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통일 총리를 배출한 독일 ‘비례대표제도’
미국이나 유럽에서 TV 화면을 보면 예능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앵커들이 진행을 맡습니다. 뉴스 시간 후 일기예보를 알리는 기상예보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내 TV 화면에 등장하는 방송인에 비하면 나이도 훨씬 많고 외모가 빼어나지도 않으며 패션 감각도 떨어지지만, 담당 방송의 전문성이 자연스레 전해져 시청자에게 편안함을 안겨줍니다. 특히 허리둘레가 만만치 않았던 한 여성 기상예보관이 인상 깊게 느껴진 것은 국내 방송의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일 것입니다.
공영 TV 방송에서 품위 있는 아나운서로 잘나가던 방송인 한 명이 생각나 왜 근래 얼굴을 볼 수 없느냐고 한 지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돌아온 답은 “나이 들면 TV 방송에서 얼굴과 몸매가 보이지 않는 라디오 방송으로 ‘전출’된다”는 것입니다. 공영 방송사의 참으로 부끄러운 민낯이 아닐 수 없으며, 어이없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오랜 경륜이 묻어나는 안정된 진행과 푸근함보다는 젊고 동적인 ‘싱싱해서 설익은’ 아나운서들이 우리 TV 화면을 장악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대체로 우리 사회는 젊음이 주도하는 다이내믹한 사회임이 틀림없습니다. 역동적이어서 긍정적인 점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왠지 ‘미완의 설익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인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균형 감각을 잃은 편향적 사회 흐름이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예부터 원로 중시 풍토가 비교적 강했는데, 어쩌다 원로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지 생각해보다 떠오른 게 국내 정치판입니다.
선거 때면 ‘물갈이’라는 구호가 난무하면서 다선 의원은 그만두라는 분위기에 원로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추풍낙엽처럼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곤 합니다. 원로 정치인이 젊은 후배 정치인에게 밀려나는 덧없는 모습을 지켜보기가 민망할 따름입니다.
게다가 당(黨) 차원에서, 당 대표급 원로가 연고가 없는 선거구에 ‘전략 공천’이라는 미명 아래 상대 당의 후보와 닭싸움이라도 시키듯 몰아붙이는 형국입니다. 결국 두 원로 후보 중 한 명은 정치 무대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 사회의 원로 소모 현상의 한 본보기를 보는 듯해서 마음이 씁쓸합니다. 이렇듯 정치판이 ‘원로 경시’, ‘원로 죽이기’에 앞장서면서 낯 뜨거운 설익은 사회를 조성하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는 사실은 정말 심각한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경로사상을 크게 부르짖는 우리 사회보다 서구 사회가 오히려 원로에 대한 배려가 더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자는 1970년대 독일에서 ‘비례대표리스트(Die Landesliste)’라는 사회 용어를 처음 들었습니다. 어느 한 주(州) 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에서 주지사가 자기 지역구에서 분명 낙선을 했는데,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주지사 자리를 계속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 비례대표제도는 국회의원 선거(Die Bundestagswahl)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었습니다. 이걸 보며 필자는 마치 정시에서 낙방하고 재시험에 합격한 응시생이 전체 수석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은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한 지인이 원로 정치인의 정치 생명을 보장하면서 경륜을 계속 쌓아가게 하는 제도가 바로 비례대표제도의 참뜻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더 나아가 黨 대표급 원로가 출마하는 선거구의 경우 다른 당에서는 신인을 내세워 거물급 정치인과 경선하며 경쟁력을 키운다고 덧붙였습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왠지 설득력 있고 훈훈함이 묻어나는 시스템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비례대표제도의 역동성을 보았습니다. 즉 세기의 가장 역동적 정치 이슈인 ‘독일 통일’이란 대업을 이끌어낸 헬무트 콜(Helmut Kohl, 1930~, 1982~1998 총리 재임)총리가 지역구 만하임(Mannheim)에서 낙선했으면서도 자기 기독민주당(CDU)의 비례대표리스트로 계속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헬무트 콜 총리는 정치 시스템이 지키고 보호하며 성장시킨 인물입니다. 참으로 감동 스토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필자는 시스템의 순기능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원로를 경시하고 원로가 없는 국내 정치 무대를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펌] / 저자; 이성낙(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 2015년 10월 27일 (화) 00:02:26
솔채꽃
힐러리⋅JP⋅박근혜의 한 방의 메시지
지난 22일 오전 10시 미국 워싱턴의 연방하원 롱월스 빌딩 1100호.
