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D HOT 시작의 발단은 이러했다. 영화 <색, 계>의
여주인공인 탕 웨이를 보며 잠시 성 정체성을 망각한거다. 눈꼬리를 살짝 뺀 정교한 아이 라인에 짙은 눈썹, 살짝 매트하게 연출한 레드 립,
그리고 그녀의 순진하면서도 처연한 눈빛이 어찌나 매혹적이던지. 그녀에게 홀딱 반해 나도 레드 립스틱!이라는 결연한 의지가 샘솟았던 것.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다음 날 퇴근을 준비하며 사무실에서 시험 삼아 입술에 '빨간 색칠'을 하기에 이르렀다. 7살짜리 꼬마가 몰래 엄마 립스틱을
바르듯 조심스런 작업이 '완성' 될 무렵, 때 마침 뒷 자리에 앉은 선배가 불러 (내심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며) 등을 돌리니 그녀의 반응은
예상보다 처참했다. "널 보니 쥐 잡아먹은 입술이 뭔지 알겠다." 주제도, 방법도 모른 채 덥석 덤빈 탓. 무안한 기분에 티슈로 문지를 수
밖에. 아니, 그런데 왜 잘 지워지지도 않는 거야! 며칠 후, 화보 촬영이 있어 메이크업 아티스트 손대식을 만날 수 있었다. "레드 립스틱은 그
하나만으로도 정교하고 단아하게 보이게 하는 착시 효과를 주죠." 그러고 보니, 레드 립 연출을 즐기는 엘르의 부편집장 강주연 역시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아도 그 하나만으로 남들에게는 '무척이나' 신경 쓴 룩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왜 내겐 그토록 안
어울리냐는 거다. "다른 부위를 얼마나 신경 쓰냐는 것이 좌우하죠. 피부는 물론 헤어스타일 까지도 되도록 깨끗하게 연출해야 해요. 입술에
포인트를 준 만큼 다른 부위는 생략해도 좋은데, 다만 눈매는 아이 라이너로 또렷하게 연출하는 것이 좋고요." 몇 번의 실험이 반복되자
호불호의 원인 분석은 아주 단순하게 나눠지는 것이 아닌가. 피부 표현이나 아이 메이크업 등 다른 부위를 얼마나 신경 쓰냐에 따라 좌우되는 것!
이를테면 아이 라이너를 하지 않은 날에는 '어린애가 엄마 립스틱을 바른 것 마냥 어색하다', 피부 상태가 엉망인 날에는 '5살쯤 늙어보인다',
마감 중 다크 서클이 심한 날에는 '산전 수전 다 겪은 영화 속 술집 여자 같다'라는 등 각종 망언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반면 '신경 좀 썼다'
싶은 날에는 '어울리기 쉽지 않은데, 빨간 립스틱 정말 잘 어울린다'는 극찬까지 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천신만고끝에 내게
어울리는 레드 립 연출법을 결론 낼 수 있었으니...
뱀파이어를 연상시키는 와인빛 레드, 오렌지 톤이 가미된 스칼렛 레드, 상대적으로 영한 느낌이 드는 체리 레드 등
같은 레드라 해도 미묘하게 다른 수십 여개의 립스틱. 그 중 나와의 찰떡궁합은 의외로, 결코 소화할 수 없으리라 지레 겁먹었던 뱀파이어 레드.
이를테면 바비브라운의 28 cassis나 샤넬의 70 barcelona 같이 펄이 없는 매트하고 진한 컬러인데, 입술에 3-4번쯤 슥슥 문질러
바른 뒤 손으로 번진 듯 연출하는 것이 터득해낸 노하우다. 자연스럽게 혈색을 살려주면서도 전혀 올드해보이지 않을 뿐더러(오히려 어려보였다),
입술과의 밀착력이 좋아 지속력도 탁월했던 것. 좀 더 테크니컬한 방법이 있다면? 손대식에 따르면 "일단 립스틱을 바른 뒤 립 라인을 면봉으로
문질러 은은하게 지워주면 적당히 페미닌하다"고. 아, 진한 립스틱의 단점인, 컵에 묻어나는 것은 어찌하냐고? 뭘 걱정하는가.
