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800m지점까지 단숨에 올라 시원한 전망을 제공한다.)
바람이 부는 대도 그헐게 흔들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쾌적하게 케
이블카는 수직상승하고 높이 오르는 대로 넓고 더 멀리 보이는 조망은 기분을 상쾌하
게 한다. 케이블카가 도착한 곳에는 전망대 식당이 있어 탐방객에게 휴식과 음식을 제
공한다. 이런 정보를 미리 알았다면 이곳에서 대구 시내를 내려 보면서 식사를 할 것
을 후회가 밀려 오지만 임 떠난 기차요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다.
팔공산 능선이 학처럼 쫙 펼쳐져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면으로 송신탑들이
어지러이 서있는 정상옆에 동봉이 자리하고 있다.
정상에도 두분의 부처님이 계시지만 오늘 우리가 갈 길이 아니니 마음을 접고 팔공산
숲길을 만끽하며 염불암으로 향한다.
케이블카 전망대에서 염불암으로 가는 길은 가을을 만끽하기엔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예년 보다 늦은 더위와 가뭄으로 아직 제대로 단풍을 즐길 수는 없지만 숲이 주는 아늑
함과 사이사이 물들어 가고 있는 단풍들, 숲 사이로 느리게 떨어지는 햇살만으로도 팔
공산을 걷는데 가슴이 벅차다.
푹신푹신한 흙길을 걷노라면 흙 밑이 비었는지 둥둥 소리가 나는 것이 여느 흙길과는
다르다.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하게 섞여있어 숨이 가쁠 사이도 없다. 전혀 운
동을 하지 않은 내가 조금 힘이 들 만하니 염불암 올라가는 포장길이 나온다.
그런데 이 길도 마음에 쏙 들만큼 아름다워 지금까지 숲속 길에서 누린 호사에 더해
기분이 붕뜬다. 적당히 휘어 올라간 길 높은 나무들이 연출하는 그림자들 그 가에서
물들어 가는 나뭇잎들 누군가가 힘들여 쌓았을 돌탑까지 길이 줄 수 있는 감흥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장치들을 모두 갖고 있다. 게다가 하늘은 왜 이리 파란건지
부처를 호위하는 밀적금강처럼 우뚝 선 돌탑 뒤로 자리한 염불암과 팔공산 능선이 빚는
조화에 시야가 확트인다.
염불암은 암자임에도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극락전을 갖고 있어 암자라기 보단 작은 사
찰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숙종 년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극락전은 화려한 단청과
수준 높은 불화가 건물 안과 밖을 수놓아 구석구석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극락전 외벽 천장에 그려진 천인화)
(화반은 아예 꽃병과 꽃으로 조각을 해서 도리를 받치게 해서 더욱 돋보인다.)
염불암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은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두분의 마애불상이다.
( 관음보살상과 선정인을 하고 있는 아미타부처가 새겨진 바위>)
(관세음보살상 이마부분과 눈썹 가사등 파인 홈에 떨어져 쌓인 소나무 잎이 누렇게 변
해 금색으로 보살을 치장하고 있어 색다른 감흥을 안겨준다.)
(선정인을 하고 있는 아미타 부처님 대좌의 연꽃무늬가 정교하고 화려해 보는이의 눈
을 한참동안 잡아 끈다. 선정인을 하면서 맞닿은 손가락은 얼핏 보면 눈처럼 보여 제삼
의 눈으로 중생을 살피고 있는 듯하다.)
염불암을 뒤로하고 동화사로 향한다.
염불암에서 동화사로 내려가는 길은 완만한 경사에 우거진 숲길에 계곡의 물소리까지
걷다보면 절로 사색에 빠지게 한다.
산속에서 만나는 포장도로는 사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데 이곳에선 아스팔트 포장도로
도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검은 색의 아스팔트가 낙엽과 어울려 현묘한 느낌을
준다. 그만큼 이 길이 주는 정취가 사람 마음에 옹색함을 말끔히 씻어내 완전히 열린
마음을 갖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부도암 부도로만 명명되어 있는 팔각원당형의 부도이다. 부도암은 부도가 있는 곳에 지어졌다해서 이름지어 진 곳인데 당시에 있는 부도들은 모두 동화사 경내의 부도 전으로 옮겨졌다.
