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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우리 교회 표어를 진정성 있게 외쳐봅시다. 시~작 “예배가 먼저입니다!”
예배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입니다.
성도님 옆에 주님이 와 계십니다. 주님이 성도님을 도와주시니 잘 풀릴 것입니다.
사랑의 주님이 성도님을 축복하고, 은혜의 주님이 성도님과 함께하십니다.
사랑의 주님이 내 삶을 축복하고, 은혜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십자가의 도
할렐루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로 복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는 참아름답습니다. 시편 133편에 보면 그 아름다움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니 곧 영생이로다."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면 보배로운 성령의 기름이 내리고 은혜의 이슬이 내리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하나가 된 교회에 복을 주시되 영생의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임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로 만들어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분쟁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헛되이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바울은 이들을 하나 되게 하려고 십자가의 도가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사람들을 하나가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서로를 믿어주고 감사하고 사랑하게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사도바울이 전하는 십자가의 도는 무엇입니까?
1. 멸망하는 자와 구원받는 자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게 하는 능력과 구원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사람을 멸망하는 자와 구원을 얻은 자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그 중간은 없습니다.
멸망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 그 마음에 두려움과 슬픔과 불안에 시달립니다.
죽은 후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서 멸망합니다.
반면에 구원을 얻는 자들은 세상에서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힘이 있습니다.
죽은 후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합니다.
그러면 멸망하는 자와 구원하는 자는 어떻게 나누어질까요?
여러분은 멸망하는 자인가요? 구원받는 자인가요?
1) 십자가가 미련하게 보이는 자는 멸망하는 자입니다.
바울은 멸망 받는 자와 구원 얻는 자가 십자가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고 말합니다.
십자가가 미련하게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십자가의 도를 어리석게 보고 십자가의 도를 멀리하는 자들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는 멸망하는 자입니다.
2)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십자가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십자가를 사랑스럽게 바라봅니다. 십자가를 묵상하면 할수록 마음속에 은혜가 넘칩니다.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십자가가 세상의 어떤 것보다 귀하게 보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사랑할 뿐 아니라 자신도 자원하여 십자가를 집니다. 십자가의 미련한 길을 걸어갑니다.
고난의 길을 걸어갑니다. 겸손의 길을 걸어갑니다. 나를 죽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십자가를 가르칩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구원받는 사람들입니다.
3)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도바울은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능력입니까?
사람들은 불신자들을 멸망시킬 수 있는 능력이요, 또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돈이 힘이라고 생각하고 돈에 정신을 빼앗기고 삽니다.
그러나 돈을 목적으로 삼고 돈을 추구하는 나라는 돈 때문에 망합니다.
부유한 나라들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부유한 나라에서 자살률이 높습니다. 돈이 많아서 싸우는 집도 있습니다.
요즘에 학생들은 지식이 힘이라고 생각하고 머리를 싸매고 공부합니다.
그러나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병이 될 때도 있습니다.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을 보고 어떻게 음식을 만드는지 알고 나면 식당에 가서 먹을 음식이 없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더 잘 싸웁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군사력이나 재력이나 지력을 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도를 추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누구보다도 힘이 세신 분이십니다.
열두 영이나 되는 천사를 동원하여 자신을 못 박는 자를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홍수심판으로 죄악 된 자들을 다 심판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 부자고 지혜로운 분이고 누구보다도 강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힘으로 죄인들을 징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힘이 있었지만 힘을 쓰지 않고 무능한 자가 되었습니다. 알면서 모른 체 하는 무지한 자가 되었습니다. 때리면 맞아주시고 침을 뱉으면 그 침을 그대로 뱉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면 그것을 그대로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죄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십자가를 지시고 제자들에게도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십자가를 보고 많은 사람이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셨습니다.
이를 볼 때 십자가가 능력입니까? 아니면 군사력과 경제력 지력이 능력입니까?
십자가가 능력입니다. 십자가만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십자가만이 사람들을 마음으로 굴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만이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사랑해야 합니다.
