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드(Womad) 1 - 초가집에서 타워팰리스로 이사한 대한민국 우마드
디지털이 몰고 온 새로운 세상은 사람들을 떠돌이로 만든다. 휴대전화와 노트북 같은 디지털 제품을 휴대하고 사람들은 언제 어디로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돈을 벌려고 나선 외국인 근로자, 정치적 망명자, 인생을 즐기려는 부유한 여행자들은 새로운 유목민이다. 양을 치거나 낙타를 타는 과거의 떠돌이가 아니라 ‘도시유목민’이라는 이름의 떠돌이다. 이 거대한 이동의 물결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몽골로이드 황인종(선사시대-15세기)의 시대, 그 후 아메리카를 ‘발견한’ 유럽계 인종(15세기 말-20세기)의 시대를 거쳐 현실 공간과 사이버 공간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세 번째 나타난 인류의 거대한 이동이다.
디지털 세상이 가져온 가장 중요한 변화는 신(新)모계사회의 출현이다. 과거 농업사회와 산업사회에서는 남성이 중심일 수밖에 없었다. 농경사회와 산업화시대의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력, 즉 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지털 세상에서는 힘 대신 정보의 수집과 처리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 이제 여성은 업무량이나 처리 속도에서 결코 남성에게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섬세함이나 자상함을 활용해 남성보다 더 우월한 능력을 보일 수 있다. 이제 세상은 칸막이가 둘러진 아날로그 사회에서 디지털과 인터넷 사회인 열린사회로 바뀌었고, 정착사회는 도시유목민사회로 탈바꿈했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의 말처럼 디지털은 사회를 ‘가난한 자는 일자리를 찾아 세계를 떠돌아다니고, 부자는 여행을 위해 세계를 떠도는 세상’으로 변화시켰다. 그만큼 세상은 유동적이며 변화가 가능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중심사회, 신모계사회가 되었다. 신모계사회라는 말은 원시시대와 달리 지금은 일처다부제가 아니기 때문에 붙인 것이다. 이렇게 변화된 디지털 세상에서는 ‘우마드(Womad)’의 등장이 필연적이다. 우마드는 ‘여성(Woman)’과 ‘유목민(Nomad)’을 결합한 신조어다. 우마드 시대의 여성들은 가정이라는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한편 남편과 자식의 성공이 아닌 자신의 성공을 추구한다. 이 우마드야말로 21세기 사회를 분석하고 전망하는 가장 기본적인 틀이 될 것이다.
호주제 폐지는 여성들에게 초가집에서 ‘타워팰리스’로 이사하는 것만큼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서막에 불과하다. 패션, 언어, 생활 전반에 이르기까지 우마드가 주역으로 등장할 것이다. 우마드의 한쪽 발은 가정이라는 전통적 가치에 있고, 또 한쪽 발은 남편과 자식이 아닌 자신의 성공을 추구하는 자아의 영토에 있다. 그들은 돈에 관심이 많지만, 대물림을 위해서가 아니라 잘 쓰기 위해 돈을 찾는다. 우마드는 우아하면서도 치열하다. 명품을 선호하되 집착하지 않고, 이민을 꿈꾸면서도 우리 이웃의 아픔을 어루만지기 위해 자원봉사에 나선다. 이렇듯 우마드의 특징은 함께 상생하는 ‘윈윈(Win-Win)’에 있다.
우마드는 ‘진취적인, 동등한, 열정적인, 따뜻한, 평화로운, 사랑스러운, 함께하는, 진실한’ 같은 단어를 좋아한다. 일할 때는 강인하지만, 평상시 인간관계에서는 위계질서를 따지지 않고 친구처럼, 동지처럼 지낸다. 이런 결합과 조화가 우마드의 성공 전략이다. 아랫사람을 장기판의 말 다루듯 위압적으로 다루는 리더 아래서는 창조적 발상이 나올 수 없다. 동료에게 일할 동기를 부여하고 의욕을 북돋워 주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다. 교향악단의 지휘자처럼 조직원들과 함께 호흡하는 우마드들이 성공하는 것은 당연하다. 남성의 고유 영역, 여성의 고유 영역에 대한 고정관념은 이미 허물어졌고, 포용력 있는 리더십을 갖추고 당당한 자의식으로 무장한 새로운 여성상 우마드가 각광받는 시대다. 이들의 열린 사고는 남성의 카리스마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이제 여성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국가의 성패가 달렸다. 2만 달러시대의 높은 문턱을 넘어서려면 수많은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껏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여성인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한국의 여성처럼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다. 지식을 겸비한 가장 노마드적인 여성이 바로 대한민국 여성이다. 그들은 천문학적 스톡옵션을 주며 모셔오는 외국의 전문가들보다 훨씬 실용적이고 실전적이다.
우마드2 - 질투와 수다는 우마드의 힘
신모계사회라 할 만큼 달라진 디지털 세상에서 우마드들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은 여성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다. 수다꾼, 질투의 화신, 사치와 허영심을 가진 사람 같은 말은 남성들이 붙여준 ‘말의 형벌’일 뿐이다.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여성의 힘이요, 힘의 원천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자.
