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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입니까?
할렐루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로 복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자기 정체성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
현대인을 무엇이라 특징지을 수 있느냐고 어느 칼럼니스트가 당대의 석학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현대인은 우주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고, 앞으로는 더 많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점점 무지해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인은 자신에 대하여 무지한 존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색이 필요합니다. 명상이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잠시도 견디지 못하는 인간입니다. 인간이 인간 됨을 잃어버린 인간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혼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사는 사람도 아니요,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자식이 아무리 소중하다지만 내 생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자식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내게는 나대로의 존재가, 생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고독하게 될 존재요 본질적으로 고독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독을 다스릴 줄도 알아야 하고, 즐길 줄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조용히 명상할 줄도 알아야 하고, 내 존재의 의미를 생각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저 무엇엔가 끌려 바쁘게 돌아다닙니다. TV의 연속극을 한번 보십시오.
주인공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경우, 사업에 실패했거나 실연을 당했을 경우, 작가들이 그리는 그다음 모습은 어떠합니까?
열이면 열 포장마차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 술을 마시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왜 조용히 혼자 앉아서 생각하는 인간을 그리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인간은 정말 없는 것입니까? 여기에 바로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기 정체, 자기 존재를 생각하도록 하기 위하여 부득불 비상조치를 쓰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직장생활에 실패합니다. 우리는 때로 사업에 실패하기도 합니다.
그렇게도 힘들게 들어갔던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그렇게 중요하던 사업이 망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망하기도 합니다.
그제야 '나는 과연 누구인가?' 하며 자기 정체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병이 들기도 합니다. 바쁘게 이리저리 쫓기며 살다가 덜커덕 병에 걸려 입원합니다. 입원실에 누워서야 난생처음으로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바로 이 한마디의 질문을 받아내기 위하여 이 모든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놀라운 경륜 속에서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정체를 잃어버리고 사는 무지몽매한 인간들을 깨우쳐 자기로, 본질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려고 나 자신이 누구냐고 스스로에게 묻고 깊이 생각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바른 해답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2. 탈무드가 말하는 남자의 인생 7단계
「탈무드」는 남자의 일생을 일곱 단계로 나누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살 때는 임금님과 같다. 모두가 자기만을 위해주고 기분을 맞춰주고 떠받들어 주니까.
두 살 때는 돼지와 같다. 진흙탕에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뒹굴고 뛰어놀 수 있으니까.
열 살 때는 새끼 양과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들고 뛰어다니니까.
열여덟 살 때는 말과 같다.
다 성장하여 힘을 자랑하고 싶어서 그저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니까.
결혼하고 나면 당나귀와 같아진다. 가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히 걸어가야 하니까.
중년이 되면 개와 같아진다.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호의도 구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하면서 살아야 하니까.
마지막 노년이 되면 원숭이와 같아진다. 모든 일을 다 잃어버리고 이제 다시 어린아이같이 되지만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맞나요?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저마다 신분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를 설명해 주는 신분증에는 우선 내 이름이 있고, 생년월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속이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는 것이 그게 전부입니다. 엄격히 따져보면 그 전부가 다 소속에 관한 것뿐입니다. 어느 집안사람이냐, 어떤 직장에 다니고 있느냐, 이렇듯 소속에 의해서 나를 증명합니다. 그 이름 석 자마저도 한 자는 내 것이 아닌 아버지의 성을 그대로 딴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누구입니까?
사람은 세 개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나면서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요, 둘째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 특히 친구들이 나에게 붙여준 별명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죽은 뒤의 명성이라고 하는 이름입니다. 세 가지 이름 중에 제일 소중한 이름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은 뒤에 사람들이 나를 어떤 사람이라 불러줄 것인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과연 나는 누구입니까? 죽은 뒤에 나에게 어떤 이름이 붙여질 것 같습니까?
3. 다혈질로 실수가 많은 사람 모세
오늘의 본문 말씀에는 모세가 하나님께 특별한 사명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일생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다지 특별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는 아주 다혈질의 사람으로 실수도 많이 했던 사람입니다.
