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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 이승기 기자 = 또 한 시대가 저물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살아있는 전설' 팀 던컨(40, 211cm)이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11일(한국시간) 샌안토니오 구단은 공식홈페이지를 통해 "던컨이 스퍼스에서의 19년을 뒤로 하고 은퇴를 발표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던컨은 NBA 역사상 최고의 파워포워드로 꼽힌다. 스퍼스와 함께 한 그의 위대한 19년을 키워드와 함께 돌아봤다.
레전드 팀 던컨의 빛나는 수상경력
우승 5회
정규리그 MVP 2회
파이널 MVP 3회
올-NBA 퍼스트 팀 10회
올-NBA 세컨드 팀 3회
올-NBA 서드 팀 2회
수비 퍼스트 팀 8회
수비 세컨드 팀 7회
올스타 선정 15회
2000 올스타 MVP
1998 올해의 신인상
★ 완성형 신인
던컨은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에서 4년을 모두 보낸 뒤, 1997년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사실 그 이전에 데뷔했어도 1순위 지명은 확실했다는 평. 하지만 던컨은 끝까지 대학에 남아 기본기를 갈고 닦았다. 그리고 그 기본기로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NBA를 지배했다.
정말 신기한 것은, 던컨은 만 21세였던 루키 시즌부터 이미 리그 최정상급 기량을 과시했다는 점이다. 던컨은 데뷔 첫 해였던 1997-98시즌 올-NBA 퍼스트 팀, 수비 세컨드 팀에 오르는 등 남다른 실력을 선보였다.
소포모어 시즌은 더 놀라웠다. 1998-99시즌은 직장폐쇄로 인해 단축 시즌으로 치러졌다. 정규리그가 50경기 밖에 열리지 않았다. 이에 따른 여파로 인해 대부분의 선수들이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던컨은 달랐다. 오히려 제일 잘했다. 샌안토니오는 던컨을 축으로 정규리그 승률 1위를 차지한데 이어 플레이오프에서도 덜컥 챔피언에 올랐다. 스퍼스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우승 트로피였다. 던컨은 파이널에서 평균 27.4점 14.0리바운드 2.4어시스트 2.2블록 FG 53.7%를 기록하며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 당시 나이 만 22세 때의 일이다.
이처럼 던컨은 처음부터 완성된 기량으로 리그를 호령했다. 211cm, 113kg의 훌륭한 체격, 탁월한 힘, 탄탄한 기본기, 정교한 뱅크슛 등을 고루 갖춘 던컨은 순식간에 슈퍼스타로 성장했다.
★ 팀 던컨 강점기
2000년대 초반, LA 레이커스의 샤킬 오닐은 폭군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괴력과 테크닉을 앞세워 리그를 초토화시켰다. 레이커스는 1999-2000시즌부터 리그 3연패에 성공했는데, 오닐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그 무렵, 던컨 역시 최전성기에 돌입했다. 2001-02시즌 던컨은 평균 25.5점 12.7리바운드 3.7어시스트 2.5블록을 기록하는 등 생애 첫 MVP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2002-03시즌에는 백-투-백 MVP에 올랐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가 이끄는 레이커스를 무너뜨렸다. 또, 파이널에서 평균 24.2점 17.0리바운드 5.3어시스트 5.3블록을 올리며 스퍼스의 두 번째 우승을 이끌었다. 파이널 MVP는 당연히 던컨의 몫이었다.
★ 지나친 혹사
프로 초기 던컨의 기량은 압도적이었다. 당시 샌안토니오의 기본 전략은 던컨에게 볼을 투입하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포스트에 자리를 잡은 던컨에게 패스한 뒤, 나머지는 던컨의 역량에 맡겼다. 던컨은 우선적으로 개인공격을 시도하고, 수비가 본인에게 몰리면 날카로운 킥-아웃 패스로 동료들의 3점슛을 이끌어냈다.
지금에서야 최고의 명장으로 추앙 받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부족한 점이 많았다. 지금과 같은 완벽한 시스템도 없었다. 던컨의 존재 자체가 곧 시스템이었기 때문이었다. 포포비치는 누구보다도 던컨을 믿고 의지했다. 그래서 던컨을 상당히 혹사시켰다.
던컨은 데뷔 첫 6년 동안 평균 39.3분을 소화했다. 거구를 이끌고 뛰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출장시간이었다. 같은 기간 플레이오프 출장시간은 무려 41.9분에 달했다. 당연히 문제가 생겼다. 던컨은 2005년 무렵 족저근막염을 앓게 됐다. 이 부상은 던컨이 은퇴할 때까지 그를 괴롭혔다.