먼저, 수다를 보자. 여성들이 쉬지 않고 재미있게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것은 쓸데없이 많은 말을 떠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많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얻고, 그 정보를 적절한 때 유용하게 사용하는 능력이 뛰어남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여성들은 생활정보의 전문가다. 아무리 말을 많이 하고 싶어도 재미, 정보, 논리를 갖추지 않았거나 유익하지 않으면 아무도 귀를 귀울이지 않는다. 다이어트, 아파트 투자, 자식 과외, 웰빙 등등에 대해 정보를 갖춰야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수다 챔피언’이 되는 것이다. 특히 과거 제네럴리스트형 수다보다 전문성을 갖춘 스페셜리스트형 수다가 필요하다. 예전처럼 인터넷이나 강연장이 없고 살림만 하던 시대에는 대충 이야기하는 제네럴리스트만 되어도 별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수다에도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21세기는 형식보다 콘텐츠가 좋아야 하는 시대다.
우마드의 두 번째 장점으로는 ‘홀로서기’와 ‘시(時)테크’를 들 수 있다. 흔히 남성들이 네트워크를 많이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네트워크는 대부분 자신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조직의 네트워크일 뿐이다. 어찌 보면 출근하면서부터 보고하고, 일하고, 술 먹고, 퇴근하는 것까지 모두 선배들(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뿐이다.
조직은 홀로 서있지만 조직 속의 남성은 홀로 서지 못한다. 남성들은 조직을 떠나는 순간 네트워크를 잃어버리지만, 여성들은 언제나 독립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생활을 꾸려왔다. 여성들은 스스로 조직이고 또한 개개인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계모임, 살빼기모임, 학부모회 등 삼삼오오 결성된 여성의 잡다한 모임은 그들의 필요에 의해 모이고 정보를 교환하고 일을 수행한다. 목적이 다하면 흩어지고, 또 다른 목적이 생기면 다시 조직되고 연결된다. 이런 여성들의 조직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네트워크다.
여성들의 조직은 남성들의 조직과 달리 조직을 위해 과다한 경비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서열과 위계도 없고, 권위적 명령계통도 없다. 여성들의 네트워크는 그들의 필요에 의해 재빨리 연결되고 효과적으로 사용되며 또 평등하게 공유된다. 그리고 모임의 소용이 다하면 다른 모임으로 편입된다.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것이 우마드의 힘이다.
잡일이 많다는 것도 자랑할 만한 일이다. 잡일이 많은 여성은 반드시 또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의 주인이 돼야 한다. 설거지를 하면서 휴대전화 통화를 따로 할 수 있고, 매사를 분 단위, 초 단위로 나눠 일할 수 있는 여성들, 복덕방에서 부동산 재테크와 학부모들의 교육 걱정이라는 전혀 다른 대화를 초 단위로 구분해 할 수 있는 여성들이야말로 시테크의 달인들이다.
시간의 주인공으로 시간을 경영하고, 자생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것이야말로 우마드가 되는 지름길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여성은 사소한 일상의 일을 통해 훈련하고 실전형 홀로서기를 준비하고 있다.
질투와 허영심은 어떤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질투는 당연한 것이다. 경쟁을 통해야 잘될 수 있다. 고결한 종교의 세계라면 모르겠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남보다 잘되겠다는 욕심과 노력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남성들은 파벌, 권력투쟁, 지연, 학연으로 편을 갈라 늘 서로 싸우면서 여자들에게는 ‘투기하지 말라’고 한다. 얼마나 잘못된 말인가?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순제(토곤 테무르칸)의 제1황후까지 올랐던 고려 여인 기황후는 질투와 도전의식으로 이를 악물고 거기까지 올랐다. 질투야말로 노블리스(Noblesse, 고귀한 신분)로 가는 지름길이다. 고려 때 공녀로 끌려갔던 한국 여성들은 타국에서 현지화로 철저히 적응하고, 새로운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세계시민(Cosmopolitan)이자 유목민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옭아맸던 농경 정착 마인드의 낡고 찌든 옷을 벗어버리고 유목 이동 마인드의 새옷으로 말끔히 갈아입자. 우리가 경험했듯 농경 정착 마인드는 여성을 억누르고 비하했다. 변화한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여성은 이제 유목 마인들로 중무장해야 한다. 유목민의 디지털 개념, 정보와 속도를 중시하는 마음, 열린 세상을 향한 질주를 배워야 한다. 몽골의 옛 영화와 한국의 현실을 오버랩시키며 정보와 속도를 중시하는 마음과, 세상을 향해 질주했던 진취적 유목민 성향을 복원하는 것이 진정한 우마드의 길이다.
