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세프로부터 온 편지
아이들을 볼 때면 유난히 더 마음이 갑니다.
빛VIIT을 전할 때도 그렇습니다.
물론 간절한 바람을 담은 어른에게도 똑같이 빛VIIT을 보내지만,
티없이 맑고 순수한 마음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만큼은 힘이 더 실리곤 합니다.
대구의 한 호텔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였습니다.
당시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정대식 씨(직장 동료)를 알게 되어
우연한 기회에 'SOS 어린이 마을'과 '희망원(고아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가 보고는 달성공원 앞 노인들보다도 부모 없이 팽겨쳐진,
자라나는 새싹들이더 안쓰럽게 느껴져, 그 즉석에서 'SOS마을과 희망원 등 후원회에 가입했습니다.
호텔에서 나온 음식, 병, 옷, 기타 물품 등을 깨끗하게 만들어서 양로원과 고아원에 갖다주곤 했죠.
이 사실을 모르던 사람들은 제가 팔아서 돈을 챙겨가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지요.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사장은 왜 진작에 말하지 않았느냐고 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일이라고 생각된다면 알리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래야 자신의 명예를 위해 복을 짓지 않고, 순수한 헌심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그분의 뜻이었지요.
한 번은 ‘희망원’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실내로 들어갔는데, 충격적인 모습을 봤습니다.
철장 안에 아이들이 있었던 겁니다.
담당자 말로는 매일 기저귀를 갈고 할 수 없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철장에서 생활하도록 했다고 변명했습니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철장 같은 거 다 치우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그러자, 담당자는 ‘그럼 선생님이 이 애들 다 데리고 가세요’라고 응수했습니다.
당시에는 ‘인권’ 자체가 생소했던 시절이었죠.
물론 제한된 예산으로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그분의 입장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일’입니다.
그 일을 겪고 사람을 돕는 일이 참 어려운 일임을 알았습니다.
돕다가 도중에 그만 두면 그간의 도운 일도 잊을 만큼 서운해 합니다.
그래서 한 번 돕고자 하면 끝까지, 올바르게 도와야 합니다.
그 일이 있고 비참한 아이들의 삶이 눈에 밟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한겨울에 시린 방바닥에 잠을 잘 아이들이 생각나, 연탄을 날라주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매년 초겨울이 되면 후원회 동료들과 함께 연탄 봉사를 시작했죠.
매년 연탄 나르는 일이 주변에 알려지자, 전국 곳곳에서 연탄 봉사 붐이 일기 시작했죠.
하나의 불씨가 또 다른 불씨를 만든 겁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돕는다’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땅 어딘가에 풍요로움보다 배고픔을 먼저 알았고,
삶의 터전을 잃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있기에 ‘도움의 끝’은 없을 것 같습니다.
거꾸로 생각해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세상에 자그마한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계속 후원하고 있던 유니세프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후원금이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에게
긴급구호 비상식량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였죠.
얼굴도 모르는 이들로부터 받은 손길을 통해 아이들은 희망의 불씨를 보았을 겁니다.
조용한 손길을 통해 자란 아이들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희망의 불씨가 되어줄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공존의 빛이, 희망의 끈이 되는 것을 보고
그나마 지구의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일을 늦추고 있습니다.
함께 마음을 모아주신 회원님께도 감사의 마음 전하며
유니세프로부터 온 편지 내용을 공유합니다.
나눔의 마음이 있는 한,
찬란히 이 땅을 비추는 빛VIIT의 불씨도 영원히,
사그라들지 않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빛선생 학회장 정광호 올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