2. 하나님 사랑의 결정체인 십자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신 후에 사람을 너무 사랑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담이 생겨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멈추고 오지 못하여 사람은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망과 허물로 살다가 영원히 멸망하는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의 숙명이요 운명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너무 불쌍하고 애처롭게 생각하시어 사람을 구원하시는데, 그 길은 오직 한 길뿐입니다. 죄악의 담을 헐고 사람을 영생하게 하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흠도 점도 죄도 없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하나뿐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려야 그 피의 공로로 모든 사람이 죄 사함을 받고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믿기만 하면, 무슨 죄가 있어도, 아무리 부끄러운 과거가 있어도 무조건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딸로 삼아 주시고 구원해 주셔서 영원히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1) 유대인에게 거리낌이 되는 십자가
유대인들은 영광의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의 위대한 왕으로 천군 천사와 더불어 내려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마구간에서 초라하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구세주라니 거리낌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 나무에 달려 죽는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는 자라고 했는데,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 저주받아 죽은 예수가 구세주라고 하니 거리낌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은 여러분과 제가 나무에 달려 저주받을 것을 주님께서 대신 저주받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벌거벗은 몸으로 달리셔서 창피를 당하셨는데, 여러분과 제가 당할 창피를 주님께서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부끄럽게 죽은 예수가 구세주라는 사실이 거리낌이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을 자기들이 죽였습니다. 자기들이 빌라도에게 청원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이 구세주라니 거리낌이 되는 것입니다.
2) 헬라인에게는 미련함이 되는 십자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에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구원받는다는 말은 헬라인들과 이방인들에게는 이것이 미련한 소리, 허튼 소리였습니다.
요즘처럼 매스컴이 있는 시대가 아니었으니, 요즘처럼 신문이나 라디오, TV가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들은 예수님께서 나신 것도 모르고, 예수님께서 누구인지도 모르고,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것도 몰랐습니다. 고린도에서는 십자가의 사건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울이 고린도에 나타나서, 죄악이 많으면서도 문화가 발달하고 부유하고 지식수준이 있는 도시, 철학자들이 많은 지성과 죄악의 도시인 고린도에 와서 그들이 생판 모르는 예수를 전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믿으면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는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허튼소리로 들렸겠습니까?
아니, 그들이 예수님을 보기나 했습니까? 예수님에 대해 듣기나 했습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가 전혀 없는데, 어느 날 키도 작고 눈병이 난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니 얼마나 어리석은 소리로 들렸겠습니까?
그런데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바울아, 잠잠하지 말고 외쳐라. 이 성에 내 백성이 많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무조건 십자가의 복음만 고린도 시민들에게 전했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너도나도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여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마침내 고린도에 큰 교회가 서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신비로운 일입니다. 바울이 생각해도 신비로웠습니다.
'나는 십자가의 도를 전하기만 했는데, 예수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찌 예수님을 믿고 이렇게 큰 교회가 되는고?'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듣고 고린도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데, 믿지 않는 사람들은 왜 믿지 않는가?' 그것도 신비했습니다.
몇십 명, 몇백 명, 몇천 명이 모인 자리에서 똑같이 말씀을 전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회개하고 기뻐하며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며 믿음 생활을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돌아간 후에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의 능력이 헬라어로는 뒤나미스인데, 그것은 다이너마이트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십자가의 복음을 듣는 사람의 가슴에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해서 의심하고 불신하는 바위 같은 냉랭한 마음, 굳은 바위 같은 마음이 폭발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3. 복음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롬1:16)
로마서 1:16절에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The power of God(하나님의 능력).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바다를 가르시는 하나님, 태양을 멈추기도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능력이 다이너마이트처럼 그 사람 속에 들어가 폭발해서 믿지 않고는 못 견디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복음을 믿을 수가 없고 '허튼소리를 하네.'하고 마는 것입니다.
같은 태양 빛을 받아도 살아 있는 식물은 탄소 동화 작용을 일으키며 자라지만 죽은 나무는 더 빨리 마르듯이, 같이 비를 맞아도 살아 있는 식물은 푸릇푸릇 자라지만 죽은 나무는 더 잘 썩는 것같이, 같이 십자가의 복음을 들어도 구원받을 사람은 구원받고 멸망하는 사람은 깨닫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에 수많은 지혜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없고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믿게 하시면 어리석은 사람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참 신비롭습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취임사를 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손을 얹고 하나님 앞에서 선서를 합니다. 또 목사님의 축복 기도를 받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반대하지 못합니다.