우마드3(끝) - 26살 연하인 칸과 결혼, 초원 통일한 여걸 만두하이
‘붉은 영웅’이란 뜻을 지닌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 서쪽 270km 지점에 ‘엘슨 타스라하’라는 곳이 있다. 모래 언덕의 끝자락이라는 뜻이다. 남고비 홍고린 엘스에서 시작된 모래 산맥이 끝나는 그곳에 ‘여자 칭기스칸’으로 불리는 몽골 여걸 중의 여걸,‘만두하이’ 기념비가 서 있다. 만두하이가 살았던 시절은 몽골이 명나라 주원장 세력에 쫓겨 초원으로 밀려난 뒤, 100여 년 동안이나 사분오열의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분열과 내전 상황에서 태어난 만두하이는 연인과의 사랑을 포기하고 조국의 중흥을 위해 한 몸을 내던진다. 1481년 그녀는 칭기스칸의 후손이자 스물 여섯 살이나 연하인 ‘다얀’과 결혼한다. 칸의 부인 자격을 얻은 만두하이는 군대를 직접 지휘하며 몽골고원의 통일전쟁을 이끌었다. 그녀 덕택에 분열과 반목을 거듭하던 몽골은 다시 하나의 국가가 될 수 있었다.
몽골인들은 이런 그녀를 기리는 기념비를 세워 “만두하이가 이 땅을 다스렸을 때 팔은 오른쪽에, 다리는 왼쪽에 둘 수 있었다”고 칭송하고 있다. “팔은...”은 팔을 괴고 옆으로 누운 가장 편안한 자세를 뜻한다. 지금도 몽골 초원을 여행하다 보면 이렇게 누워있는 유목민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26세 연하의 남자와 결혼한 것이 우리의 통념으로는 ‘엽기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몽골인들의 만두하이에 대한 평가는 우리의 통념과는 전혀 딴판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만두하이는 자신의 자식을 걱정하고 위하는 본능적인 ‘어미의 사랑’을 만인에 대한 사랑, 나라와 공동체에 대한 사랑으로 확대한 여인이다. 그들은 힘 없고 약한 자를 감싸고 돌보는 마음은 세상에 피와 온기를 돌게 하는 힘의 원천이라고 설명한다. 몽골 유목민들은 이와 같은 사랑이 인간을 넘어 동물에까지 확대된다고 강조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사랑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 중에서도 우리 어머니들의 모성애만큼 고귀하고 숭고한 것은 없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AS 시스템은 한국 부모의 자식사랑이라는 얘기도 있다. 어머니들의 이런 사랑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 왔다. 어머니들의 신바람과 피눈물이 오늘의 한국사회를 이룬 결정적 원동력이었다. 모성애는 남성들이 가진 근육의 힘이나 그 어떤 제도보다 값비싼 자산이다. 정보화 사회, 디지털 사회에서는 더욱더 중요한 가치다. 강압적이거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보다 더 뛰어난 지도자가 사랑으로 포용하는 리더이듯, 모성은 현대사회에서 성공을 일궈내는 최고의 조건이다.
21세기는 ‘우마드’의 시대다. 우마드들을 잘 이끌고 그들과 직장 동료가 될 수 있는 남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눈부시게 변화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성(性)혁명이다. 이렇게 여성의 권위가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여성 스스로 노력한 결과도 있겠지만, 핵심은 세상이 열린 사회로 변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던 고려에서 원나라도 팔려갔다가 제1황후자리까지 오른 기황후의 성공 역시 원제국이 개방적인 사회, 역동성이 넘치는 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당시의 몽골 사회는 여인을” 사막의 오아시스요, 전쟁터의 말이요, 추운 겨울날의 화롯불이다”라고 노래했다. 이런 시는 수없이 많다.
보름달은
밤하늘의 밝은 등불
15세 소녀는
부모의 환한 등불
설령 달이 하늘에서 스러져도
온 우주를 비추는 달은 등불
가족들에게 그녀는 희망의 등불
달은 사라져 없어지는 일도 있지만
온 우주를 비추는 밤의 등불
비록 어머니가 늙어 노파가 되어도
자녀들에게는 따스한 등불
이 시에서처럼 몽골 유목민들은 여성을 세상의 중심에 서서 살아가는 존재로 생각했다. 그만큼 여성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각별했으며, 사회는 남녀평등의 열린 사회였다. 그러기에 홀로서기만 해낸다면 공녀로 끌려간 여성들도 어엿하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려로 시집온 몽골 공주들은 슬피 울다 인생을 마감했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역대왕조 중에서는 열린 사회였는지 모르지만, 원나라에 비해서는 남존여비의 닫힌 사회였던 고려 왕실에서 남편의 바람기와 구타로 심지어 피를 쏟으며 죽기까지 했다. 이런 몽골 공주의 삶은 칸막이로 닫힌 사회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좌절이자 패배였다.
지금 한국사회는 그 옛날 공녀로 끌려갔던 고려 여인들이 황후 자리에 올랐던 원제국처럼 개방적이고 역동성이 넘치는 우마드의 시대로 변신하고 있다. 여성들의 역할에 따라 나라의 경쟁력이 결정되는 시대가 왔다. 이 새로운 시대의 여성상을 멀리 유럽이나 미국 모델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우리의 심장 속에, 맥박 속에, 핏줄 속에, 호흡 속에서 숨쉬는‘유목민상’에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