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3311
Paul McCartney
Paul McCartney의 'Another Day' 입니다.
Beatles 해체 이후 솔로로 발표한 첫 싱글곡 입니다. 앨범 [Ram] 작업을 위해 New York에서 스튜디오 작업 중이던 1970년 녹음하여 1971년 2월 싱글로만 발표된 곡 입니다. 싱글은 빌보드 싱글챠트 5위, 영국 싱글챠트 2위에 올랐죠... 그의 부인인 Linda McCartney가 화음을 넣은 이 곡은 집과 회사를 오가며 바쁘게 오가며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을 묘사한 곡이죠...
Single [Another Day / Oh Woman, Oh Why] (1971.2)
비틀즈가 해체된후 1971년의 후반 무렵 폴 메카트니는 기타리스트 Denny Laine, Denny Seiwell, 그리고 부인 린다를 포함해 자신의 밴드인 Wings를 조직했다. 폴 메카트니는 이들 윙스와 함께 [Wild Life]를 내놓았는데, 이 앨범도 큰 성공을 본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평소 비틀즈를 좋아하던 일부 팬들 중에는 폴 메카트니의 그러한 개인적인 성공에 대해 야유를 던지기도 했는데, 1973년에 폴과 린다는 마약소지혐의로 체포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해 9월에는 나이지리아로 가서 새로운 앨범 [Band On The Run]을 취입했다. 야유 속에서 발매한 이 앨범도 순식간에 플래티늄 앨범을 기록해서 자신은 비틀즈 시절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위대하다면서 야유를 퍼붓는 대중들에게 저돌적으로 대항했다. 이 앨범은 폴 메카트니의 최고의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인정을 받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앨범을 제작하는 등, 자신에게는 일대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지만, 윙스는 불안했다. 맨 마지막으로 가담했던 헨리 멕쿠로우(Henry McCullough)와 데니 시웰이 탈퇴했기 때문이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메카트니는 1978년에 다시 싱글 'London Town'을 비롯한 많은 싱글을 계속 발표했다. 1980년에는 린다와 함께 일본에 입국하였다가 마약소지혐으로 일본 경찰에 구속되는 또 한번의 불운을 겪기도 했지만, [McCartney Ⅱ]를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 제작 등 모든 작업을 도맡아 발표했다. 존 레논의 사망을 추모하면서 조지 해리슨이 만든 [All Those Years Ago] 제작 때는 옛 동료들과 함께 참여하기도 하면서, 비틀즈 시절의 멋진 사운드를 재현시키기도 했다. 이렇듯 폴 메카트니는 다양성을 겸비한 솔로 활동으로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여 나가는, 당대 최고의 거물 뮤지션으로서 손색이 없는 대단한 존재임에 틀림 없다. 스티비 원더와 함께 'Ebony & Lvory'를 듀엣으로 불러 성공을 거둔 뒤, 마이클 잭슨과 함께 'The Girl Is Mine'을 불러 대단한 히트를 기록했다.
1942년 리버풀에서 출생한 Paul McCartney는 1960년대에 John Lennon과 함께 세기의 밴드 The Beatles를 이끈 쌍두마차 중 하나였다. 비틀즈 시절 그는 베이스 기타와 보컬을 맡아 (레넌과 함께) 수많은 비틀즈의 히트곡을 만들고 불렀다. 특히 'Yesterday', 'Hey Jude', 'Let It Be', 'The Long and Winding Road', 'Michelle', 'Here There and Everywhere', 'Penny Lane', 'Eleanor Rigby' 등은 그의 손을 거친 곡이었다.
