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래
살래그것으로부터바람이 불어왔다머리카락 한 올날리지 않는데도나는 나도 모르게앞섶을 여미었다먼 세월의 저편에서묵직하게 밀려오는조류 같은 바람이었다마치 만조처럼그 바람은 내 무릎을 적시고가슴까지 차올랐다현관 앞에서돌아가는 택배아저씨에게나는 차마집안까지 들여놓아 달라고부탁하지 못했다나무 찬장이라고 하던데혼자 힘으로 들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특별한 인연으로제주도에서 보내온 물건이었다내가 첫 수필집을발간한 즈음이었는데여러 가지로부담이 되는 선물이어서한사코 사양을 했지만그것은 기어코내 앞으로 배달이 되고 말았다물건에도 거부할 수 없는인연이 닿는 모양이었다그것은 생각보다 가벼웠다숨을 멈추고 힘껏 들어 올리자덜렁 바닥에서 몸을 뗐다테이프를 뜯고박스를 벗겨내자뽁뽁이 비닐이한 겹을 더 둘러싸고 있었다그 비닐마저 풀어내니자그마한 체구의나무 이층장이모습을 드러냈다옛날부터 제주도 부엌에서찬장으로 쓰였던 살래라고 했다순간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그때 묵직한 바람이내 가슴을 밀치고 지나갔다한 오백 년은 산할망 같았다깊은 주름살이온몸을 덮고 있었다왠지 똑바로바라보기가 어려웠다나는 잠시 몸을 외로 틀고 있다가살래 앞에 두 무릎을 끌어안고마주 앉았다이층장 문짝마다에는골골이 패인 주름이 가득했다간혹 오래된 나무판자에자연적으로 양각된 결은 보았지만이렇게 모질게 주름으로덮인 것은 본 적이 없었다아예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손톱만한 편편한 자리도찾을 수 없었다제주의 바람에살이 발리고바싹 마른 문짝에는뒤틀리며패인 상처 같은 주름들이새겨져 있었다그 작은 틈새가질곡처럼 다가왔다나무에게 뼈가 있다면아마도 주름위로심줄처럼 도드라진저 무늬들일 것이다나는 갑자기숨쉬기가 거북해졌다게다가 찬장 상판은마치 나무 화석 같았다그 작은 나무판이어둠에 잠긴 제주 바닷가의넓은 바위를 연상시켰다그러나 그 바위도편안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패이고 닳고모서리는 깨져 있었다이리저리 기울고 거친암갈색의 상판이억겁의 세월이라도 건너온 듯아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또 다시 밀도 높은바람이 다가왔다일 년에 한 바퀴태양의 주위를돌아야하는 시간에게서는늘 바람의 냄새가 난다바람은 시간을 실어 나르고모든 바람은 흔적을 남긴다사라진 시간들이그 시간을 관통한 사물들에켜켜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제주의 바람은 살래에 고스란히그 흔적을 남긴 것 같았다굳이 한반도의 역사를끌어오지 않더라도척박했던 그 섬에서살아간다는 것은오랫동안가슴 시린 일이었을 것이다더구나 자식들을 끌어안고살아남아야했던어미들의 삶에 있어서야먹고 살아야 한다는피할 수 없는 명제와맞닿아있는 살래 앞에서나는 제주 어미들의패이고 갈라진 가슴들을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순간 눈꺼풀이 뻑뻑해지고두터운 어둠이 내 눈앞을 가렸다시장통 불빛이 하나 둘 꺼지자사방이 깜깜해졌다행인들도 뚝 끊겼다버스정류소 표지판 앞에서아무리 애타게 기다려도다음 버스는 오지 않았다사방이 진공이 된 것처럼적막해지고문득 정류소에나 혼자 남아있다는 것을깨달았을 때그제야 붉은 후미등을 흔들며아스라이 멀어지던 바로 앞 차가막차라는 것을 알았다오늘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시장통을 거쳐 보리밭을 지나고언덕을넘어 산 아래에 있는 집까지열네 살의 나는가로등도 없는 밤길을 걸었다내 발 밑에서어둠이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다집으로 돌아온 나는잠든 동생들이 깰까봐조심스레 부엌문을 열었다깜깜한 부엌에 앉아있는 찬장이어슴푸레하게 보였다간유리로 된미닫이문이 달린 이층 찬장이었다수도도 없고 부뚜막도 없는부엌 한 구석 석유난로 옆에덩그러니 놓여있는 찬장나는 그 찬장을 열어보았다국수가 반 다발 가량 남아 있었다마지막 양식이었다다시 깜깜한 어둠이내 눈앞을 막아섰다그때의 어둠은 너무도 깜깜해서그 후의 일들을 드러내지 않는다타지로 돈 벌러 떠난 아버지를찾으러 간 엄마가얼마 만에 집으로 돌아왔는지기억에 없다집과 정류장왕복 이십 리가 넘는 밤길을얼마나 걸었는지도생각이 나지 않는다그동안 나와 동생들은무엇을 먹고 살았을까얼마나 굶었을까나는 도무지아무것도 떠올릴 수가 없다엄마가 돌아왔어도찬장은 채워지지 않았다언덕 아래 쌀가게에서외상을 긋고 가져온 봉지쌀은찬장에 들어가기가 무섭게바닥을 보였다옆집 할머니에게 빌린 국수다발은엄마 몫을 삶지 않아도찬장에 남아있지 않았다간혹 잔돈푼을찬장 구석에 감춰 놓았지만그것은 결코찬장 속에서 목돈이 되지 못했다그 세월 속에서 엄마의 가슴은패이고 갈라지고 말라버렸다깊은 병을 얻은 엄마는겨우 오십을 넘기고 돌아가셨다이사를 가면서찬장은 버려졌다이미 바닥은 내려앉고문짝이 뒤틀린 뒤였다끝내 한 번도속을 채우지 못했던우리 집 찬장은그렇게 사라졌다살래의 문을 열어보았다텅 빈 가슴에어둠이 고여 있었다손을 넣어 더듬어보았다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나는 갑자기 이 살래가내게 온 이유를 알 것만 같았황급히 일어나내 수필집 한 권을 가져와살래의 가슴에 넣고문을 닫았다내가 엄마에게드릴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살래를 햇살이 잘 비치는거실 창가에 놓았다예쁜 화분도 하나 올려놓았다햇살이 살래의상처 사이로 스며들었다주름투성이의 살래가조금씩 반짝거리기 시작했다눈물을 씻고 다시 바라본 살래는햇살 아래에서 너무나 아름다웠다
출처: 여행등산야생화 사진 원문보기 글쓴이: 마르코폴로(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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