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있었던 일을 쓴다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급하게 할 말이 있다면서...
밖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창 넓은 찻집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조금 후에 그녀가 들어왔다
갈색 브리지를 넣은 머리카락에
이국적인 분위기의
화려한 플라워 페인팅의 짧은 상의에
몸에 착 달라붙는 흰색 바지를 입고...
키도 크면서 아찔한 킬 힐을 신으니
더 늘씬해 보인다
저 나이에 킬 힐 신고 넘어지면 어쩌려고...
넘어질까 봐 단화에 편안한 옷차림을 한 나와
너무 대조적이다
그래,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한 거야?
나 요즘 너무 속상해
남편이 딴 여자를 만나는 것 같아
어떤 여잔데?
나이도 남편보다 많고
갓 구워놓은 빵 부풀어 오른 것처럼
정말 어느 한구석도 이쁜 데가 없더라고...
조언을 바라는 친구한테
남편을 편안하게 대해주라고 했다
아무리 예쁘고 날씬하고 섹시해도
편안하지 않다면
오랜 시간을 함께 하기 힘들다
편안하지 않으면 정이 안 간다
그리고 남편이 일찍 귀가하는 날
이때다, 하고 잔소리하지 말고
분노의 감정을 한 템포 늦추며
안마라도 해주면서 속은 부글부글 끓어도
그냥 재우고
예쁜 메모지에 사랑의 메시지를 적어서
곳곳에 붙여놓으라고 했다
남편이 읽어보지도 않고
지저분하다고 떼라고 하면 어떡하지?
바보야! 보일 듯 말 듯 자연스럽게 붙여놔야지
남자들은 시각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읽어보고 글빨에 약하단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이렇게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남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남편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을 한다는 건
솔직히 말도 안 되는 가식이고
정말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친구는 남편을 용서하고
가정을 지키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마음이 기특해서 난 열심히 조언을 해주었다
이때 친구의 전화기에서 벨소리가 울린다
친구의 남편 같았다
뭐? 일찍 들어온다고?
알았어. 여봉
내가 빨리 집에 가서 식사 준비할게
자기가 좋아하는 된장찌개 끓여 놓을게용
내가 자기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이러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미안해! 친구야! 집에 빨리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영화는 나중에 보자
남편이 오늘 웬일로 일찍 들어온데
빨리 그년한테서
마음을 돌려놓아야 할 것 같아서...
니가 가르쳐준 것 빨리 실습해야지, 하는 것이다
그래...잘가...하고 인사를 했다
친구야, 니가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혼자 영화 봐도 괜찮아
잘 됐으면 좋겠다...
얼마 후 친구는 내가 가르쳐준 대로
메모 글을 여기저기 붙여놨더니
남편이 엄청 감동한 것 같다며 한턱 쏘겠다고 하니
나도 내일처럼 기분이 좋았다
친구는 남편을 정말 사랑하는 것 같았다
친구도 어찌 남편이 밉지 않겠는가!
