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울게 하는 「만복사 저포기」】
창피한 기억인데, 읽으면서 또 다 읽고 한동안 눈물 흘렸던 고전이 있다.
『심청전』이나 『홍길동전』을 읽고 쭐쭐 우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 나는 『금오신화』에 실린 최초의
한문소설 「만복사 저포기」를 읽고 많이 슬펐다.
더 솔직히 쓰자면, 아이마냥 쭐쭐 울었다. 일본에서 지내면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인은 내 꿈 속에
자주 나타났다. (짧은 이야기라서 이십 분 정도면 금방 읽을 수 있다)
'만복사'(萬福寺)라는 절은 전라도 남원에 있었다.
'저포'(樗浦)는 지금 윷놀이와 비슷한 놀이다. 만복사에서 윷놀이하다가 일어난 사랑 이야기(記)다.
공부만 하다가 결혼할 나이를 놓친 양생이라는 선비가 불상 앞에 앉아 부처님과 저포 놀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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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포 놀이를 해서 이기면 아름다운 여인을 달라고 요구한다. 저포를 던졌는데 부처를 이겼다.
"아, 제가 이겼으니 어여쁜 여인을 배필로 내려 주세요."
여기까지 얼마나 웃긴 코메디인가. 예수님과 포커해서 이겼다는 말이다.
기발하고 재미있게 시작하지만, 이야기는 전혀 다른 역사적 사건과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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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열대여섯쯤 되었을까(俄而有一美姬, 年可十五六).
아니나 다를까 부처상 뒤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앞으로 나온다.
첫 미팅 자리에서 여인이 향로에 향을 꽂은 뒤, 부처님 앞에서 세 번 절 하고 한숨을 쉬며 느닷없이
신세한탄을 한다.
"인생은 박명하다지만, 어찌 이같을까요(人生薄命, 乃如此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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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사실은 이 소설에서 왜구가 침략한 사건은 임진왜란이 아니라,
고려 말 조선 초이고, 그때 왜구가 남원까지 올라왔다는 말이다.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거의 100년 전 사람이다.
"아무 고을 아무 지역에 사는 아무개가 아룁니다.
전에 변방의 방어가 무너져 왜구가 쳐들어왔을 때 칼날이
눈앞을 가득 채우고 봉화가 해마다 피어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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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원본 번역에서 '해마다'로 번역해야 할지 '한 해 동안'으로 번역해야 할지 혼란스러운데,
어떤 번역이든 왜구가 매년 혹은 1년 내내 침략해 왔다는 뜻이다.
임진왜란 이전에 왜구가 남원으로 추론되는
지역 집들을 불 지르고, 양민을 학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왜구들이 집들을 불살라 버리고 백성들을 노략질하니 사람들은 동서로 달아나 숨고
사방으로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이 와중에 친척과 하인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소녀는 냇버들처럼 연약한 몸으로 멀리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규방 깊숙이 숨어 끝까지 정절을 지키고 깨끗한 행실을 보전하면서
난리의 화를 면하였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딸자식이 정절을 지켜 낸 것을 기특하게 여기시고 한적한 곳으로 피신시켜
임시로 초야에 묻혀 살게 하셨습니다. 그게 이미 삼 년이 되었습니다."
말이 "임시로 초야에 묻혀"라고 여인이 말하는데,
나중에 보면 여인이 왜구에 죽자 사람들이 들판에 임시로
매장했던 묘지를 뜻하는데 양생을 무슨 말인지 알아 차리지 못한다.
여인은 귀족 집안의 딸로 왜구에 죽었으나, 사람의 몸으로 나타난 여인으로 실은 귀신이다.
양생은 그 사실도 모르고 여인과 사흘을 지낸다. 말이 사흘이지, 여인과 3년을 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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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 함께 지내면서 여인은 양생에게 은주발을 주는데,
그 은주발은 여인이 부모가 여인의 무덤에 함께 묻은 물건이었다.
그때야 양생은 자기가 만난 연인이 왜구를 만나 목숨을 잃은 여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게다가 여인과 함께 지낼 때 밥상 대접 받았던 정 씨, 오 씨, 김 씨, 유 씨라는 모두 문벌이 높은 귀족 집
따님들도 사실은 모두 죽은 귀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양생이 만난 여인과 한마을에 사는 친척이니 모두 여인과 왜구에게 죽은 영혼들이었을 것이다.
모두 아직 시집가지 않는 처녀들이다.
양생은 자신이 억울하게 죽은 여인들의 혼령을 위로하며 통곡하며
제문을 쓴다.
"아아, 영이시여,
그대는 나면서부터 온순하고 수려하였고,
자라서는 맑고 깨끗하였고.
아름다운 용모는 중국의 미녀 서시와 같았고,
빼어난 문장은 중국의 숙진보다도 나았소.
규문 안을 벗어나 본 적 없고,
늘 가정의 가르침을 따라왔소.
난리를 겪으면서도 온전히 몸을 지켰거늘
왜구를 만나 목숨을 잃었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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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문소설에서 "울었다", "통곡했다", "눈물 흘리며" 등 우는 장면이 대여섯 번 나온다.
코메디로 시작해서, 비극적 로망스로 끝나는 이야기다.
여인의 슬픔을 흔히 '한'(恨)이라고 한다.
그깟 '한'이 오백 년 이상 지난 현대에, 식민지도 칠십여 년이 지났건만,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누가 그런 슬픔을 기억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만, 이 지겨운 '한'은 아직도 한국 사람들 무의식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영화 <암살>을 보면 무의식에서 불끈 솟는 국뽕의 의지 저변에는 저 여인과 비슷한 '한'이 있다.