1970년대 밴드 Wings를 이끌며 큰 성공을 거두었던 것은 물론 1980년대에도 솔로로 활동하면서 성공을 이어나갔다. 그는 미국에서만 싱글 차트에서 탑 10 히트곡 22곡, 차트 1위곡 9곡('My Love' 'Band on the Run' 'Ebony and Ivory' 등), 앨범 차트 1위 앨범 7장을 배출했다.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탁월한 멜로디 창조력, 가정적이고 모범적인 이미지 등은 메인스트림 음악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1970년 4월 폴 매카트니는 첫 솔로 앨범 [McCartney]를 발표했다. 이는 비틀즈의 마지막 발표작 [Let It Be]보다 2주 앞서 발매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솔로 앨범이 성공하는 듯 보이자, 비틀즈의 다른 멤버들의 의사와는 달리 기습적으로 비틀즈의 해산을 선언했다. 그의 앨범은 빌보드 차트에서 3주간 1위를 차지하며 성공을 거두었고, 1971년 싱글 'Another Day'로 다시 히트를 기록한 후, 두 번째 솔로 앨범 [Ram]을 발표했다. 1971년 말 매카트니는 아내 Linda McCartney와 함께 wings라는 밴드를 결성했는데, 나머지 멤버로 Moody Blues 출신의 기타리스트 데니 레인(Denny Laine), 드러머 데니 세이웰(Denny Seiwell)을 끌어들였다. Paul McCartney & Wings로도 불리는 이 밴드는 실질적으로는 맥카트니의 백밴드에 가까웠지만, 밴드 체제로 음악 활동을 하고 싶어하던 매카트니의 욕심은 밴드를 10여 년 가까이 유지시켰다. 1971년 12월 윙스는 첫 앨범 [Wild Life]를 발표했고, 1972년 Grease Band 출신의 기타리스트 헨리 맥컬로프(Henry McCullough)를 보강하여 'Mary Had a Little Lamb' 등의 싱글들을 발표한 후, 1973년 봄, 두 번째 앨범 [Red Rose Speedway]를 발표했다. 밴드의 데뷔작에 이어 이 앨범도 좋은 평을 듣진 못했지만,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여 매카트니에겐 두 번째 넘버 원 앨범이 되었다. 1973년 매카트니는 첩보 영화 007 시리즈의 [Live and Let Die]의 주제가를 만들어 탑 10 히트를 기록했다. 그해 말 윙스의 세 번째 앨범 [band on the Run]이 발표되었는데, 나이지리아에서 녹음한 이 앨범은 그동안 자신들의 앨범을 혹평한 비평가들을 염두에 두고 야심적으로 발표한 앨범으로, 일부에서 비틀즈의 [Abbey Road]를 연상시킨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 결과 이 앨범은 윙스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평론가들로부터도 호평을 받았고, 4주간 앨범 차트 1위에 오르고 3백만 장 이상 판매고를 올리는 상업적인 성공도 거두었다. 1973년 말 가진 UK 투어 과정에서 두 기타리스트가 탈퇴한 후, 매카트니는 새 기타리스트 지미 맥컬로크(Jimmy McCulloch)와 신임 드러머 제프 브리튼(Geoff Britton)을 영입해 밴드를 재정비하여 1975년 [Venus and Mars], 1976년 [Wings at the Speed of Sound]를 차례로 내놓았다. [Wings at the Speed of Sound]는 발매와 더불어 행한 전미 투어에 힘입어 7주간 앨범 차트 1위에 올랐으며, 싱글 차트에서도 'Silly Love Songs'가 1위, 'Let 'Em In'이 탑 10에 올랐다. 1976년 성공적인 전미 투어를 가진 이들은 이 때의 실황을 2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과 30곡에 가까운 수록곡으로 요약해 3장짜리 앨범 [Wings Over America]에 담아 그해 말 발매했다. 1977년, 매카트니는 Thrillington이란 이름으로 [Ram]의 연주 버전 앨범을 내놓고 데니 레인의 솔로 앨범을 프로듀스하면서, 윙스의 활동은 잠시 휴지기에 들어갔다. 1978년 윙스는 [London Town]을 발표했다. 이미 앨범 발매 전 공개된 'Mule of Kintyre'는 영국 싱글 차트 사상 기록적인 판매고 (2백만 장)를 올린 바 있었고, 'With a Little Luck'은 미국에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 했으며, 'I've Had Enough'는 탑 40에 들었다. 앨범 차트 2위와 플래티넘을 따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1979년 발표한 [Back to the Egg]는 다시 플래티넘을 따냈고, 1980년 초 영국 투어를 돌았다. 1980년 5월 매카트니는 오랜만에 솔로 앨범 [McCartney II]를 발표했는데, 데니 레인은 '매카트니가 존 레넌 암살 사건 이후 투어에 나서려 하질 않는다'며 밴드를 탈퇴했으며, 자연스럽게 윙스는 해체되었다. 