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한산성(南漢山城)은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에 걸쳐 남한산에 있는 산성으로, 행정 주소 상으로는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로 784-16 (산성리 563)에 속해 있다. 병자호란 때 조선의 왕 인조가 청나라에 대항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1950년대에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공원화된 후 현재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많은 시민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남한산성의 역사는 삼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백제의 수도 하남위례성으로 추정되기도 했던 남한산성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세운 성으로 알려졌으나, 신라 시대에 쌓은 주장성이라는 설도 있다. 조선시대에 인조와 숙종 때에 각종 시설물을 세우고 성을 증축하여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직전인 1907년에 일본군에 의해 다수의 건물이 훼손되기도 하였다.
1963년 1월 21일 남한산성의 성벽이 국가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었고, 1971년 3월 17일 남한산성은 경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제 158호), 5년 후인 1976년 7월 1일 관리사무소가 개소되었다. 1999년에는 남한산성 역사관이 개장하고, 2010년에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남한산성은 주변 시민들에게 훌륭한 휴식처이자, 건강을 위한 등산 산책 코스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24km 떨어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위치한다. 한강과 더불어 남한산성은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거점이었다.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이후 백제인들에게 있어서 남한산성은 성스러운 대상이자 진산으로 여겨졌다. 남한산성안에 백제의 시조인 온조대왕을 모신 사당인숭열전이 자리잡고 있는 연유도 이와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조선시대 남한산성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소였다. 특히 조선왕조 16대 임금인 인조는 한산성의 축성과 몽진,항전이라는 역사의 회오리를 이곳 산성에서 맞고 보낸 바 있다.오늘날의 남한산성은 인조 2년(1624)부터 축성되어 인조 4년(1626)에 완공 되었으며, 산성 내에는 행궁을 비롯한 숭열전, 청량당, 지수당, 연무관 등이 들어서 수 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동문 - 산성의 남동쪽에 위치하며 좌익문이라 한다. 성문의 폭은 3.1m, 높이는 4m이다. 다른 문에 비하여 동문은 가장 낮은 지대에 축조되어 있고 계단을 구축하여 우마차의 통행은 불가능하였다.
서문 - 산성의 북동쪽 모서리 부분의 해발 450m 지점에 위치하며 우익문이라 한다. 서문은 인조 15년(1637) 인조가 세자와 함께 이 문을 통해 청나라 진영으로 들어가 화의를 맺고 항복했던 문이다. 문의 폭은 1.46m이고 높이는 2.1m이다.
남문 - 성의 서남쪽 해발 370m 지점에 위치한다. 산성수축(인조 2년│1624)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였고 지화문이라 하며 4대문 중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있는 문이다. 성문은 홍예문과 문루로 구분되며, 홍예문은 높이 4.75m 너비 3.35m 길이 8.6m로 원상이 잘 보존되어 있다.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건축 양식이 잘 갖추어져 있다. 남문은 4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문으로 현재에도 관광객의 출입이 가장 많은 곳이다.
북문 - 북문은 해발 367m 지점으로 인조 2년(1624년)에 신축된 성문이다. 전승문이라 칭하며, 문의 폭은 3.25m, 높이는 3.65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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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차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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