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미디어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원래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원체 누구한테 지시받는 성격이 아니라, 회사에서 1년만 경력을 쌓고 친구들과 창업을 하자고 약속했죠. 내 스튜디오, 내 디자인을 하고 싶었거든요. 애초에는 친구 3명이 함께 하기로 했지만 결국 저와 친구 한 명이 1998년 플립디자인이란 이름으로 회사를 차렸어요. 그때는 아는 사람도 없다 보니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했어요. 웹이란 분야를 처음으로 접한 건 이듬해인 1999년이죠. 용산 컴퓨터 가게 사장님이 제게 갑자기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느냐고 묻는 거예요. 우연찮게도 얼마 전 후배 하나가 홈페이지 만드는 일을 한다고 했던 게 기억나서 그 친구를 불러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난생 처음으로 웹 분야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기존 홈페이지를 그대로 따라 그리는 수준이었지요. 이를 계기로 옆 가게에서도 쇼핑몰을 의뢰받았는데, 대부분의 비용이 프로그래밍 작업을 맡기는 데 들어간 거예요. 그래서 내가 직접 개발까지 해야겠다 마음먹었죠. 본격적으로 기업 웹사이트를 제작한 건 2000년 에버랜드가 처음이었어요. 직원도 뽑고, 프리랜서도 고용해서 총 7명이 사무실도 비운 채 3개월간 용인에서 머물며 일을 했죠.
1990년대 말이면 국내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계의 1세대라고 불리는 디자이너들의 창업이 활발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는 IMF 사태 때문에 갑자기 취업이 어려워져 창업을 많이 하기도 했어요. 1999년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은 닷컴 버블까지 일어나면서 홍익 인터넷, 클릭, FID 같은 회사들이 성장할 때였죠. 사실 저희는 그런 흐름의 바깥에 있었어요. 그냥 홀로 고군분투하던 시기였어요. 저희 회사는 본격적인 디지털 미디어 시장 진입이 무척 늦은 편이에요. 설립한 지 15년이 넘었지만 업계에서 회사 이름이 회자되기 시작한 시기는 2005년부터죠.
초창기에 스타처럼 등장하기보다 오랫동안 천천히 내공을 기른 회사라는 생각이 들어요. 2005년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회사 이름을 플립커뮤니케이션즈로 바꿨어요.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 전문지에 광고를 내면서 본격적으로 회사를 홍보하기 작했죠. 지금까지 아무리 어려워도 광고를 한 번도 중단한 적이 없어요. ‘중단하는 순간 회사가 없어지는 거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근데 홍보를 하려면 그에 걸맞은 작업물이 필요하잖아요. 그때 시도한 작업이 산돌커뮤니케이션 웹사이트인데 ‘웹 어워드 코리아’에서 상을 받기도 했죠. 회사가 실질적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는 금융 분야 프로젝트가 결정적이었어요.
삼성화재 웹사이트가 그 시작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갑자기 어떻게 큰 규모의 일을 수주했나 의구심을 갖지만 사실 4년 동안 노력한 결과예요. 이익이 거의 없는데도 금융 쪽 일을 시작할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작은 일도 꾸준히 맡으면서 결국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일을 따냈습니다. 삼성화재 작업을 마치고 입소문이 나면서 금융 쪽 일을 계속 맡은 게 비즈니스적인 전환점이 됐어요. 지금도 회사의 주요 클라이언트의 절반 정도가 보험, 은행, 증권 분야예요. 아마 대한민국에서 금융 쪽 일을 가장 많이 하는 회사 중 하나로 꼽힐 거예요. 다른 사람들 눈에는 갑자기 출현해서 쑥쑥 커진 것으로 보일 테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직원도 매년 10여 명씩 점진적으로 늘어났고 매출도 한 번을 제외하고는 계속 꾸준히 증가했어요. 그래도 늘 긴장하고 어렵기는 매한가지예요.