<색,계>에서 와인잔에 붉게 물든 탕웨이의 립 마크가 얼마나 유혹적이었는지는 당신도 보아 잘 알지 않는가. 물론 '공부' 중 알아낸
컬러 사수하기 비법은 밝혀두리라. 립 펜슬(라인을 잡아준다)-브러쉬(펜슬로 그린 라인을 자연스럽고 그라데이션)-립스틱(메인 컬러를 발라
마무리)의 3단계를 거치는 것. 들이는 정성만큼 지속 시간은 비례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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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BY, PINK "잘못 바르면 얼굴색이 누래 보일 수 있을텐데, 무난해
보여도 결코 쉽지 않은 컬러거든요." 핑크 립스틱에 도전(!)한다는 내게, 메이크업 아티스트 박태윤이 찬 물을 끼얹었다. 그 때만해도 난 꽤나
자신만만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다. 세상에 핑크 컬러가 안 어울리는 여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라고 내심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사랑스러운 딸기 우윳빛에 홀려 다양한 핑크 립스틱에 지갑을 주저 없이 열어왔으면서도, 늘 핑크 립 주변을 '겉돌고' 있었으니까. 사랑한다
말하면서도 이처럼 사용빈도순위 2위에 그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인즉, 자칫 잘못 바르면 영락없이 홍두깨 선생의 부인, '고은애' 여사가 되기
쉬운데다 아이와 치크 컬러 매칭을 잘못했다간 80년대 즈음 '꽃분홍' 립스틱 짙게 바르고 외출 나가는 동네 아낙 꼴이 되니 그의 말은 차라리
진심어린 충고에 가까웠던 것이리라.
핑크 립 컬러를 소화하기 위한 방법은 크게 2가지다. 쉽게 말해 송혜교처럼 청초하게 연출하느냐, 이효리처럼
도발적으로 연출하느냐. 해외 스타를 예로 들자면 스칼렛 요한슨 또는 리한나를 생각하면 된다. 이 두 시안은 하얗고 말간 또는 까무잡잡한 브론즈
빛 피부톤과도 결부되는데 딱 중간인 전형적인 노란톤의 피부톤을 가진 나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하지만 전화위복의 길은 찾아왔으니
데이, 나이트 룩으로 나눠 활용하는 것! "되도록 피부톤은 창백하리만치 밝고 깨끗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아요. 청순하고
사랑스러워보이게요." 데이 룩을 위해선 평소보다 한 단계 밝은 톤의 파운데이션으로 피부를 정돈한 뒤, 프레스드 파우더로 뽀송뽀송한 마무리 감을
줄 것. 아이와 치크 역시 비슷한 톤으로 살짝 물든 듯 터치한다. 문제는 립이었는데 워낙 입술색이 진해 제 색이 표현되지 않을 뿐더러, 입술 안
쪽과의 이질감이 느껴졌기 때문. "요즘 립스틱들은 워낙 보습력에 초점을 두고, 쉬어한 질감으로 출시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박태윤의 설명. "일단
파운데이션으로 한 톤 입술색을 죽이고, 립스틱을 덧 발라 컬러감을 낸 뒤 파우더 퍼프로 한 번 눌러주면 매트하면서도 세련된 핑크 립이
완성되죠." 이도 저도 안 된다면? 페일 핑크 컬러에 펄이 든 립글로스를 덧바르면 된다(베네피트의 her glossiness my people,
your people을 강추!). 나이트 타임의 핑크는 보다 도발적이다. 낮 시간 동안 청초한 얼굴을 하고선 밤만 되면 180도 다른
변신을 하니, 핑크는 역시 여자만의 전유물인가, 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핑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브론즈&골드로 보색
대비를 응용하는 것. 바비 브라운의 쉬머 브릭이나 맥의 미네랄라이즈 같은 펄 파우더를 이용해 피부를 쉬머하게 연출하는데 눈가에도 함께 발라주면
아주 '쌔끈'해 보일 것. 펜슬 타입 아이라이너를 번진 듯이 발라 눈매를 강조한 뒤, 복고풍의 볼륨 헤어 스타일까지 가미한다면, 글래머러스한
브리짓 바르도 스타일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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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IC NUDE "너 어디 아파? 핏기가 하나도 없네." 대학교 3학년
즈음이었다. 베이지 립글로스를 바른 내게 한 남자 선배가 무심코 던진 말이었다. 남자들이란 늘 이런 식이다.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한 마디로
여자에게 상처를 준다. 그 후로 지금가지 나는 입술에 누드 컬러를 바르는 것에 이유 모를 거부감을 갖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메이크업에
서툴렀던 나이니, 대충 펴 바른 베이스에 아이라이너는 고사하고 마스카라 정도만 칠한 눈매에 시크한 누드 립이 감히 어울렸을 턱이 없다. 허나
지금도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아, 테크닉은 늘었을지언정 메이크업을 공들여 할 여유가 없으니 여전히 누드 립은 내게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 같은
존재로 남은거다.
