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화랑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그 녀석은 전혀 락 매니아처럼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범생에 가까운 외모를 가진 유약한 소년이었다.
당시 레드제플린과 오지오스본의 광적인 팬이었던 나를 바라보며
"그런게 그렇게 좋아?"
라고 말을 걸어왔던 그 소년의 한 마디가
악마의 유혹일줄이야
그땐 전혀 알 수 없었다.
"너 헤비메틀 좋아하냐??"
이것이 광기의 서곡일줄이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 친구에게 당시 내가 즐겨듣던 레드제플린 * 오지 오스본 * 주다스 프리스트 * 레인보우 등을 테이프에 녹음해서 그야말로
헌신적으로 들려주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너 오늘 우리집 올래?? 너에게 보여줄게있어..."
이것이 초자연적 현상의 서주일줄이야,
그땐 전혀 알 수 없었지.
아무런 거부감 없이 그 친구의 집에 따라갔다.
그는 동부이촌동에 자리잡은 약간 허름한 5층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자 한쪽 벽에 블랙 사바스 시절 오지 오스본의 멋진 모습이 담긴 포스터가 걸려져 있고
다른 한쪽 벽엔 헤비메틀음반이 대충 어림잡아 한 500장 정도 진열되어 있었다.
솔까말 약간 놀라웠다.
지금까지 갠 일방통행으로 나한테 음악 이야기를 듣기만 했을뿐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헤비메탈 음반에 대하여 이빨을 깐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와 난 겁나 맛없는 새우깡을 처먹으면서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었는데,
문득 그 친구가 오디오로 가서 블랙 사바스의 LP를 하나하나 플레이어에 올리고 바늘을 내렸다.
"넌 블랙 사바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나의 귓가에는 오지오스본의 목소리가 처연하게 들려왔다
회고하건데 그 곡은 아마도 Children of the grave일 것이다.
"솔직히 난 블랙 사바스는 별로~~"
이때 난 소년의 미간이 약간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악마의 복선일줄이야~
그땐 알수가 없었지.
"넌 디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멋지지!!! 생긴건 좀 아니지만 노래는 정말 잘 하더라!!!!!"
"디오 재적 시절 블랙 사바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Heaven and hell 앨범 말하는 거지?? 그거 좋드라!!!"
"오지 재적 시절하고 비교하면 어때??"
"글쎄다.
난 초창기 블랙 사바스를 잘 모르니까.."
"오늘 다 들어봐라."
이윽고 그 친구는 나에게 블랙사바스의 1집부터 86년 토니아이오미의 솔로 앨범 성격이 짙은 14집 7TH STAR까지
논스탑으로 들려주었다.
글쎄 뭐 지금 들었다면 완존히 뿅갔겠지만,
불과 17세의 어린 아이가 솔직히 무슨 느낌을 받았을까??
난 몹시 지루해졌고 집에 가기 위해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녀석이 내 팔을 잡고 집에 가지 못하게 한다.
모야 이거?
이 팔 안 놔?
하지만 그 녀석은 내 팔을 놓아주지 않고 지루하고도 섬뜩하기 그지 없는 강연을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서 블랙 사바스는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어!!!
오지 오스본 재적 시절 블랙 사바스는 헤비메탈의 신이었고 이 세상은 평화로웠다.
그런데 오지 오스본이 나가고 로니 제임스 디오가 들어오면서 블랙 사바스는 위대한 카리스마를 잃고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지.
그러다가 디오가 나가면서 나의 사바스는 본격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했어.
딥 퍼플의 이안길런이 들어오긴 했지만 도저히 전성 시절의 성스러운 힘은 찾을 수가 없었어.
그리고 이제 글렌 휴즈가 들어오면서 이것은 도저히 블랙 사바스라고 볼수가 없어.
이럴순 없어!!! 이럴순 없는거야!!!
나의 사바스가 이토록 허무하게 쓰러지다니....
아아아아아아ㅏㅇ아이ㅓ이ㅓ어ㅏㅣㄴ;ㅏㅏ아ㅏㅏㅇ너ㅏㅣㅏㅣ어;ㄴ ㅇ니ㅏㅓ;임ㅇ'ㅓㅣ아ㅣㅓ 어ㅏㅣ아ㅣㅓ아아가가각!!!!!!!"