금융 분야의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하는 비결이 있나요? 금융 분야에 진출하려면 일단 경험이 무척 중요해요. 특히 개발 인력이 꼭 필요하죠. 업계에서 회사 내에 프로그래밍 인력을 대규모로 운용하는 곳이 얼마 없어요. 대부분 디자인 기반으로 시작한 터라 아예 없는 경우도 있고요. 큰 규모의 디지털 에이전시들도 대부분 협력 업체를 활용하는 편이죠. 하지만 저희 회사는 개발 인력만 20명이 넘어요. 자체 개발력을 갖췄다고 할까. 아무래도 금융 쪽은 내부적으로 개발 인력이 없고 경험도 없으면 진입이 힘든 분야라고 생각해요.
1 산돌커뮤니케이션 웹사이트, 2006 서체 개발 회사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타이포그래피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2006년 ‘웹 어워드 코리아’ 중소기업 일반 분야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 어도비 크리에이티브 프리덤 웹사이트, 2007 웹, 인쇄, 비디오 분야까지 다양한 창작 툴을 선보이는 어도비(Adobe)사의 크리에이티브 스위트(Creative Suite) 3 사이트. ‘창조의 시작은 점과 점의 접촉’이라는 콘셉트로 표현했다. 3 세종문화회관 웹사이트, 2008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하고, 원하는 정보에 쉽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UI 구성에 초점을 맞췄다. ‘절제의 미’를 콘셉트로 한 레이아웃이 특징. 성남아트센터, 강남문화재단, 서울시립교향악단 등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계기가 됐다. 2008년 ‘웹 어워드 코리아’ 공공 서비스 분야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플립커뮤니케이션즈의 터닝 포인트가 된 작업을 소개해주세요. 산돌커뮤니케이션 웹사이트 이후 어도비 크리에이티브 프리덤 웹사이트와 웹스미디어 웹사이트를 꼽고 싶은데요, 업계에서 한때 꽤 이슈가 됐죠. 세종문화회관 웹사이트는 성남아트센터, PMC 난타 등 문화·예술 쪽에서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 계기가 됐어요. 근래의 터닝 포인트는 모바일 웹과 애플리케이션 등 스마트 미디어 분야예요. LIG손해보험 모바일 웹 같은 경우는 수익이 적은 것을 알면서도 진행한 프로젝트였죠. 당시 그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앞으로 회사가 더 이상 성장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선견이었던 거 같아요. 이제 아예 단독 부서를 운영할 정도로 커져서 회사 작업의 1/3 정도를 차지해요. 코리아디자인어워드에서 수상했던 현대카드 에어라운지 벤딩머신 UI 같은 경우도 그렇게 해서 맡게 되었고, 현대카드의 모바일 관련 프로젝트도 꽤 많이 했습니다.
디지털 미디어업계는 변화의 속도가 참 빠른데요. 최근 각광받는 화두는 무엇일까요? 근래 업계의 큰 변화를 꼽는다면 플래시(ash) 작업이 아예 사라지고 있다는 거죠. 일단 iOS 같은 스마트 미디어에서 구동이 힘들다 보니 기업의 니즈가 바뀌기 시작했어요. 특히 디지털 미디어 분야는 법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터라 올해의 화두는 웹 접근성입니다. 웹 접근성은 장애인 차별 금지법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온라인상의 유니버설 디자인 같은 거예요. 작년까지는 공공기관 사이트만 해당됐지만 올 4월부터는 일반 기업에까지 적용 범위가 확장되어 앞으로 웹 접근성을 지키지 않는 회사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저희가 작업한 삼성화재 사이트는 손보업계에서 처음으로 ‘웹 접근성 우수 품질 인증 마크’를 획득한 경우인데 장애인들이 사용하기에 문제가 없고 기업이 이런 부분까지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반증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쪽 시장은 흐름을 놓치면 선점하기 힘들기 때문에 늘 일정한 R&D가 필요해요. 저희도 2년 전부터 공공 쪽 프로젝트를 통해 웹 접근성 작업을 시작했어요. 항상 미리 미래를 준비해야 해요.