만일 한국에서 대통령이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고 목사님이 축복기도를 하면 다른 종교 단체에서 무어라 할 것입니다. 종교 차별한다고 난리가 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계에 복음을 증언하기 위하여 미국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재채기만 해도 옆에 있던 사람이 "God bless you(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기를)!"라고 한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Thank you."라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조금만 놀라운 일을 만나도 "Oh God!" 일이 잘 안 풀려도, 기막힌 일을 당해도 "Oh my God!"이라고 말한답니다.
그리고 돈에도, 큰돈이든 작은 돈이든, 일 센트짜리 동전에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IN GOD WE TRUST).'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은 나라의 분위기가 교회의 분위기와 같습니다.
그러면 미국 사람들은 다 예수님을 믿습니까? 아닙니다. 미국 사람이라고 다 주일에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주일에 바다로 가는 사람은 바다로 가고, 골프하러 가는 사람은 골프하러 가고, 교회에 오는 사람만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미국에 십자가가 영광스럽게 나타나지만, 모두가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이너마이트를 그 마음에 주셔서 터뜨린 사람만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선교사가 처음 와서 복음을 전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말도 제대로 못 하는 선교사가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세요."하는 그 말이 우리에게는 허튼소리였습니다. 2000년 전의 예수, 유대인으로 나서 죽은 예수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니, 2000년 전에 났다가 죽은 예수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나시는 것을 보았습니까? 돌아가시는 것을 보았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선교사님들이 와서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라고 하는 그 말을 듣고 안창호 선생님이 예수를 믿고, 조만식 선생님이 예수를 믿고, 김구 선생님이 예수를 믿고, 이승만 대통령이 예수를 믿고, 윤보선 대통령이 예수를 믿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습니다. 신비롭습니다.
평생에 처음 듣는 이름인 예수님의 이름만 듣고도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점잖은 사람, 지성인만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무식한 사람도 믿습니다.
남의 집 머슴도 예수님을 믿고 머슴의 전도를 받은 주인도 예수님을 믿습니다.
깡패도 예수님을 믿습니다.
***김익두는 아주 무서운 깡패,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평양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서워서 덜덜 떠는 무서운 깡패이니 그런 사람에게 누가 예수님을 전하겠습니까?
예수님을 전하다가 맞아 죽을까 봐 겁이 나서 아무도 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김익두를 모르는 미국인 처녀 선교사님이 길에서 김익두를 만나자 "청년,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하며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김익두가 그 전도지로 코를 팽 풀어서 집어던졌습니다.
김익두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가를 모르는 선교사님이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청년, 전도지로 코를 풀면 코가 썩어요."
그런데 그 말에 능력이 들어가니, 그때부터 김익두의 코가 간질간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꼭 코가 썩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밤에 자리에 누웠는데도 코가 폭싹 문드러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강심장인 김익두가 떨기 시작했습니다. 더럭 겁이 났습니다.
'내 코가 정말 썩으면 어떻게 하나?'
다음 날, 수소문해서 처녀 선교사님을 찾아갔습니다. 제발 코가 썩지 않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하니, 코가 썩지 않기를 바란다면 예수님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김익두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는데, 은혜를 받고 나니 너무 좋아서 입만 열면 "예수, 예수."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옛날의 김익두는 죽었다. 깡패 김익두는 죽고, 새 사람 김익두가 살아 있다."하며, 여기저기 다니면서 예수님을 전하다가 결국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나병환자를 낫게 하고, 장님의 눈에 손을 대고 기도하여 눈을 뜨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예수님의 복음을 얼마나 많이 전했는지 모릅니다.