포포비치는 이때부터 던컨의 출장시간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40분에 가까웠던 던컨의 출장시간은 30분대 초반으로 빠르게 내려왔다. 이에 따라 팀 공격의 중추가 서서히 토니 파커와 마누 지노빌리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2004-05시즌에는 파커와 지노빌리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던컨 역시 아직 건재한 상황. 덕분에 샌안토니오는 다시 한 번 챔피언에 등극할 수 있었다. 던컨은 통산 세 번째로 파이널 MVP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2006-07시즌 역시 비슷했다. 던컨은 보다 수비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스퍼스는 또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에는 파커가 파이널 MVP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드디어 '팀 던컨 강점기'가 끝났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 과도기와 부흥기
2000년대 후반에도 스퍼스는 계속해서 우승후보로 군림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분명 차이가 났다. 과거에는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 군으로 분리되었다면, 이후에는 '우승후보 팀 중 하나'로 내려왔다. 던컨의 지배력이 예전만 못했기 때문이었다.
던컨이 노쇠화를 겪기 시작하면서 스퍼스가 자랑하는 막강한 수비력도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스퍼스는 파커와 지노빌리의 공격력을 축으로 팀을 개편해나갔다. 포포비치 감독은 '페이스 & 스페이스'를 강조하는 모션 오펜스를 들고 나왔다. 날로 떨어지는 수비력을 만회하기 위함이었다.
샌안토니오의 새로운 시스템 농구는 리그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2010-11시즌부터 4년 동안 세 차례나 정규리그 최고 승률을 올렸다. 막강한 벤치 멤버들을 앞세워 풍부한 로테이션 농구를 구사했다. 48분 내내 안정적인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또, 2011 드래프트에서 카와이 레너드를 건진 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 레너드는 처음에 '3 & D' 유형의 선수였으나,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지금은 팀의 간판스타로 발돋움했다. 이 선수의 성장 덕분에 로스터의 신구 조화 및 공수 밸런스가 완성될 수 있었다.
2012-13시즌에는 사실 우승이나 다름없는 상황까지 갔으나, 파이널 6차전에서 터진 레이 알렌의 클러치 3점슛 '한 방'에 무너졌다. 절치부심한 스퍼스는 2013-14시즌 기어이 구단 통산 다섯 번째 우승 배너를 걸었다. 던컨은 언제나 팀 수비의 중심으로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키다리 아저씨' 같은 활약을 펼쳤다.
★ 아듀, 팀 던컨
늘 한결같은 기량을 보여주던, 그래서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던 던컨이지만 역시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었다. 2014-15시즌을 기점으로 급격한 노쇠화에 시달리게 된 것이었다.
사실 던컨의 노쇠화는 아주 예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포포비치 감독이 10여년에 걸쳐 던컨의 출장시간을 관리하며 이를 최대한 늦춘 것뿐이었다.
만 40세의 던컨은 2016 플레이오프에서 거의 힘을 쓰지 못했다. 던컨은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진지하게 고려 중"이라며 심사숙고했다. 결국 그는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하며 정든 코트에 작별을 고했다.
던컨은 스퍼스에서만 19시즌을 보낸 위대한 프랜차이즈 스타다. 역사상 던컨보다 한 팀에서 오래 뛴 선수는 코비 브라이언트(20시즌)가 유일하다. 그만큼 오랜 기간 샌안토니오의 상징으로 활약했다.
그가 남긴 이력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중 가장 빛나는 성과는 역시 스퍼스의 팀 성적. 1997-98시즌 던컨이 데뷔한 이후 샌안토니오는 1,072승 438패를 기록, 19년간 무려 71.0%의 승률을 올렸다. 같은 기간 美 4대 스포츠(NFL, NBA, MLB, NHL)를 통틀어 단연 최고 승률이었다.
이처럼 샌안토니오는 던컨과 흥망성쇠를 같이 했다. 기본기 깎던 노인도 결국 기력이 다했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위대한 레전드, 팀 던컨의 시대가 저물었다.
한편, 던컨은 19시즌 통산 평균 19.0점 10.8리바운드 3.0어시스트 2.2블록 FG 50.6%를 기록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20.6점 11.4리바운드 3.0어시스트 2.3블록으로 더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역대 플레이오프 통산 최다 출전 2위(251경기)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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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