플립커뮤니케이션즈의 강점이 발휘되는 업종은 범용성과 보편성이 중시되는 분야입니다. 회사의 개성을 보여주고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한다는 측면에서 아쉬운 점은 없나요? 분명 아쉬움은 있어요. 그래서 3년 전부터 내부적으로 어드밴스드 랩(Advanced Lab)이라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어요. 일종의 혁신 디자인 센터라고 할 수 있는데 모션 그래퍼, 플래셔, 디자이너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에요. 돈이 안되더라도 회사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젝트를 주로 맡는 CEO 직속 조직이에요. 각종 영상 제작부터 현대카드 벤딩 머신처럼 새로운 기기에 들어가는 UI 제작도 하고, 얼마 전에 끝난 회사의 리브랜딩 작업도 이곳에서 전담했어요.
지난 3월 회사의 로고와 슬로건까지 대대적으로 바꿨습니다. 리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설립 초부터 10년간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달려왔다면 지난 4년 동안은 회사가 성장에 박차를 가한 시기였어요. 그래서 이제는 스스로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야 앞으로 500명, 1000명으로 직원이 늘어나더라도 뿌리가 흔들리지 않는 회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회사의 미션과 비전, 그리고 핵심 가치가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기업과 사용자를 서로 연결해 성공을 이끌어내는 접점’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회사 이름인 플립(Pulip)도 ‘조언을 이끌어내다(pulling a tip)’란 의미거든요. 최종적으로 ‘블랜딧(Blend It)’이라는 슬로건을 회사의 미션으로 정했어요.
세상과 IT를 이어주는 역할에서 더 나아가 아름답고 조화롭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뜻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디자인적인 창의성에 가깝고, 조화롭다는 것은 기술적인 기반 위에 서로 이어주는 역할에 충실한 거잖아요. 결국 저희 회사의 목표는 ‘IT가 우리 삶에 조화롭게 스며들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인 셈이죠. 또한 회사가 갖춘 장점도 고민해봤어요. 지난 4년 동안 업계에서 돋보일 만한 큰 성장을 일구어낸 비결이 과연 무엇일까. 직원들이 생각하기에 플립의 가장 큰 장점은 ‘선견’이었어요. 예를 들어 프로그래밍 개발 인력을 운용하고 온라인 프로모션, 운영 업무, 그리고 스마트 미디어 분야에 재빨리 진입하는 거죠.
그래서 ‘4 Fore Pulip’이라는 회사의 핵심 가치를 정의했습니다. 각각 선견(Foresight), 선행(Foremove), 선점(Forepossesion), 선도(Foremost)을 뜻하는데, 미래에 닥칠 새로운 현상을 감지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지, 이를 바탕으로 시장의 프레임을 설정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며 삶을 윤택하게 하고 있는지, 궁극적으로 우리가 그만큼 가치 있는 회사인지 되묻는 거죠. 어드밴스드 랩의 직원들이 이 4가지 표어를 기반으로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만들었어요. 로고에 쓰인 서체도 투표를 통해 결정하고, 부서마다 다양한 플렉서블 아이덴티티(exible identity)를 만들고, 명함 앞면에 각자의 얼굴을 본뜬 패턴 이미지를 삽입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공을 들였던 프로젝트입니다.
1 현대카드 에어라운지 벤딩 머신, 2010년 인천공항 현대카드 에어라운지에 설치된 벤딩 머신은 현대카드 M포인트로 여행용품을 구매할 수 있는 디지털 자판기다. 기존 벤딩머신의 물리적인 제약을 넘어 원하는 상품을 입체적으로 배열할 수 있도록 UI를 디자인했다. 2010년 ‘코리아디자인어워드’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 부문에서 수상했다. 2 플립커뮤니케이션즈 리브랜딩 작업, 2013 기본 로고를 기반으로 플렉서블 아이덴티티(flexible identity) 시스템을 적용해 부서, 핵심 가치, 기업 문화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각 구성원의 얼굴을 패턴으로 표현한 명함이 독특하다. 3 고어텍스 퍼포먼스 쉘 캠페인, 2012 ‘세상 모든 아웃도어를 아우르다’를 모토로 진행한 고어텍스 퍼포먼스 쉘 캠페인 사이트. ‘다양한 활용성과 세련된 디자인’이란 제품의 특징을 전달하려 했다. 어드밴스드 랩에서 마이크로사이트 뿐만 아니라 인터랙티브 영상까지 함께 작업했다.