윙스 해체 후 매카트니는 비틀즈 시절의 프로듀서 George Martin의 프로듀스로 앨범 [Tug of War]를 만들어 1982년 4월에 내놓았다. 이 앨범은 오랜만에 호평을 받았고, Stevie Wonder와의 듀엣곡 'Evony and Ivory'은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크게 히트했다. 1983년에 맥카트니는 마이클 잭슨의 초히트 앨범 [Thriller]의 'The Girl is Mine'에 참여했고, 반대로 잭슨은 매카트니의 [Pipes of Peace]의 넘버 원 싱글 'Say Say Say'에 참여했다. 1984년 매카트니는 영화 [Give My Regards to Broad Street] 사운드트랙에 참여해 'No More Lonely Night'을 히트시켰고, 1985년에는 영화 [Spies Like Us]의 주제가를 만들기도 했다. 1986년작 [Press to Play]는 호평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 쓴잔을 맛보았고, 1989년 Elvis Costello)와의 협업으로 [Flowers in the Dirt]를 발표했다. [Flowers in the Dirt]의 호평과 함께 그는 월드 투어에 나섰고 그 결과 1990년 라이브 앨범 [Tripping the Live Fantastic]을 발매할 수 있었다. 1991년 그는 MTV의 '언플러그드'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음반에 담아 라이브 앨범 [Unplugged]를 발표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 매카트니는 클래식에 손을 대기도 했다. 1991년 그는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50주년을 기념해 클래식 작품을 만들어 [Liverpool Oratorio]란 이름으로 음반에 담았다. 또, 1995년 초 'The Leaf'란 타이틀의 클래식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반대로 그는 일렉트로니카에 손을 대기도 했다. 1993년 솔로 앨범 [Off the Ground], 라이브 앨범 [Paul is Live]을 발매한 후, 그는 1994년 파이어맨(The Fireman)이란 이름으로 앰비언트 듀오를 결성해, 1994년 앨범 [Strawberries Oceans Ships Forest], 1998년 [Rushes]를 각각 발표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매카트니의 가장 중요한 작업은 비틀즈를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1995년과 1996년 비틀즈의 미발표곡과 희귀 트랙을 모으고 다듬어서 [Anthology]를 만들었다. 2000년 비틀즈 차트 1위곡만을 모은 컴필레이션 [1]이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고 비틀즈 전기도 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비틀즈 공식 웹사이트를 오픈하는 등 전세계적인 '비틀즈 현상'이 일어났던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 예비되었던 것이다. 1997년 매카트니는 [Flaming Pie]를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으며,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기도 했다. 1998년 아내 린다의 죽음 이후 실의에 빠져있던 그는 핑크 플로이드의 기타리스트 David Gilmour를 스튜디오로 초대해 리메이크 곡 위주의 앨범 [Run Devil Run]을 1999년 발표했으며, 2000년에는 [Liverpool Sound Collage]를 발표했다.
[Albums]
McCartney (1970)
Studio albums 7, Live albums 1, Compilation albums 2, Video albums 1
Another Day
Every Day She Takes A Morning Bath S E Wets Her H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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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믿을 수 없으리만치 어제가 오늘같고 내일도 오늘같을 삶을 살아가는 저같은 사람 심정을 알아주는 곡이었구먼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