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합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나이 들어갈수록 더 그러한 것 같기도 합니다. 추억은 어려울 때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하고, 지칠 때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오랜 추억일수록 더 아련하고 감성을 자극합니다. 추억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이나 일.’로 풀어놓았습니다. ‘추억’의 함의, 무게를 생각하면 참 무미건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의 사전적 정의가 그렇지만 말입니다. 슬픈 기억도, 즐거웠던, 행복했던 순간도 지나고 보면 추억으로 승화하여 아련함 속에 설렘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추억의 대상은 장소, 사물, 사람,...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아련한 옛사랑도, 골목길에서 딱지치기하고 땅따먹기 했던 기억도, 수업시간 땡땡이쳤던 기억도 함께 했던 그들에게는 모르겠지만 제겐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부산에서 대구로 이사 와 국민학교 2학년 때 살았던 삼덕동 골목길 안쪽 집도, 대학교 때까지 살았던 대봉동 집도 다 사라지고 추억 속에만 남았습니다. 영선초등학교와 담벼락이 붙은, 국민학생, 중학생 때 살았던 집은 아직 건재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적지 않은 친구들이 연락이 끊겼거나 이미 고인이 되었습니다. 한 갑자를 돌고 나니 그리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공유했던 시간들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이병주 작가는 소설 ‘산하’에서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습니다만, 개개인 삶의 궤적이 모여 추억이 되고 역사가, 전설이 됩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머릿속에 추억은 쌓여가지만, 그 추억을 함께 되새길 이들도, 공간도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도 큽니다. 종국에는 나 자신도 그렇게 타인의 추억 속에서 사라지는 존재가 되겠지만, 잊히겠지만... 사실, 나 자신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잊히고, 추억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게 서럽거나 기분 나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의 추억거리가 줄어든다는 사실에는 서러워집니다. 그래서 코로나가 숙지는 시점-기대사항으로는 꽃 피는 춘삼월 즈음-부터는 추억을 따라가는 여행을, 추억을 만들어가는 여행을 자주 떠나볼까 합니다. 오래 만나지 못한 지인들과의 만남을 이어갈까 합니다. 추억을 따라가는 여행은 내가 태어났고 초등학교를 잠시 다녔던, 외가가 있는 예천부터 시작하여 부산 금정산 기슭에 있었던 할아버지댁, 그리고 금정초등학교, 대구의 3개 초등학교로, 그 이후로 이어지겠지요. 추억을 만들어가는 여행은 20년째 이어가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하는 4남매의 가족여행, 작년부터 시작한 차박여행을 이어가고, 20여 년 전부터 계획했던, 동해 북단 강원도 고성부터 서해 북단 강화도까지 해안길 돌아보기가 주가 될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많은 걸 하고 싶습니다.... 추억을 되새기고, 새로 만들고 싶습니다. 코로나로 2년여 만나지 못한 지인들과 만나 회포를 푸는 날을 많이 만들어야겠습니다. 더불어, 오랜 세월 연락이 끊긴 친구들을 찾아보려 합니다. 그들과의 희미한 추억을 반추하며 말입니다. 20여 년 전 아이러브스쿨이 초등학교 동창과 은사님을 연결해 주었듯, 그런 기적 같은 해후를, 계기를 또한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러한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찹니다. 행복감이 조금씩 차오릅니다.
기억은 머리로, 추억은 가슴으로(모셔온 글)===============
기억은 싫다.
왠지 논리 정연한 것 같아 거부감이 든다.
너 그거 기억해? 그 말속엔 강압이 들어 있는 듯하다.
기억 못하면 알아서 해. 어쨌든 반드시 기억해서 내 앞에 모든 것을 다 털어 놔.
꼭 취조 받는 느낌이다.
기억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닌데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니?
이렇게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여하튼 기억에 관한 내 느낌은 그렇다.
그래서 기억이 싫다. 기억한다는 것.
추억은 좋다.
추억, 단 두 글자인데 그 글자 안에 깔깔대는 아이의 목소리며
모래알을 밟으며 걷는 연인의 발자국이며
술주정하다 어깨에 기댄 채 잠든 선배의 콧소리가 담겨져 있다.
추억, 이 단어를 입술에 올려놔봐라.
얼마나 달달한가.
설탕가루를 묻혀가며 먹던 도넛 같은, 그 이상이다.
얼마나 므흣한가.
손에 잡히지 않지만 눈이 절로 감길 만큼 아련하다.
추억 속에는 나쁜 기억은 살 수 없다.
나쁘다면 그건 이미 추억이 아니다.
현실이 고달픈 사람이 추억에 집착한다지만 절대로 그건 아니다.
추억은 심심할 때 꺼내먹는 간식이랄까,
언제 어디서나 꺼내먹어도 참 맛나다.
질리지 않고 촉촉하다.
기억하는 건 머리를 써야하지만
추억하는 건 가슴으로 느낀다.
그래서 추억이 좋다.
오늘은 기억을 잠시 멈추고 추억을 달리자.
-----김이율의「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