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살아내며, 7월의 일기, 영화 ‘엘리멘탈’의 깨우침
‘The shop was never the dream. You were the dream. You always the dream.’
최근에 개봉된 미국영화 ‘엘리멘탈’(Elemental)에 나오는 대사다.
‘엘리멘탈’은 미국 디즈니사 제작에 한국인으로 미국이민 2세인 피터 손(Peter Sohn)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개봉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를 정도로 우리나라 관객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영화다.
사원소(四原素)라고 해서 만물을 구성하는 기본인 엘리멘트(element), 곧 불과 물과 공기와 흙이라는 그 네 가지 요소를 의인화시킨 놀라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지난 5월에 있었던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의인화 된 그 넷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엘리멘트 시티’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갈등과 희생과 용서와 감사의 이야기가 그 줄거리다.
가게를 하는 부모를 따라 시골에서 도시로 나간 불의 여인 엠버가 어느 날 우연히 유쾌하고 감성적이며 물 흐르듯 사는 웨이드를 만나 특별한 우정을 쌓으며, 지금껏 믿어온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엠버는 그 경험과 함께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 끝에, 엠버는 평생 혼신을 다해서 일으켜 세운 가게를 딸인 자신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아버지의 뜻을 내치고, 자신에게 너무나 헌신적이며 새로운 경험을 선물한 웨이드를 따라가겠다고 선언한다.
그때 그 아버지가 한 말이, 바로 서두의 그 말이었다.
우리말로 풀어 대충 이렇다.
‘결코 가게가 꿈이 아니었다. 네가 곧 꿈이다. 늘 그랬다.’
내가 그 영화를 본 것은 2023년 7월 3일 일요일인 바로 어제의 일이다.
“아버지, 이 영화가 좋다고 하던데요.”
집안 행사가 있어 서울나들이를 했는데, 그 행사에서 만난 맏이가 그렇게 추천한 영화가 바로 ‘엘리멘탈’ 그 영화였다.
“알았다. 내 당장 봐야겠다.”
그렇게 답을 하고는, 곧바로 나혼자 그 행사장을 뛰쳐나와서 가까운 극장을 찾아간다는 것이 전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3번 출구 인근의 롯데시네마였다.
도무지 같이 존재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 불과 물과 공기와 흙이라는 그 네 가지 원소들을 의인화 시킨 것 자체가 좀 무리다 싶었다.
그 중에서도 상극이랄 수 있는 불을 엠버라는 여성으로 의인화 시키고, 물을 웨이드라는 남성으로 의인화 시켜서 그 둘의 화합을 시도하려다 보니, 곳곳에서 부조화의 분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의외인 것은 객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젊은이들은 감동의 탄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언론의 평들도 우호적이었다.
"비범한 스토리텔러 피터 손! 유쾌하고 가슴 따뜻하며, 놀랍다"라고도 하고, “유쾌하고, 가슴 따뜻하고 놀라운 볼거리로 가득한 작품”이라고도 했다.
물론 불의 엠버와 물의 웨이드 그 둘의 관계를 통해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상징시키고, 서로 다른 이웃들의 관계를 상징시키고, 이민 세대들의 애환을 상징시킨 것은, 놀라운 상상력의 결과였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소외되는 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엠버의 부모였다.
그리고 그 부모는 끝내 비겁했다.
딸아이 엠버에게 해준 그 말이 그랬다.
고향땅을 떠나 도시로 나가서 온갖 어려움을 겪어가면서 이룬 가게였음에도 그 가게를 꿈이 아니라고 한 것이 그랬고, 오로지 딸아이 엠버의 존재만이 꿈이라고 한 것이 그랬다.
존재 자체가 꿈이 아니라,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하는 것이 꿈이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본 뒤끝이 개운하지를 않았다.
뭔가 많이 내려놓아야 할 것만 같아서 그랬다.
밤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하룻밤이 지난 같은 달 10일 월요일인 오늘까지 이어졌다.
밤새 장맛비가 오락가락했었는데, 이른 아침인 오전 6시쯤에는 천둥 번개에 아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문득 ‘햇비농원’ 우리들 텃밭 걱정이 됐다.
그러잖아도 최근 몇 차례 폭우에, 밭에 물고랑이 생기고, 그 고랑으로 흙이 쓸려내려 가버렸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폭우에도 또 그럴 것 같았다.
차를 몰아 혼자 그 텃밭으로 올라갔다.
예측했던 대로 텃밭의 흙이 쓸려 내려오고 있었다.
비를 줄줄 다 맞아가며, 패인 고랑에 큰 돌과 나무토막들을 가져다가 막고, 흙을 쌓아 작은 둑을 만들었다.
비에 젖고 땀에 젖으면서 그 일을 했다.
육신이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생각은 또렷했다.
그 또렷한 생각 속에서 지난 밤새 했던 생각을 또 했다.
그 생각 속에서 내가 그 영화 속에서의 엠버 아비의 모습이 되고 있었고, 아내는 무력한 엠버 어미의 모습이 되고 있었다.
비단 아비와 어미의 모습만이 아니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다 그러겠다 싶었다.
내 모든 것을 다 던져 줘본들, 결국 그리 되겠다 싶었다.
답이 나오고 있었다.
지체 없이 내려놓아야겠다는 그 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