3년 전 리비아 벵가지 미국 영사관 피습 사건으로 미 외교관 4명이 숨진 사건을 놓고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의 책임을 추궁하는 청문회가 열렸다. 현장을 찾았지만 인원 제한으로 청문회장 안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하지만 ‘덕분에’ 회의장 밖 복도에서 함께 스마트폰으로 실황중계를 보던 미국 취재진으로부터 ‘힐러리 평’을 귀동냥할 수 있었다. 그들은 “공화당 의원 10명을 데려와도 힐러리 한 명을 당해낼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표정과 숨 고름, 치밀한 단어 구사, 메시지 전달력의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낮 12시55분쯤 그 ‘한 방’이 나왔다.
“벵가지 사건 당시 저는 여러 상념에 여기 여러분(청문회 의원들) 모두를 다 합친 것 이상으로 잠을 못 이뤘습니다. 여러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괴로워했습니다.” 11시간에 걸친 이날 마라톤 청문회는 사실상 이 한마디로 승부가 났다.
돌이켜 보면 우리에게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기자가 도쿄특파원 시절이던 2005년 6월 3일. 김종필 전 총리가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아 보수지 요미우리가 주최한 강연에서 던진 한마디는 압권이었다. 당시 한⋅일 관계는 독도⋅역사 교과서 문제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위안부 문제가 핵심인 지금과 사안만 달랐지 긴장도는 비슷했다.
“올해 일본인들은 일⋅러 전쟁 승리 100주년을 기념하고 있지만 한국인에게는 고종의 황후인 민비가 일본의 미우라 공사 일당에게 참살된 지 110년 되는 해입니다. 자, 이런 일이 일본 황궁에서 일어났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러면 한국인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역사적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이 한마디에 게이단렌(經團連) 회의장을 메운 1000여 명의 정⋅관⋅재계 인사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 발언은 당시 어떤 일본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요미우리가 1주일 뒤 특집기사 앞머리에 “김씨의 발언 중에 일본인 귀에 따갑게 들리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 꼼짝 않고 경청하는 청중들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썼던 게 기억에 남는다. 보도는 못했지만 아팠던 게다. JP의 ‘한 방’은 짧지만 핵심을 찔렀고 통렬했다.
다음주 초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한다. 박근혜 외교의 분수령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능수능란하다. 오는 듯 보이지만 가고, 가는 듯 보이지만 온다. 박근혜식 교과서 외교로는 상대하기 힘들 수 있다. 아니 관계가 더 악화될 수 있다. 그렇다고 “왜 이년 그년 하셨어요”란 식의 돌직구 화법도 곤란하다. 세련되면서도 아베, 일본인의 감성을 교묘히 자극하는 한 방의 메시지가 절실하다. 승부는 거기서 판가름 날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은 분명 있다.
[펌] / 출처: 중앙일보 / 김현기(중앙일보 워싱턴 총국장) / 2015.10.27 01:39
가시 없는 장미
식물의 가시는 가지나 잎, 턱잎, 껍질 등이 딱딱하게 변해서 날카롭게 생긴 돌기상 구조다. 표피조직뿐 아니라 기본조직계나 관다발계까지 관여한다. 반면에 털은 표피조직에서만 만들어진다. 가시는 털과 마찬가지로 대체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주기능이다. 외부 침입에 날카로운 침을 무기 삼아 대응한다. 털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자기를 지키려는 보호 기제라고 할 수 있다.
그 많은 가시 중에 장미 가시만큼이나 인류의 원성을 산 것도 없다. 아름다움을 꺾는 걸 허락할 수 없다는 듯 줄기에 촘촘히 진을 치고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장미 가시의 유래도 비슷하다. 사랑의 신 에로스가 장미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꽃에 키스를 했다. 마침 꽃 속에 있던 벌이 나와 에로스의 입술을 쏘았다. 에로스의 어머니이자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화가 나 벌들의 침을 빼내 장미 줄기에 심었고 그게 가시가 되었다고 한다. 달콤한 키스에 상처로 복수한 장미는 바로 ‘배반의 장미’였다. ‘상처를 받은 나의 맘 모른 채 넌 웃고 있니 후회하게 될 거야’라고 노래한 엄정화의 ‘배반의 장미’ 가사 그대로다.
그래서 장미는 모순이다. 사랑과 배신, 상처, 보복의 이미지가 모두 담겨 있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 그 누구의 잠도 아닌 기쁨이여’. 이런 묘비명을 남긴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그의 실제 사인은 백혈병이라고 한다. 1980년대 활동한 미국의 글램메탈 밴드 ‘포이즌’은 발라드곡 ‘가시 없는 장미는 없다’(Every Rose Has Its Thorn)로 유명하다. 1988년 10월 발표한 이 곡으로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3주간 1위를 차지했다. 밤이면 새벽이 오고 모든 장미에는 가시가 있는 것처럼 달콤한 사랑 뒤에 상처가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경기도 농업기술원이 개발한 가시 없는 장미 ‘딥퍼플’이 일본 도쿄 국제플라워엑스포에서 해외 생산자 부문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2011년 출시한 딥퍼플은 현재 13개국에 260여만주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국제무대에서 각종 상을 휩쓸고 있다. 가시 없는 장미가 경기도에 큰 기쁨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누구에게인가 가시의 고통을 안기고 있지나 않으련지.