특별히 그는 시내 산에서 40주야를 하나님과 함께하며 계시를 받는 엄청난 경험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산에서 내려오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는 것을 보자 욱하는 혈기를 다스리지 못하여 그만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돌 판을 내던져 깨뜨립니다. 모세는 이렇듯 실수가 많은 다혈질의 사람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 이르면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돌 판은 내려놓고 다른 돌을 던질 것이지. 그만한 시간도, 그만한 자제력도 없었단 말인가'하고...
이렇듯 모세는 '너 죽고 나 죽자'라는 식의 물불 안 가리는 사람입니다.
결코 별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모세는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손에서 귀한 존재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모세가 양 떼를 이끌고 호렙 산에 이르렀을 때,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는 그 음성에 진실하게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애급으로 들어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나오라고 하십니다.
그때 모세는 이렇게 고합니다.
(출 3:11) “제가 누구인데 그런 일을 합니까? 어찌하여 제가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내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궁전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바로는 이집트의 라암세스 2세입니다.
모세는 그의 밑에서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고 최고의 영광을 누리면서 자라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모세는 친어머니의 젖을 먹고, 친어머니에게서 유아교육과 종교교육을 받으면서 자신과 민족의 정체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모세는 엘리트 의식을 가진 다혈질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역(苦役)과 어떤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을 학대하는 것을 보고는 그만 참지 못하고 그 이집트 사람을 때려죽이고 맙니다. 그런데 그는 민족적 의분으로 이런 일을 했으면서도 그것을 당당하게 내세우지 못하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은둔생활을 합니다.
애굽에서 왕자같이 살던 사람이 이제는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 볕 아래서 냄새나는 양 떼의 뒷바라지를 하며 모진 고생을 합니다. 이것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40년을 자기 양도 아닌 처가의 양을 돌보면서 지냈습니다.
이제 그의 나이 80세입니다. 이제 더는 자기 존재도 없고 민족의식도 사라졌습니다.
꿈도 환상도 다 내버린, 실패와 좌절밖에 없는 80세 노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간 너무나 많은 실패를 경험했기에, 이제 더는 용기도 의지도 없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십니다.
저는 가끔 야구 중계를 봅니다. 야구 중계하는 프로를 보면서 그 해설자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때때로 배울만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투수가 어려운 처지를 만났을 때 해설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저 선수 며칠 전에 실투하여 홈런을 맞았는데 그것을 빨리 잊어버려야 하는데, 거기에 매여 있기 때문에 저렇듯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고 볼만 던지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 실패했던 경험이나 승리했던 경험은 모두 빨리 잊어버려야 잘 던질 수가 있습니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과거에 매여 있는 사람, 실패의 쓰라린 경험에 매여 있는 사람은 결코 추진력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포기해야 할 것은 빨리 포기하고 정리해야 할 일은 빨리 정리해야 다음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붙잡고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모세는 과거의 그 실패를 한시바삐 잊어버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 자신으로서는 절대로 잊어버릴 수가 없는 엄청난 실패의 경험이었기에 이렇듯 나약해지고 만 것입니다. 바로 그 시각,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주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안에서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순간, 그는 전혀 다른 인간으로 거듭 태어납니다.
과거의 자기 자신을 잊어버립니다. 자기의 능력도 과거도 경험도 지식도 이제는 상관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 앞에 충실히 응답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향하여 나간 모세가 하나님께 "내가 누구입니까?"하고 여쭙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묻지 마라. 내가 너를 불렀느니라. 지금 나는 너를 필요로 하고 있느니라"라고.
그 순간 모세는 그 커다란 사명 안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재해석하게 됩니다. 그리고 보니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강에 떠내려간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로의 궁전에서 살며 많은 지식을 배우고 애굽의 문물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것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와 경륜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양성하시고자 했던 시간이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큰 잘못을 저지르고 광야로 도망가 40년 동안 양을 치면서 겸손해지고 낮아지고 진실해지는 이 경험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놀라우신 경륜 속에 있었던 일입니다. 현재도 그렇지만, 내 과거의 일도 다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와 경륜 속에 있었음을 모세는 이제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지난 시간 모두가 소중한 과거였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당한 일, 겪어왔던 일도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성령과 체질」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우울질의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사랑의 열매를 맺고, 담즙질의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충성의 열매를 맺고, 점액질의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화평의 열매를 맺고, 다혈질의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희락의 열매를 맺는다.'
