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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삶을 빛내인 배우들 (<조선>2008년 4월호)
지난 3월 25일 이 <이슈칼럼>에 “북한 영화인들의 생의 흔적-희비쌍곡선(喜悲雙曲線)”이라는 글을 올렸었다. 이 글 속에 북한 영화배우 오미란이 등장했었다. 다음이 그 글 중 일부이다.
“오미란은 청순한 외모와 함께 뛰어난 연기력으로 여러 차례 김정일의 ‘개별 연기지도’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영화배우 홍영희와 함께 김정일의 내연녀라는 소문도 있었다고 한다. 그가 유선암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김정일은 전문 의료진과 외국의 값비싼 약으로 살리려 했지만 2006년 6월 5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빠른 죽음이다, 그런데 죽어서도 김정일 정권의 사랑을 받았다. ‘조선중앙통신’은 오미란을 비롯해 강덕수 인민군 상장(2007년 10월 사망), 정준기 대외문화연락위원회 위원장(2006년 6월 사망), 정서촌 문학예술종합출판사 사장(2006년 8월 사망) 등 17명의 유해가 애국렬사릉에 안치되었다고 보도했다. 오미란이 국립묘지에 묻힌 것이다.”
그런데, 오미란에 대한 글이 북한의 대표적인 해외홍보지 <조선> 2008년 4월호에 실렸다. 다음은 오미란 부녀의 삶을 조명한 “삶을 빛내인 배우들” 전문(全文)이다.
지난해 12월 평양시 교외 신미동에 있는 애국렬사릉에 조선인민군 4.25예술영화촬영소 인민배우였던 오미란의 유해를안치하는 행사가 진행되였다. 온 나라 인민들의 사랑을 받던 오미란, 그는 인민배우였던 오향문의 딸이다. 그의 아버지도 애국렬사릉에서 영생하는 삶을 누리고있다.
우리는 여기서 명배우들이였던 부녀의 삶을 더듬어보게 된다. 오향문은 일찍이 예술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안고있었다. 하지만 남조선에서 막벌이군이였던 그는 그 꿈을 실현할 수가 없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1950.6-1953.7)때 그는 인민군대에 의해 서울이 해방되자 의용군에 입대하여 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싸우다가 공화국의 품에 안기였다. 비옥한 토양에 묻힌 씨앗마냥 가슴속에 품고있던 그의 희망은 꽃피고 열매를 맺을수 있었다.
국립연극단의 배우로 20년간 ≪석개울의 새봄≫, ≪춘향전≫과 같은 유명한 연극들에서 주인공역, 주역을 담당하면서 그는 무대배우로 생활하여 왔다. 그후 그는 30년간 화술배우로 활동하면서 자기의 리상을 꽃피울수있었다. 무슨역을 맡든지 화술형상을 위하여 바치는 그의 노력과 정열은 그 누구도 당해낼수 없었다.
실농군과 같은 노력가형인 그는 대사를 수십, 수백번 곱씹어 형상해보면서 고심어린 탐구로 역의 고유한 맛과 멋을 살려냈다. 보다 구체적이며 섬세하여 생활감이 강하게 안겨오는 그의 대사형상으로 하여 대역을 맡은 배우들은 누구나 그와 교제할 때에는 저도 모르게 그의 미묘한 형상에 심취되여 자신도 생각못했던 형상들이 스스로 흘러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화술배우로 활동하는 기간 쏘련예술영화 ≪17일동안에 있은 일≫, ≪직무상의 련애≫, 중국예술영화 ≪주은래≫를 비롯한 약1500편의 영화대사를 맡아 형상하였다. 그는 탐정역을 맡으면 2중적인 사고방식에 숙달된 로련한 정찰병을, 희극역을 맡으면 웃음도 생활도 철학도 있는 개성이 뚜렷한 화술형상을 해내여 관중들의 절찬을 받았다.
하기에 ≪17일동안에 있은 일≫을 연출한 이전 쏘련의 따찌야나 리오즈노바도 ≪나는 쏘련의 찌호노브를 세계적인 배우로 인정하고있었다. 나는 많은 나라의 배우들을 대상해보았지만 그처럼 연기를 능숙하게, 풍만하게, 재치있게 형상해낸 그런 세계적인 명배우는 보지 못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오향문의 딸인 오미란, 그도 영화예술계와 조선인민의 가슴속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명배우이다. 아버지와는 달리 그는 사회주의조국의 품속에서 행복하게 자라 평양연극영화대학에서 전문교육을 받고 영화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연기 특히 화술에서 아버지의 뛰여난 재능을 배우면서 자신의 기량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그를 명배우로 키운 토양은 언제나 진지한 체험과 탐구의 나날을 보낸 현실, 각계층 인민들이였다.
배역을 맡으면 그는 조선민족의 고유한 정서가 풍기는 연기형상을 창조하기 위하여 대중속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그들의 지향과 기호, 아름다운 정신세계를 체현하기 위해 피타는 노력을 기울였다.
예술영화는 ≪축포가 오른다≫의 주인공역으로 관중들에게 선을 보인 때로부터 예술영화 ≪생의 흔적≫련속편 ≪이어가는 참된 삶≫ 주인공 서진주역으로 30여년의 배우생활을 총화한 오미란은 참으로 연기와 대사형상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여주었다.
오미란은 주체76(1987)년 9월 제1차 쁠럭불가담 및 기타 발전도상나라들의 평양영화축전에서 연기상을 받았다. 김정일령도자께서는 여러차례 그들 부녀를 만나주시고 역형상에 대하여 높이 평가해주시면서 사업과 생활을 친어버이의 사랑으로 보살펴주시였다. 나라에서는 그들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최고상인 ≪김일성상≫을 수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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