디자인 회사는 특히나 맨파워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150명이 넘는 직원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유지하나요? 생각보다 범용적인 기술이 없다 보니 디지털 미디어업계는 늘 기술력이 절실해요. 그래서 시장을 선점하려면 결국 사람에 대한 투자가 필수입니다. 초반에는 사람 뽑기도 힘들고, 상황도 열악하다 보니 신입들을 가르쳐놓으면 1년 만에 나가는 일이 빈번해서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인지 직원들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하나의 기업 문화가 됐어요. 직원 간의 결속력이 강한 편이라 상대적으로 이직률도 적고, 회사가 본격적으로 성장하던 시기부터 함께한 직원들이 많이 남아 있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입사한 지 3년이 지나면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올해 대상자가 약 30명이에요. 6년 차도 30명 가까이 되고, 10년이 넘는 직원도 나왔죠.
디지털 미디어 쪽은 기술에 대한 인사이트와 비전, 그리고 일하는 방식이 조화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어요. 단순히 디자인 능력이나 창의성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분야죠. 사람과 기술이 서로 엮이기 때문에 경영자의 조율과 조화가 중요한 비즈니스인 셈입니다. 제가 머리가 좋은 사람도 아니고, 크리에이티브가 남보다 대단히 뛰어난 사람도 아니에요. 제 일의 대부분은 직원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쪽 분야는 기존 디자인 회사와는 다르게 기업형 성장을 꾀할 수 있어요. 하지만 대표가 주요 클라이언트 몇 군데를 몸소 챙긴다고 가능한 부분이 아닙니다. 그런 역할은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고 오히려 좋은 인재를 많이 확보하는 데 전력을 쏟아야 해요. 차세대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도 물론 필요하죠.
플립커뮤니케이션즈의 업무 영역을 정의한다면? 저희는 모바일 웹과 앱을 지칭하는 스마트 미디어와 웹사이트 구축 및 운영, 디지털 광고 영역까지 맡고 있습니다. 저희가 속해 있는 한국디지털에이전시산업협회가 한국디지털기업협회로 이름을 바꾸면서 플립커뮤니케이션즈도 이제 디지털 기업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 빠진 말이 있다면 아마도 ‘디지털 서비스 제공 기업’이겠죠. 어쩌면 기업에 프로젝트 제안서를 보내는 순간부터 저희는 이미 디지털 컨설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그림만 그리는 게 아니라, 디지털을 통해 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고 믿기 때문이죠. 솔직히 유수의 컨설팅업체와 견주어봐도 저희만큼 디지털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곳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일종의 방법론을 만드는 게 앞으로의 숙제입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디지털 미디어 영역은 계속 범위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 뉴미디어 분야까지 다룰 계획은 없나요? 벽에 프로젝터를 쏘고 홀로그램을 만드는 뉴미디어 영역과 저희가 작업하는 웹, 스마트 미디어 매체는 생각하는 것만큼 관계가 밀접한 편이 아닙니다. 사실 상호 간에 일정한 간극이 존재하죠. 아무래도 저희는 비즈니스 마인드에 입각해 디지털 서비스를 실질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에 몰두하고 있죠. 앞으로 냉장고, 엘리베이터, 거리 설치물 등의 미디어는 고려해볼 수 있겠지만, 뉴미디어로 구분되는 분야에 적극적으로 접근할 생각은 없어요. 저희가 나아갈 방향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회사 규모를 키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저는 시작이 디자이너였고, 이후 디자인 회사의 기획자로, 영업을 하는 기획자 겸 디자이너로,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게 영업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제가 고객을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영업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죠. 하지만 저는 대부분의 회사 업무에 참여하고, 관련 사항을 체크하고 비즈니스에 대한 판단도 하니, 일이 상당히 많은 편이죠. 제가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방법은 사실 간단해요.