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들, 내 인생의 새 지평을 열며, 퍼플섬에서
내 인생을 변화시킨 계기들이 몇 있다.
음악도 있고, 그림도 있고, 영화도 있고, 책도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책이 큰 몫을 했다.
중학교 다닐 때부터, 친구들이 내 책장에 꽂힌 책을 보고 ‘도서관’이라고 할 정로로, 내 책 욕심이 많았다.
당시의 내 책장에는 늘 학교 공부와 관련되는 전과나 문제집이 수두룩하게 꽂혀 있었지만, 그 이외에도 소설과 시집 같은 문학책이나 우주과학과 관련된 책들이나 기타 잡동사니 책도 꽤나 꽂혀 있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도 꽂혀 있었고, 세계문학전집도 꽂혀 있었고, 전후문학전집도 꽂혀 있었고, 세계단편문학전집도 꽂혀 있었고, 폰 브라운의 로켓 관련 책도 꽂혀 있었고, 심지어는 김종래 만화책 박기당 만화책에 라이파이 연작 만화집도 전권이 꽂혀 있었다.
그러나 만화책 이외에는 그렇게 꽂혀 있는 책들의 그 대다수를 그때 다 읽지 못했다.
솔직히 고백해서 책 욕심 때문에 사서 꽂아놓기만 했을 뿐이었다.
일단 꽂혀 있으니 간간히 꺼내 읽기는 했었다.
비록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책을 몇 권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때 내게 책 읽는 버릇이 몸에 배게 된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그 덕에 지금도 독서클럽 ‘Book Tour’모임에 가입해서 책 읽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참 많이도 읽었다.
그렇게 읽은 책 중에서 내 생각의 세계를 크게 변화시킨 책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스펜서 존슨의 ‘선물’이 그렇고, 미치 앨봄의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이 그렇고,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내 손에 꼽힌다.
‘선물’이란 책에서는 ‘Learn from the past, Plan for the future, Be in the present’라는 명언 한 구절을 가슴에 담았고,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이라는 책에서는 인연의 소중함을 깨우쳤고, ‘어린 왕자’라는 책에서는 소위 ‘길들이기와 책임지기’라는 인간관계를 깨우쳤다.
특히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외롭게 사막을 여행하던 어린왕자가 여우 한 마리를 만나 서로 가까워지려고 나누는 대화는, 그 이후의 내 인생관을 송두리째 바꿔버리고 말았다.
다음은 책에서의 그 대목이다.
그때 어디선가 여우가 나타나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안녕....”
어린 왕자도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인사했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인사를 건넸던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나 여기 있어. 사과나무 아래에.”
“너는 누구니? 참 예쁘게 생겼구나.”
“난 여우라고 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이리 와서 나랑 놀자. 난 지금 몹시 슬퍼...”
여우가 말했다.
“난 너랑 같이 놀 수 없어. 나는 길들지 않았거든.”
“아, 그래. 미안해.”
어린 왕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문득 궁금해서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길들인다.’라는 게 뭐야?”
“아, 넌 여기 사는 아이가 아니구나. 뭘 찾으러 왔니?”
어린 왕자가 말했다.
“사람들을 찾고 있어. 그런데 ‘길들인다.’라는 게 뭐야?”
“사람들은 총을 가지고 있고 그걸로 사냥해. 그래서 나는 아주 곤란하지. 사람들은 닭을 기르는데, 그것이 유일한 낙이야. 너는 닭을 찾고 있니?”
“아니, 난 친구를 찾고 있어. 그런데 ‘길들인다.’라는 게 무슨 말이야?”
“이제는 많이 잊힌, ‘관계를 맺는다.’라는 뜻이야.”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지금 너는 나에게 수많은 아이와 다름없는 작은 소년에 지나지 않아. 난 네가 필요하지 않고. 물론 너도 내가 필요하지 않지. 나도 너에게 수많은 여우 중 하나에 지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되는 거야. 나한테 너라는 존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거고, 너한테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는 거니까.”
어린 왕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무슨 말인지 조금 이해가 돼. 나에게는 꽃 한 송이가 있는데...난 그 꽃에게 길든 것 같아.”
“그럴 수도 있을 거야. 지구에서는 온갖 일들이 일어나니까.”
“아니! 내 이야기는 지구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야.”
여우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다른 별에서 있었던 이야기란 말이야?”
“응, 그래.”
“혹시 그 별에도 사냥꾼이 있니?”
“아니, 없어.”
“참 재밌다! 그럼, 닭은?”
“없어.”
“세상에 완벽한 곳은 없군.”
여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금세 기운을 내어 말했다.
“내 생활은 무척 단조로워. 나는 닭을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지. 닭들은 모두 비슷비슷하고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 그래서 나는 늘 지루해.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많이 달라질 거야. 그러면 수많은 발소리 중에 네 발소리를 구별하게 될 거야. 다른 소리는 나를 땅속 깊이 숨게 하지만, 네 발소리는 마치 음악 소리처럼 나를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을 좋아하지 않아. 밀은 나에게 아무 필요가 없거든. 그래서 밀밭을 바라봐도 나는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어. 그건 슬픈 일이지. 하지만 아름다운 황금빛 머리카락을 지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밀밭은 내게 아주 근사한 광경으로 보일 거야. 밀밭이 황금물결을 이룰 때 내가 기억날 테니까. 그러면 나는 밀밭을 스쳐 지나는 바람 소리마저도 사랑하게 될 거야.”//
우리가 들른 퍼플섬(Purple Island)에, 바로 그 대화의 한 구절이 새겨진 입간판이 있었다.
이 대목이었다.
‘네가 날 길들이면 우린 서로 필요해진단다. 넌 내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야. 나도 네게 세사에서 단 하나뿐인 여우가 되고...’
우리는 보랏빛으로 온통이 물든 그 섬에서, 그렇게 서로가 어린왕자이고 여우인 것처럼 길들여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