[펌] / 출처; 세계일보 / 박희준(세계일보 논설위원) / 2015-10-26 21:54:05
다시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서서
얼마 전 4년 만에 베이징을 다시 방문했다. 학술행사 참가 일정을 마치고 현대 중국의 국부 마오쩌둥(毛澤東) 주석 기념당을 방문하기 위해 톈안먼 광장에 갔다. 평일이고 흐린 날씨에 스모그가 있는데도 수많은 관광 인파가 몰려들었다. 4년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인파였다.
톈안먼 광장에서 움직이는 인파의 한 흐름은 자금성으로 향하고 있었고 다른 한 흐름은 ‘마오주석기념당’을 향하고 있었다. 마오주석기념당 앞에는 1㎞ 이상의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각양각색의 차림을 한 남녀노소 인민들이 기념당에 영면하고 있는 마오 주석을 참배하기 위해 긴 행렬에서 오랜 시간 떠밀려 이동하고 있었다.
1시간 가량 떠밀려 걷다가 마침내 기념당 입구에 도달했다. 기념당 안의 마오 주석 조각상 앞에 흰 국화를 바치며 절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시신이 안치된 유리관 뒤 벽면에는 ‘위대한 영수와 도사 마오 주석 영수 불후’란 글이 새겨져 있었다.
중국은 마오쩌둥이 창당한 공산당이 건국 후 지금까지 66년간 독재하고 있는 나라다. 1978년 개혁개방 후 중국은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하였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란 노선을 정립하면서 외자를 도입하고 수출을 증대하여 단시일 내에 고도경제성장을 하여 중국은 마침내 미국과 함께 G2 대국이 되었다.
이런 중국의 기적을 창출하는데 마오 주석은 어떤 역할을 했던가? 중국에서는 마오 주석에 대해 보통 ‘공칠과삼(功七過三)’으로 평가한다. 급진적 공산주의 실험이었던 대약진운동과 인민공사의 참담한 실패는 널리 알려져 있다. 마오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벌린 문화혁명은 중국의 문화를 황폐화시키고 지성을 파괴하여 사회를 크게 후퇴시켰다.
하지만 마오 치하에서 잘못된 자본주의 길을 걷는 ‘주자파’로 분류되어 주변으로 밀려나 있었던 덩샤오핑(鄧小平)이 집권하여 개혁개방으로 나아간 이후에도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여전히 마오를 국부로 떠받쳐왔다. 톈안먼 성루에 걸린 마오쩌둥의 거대한 초상화처럼. 그의 엄청난 과오에도 불구하고 신중국을 세운 국부의 공을 훨씬 더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마오주석기념당을 참배하기 위해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는 저 엄청난 인파는 그가 13억 인민을 통합하는 기능을 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권력층의 부패가 만연하고 있고 지니계수가 0.5에 육박할 정도로 소득불평등이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혁명 이전의 기아와 절대빈곤을 해소하였고 미국과 경쟁하는 세계 최강국으로 굴기하게 만든 사회주의 신중국의 초석을 놓은 마오를 인민들이 여전히 국부로 존경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개방을 주도한 총설계사 덩샤오핑은 자신을 박해한 마오쩌둥을 격하하지 않았다. 현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마오가 이끈 사회주의 30년이 없었다면 개혁개방 이후 30년도 없었다고 마오 시대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발전경제학에서는 중국의 사회주의 30년(1949~1978)이 토지혁명과 낡은 봉건적 관계 청산으로 개혁개방 이후 고도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한 역사적 조건을 창출하였다고 평가한다. 마오쩌둥 시대가 있었기에 덩샤오핑 시대의 기적이 가능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덩샤오핑의 지혜로운 역사 인식이 없었다면 마오쩌둥은 국부로 계속 숭앙되지 못했을 것이다.
현존하든 아니든 이처럼 국부의 역할을 하고 있는 정치지도자가 없는 한국은 불행하다. 자본과 노동, 진보와 보수, 여와 야, 영남과 호남을 통합하는 국가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 극단적 대립이 지속되고 있는 대한민국호는 순항할 수 없다.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어느 전직 대통령도 국민 대다수의 전폭적 존경을 받고 있지 못하다.
톈안먼 광장 마오주석기념당 참배 행렬에 서 있는 긴 시간 내내,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 호남과 영남, 노ㆍ장ㆍ청, 나아가 남과 북을 통합하는 국가지도자의 출현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펌] / 출처; 한국일보 / 김형기(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 2015.10.26 11:05
임경옥 화가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