그저 초코파이 박스에 쓰어 있는 '정'(情)을 이해하기는 쉽지만,
그 반대인 한국인의 한(恨)이라는 단어는 영어로도 일본어로도 적당한 번역어가 없다.
번역이 불가능하다.
영어로 'Revenge'라고 번역하면 큰 오역이다.
앙심이나 복수를 뜻하는 일본어 우라미(うらみ, 恨み)와는 전혀 다르다.
그냥 영어로는 한(Han), 일본어로도 한(ハン)이라고 발음대로 써야 한다.
핫도그를 '뜨거운 개'로 번역하면 안 되듯, 번역은 문자의 번역이 아니라 문화와 영혼의 번역이기에,
'한'은 '한'으로 번역해야 한다.
한국인의 '한'은 첫째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겪은 상처다.
둘째 한 세대에 끝난 것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generation to generation) 축적되고 축적된다.
셋째 복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판소리 같은 예술로 승화(sublimation)되는 방식이다.
일본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할 때, 이 '한'을 설명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한'을 풀어주는 샤먼 무당이 한국 문학 작품에는 도처에 깔려 있다.
김동리 『무녀도』부터 조정래 『태백산맥』부터, 서정주는 그냥 무당의 혼이기에 '한'을 설명
안 할 수도 없고, 쉽지 않다.
가령 신동엽 서사시 『금강』도 「만복사 저포기」의 '한'과 이어진다.
외국인은 이 '한'을 이해하기 정말 힘들다. '한'에 해당되는 영어나 일본어가 없다.
일본 대사관에서 1인 시위를 하고,
대사관 앞에 있는 일본군 성노예 위안부 평화 소녀상을 볼 때,
나는 「만복사 저포기」에 나오는 열대섯 살 나이, 시집 못 가고 억울하게 죽은 여인들을 생각한다.
그 여인들의 아픔은 아직도 이 나라에 떠돌아 다닌다.
아니 위안부 할머니, 강제노동 다녀온 할아버지로 실존한다.
얼마전 윤씨가 일본에서 행한 행동은 수백 년 동안 쌓여온 한의 아픔을 송두리째 무시한 짓이다.
국가가 저 슬픔과 눈물을 보상하겠다고 한 방식은 좋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자신들이 저지른 행실을 잘못 생각하도록,
제국의 확장의식을 합리화 할 길을 열어준 데에 있다.
한국인도 아닌데, 이 이름 모를 한국인들의 병을 공감하고 함께하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다.
내가 다니는 동학혁명기행을 함께 다니고, 한국 역사를 공부하고, 또 한국의 역사기행을 하며
한국인의 무의식에 또아리튼 트라우마를 공부하는 일본인들이 있다.
아직도 나는 「만복사저포기」 생각만 하며 눈시울이 뜨겁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마음이 그러하다.
남원에 가면 광한루만 가지 말고, '만복사지' 절터에 가야 한다.
남원에는 <춘향전>에 버금가는, 양생과 억울하게 죽은 여인과의 구슬픈 러브 스토리가 있다.
나는 아직 이 슬픔이 한국이 의식 저변에 염병처럼 숨어있는 트라우마라고 생각한다.
손흥민이나 이강인이나 김민재 영상만을 검색해서 보는, 이상한 습관성 국뽕 계열의 질병이기도 하다.
첫댓글
친구가 쓴 글이다.
일본의 혼네와 다테마에를 언급했는데 마침 이 글이 들어왔다.
한국인에겐 한이 있다.
이건 글에서 처럼 외국인들은 이해를 못한다.
한국인이기에 그냥 이해가 되었다.
한이라면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그 어떤 감정이다.
한은 나도 있는데!
오래 일본에서 교수생활을 한 친구인데
번역이 안된다니 새삼 충격이다.
자 재미삼아 각자 손금을 보자
맨 위에 가로로 그어진 손금이 감정선이다.
두번째가 두뇌선이다
감정선과 두뇌선이 가까우면 자연히 감정선 위가 넓을 것이다.
그럼 비정한 인간이라 한다.
감정선이 짧아도 인간미가 없다고 한다.
정치인은 이게 거의 다 짧다고 하는데 非情 또는 냉혹하다는 뜻이란다!
각자 보시길 바란다.
본인이 그렇다면 자신은 정치적 인간이라고 봐도 좋다.
엄숭도 짧았으리라 본다.
타인이 그렇다면 조심하시길 바란다.
여기에 눈썹도 짙지 않다면 철저히 정치형 인간이다!
뒷통수 칠테니까 말이다.
확률은 60~70% 정도이다.
냉혹한 사람은 손금으로 더 잘 알수 있다
이어령인가 예전에 우리 고유의 한(恨)은 英,日語로 번역할 마땅한 단어가 없다고 한 글이 생각납니다.
어느 문헌에 보니 고려말 쯤 천안 모군수(이름이 가물)의 부인이 왜구에게 납치된 것을 공격해 되찾아
왔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바다가 가까운 아산, 평택에 인접해 왜구의 출몰이 잦았음을 알수 있었습니다.
위치상 남원이야 더 심했겠지요.
왜구나 일본에 대한 恨은 죽어서도 호국용이 되고자 했던 문무대왕처럼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우리
민족의 지울수 없는 트라우마 상처가 아닌가 합니다.
유사이래 <만복사 저포기> 같은 사연이 수없이 많을 것인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