허지만 남편을 사랑하기에 내 조언을 받아들이고
실행에 옮기면서 친구 부부의 사랑이
더 돈독해진 걸 보면
사랑은 노력하는 자의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마지막에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토록 나를 사랑하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꽁냥 꽁냥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미칠 것 같았지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남편의 모습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단다
난 죽는 날까지 남편이 나 밖에 모를 줄 알았어
지혜야! 연애 시절, 내가 아펐을 때
남편이 키도 큰 나를 업고 뛰었을 때가 있었어
남편은 내가 아프거나 다치면
다 내팽개치고 달려오는 사람이야
난 살면서 남편의 은혜를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어
그래서 남편의 잘못 보다
남편이 나를 업고 뛰었을 때의 용기를
기억하기로 했단다
그렇다고 남편의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겠다는 건 아니고
잘못된 것은 지적해 주고 서로 노력하면서
내 사랑을 잘 지켜나갈 거야
그 여자가 겉모습과 달리
마음이 예쁘고 지적인 여자였나 봐
아마도 나한테는 없는 섬세하고 정적인 매력이
그 여자한테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남편과 여러모로 대화가 잘 통해서
쉽게 가까워진 것 같단 생각이 들어
우리 나이에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굉장히 매력적이거든
남편은 애초부터 사랑의 감정보다는 그냥
인간적인 감정으로 그 여자를 대했던 것 같아
하지만 이러한 감정이 깊어지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잖아
어쨌든 내 진심을 담은
사랑의 메시지가 담긴 메모글이
남편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아 정말 기쁘다
이번 기회에 남편과 더 깊은 대화도 나누고
대화를 하다 보니까
사랑이 더 돈독해진 것 같아
생각해 보니 그동안 참 대화 없이
무미건조하게 살아왔던 것 같아 후회가 많이 되네
친구 남편이 친구의 메모 글을 보고 감동을
많이 받은 거 같다니 정말 잘 된 일이다
남편의 잘못 보다
남편의 용기를 기억하겠다는 친구
남편이 잘못했음에도
분노의 감정을 한 템포 늦추고 지혜롭게
남편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서
남편과의 관계를 더 좋게 향상시킨 친구를 보면서
이 보다 더 사랑스러울 순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남편 때문에 힘든 다른 친구가 있어
이 얘기를 해주었더니
우리 나이에는 그저 그냥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거란다
사랑보다는 정으로...그러면서
그런 낯 간지러운 짓은 못 한다고 하네
그리고 뭐, 이쁜 짓을 해야 그런 메모 글을 써주지
그런 마음에도 없는 가식적인 짓은 못한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그러면서 내는 그런 간댕이 부은 인간
절대 용서 못한다고 하니
이것도 아무한테나 통하는 게 아닌가 보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과 상처의 깊이가 다르니까...
생명과 사랑은 같은 이름이 아닐는지...
생명도 사랑도 끝까지 살릴 수 있는 데까지는
살려야 한다
상대방의 마음이 굳어지기 전에
될 수 있으면 빨리
상대방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삶의 지혜고 기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생의 승부처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골든 타임의 시기를 놓치지 않는 혜안이
최선의 길이고
만약에 골든 타임을 놓쳤다면 차선의 길로
또 다른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법을 연구해
재빠르게 운전대를 돌려야 한다
머뭇거리다 기회를 놓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낭패 정도가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평생 괴로워하며 후회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친구한테 그 킬 힐 미련 없이 집어던지고
편안한 신발로 바꿔신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넘어져서 골절이라도 되면
정말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첫댓글 나도 한때는
당신이 나의 모든것이였는데....
지금은 이미 골든 타임을 놓쳐 잃어버렸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어떻게 위로를 해드려야 할지...
그래도 힘내시길 바랍니다
@삶의지혜 오래전이라 극복했어요~^^
@좋은사탕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100%공감 해요...
지혜로운분들 이시네요
💯❤️❤️🙏🙏🤗
받아들이지 않고
완고한분들 보다는..
서로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방 에 입장에서
사랑도 참고. 노력이죠...
사랑하고
결혼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서로 노력해서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거겠죠
인정할 건 인정하고
수용할 건 수용해야
관계가 좋은 쪽으로
발전하겠죠
그러기 위해선
진솔한 대화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어렵지만
좋은선택을 하셔서
신뢰를 다시 회복하신 친구분께
박수 보냅니다.
두번 째 친구분은
지혜님 말씀처럼
상처의 깊이가 달라서
그 친구분의 한계는 거기까지였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내린 결정에 자책하지 말고
씩씩하게 잘 사셨으면 하는 마음이구요.
지혜님의 조언과 지혜로운 충고
저도 깊이 새겨야겠습니다.
마음의 넓이와 깊이는
얼굴이 틀리듯
다양한 것 같습니다
그 친구는
마음의 평수가
정말 넓어보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힘든데도
상대방의 좋은 점을
기억해 내
관계를 회복하려는
친구의 마음이
정말 기특했답니다
인생은
노력하는 것 만큼
길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제 마음과
같은 마음이어서 반갑습니다
슬찬 님의 말씀처럼
상대방이 싫어하는 말과 행동은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수용하며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상대방을 포용한다면
부부 관계든, 인간관계든
훨씬 유연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이
승자인 것 같습니다
마음에 깊이 와닿는 댓글로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