십자가의 도가 그를 구원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등학생이 대학교수에게 예수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도 대학교수가 믿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머슴이고 상대방은 주인이라도 예수님을 전하면 주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 한 작은 시골 마을의 목사님은 얼마 되지 않은 그 마을 사람들을 다 구원해야겠다는 마음이 늘 끓어올랐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동민들이 다 예수님을 믿을까?'
이렇게 사람들을 구원하고 싶은 마음,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막 끓어올라야 합니다.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끓어올라서 견디지 못하던 목사님은 큰 종이에 교회에 다니지 않는 모든 동민들의 이름을 다 적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말했습니다.
"금년에는 우리 모두 한 사람씩, 두 사람씩 책임지고 전도합시다."
장로님들로부터 모든 교인들이 한 사람 이상 전도하기로 하고, 교인들이 "저는 이 사람을 전도하겠습니다." 해서 모든 동민을 다 맡았는데, 한 사람만 남았습니다.
호랑이로 소문난 윤 노인라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무섭던지, 그분을 전도하겠다는 교인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상수라는 초등학생이 "제가 윤 할아버지를 책임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린 상수가 윤 노인을 책임지겠다고 하니,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네가 윤 노인을 전도하겠다고?"
"예."
다음 날부터 상수는 학교 가기 전에 윤 노인의 집에 가서 외쳤습니다.
"할배요, 예수 믿으세요!"
"뭐? 야소 믿으라고? 이놈의 자식이!"
할아버지가 잡으러 오면 도망을 갔습니다. 할아버지가 아이를 따라잡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상수는 무사히 학교로 도망을 갔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윤 노인의 집에 가서 대문을 열고 소리쳤습니다.
"할배요, 예수 믿으세요."
"이놈의 자식이!"
다음 날 아침에 또 "할배요, 예수 믿으세요." 하면 할아버지가 따라오고, 또 학교로 도망을 가고, 또 오후에 "할배요, 예수 믿으세요."라고 했습니다.
며칠째 계속 그러니 할아버지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놈이 나를 놀린다.'고 생각한 할아버지가 하루는 상수가 올 시간에 대문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상수가 대문을 열고 "할배요, 예수…."하는 순간에 그 무서운 윤 노인이 상수를 붙잡아 가지고 어른을 놀린다며 얼마나 사정없이 때렸는지 상수가 절뚝거리며 막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아침에 상수가 또 와서 소리쳤습니다.
"할배요, 예수 믿으세요."
할아버지는 나가서 또 때리려 하다가 '아니, 예수가 뭐기에 저 아이가 매를 맞으면서도 예수를 믿으라 하나? 예수가 뭐기에 그렇게 혼나 놓고도 또 오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자기 발로 걸어서 교회에 나왔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도 할아버지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좋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상대방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훌륭하게 말할 필요 없습니다. 십자가의 복음 그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습니다."라고만 전하면 그 사람이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신비롭습니다.
결론과 적용
전도는 내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하는 것입니다.
고전2:25절에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미련하게 보여도 똑똑한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약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약해 보이는 것도 사람보다 강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하나님께서 약해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저렇게 약하다니, 하나님께서 힘이 없으시구나.'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 때문에 여러분과 제가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지혜가 어리석어 보여도 마귀의 지혜보다도 더 지혜롭습니다.
마귀는 사람 위에 있습니다. 사람보다 더 지혜로운 마귀도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이면 자기들이 승리할 줄 알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만세를 불렀습니다. 3일 뒤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을 마귀는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3일 만에 부활하시니, 마귀는 통곡하고 옆구리가 부러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해 보이는 것도 강하십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찬란하게 흐르고,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흐르고, 하나님의 사랑이 온 세계에 퍼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내 능력으로 쇠를 자석에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자석만 들고 가면, 아기가 들고 가든 할아버지가 들고 가든, 대학 교수가 들고 가든, 의사가 들고 가든 환자가 들고 가든 자석만 들고 가면 쇠가 달라붙습니다. 자석의 능력으로 쇠가 달라붙는 것이지 사람의 실력으로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말이 지혜로워 내가 전도할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십자가를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예수 십자가만 자랑하면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놀랍습니다.
물론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해도 믿지 못합니다.
구원받을 사람만 믿는 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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