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신의를 지키는 거죠. 회사를 꾸리다 보면 매년 2~3번씩은 꼭 문제가 터져요. 일정이 지연되거나 예상했던 금액이 초과돼 회사가 거의 망할 수준까지 간 경우도 있었어요. 어떤 회사들은 그럴 때 그냥 손들어버리곤 하지만 저희는 중간에 포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금전적인 손실은 다시 메울 수 있지만 한번 잃은 신뢰는 다시 회복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예전에는 일이 터질 때마다 그냥 묵묵히 견디곤 했지만 이제는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고민해요. 솔직히 저희가 디자인을 대단히 잘하거나 능력이 뛰어난 회사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일단 일을 맡기면 정말 믿을 수 있는 회사, 안정적이고 신뢰가 있는 회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결정할 때 신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렇게 하면 좀 더 이익이 날 거 같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아요. 예전에는 가끔 후회가 들 때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더 좋은 결과를 얻는 경험을 하다 보니 내 선택이 옳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도 마찬가지죠. 당장은 그 사람이 밉고 싫어도 정말 마음으로 안아주면 시간이 지나고 나서 결국 보답을 하더군요.
1 IBK기업은행 스마트 터치 앱, 2012 은행 업무를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이패드용 스마트 창구 앱이다. 2 비씨카드 웹사이트, 2012 비씨카드의 11개 회원사, 고객사, 가맹점, 그리고 카드 사용자까지 두루 사용할 수 있는 온라인 오픈 BIZ 서비스. OS, 브라우저, 기기 구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오픈 웹으로, 장애인들을 위한 웹 접근성을 준수했다. 3 삼성화재 웹사이트, 2013 웹 접근성에 맞춰 청각 장애인을 위해 동영상 콘텐츠에 자막과 수화를 제공하고, 패턴으로 차트를 구분하는 등 장애인들이 실제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시청각 요소를 보완했다. 국내 손보업계 최초로 ‘웹 접근성 우수 품질 인증 마크’를 획득했다. 4 현대카드 슈퍼시리즈 통합 앱, 2010 슈퍼콘서트, 슈퍼토크, 슈퍼매치 등 현대카드가 진행하는 문화 행사를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으로 통합한 슈퍼시리즈 앱. 행사 D-day 알림과 스코어, 음원 플레이어 등의 기능을 추가적으로 탑재했다.
대표님은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경영자 역할을 모두 맡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어떤 역할에 더 초점을 맞추는지요? 저는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전략을 책임지는 직급과 회사 대표라는 직책에 있다고 스스로 소개해요. 회사의 속성이 크리에이티브 집단이기 때문에 업종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경영을 해야 한다고 믿어요. 하지만 전 스타플레이어가 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어요. 저 한 사람을 위해 회사 구성원들이 존재하는 건 아니거든요. 전 단지 이들 중에 책임이 가장 많은 사람인 거죠. 디자인이든 회사 경영이든. 저는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하지만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거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디자이너로서의 미션은 우리 직원들이 해결해줄 거라고 믿어요. 저 혼자 할 수도 없고, 기본적으로 제가 경영자로서 그 길을 걷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처음 입사하는 친구들은 12권의 크리에이티브 관련 서적을 읽고 매주 한 번씩 저와 대화를 해요. 그림만 그리다 온 친구들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사고의 체계를 만들어주는 것이죠. 디자이너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인사이트를 주려고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제가 디자인을 잘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대신 직원들이 디자인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꼭 필요합니다.
