 “엄마, 바로 이 맛이야! 이 맛 어떻게 냈어? 엄마 최고! 드디어 성공!”
엄지를 높이 들고 세리머니를 펼치는 바람에 내 어깨가 우쭐, 우리 어머니에게 자랑하고 싶어진다. “엄마, 내가 해냈어요. 드디어 찾아냈어요. 엄마의 그 사랑과 정성, 마음이 담긴 래시피를!”
그날 우리 모녀는 물 만 밥에 새우젓 향이 배어 있는 우거지 새우젓볶음을 한 줄기씩 얹어 먹으며 호호 깔깔 행복한 아침 식사를 했다.
(2023. 8. 9)
첫댓글 참 맛깔있는 수필입니다.
읽으면서 저절로 군침이 돌았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