부도암에서 동화사 경내까지는 약 1km의 거리이다. 염불암부터 부도암까지의 길만은 못해도 여기저기 골짜기에서 흘러내려 모인 물이 수량을 더하고 길은 더 완만해져 걷기 엔 아주 좋다. 눈 내린 겨울 다시 오고픈 길이다. 동화사를 방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불 과 2km 남짓한 이 길을 꼭 걷기를 권하고 싶다. 그 길 끝에서 만나는 염불암의 아름다 운 불화들과 마애불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비로암
동화사에 딸린 여섯 개의 암자중 하나이다. 동화사가 소유한 다섯 개의 보물중 2개의 보물이 있는 아주 중요한 암자이다. 동화사에 딸린 암자들은 암자라는 명칭이 무색할 만한 규모를 가지고 있다. 비로암도 대적광전이란 석조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는 전각 이 있고, 재가 불자들의 선방도 있으며 장경각 까지 갖추고 있다.
선상에 놓여있다.)
동화사의 중창주이자 창건주라 알려진 심지대사가 조성한 보물244호 석조비로 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 수리 보수중이라 불상을 친견할 수 없어 아쉽다. 비닐에 덮 여있는 석조비로자나불을 아쉽게 바라보고 돌아서니 앞뜰에는 보물247호로 지정된 3층 석탑이 서있다.
경문왕 3년(863년) 민애대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하여 민애대왕석탑으로 불리며 확 실한 조성연대로 인해 신라 후대 석탑양식을 알 수 있는 귀한 탑이다.
동화사
절집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절의 진입 공간인 일주문을 통해 들어가는 것이 정상적인 순 서이나 팔공산 스카이라인 체험과 염불암을 둘러보기 위해 어쩔 수없이 뒷문으로 동화 사를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만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뒷문으로 동화사를 들 어가는 것이 보였는데 알고 보니 관광단지에서 직접 동화사로 들어오는 길을 만들어 놓 았다. 경주 황룡사지를 찾을 때도 분황사쪽에서 뒤로 들어가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멀쩡 한 일주문을 두고 뒷구멍을 만들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비로암을 나와 일주문쪽으로 향해 내려가니 사천왕을 모신 웅호문이 나온다. 당간지주 부터가 사찰의 영역이라면 사천왕문을 지난 영역이 신성한 구역이라 할 수 있다. 개산 대제가 막 끝나서 그런지 사천왕문에서 봉서루까지 연등이 걸려있다.
소맷돌을 용으로 장식한 봉서루 계단을 올라서 누하로 진입하니 대웅전이 웅장하다.
대웅전의 기단으로 올라가는 중앙 계단이 반원형을 그리며 만들어져 있는 것이 다른 사 찰에서 볼 수없는 특이한 점이다. 또한 양옆에 서있는 정료대도 보기 드문 것이라 눈길 을 끈다. 대웅전 건물의 다양한 문살과 화려한 솟을꽃살문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심지대사나무라 불리는 오동나무가 절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사천왕문으로 올라가는 길 에 버티고 서있다. 동화사는 신라 소지왕 15년(493년)에 극달화상에 의해 창건하여 유 가사로 부르다가 흥덕왕 7년(832년) 심지대사에 의해 중창할 때 오동나무가 상서롭게 겨울에 꽃을 피웠다고 하여 동화사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니 이 심지대사나무야 말로 동화사란 딱 어울린다 할 수 있다.
심지대사나무 밑으로 내려서면 당간지주 뒤로 부도전이 나란히 있다.
당간지주는신라하대의 작품으로 보물254호로 지정되어 있다. 기둥의 중간부분을 따내 둔중한 느낌을 없앴으며 옆면도 완만한 곡선을 주어 연꽃의 잎을 표현한 느낌을 준다. 깃발을 단 당간을 지탱해주는 지주이지만 단순하면서도 세심한 신경을 쓴 느낌을 주는 수려한 작품이다.
당간지주와 부도를 지나 일주문으로 가다 보면 화강암 계단이 높게 치솟고 그 위에 엄 청 큰 건물이 나타난다. 금강계단이라 현판을 붙인 건물은 동화사가 자랑하는 세계 최 대 약사여래불을 바라보며 서 있는 강당이다.