용기백배 첫 시도는 출근을 준비하는 아침이었다. 시행착오를 번복할 수 없다는 결의로 매끈한 베이스, 깔끔한
아이라인, 은은한 시머링 터치까지. 하지만 마지막, 누드 컬러 립스틱을 바르는 순간 내 모습은 방금 막 입술에 콜라겐 주사를 맞은 것을 들킨
할리우드 스타의 꼴 아닌가. 2번째 실패였다. "어디가 입술이고, 피부인지 구분이 안가는 만큼 입술을 입체감 있게 연출하는 것이 중요하죠. 또한
기본적으로 동양인의 입술은 색이 진해 어설프고 칙칙한 베이지 컬러로 보이거든요." 박태윤의 말에 따르면, 자줏빛이 도는 동양인의 입술에 무턱대고
누드 베이지를 바르면 '썩은 색'이 나와 안색이 피곤해보일 수 있다는 것. 이리하여 마지막 시도는 망년회를 기점으로 치밀하게 준비되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 앞에서 세련되고 시크한 모습을 보이기에도 적당하거니와, 누드 립과 잘 어울리는 메인 컬러는 골드, 베이지, 브라운
아니던가. 그러니 부쩍 살이 오른 얼굴에 착시 효과를 줄 쉐이딩을 넣기도 안성맞춤. "지나치게 내추럴한 컬러만 사용한 나머지 피곤해보일 수
있다"라는 것이 메이크업 아티스트 류현정의 조언. 그러니 눈매가 확실하게 강조되는 세미 스모키 아이가 제격이란 의미다. 입술이 그 존재감을
철저히 감춘만큼, 눈매는 드라마틱할 수록 얼굴 전체의 표정이 풍부해지는 셈. 드디어 립스틱을 바를 차례! 피부색과 가까운 만큼 각질이
도드라질 수 있으니 미리 립 밤을 발라두는 것이 좋다는 것이야 기본, 립스틱을 입술 전체에 바르면 앞서 경험한 '과다 콜라겐 주입'의 특수
분장을 목격할 수 있으니 먼저 경계가 불분명한 입술과 피부를 립 라이너로 정돈한 뒤, 베이지 립 글로스(시슬리의 피토 베이지는 펄이 없는, 거의
컨실러 같은 텍스처로 마무리하기 특히 좋았다)를 입술 중간에만 발라 입체감을 준다. 지인들의 반응은, '제법 사회인 티가 난다'(말이 좋아
성숙해졌다지, 결국은 나이 들었다는 소리지만)는 류의 멘트들로 일단락. 어쨌든 반은 성공한 셈이라고 위로할 수 밖에. 한편 아쉬움이 남는 데이
타임을 위한 누드 베이지 립 연출법은? '퓨어 베이지' 컬러에 너무 욕심내지 말고 살짝 피치톤이 융합된 컬러를 활용하라는 것. 적당히 혈색을
주어 온화한 인상을 주면서, 베이지 컬러 특유의 시크함을 잡을 수 있을 테니.
*자세한 사항은 엘르 본지 2월호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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