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외국에서 온 손님과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외국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는 분이라 자연스레 건강과 태권도가 화제 거리가 되었다. 이야기 도중 홍준표 의원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어릴 적에 대구의 어느 도장에서 동문수학한 후배라 한다. 몇 십년이 흐른 지난 해 어느 태권도 행사장에서 두 분이 조우를 했다 한다. 반갑게 악수를 하고 옛일을 떠올리며 추억을 이야기 했다한다. 홍준표 의원은 현재 우리나라 태권도협회장이다.
마침 홍준표 의원이 쓴 『변방』이란 책을 읽고 있던 차라 이 책이 매우 뜻 깊은 책이라는 생각에 이튿날 정동진으로 가는 길에 선물하였다.
정동진(正東津)은 강원도 강릉의 바닷가의 해돋이 명소로 알려져 있다. 정동진이라는 명칭은 한양의 광화문에서 정동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모래시계로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나중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하면서 비행기 안에서 그 책을 읽었다는 얘기를 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며칠동안 홍준표와 함께 산 느낌이 들었다.
홍준표라 하면 으레 모래시계, 정동진, 검사, 태권도를 떠올리게 된다.
『변방』은 홍준표의 에세이집으로 형설라이프에서 출판했다. 『변방』은 국회의원인 홍준표의 유년 시절과 청장년 시절, 검사시절 등 홍준표가 살아온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자서전이다.
『변방』은 어렵고 힘들었던 고통과 혼돈의 유년시절, 이 땅에 정의를 심고자하는 열정으로 산 청장년 시절의 검사, 그리고 국민을 위한 열정으로 산 국회의원 시절 등 어렵고 힘든 변방을 빙빙 돌다가 중심세력으로 등장한 이야기를 여과 없이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전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다 그렇듯이 홍준표의원도 고생을 참 많이 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는 국민(초등)학교 6년을 다니면서 다섯 번이나 전학을 했다. 정들만 하면 이사를 해서 초등학교 친구도 없다. 그는 중학교는 대구로 유학(?)을 했다. 일년 전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의 직물공장에 취직한 작은 누나가 있는 내당동의 월세방에 거처를 정했다. 주인아줌마가 얼마나 표독스러웠다 한다.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면서 밤 10시 이전에 불을 끄라고 하여 방문에 홑이불을 걸쳐 놓고 공부를 했다 한다. 당시에는 그 여주인뿐만 아니라 다른 집도 그런 생활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느끼기에는 그 여주인의 전기감시가 유독 심했던 모양이다. 그는 점심시간엔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 한다. 1학기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한 뒤부터 친구가 늘면서 학교생활이 즐거웠다고 한다.
그러한 생활을 하다가 1972년 3월 고려대 법대에 합격하여 입학금을 빚을 내어 야간열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고대에 입학하여 가정교사 생활을 했다. 비싼 등록금으로 이게 내가 갈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는 2학년 등록을 포기한다. 이후 그는 사법시험을 준비하기위해 대구근교에 있는 도덕암에서 고시준비를 했다. 하루 15시간 책만 보았지만 만만치 않은 생활이라 그해 여름, 고시생활을 포기하고 시골로 귀향한다. 그런데, 작은 누나가 학비를 대 주겠다며 복학을 권유하여 1974년 3월 복학을 한다.
이후 시골집이 불타 울산으로 이사를 하고 아버지는 현대조선소 임시직 야간 경비원으로, 여동생과 작은 누나도 이 공장에 다니는 것을 보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한다.
1974년은 유신반대 데모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8시간이나 조사받은 일, 하숙집에서 밤낮으로 고시공부에 매달리다 이듬해 1차에 합격했지만 2차에 낙방하면서 이후 6년간 그는 사법시험의 인질이 되어 1982년 사시에 합격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그도 어쩔 수 없었는가 보다. 1976년 4월, 국민은행 안암동지점에 근무하는 아가씨에게 프로포즈를 하면서 시작한 연애생활이 재미있다.
1980년 4월, 4급 판정을 받고 방위소집으로 14개월 군복무를 한 생활, 제대후에는 연합철강에 근무하다가 다시 고시 공부를 하여 1982년 사시에 합격하고 고대 교우회관에서 단출한 결혼식과 봉천 7동 지하 단칸방의 꿈같은 신혼생활을 사실대로 그려 내고 있다.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정신으로 근무한 검사생활이 감동적이다. 이후 법무부장관의 사돈을 구속하면서 이후 10년간 그는 승진인사에서 늘 소외되었던 일, 노량진 수산시장 강탈사건 등을 맡아 강단 있게 처리하자 검찰내부에서도 통제불가능이라는 인물로 낙인찍히고, 파친코 수사를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검찰내부에서 그를 왕따시키자 그는 검사직을 내팽개치고 후배 변호사 사무실에서 더부살이로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된다.
96년 1월에 김영삼 대통령 측근의 제의로 여당에 입당하면서 송파갑에서 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과 함께 선량으로 생활을 하게 되었음을 여과 없이 소개하고 있다.
홍준표의원이 변방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이 변방에서 국가의 중심세력이 되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책에서 그는 가난했던 자신의 유년과 청장년 시절을 '변방 인생'으로 규정하면서 "내가 변방에서 중심으로 가기 위해 노력했듯 이젠 내 나라가 변방에서 중심으로 가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할 때"라면서 세계의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나가자고 한다. 이 책의 요지인 '중심국가론'이다.
그의 그러한 정신을 볼 수 있는 대목은 "나는 이 시대의 시대정신은 선진강국 시대로 보는 것이다. 통일 시대로 가기 위한 전 단계로 선진강국 시대로 가기 위해서는 한국사회 전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235쪽) 이다.
세계의 중심이 되기 위해 그는 정치적으로 대립과 투쟁을 탈피하고 공존과 협력의 시대를 열며, 경제적으로는 경제의 세계화 추구, 사회적으로 법치주의 확립, 복지는 일자리 창출과 교육기회의 균등, 외교는 자주외교를 통해 우리도 변방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 국가로 우뚝 설 것을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모래시계 검사라 한다. 자신을 유명인사로 만든 드라마인 '모래시계'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 책에서 "그것은 나에겐 멍에와 같다. 이 드라마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나머지 세월도 주인공 캐릭터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설명했다.
어느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대한민국의 군기반장을 하고 싶다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세탁하고 싶다"고 했다. 이 말에서 그는 성격도 강한 것 같고, 할 말을 하는, 까칠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언론은 그를 쓴 소리를 잘하는 의원으로 소개한다. 하지만 그는 바른 말을 하는데 자꾸 언론에서 쓴 소리라고 한다.
그의 생활신조는 화이부동과 유수부쟁선이다.
홍준표 의원은 프로필을 보면 가훈을 화이부동(和而不同), 좌우명을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라 한다. 흥미로운 가훈과 좌우명을 목표로 삼고 살지만 그 정도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나이가 70은 넘어야 할 것이라는 그의 말에 겸손함이 보인다.
홍준표 그는 어려운 가시밭길을 걸어서 현재의 위치까지 그가 말한 대로 도꼬다이로 이루어 냈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걸어온 그에게 찬사를 보낸다.
살기 어렵다고 돌아가고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이 책은 그러한 사람들, 힘들고 자신의 형편을 초라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어 본다면 큰 위안과 용기를 줄 것이다.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 주고 싶다. 이 책을 통해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꿈을 실현시켜 나가는 미래에 필요한 시대정신을 배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