(금강계단 안에서 바라다 본 약사여래불)
(삼층석탑과 대불)
(통일약사대불)
약사대불을 보면 일단 그 크기에 놀란다. 그 앞에 있는 삼층석탑역시 대불에 걸맞게 크다 물론 금강계단 역시 그렇지만 불법을 수호하는 상징인 사자상 역시 하나하나 그 크기가 놀랍다. 규모의 경제에 의해 부처의 상이 크면 약발도 그만큼 잘 받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선덕여왕이 황룡사 구층탑을 만든 그 기원이 이 약사대불에도 담겨있다고 믿 고 싶다. 통일이 20세기 말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화두가 되었다는 후세의 평가가 있을 만큼 사찰마다 대불을 만들면서 통일 평화를 그 앞에 붙였다는 점은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백성으로서 기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불상 주변에는 십이지신상부터 십대제 자 인왕 제석등 부조로 빙 돌려놓았으니 불교의 도상을 공부하거나 불교 미술의 현주소 를 파악하고자 한다면 좋은 곳이 될 것 같다. 여래불의 크기만큼 대한민국 국민 모두 가 건강하기를 기원하고 그 크기 만큼 평화로운 통일이 앞당겨졌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안고 108계단을 내려서 다시 9계단을 또 내려선다.
제일 먼저 들어와야 할 일주문을 이제 나가는 문으로 삼고 그 앞에 섰다.
일주문에 팔공산 동화사 봉황문이라 이름 지은 현판이 걸려있다. 대개의 일주문 현판이 산과 절이름으로 끝나는 데 특이하게도 자체 이름이 붙어있다. 봉황이 깃드는 곳이 오 동나무라 했으니 동화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심지 스님이 진표율사로부터 영심대사 에게 전해진 팔간자를 받아와 날리니 봉황이 되어 날아가 깃든 곳에 절을 지었다는 설 이 삼국유사의 있으니 오동과 봉황은 동화사와 뗄 내야 뗄 수 없는 관계인가 보다.
일주문 바로 앞 바위에 심지대사가 새겼다는 설이 있는 마애불이 있다.
두발은 오른 쪽 다리를 대좌위에 비스듬히 올려놓은 유희좌를 하고 있고 대좌의 구름 무늬가 사실적이며 화려하다. 입가에 머금은 미소가 신비롭게 보이는 9세기 신라의 대 표적인 작품 중에 하나다.
거구로 둘러 본 동화사는 분명 대찰이며 볼 것도 많은 절이다. 스님들의 수행처인 금당 영역은 둘러보지 못했는데도 케이블카를 탄 시간부터 5시간 가까이나 흘렀다. 날도 어 둑해져 다음코스인 갓바위는 내일로 미룬다.
밤거리를 둘러 보기 위해 대구 시내로 떠난다.
야시골목
대구로 내려오기 전에는 야시골목이라 해서 특별히 야간에 서는 장이 있나보다 생각했다.
패션스트리트라는 부제도 붙어 있으니 패션에 관한 야시장이 서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이곳사람들을 만나보니 전혀 엉뚱한 상상만을 하고 있는 게 되었다.
야시골목이란 야시는 여우를 가리키는 사투리였다. 여우 여시 야시 또는 야시시한 등등 의 뜻으로 불리는 데 이곳이 대구의 가장 번화한 곳으로 대구 멋쟁이들이 찾는 곳이란 다. 대구에서 가장 야한 옷을 입은 여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세월의 변화에 둔감한 노 인네들이 야시같이 하고 다니는 곳으로 부르던 것이 지명으로 된 것이다. 명성에 걸맞 게 젊은 친구들이 많이 다니고 조그만 옷가게와 패션소품점 대구백화점등이 밀집해 있 어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니다 송학이란 식당엘 들어갔다.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집인데
대구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맛 집 중 하나란다.
이집 자랑중 하나인 생고기는 배나 다른 것을 넣고 무친 육회와는 달리 순수 생고기를 소금장이나 소스에 찍어서 먹는 순수 육회라고 할 수 있다. 같이 딸려 나온 싱싱한 간 은 물컹한 느낌에 이어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싱싱함과 육즙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고 천엽은 쫄깃함에 씹을수록 배어나는 뒷맛이 일품이다. 맛난 것을 먹으면서 하루를 마무 리할 수있다는 것은 여행지에서 느끼는 또 다른 행복이다. 기울이는 소주잔에 하루를 마감하고 내일 오를 갓바위를 향해 떠난다.
(비로암 장경각과 팔공산 능선상에 비로봉 삼층석탑과 대적광전 그리고 비로봉이 일직
첫댓글 잘 봤읍니다. 근데 먹을거에 더 눈이갑니다(기껏 절구경하구 육회에 눈을두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