이윽고 그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 내렸고 나의 등골에선 전율이 솟아올랐다
난 중딩 시절 포경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에 오른 아이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채 일그러진 그 친구의 흉물스러운 형상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디오... 이 천하의 악당 같으니라고!!!!!"
갑자기 그 녀석은 DIO의 1집 HOLY DIVER를 꺼내 들었다.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소년은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마치 그 옛날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독립투사들처럼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이 모든 것이... 이 모든 것이 바로 너 때문이야!!!!!
이 ㅣ아; ㅓ;리ㅏㄴ ㄹㅇ; ㅁㄴ;!!!!! 나쁜 히ㅏㅓ ;ㅅ ㅣㄴ어 ㅣㅏ;ㅁ ㅓㄴㅇ!!!!! 디오 ;ㅣㅏ 어;이ㅏㅣ;ㅓㅏ 어ㅏㄹ ㅓㅣ!!!!!
넌... 넌... 죽어야해!!!!!
너 때문에 나의 사바스가 죽어가고 있어!!!!!
이 시ㅏㅅ ;ㅣ나어 ㅣㅏㄴㅇ ㅣ나ㅣㅇ ㄴ; ㅓㄹㄴㅇ;ㅣ ;ㅁ야!!!!!
지ㅏ ㅈ;ㅇ ㅓㅏㅓㅏ ㅇ ㅏㅓㅓ ㅏㅁㄴ ㅏㅓ ㅓㅓ ㅏ;ㄴ;ㅓ ㅏㅣ ㅓㅏㄴㅁ야!!!!!
죽어!!!!! 죽어!!!!! "
이윽고 그 녀석은 디오의 레코드판을 책상에 여러 차례 내려쳐 잔인하게 뽀개버렸다.
난 그 장면을 보며 하마터면 바지에 오줌을 지릴뻔 했다.
정말 무서웠다.
그 친구의 증오에 찬 눈빛과 오지 오스본의 사악한 목소리로 가득한 방안은 상상 속으로만 가능했던 지옥의 불구덩이였으며,
산산조각나서 부서져 나가는 홀리 다이버 레코드는 앨범 자켓속의 불쌍한 목사 아저씨마냥 가련하고 비참해 보였다.
'나가야 한다... 빨리 이 지옥으로부터 나가야 한다...'
그때 난 이 방에서 빨리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의 가사를 보면 후반부에 "당신은 결코 이 방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그것은 호텔 캘리포니아를 둘러싸고 있는 기이한 악마의 힘을 결코 인간이 이겨낼수 없다는 의미를 띠고 있다.
그때 난 그 친구의 방 안에 강력하게 감돌고 있던 마귀의 역사를 극복할 수 없었다.
실로 형언할수 없는 공포를 느끼며 부들 부들 떨 수 밖에...
가장 원색적인 방법으로 디오를 처형한 그 친구의 눈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건 정말.....
"악마!!"
악마의 눈이었다.
모든 헤비메틀은 블랙 사바스로 시작하여 블랙 사바스로 끝난다고만 믿고 있던 그 아이의 소망이 깨어지자
지금까지 그 친구의 뇌 한 구석탱이에 또아리를 틀고있던 사악한 악마가 일순간에 빠져나와 소년을 덥썩 삼켜 버린 것이었다.
"나... 나 갈께!!!!!"
홀리 다이버를 박살낸후 잠시 고개를 떨구고 있던 그 아이의 빈틈을 타서 난 있는 힘을 다해 악마의 방을 빠져나왔다.
다음날 그 다음날 그 아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3일 후에야 학교에 나온 그 친구는 완벽하게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 녀석은 퉁퉁 부어오른 눈으로 날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더 이상 헤비메탈을 듣지 않을 꺼야....."
그 사건은 나에게 있어서 강력한 경험이었고 영묘한 충격이었다.
이 날 이후 난 블랙 사바스를 다른 밴드와는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그들의 음악에는 다른 락 밴드에게는 없는 그 어떤 마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런 생각을 가지니까 그들의 음악에 다가가기가 더욱 힘이 들었다.
아니~
무서웠다.
사바스의 음악을 듣게 되면 나도 그 소년처럼 악마가 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니 온몸에 소름이 쫘악 돋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