4. 하나님은 있는 그대로를 쓰십니다.
여러분, 건강해야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병든 사람도 당신의 사역에 쓰십니다.
돈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키가 커야 되는 것도 아니요 작아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내 현실 이대로, 내 과거 그대로가 다 하나님의 손에 있었던, 소중한 의미를 가진 사건들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자의식이요 정체성입니다.
폐결핵을 앓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세 번이나 수술을 받고, 무려 십 년 동안이나 투병 생활을 했습니다. 마침내 병을 극복한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처럼 이것을 할까, 저것을 할까 망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병을 앓는 중에 굳어진 생각이 있었습니다. 자신과 같은 사람을 위해서 일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사람은 폐결핵 환자와 같은 중환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애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실패했습니까? 실패한 자에게 쓰임 받을 것입니다.
건강합니까? 건강한 자에게 쓰임 받을 것입니다.
지식이 있습니까? 지식이 있는 자에게 쓰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없으면 없는 대로 쓰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소중히 쓰임 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과거까지도 주님의 은혜 안에 있습니다.
일본의 평신도 지도자이자 사업가로 이름난 혼다 순베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주한 사업에 시달리다가 은퇴한 그는 너무 한가한 나머지 삶이 허무하다고까지 느낍니다. 할 일이 없으니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놀다가 지친 손자가 그의 무릎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낮잠을 자면서 잠꼬대를 하는 데 들어보니 "할아버지 할아버지, 나 이거 만들어 주세요. 이거 도와주세요" 합니다. 그때 그는 큰 충격을 받고 깊이 생각했습니다.
'저 아이에게는 내가 필요하다'라고.
그는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손자의 잠꼬대를 듣고는 그제야 나는 아직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일어나서 사업을 크게 성공하게 되었는데 그게 혼다자동차입니다.
우리의 나약함, 가난함, 실패, 성공.... 이 모두가 내 뜻이 아니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순간, 하나님과 소통하는 순간에 나약함도, 가난함도, 실패와 성공도 모든 일들이 다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하나님이니, 떨지 말아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겠다. 내가 너를 도와주고, 내 승리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라고 하십니다.
(렘 33:2) 일을 계획하시는 여호와, 일을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의 부르심에 진실하게 응답하고 충성을 다할 뿐입니다. 그 나중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참 좋으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결론과 적용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출애굽의 사명을 내리셨습니다. 그때 모세가 무엇이라 합니까?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본래 말재주가 없는 사람입니다. 전에도 그랬고, 주님께서 이 종에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 지금도 그러합니다. 저는 입이 둔하고 혀가 무딘 사람입니다."(4:10)" 하며 뒤로 물러섭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러니 가거라. 네가 말하는 것을 내가 돕겠다. 네가 할 말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너에게 가르쳐 주겠다." (4:12)"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시며 도와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신앙인은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서 자기를 봅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나를 구속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봅니다. 주님께서 담당해 주신 값을 보고 자기를 봅니다.
주님의 거룩하신 사역을 보고 나를 봅니다. 그러므로 나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욥은 부자였습니다. 하나님이 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탄은 욥의 재산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주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하나님을 찾아갑니다.
욥의 재산을 빼앗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한 가지 조건을 두고 허락하십니다.
모든 것들을 다 빼앗아 갈지라도 욥의 생명은 가져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욥은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은 사탄이 욥의 그 많은 재산을 빼앗아 가도록 허락하신 것은 욥에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계획하신 대로 욥에게 전보다 더 많은 갑절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잃은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잘못해서 잃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배나 주시려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욥처럼 더욱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세상일에 실패했어도 절망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더 좋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질병으로 고통당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더 건강하도록 돕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아니하실지라도 믿으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능력의 오른손으로 붙잡아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믿음과 확신으로 기도하며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쓰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지금 물어보십시오.
"하나님, 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아멘.
(사41:10, 마28:20)
기도
찬양 / 214장 세상일에 실패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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