대표님은 디자인 경영자로서 회사의 존속 가능성과 경영에 대한 고민이 클 것 같습니다. 요즘의 고민거리는 무엇인가요? 이제 디자인도 산업으로서의 가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한 사람의 스타플레이어, 하나의 좋은 작품만 추구하는 예술가는 아니잖아요. 디자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도 굉장히 많고요. 야근 잦고, 저무는 직업이라는 인식부터 뿌리 뽑아야 해요. 일한 만큼 충분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하고, 또한 업무의 질적 향상도 필요합니다. 우리 아이의 대학 학비 정도는 내주는 회사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6년 전부터 지금까지 단 한 해도 신입 사원 채용을 거른 적이 없어요. 아시다시피 신입들은 곧바로 실무에 투입시키는 게 현실적으로 힘듭니다. 그럼에도 매년 신입을 뽑는 이유는 산업적인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입니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 분야는 변화의 폭이 굉장히 빠르잖아요. 산업으로서의 가치를 만들지 않고, 후진 양성을 하지 않고, 직원들의 발전을 도모하지 않고, 지금 일어나는 현상에만 급급하면 언제 어떻게 이쪽 업계가 흔들릴지 모릅니다. 사실 저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죠.
대표님이 생각하는 ‘좋은 디자이너가 되는 법’이 궁금합니다. 좋은 디자이너는 99%의 노력과 1%의 운이 만든다고 생각해요. 1%의 운은 훌륭한 상사나 회사를 만나는 기회지만 99%의 노력은 스스로 만들어간다고 믿습니다. 특히 중요한 요소는 바로 관심이죠. 디자이너는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정해진 일을 처리하기 바쁘기 때문에 이것저것 관심을 많이 두는 사람일수록 좋은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 제 아들도 디자이너로 키우고 싶어요. 저도 그랬지만, 디자이너란 직업은 노력과 관심이 있으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은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도 어디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자기가 노력한 만큼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하지만 지금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이켜보는 것이 필요하겠죠.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플립커뮤니케이션즈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저희의 비전은 ‘Foremost digital consulting company’입니다. 단순한 제작사를 넘어 디지털 미디어 시장에서 고객의 성공을 위해 방향을 제시하는 기업이죠. 앞으로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아직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회사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 직원들 중에 이제 40대가 된 직원이 꽤나 많아요. 결혼한 직원들이 반이고요. 짜장면값도 10년 지나면 훌쩍 오르는데, 지금과 동일한 방식으로 일해서 직원들에게 자녀 학자금이라도 보태줄 수 있을까요? 앞으로 플립커뮤니케이션즈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업으로 변신해야만 합니다. 무엇보다 명확한 건 기업의 규모를 키우기 보다 직원들이 행복한 회사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회사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직원이 없으면 회사도 없어요. 사람이 우리 회사의 유일한 자산이기 때문이죠.
재미있게 비유하자면, 예전에는 단검 하나 들고 싸웠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총이 한 자루 생겼어요. 본격적으로 전쟁에 나갈 준비가 된 거죠. 저는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성격입니다. 내부적으로 구성원들의 기본적인 능력의 평균치가 일정 수준을 넘을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그렇다면 또 한 번의 커다란 성장을 가져올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회사도 지금까지 성장 일변도였기 때문에 앞으로 4~5년간은 자본을 비축하고 내실도 다져야죠. 디지털 컨설팅 기업이 되기 위한 다양한 프로세스 정립도 해야 하고요. 어쩌면 앞으로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기업으로 탄생할 수도 있고 우리 스스로 시장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요. ‘세상을 이롭게 하는 기업’이 앞으로 10년 안에 이루고 싶은 꿈입니다. 그게 만약 현실적으로 힘들다면 저는 직원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할 거 같아요.
| 1972년생. 1998년 창업한 플립디자인이 2005년 플립커뮤니케이션즈로 이름을 바꾼 후 현재 16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디지털 컨버전스 마케팅 전문 회사로 성장했다. 삼성화재, IBK기업은행, 비씨카드, 비오템, 올림푸스 등이 주요 클라이언트로 꼽힌다. 서강대 언론대학원에서 디지털 미디어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겸임 교수를 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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