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즈는 인생을 이아기압니다. 블루스는 역경에 처한 사람들
의 이야기입니다. 잠시만 생각해보아도 어려운 현실에 직면한
사람과 음악에 심취한 사람들만이 새로운 희망과 승리의 감정
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재즈는 승리와 영광의
음악인 것 입니다. ,,,,,, 모든 사람들은 사랑하기를 원하고 사랑
받기를 원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환호를 하고 행복해지기를 바
랍니다. 재즈는 이런 모든 것을 향한 수단인 것입니다.
Martin Luther King
래니 트리스타노(Lennie Tristano 1919 -- 1978)
레니 트리스타노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1940년대 후기에 밥과는 다른 방향
을 모색했던 밴드 리더이다. 그 스타일은 당시로서는 매우 큰 가능성을 갖고 있었
으며, 이미 명인의 경지에 도달해 있던 그는 제자에게 그 스타일을 계승시켜 주려
고 그들을 맹렬하게 발동시켰다. 트리스타노는 아트 테이텀과 레스터 영으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으며, 밀트 버크너의 록 핸드 스타일을 사용하여 임프로비제이
션하는 스타일을 만들었다. 트리스타노의 연주는 찰리 파커나 디지 길레스피보다
매끄럽고 밥 임프로비제이션에 비해 기복이 적은 스트레이트한 것이었다. 또 그
멜로디 라인은 코드에 직접 호응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았고 팝이나 밥의 통상적인
선율에서 보면 멜로딕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밥과 같이 트리스타노의 음악도 하
모니적으로 복잡하여 1소절 중에 복수의 코드가 자주 사용되었으나, 임프로비제이
션에 있어서는 찰리 파커나 디지 길레스피의 프레이즈는 보이지 않았다. 트리스타
노의 연주에는 잘 계산된 복잡함이 엮어 들어가 있었으며 밥에도 순간적으로 계산
된 복잡성이 있지만 그 중에서 파커와 길레스피의 연주에는 자연스러운 따뜻함이
넘척 흘렀다,
1940년대 후기 트리스타노의 가장 재능 있는 문하생이라면 알토 색소폰의 리 코
니츠, 테너 색소폰의 원 마쉬(Wame Marsh),그리고 기타리스트인 빌리 바우어
(Billy Bauer)등을 들 수 있다. 이들 뮤지션은 제각기 다른 뮤지션을 압도하는 뛰
어난 테크닉을 보여 주는 레코드를 만들었다. 그 후의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에서
의 베이스와 드럼은 트리스타노 음악의 독특한 규칙을 소극적으로 지키고 있었다.
사실 그것들은 몇 장의 레코드에서 겨우 들을 수 있을 뿐 타임 키핑이 그들의 유일
한 역할이었다. 그러나 트리스타노 그룹에서의 타임 키핑은 단순한 일은 아니었으
며, 몇 곡인가는 높은 수준의 테크닉이 요구되는 굉장한 템포로 연주되었다.
리 코니츠(Lee Kon◎ 1927--알토 색소폰의 리 코니츠는 트리스
타노와 같은 라인을 사용하여 연주했으며, 그의 연주 테크닉은 트리스타노와 마찬
가지로 인상적이었다. 코니츠의 톤 컬러는 선배인 베니 카터나 쟈니 호지스의 풍
부한 사운드, 또는 당시 찰리 파커의 씁쓰레한 사운드와는 전혀 달랐다. 코니츠는
드골이한 가벼운 톤으로 레스터 영의 옛날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느린 비브라토를
사용하여 연주했다. 젊은 알토 색소폰 주자의 대부분이 톤뿐만 아니라 밥의 리듬
이나 멜로디면에 있어서도 파커만을 오로지 추구하고 있을 때, 코니츠는 트리스타
노로부터 자극받은 것을 자기나름대로 소화하고 발전시키고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
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코니츠는 파커와는 거의 관계가 없었으며 트리스타노의
피아노 스타일의 창조에 깊게 관여했고, 그 피아노 스타일은 대부분의 밥 피아노
와 유사점이 없었다. 그는 통상적인 밥같이는 스윙하지 않았으며, 파커나 길레스
피에 비해 싱커페이션이 적고 비트 뒤보다도 절정에 악센트를 붙였다. 또 트리스
타노와의 연주에는 밥과 같은 변화가 풍부한 리듬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의 임프
로비제이션은 도중에 끊어지지 않는 8분 음표의 연속이 특징으로 그 스타일은 스
윙은 하지만 밥과 비교하여 빈약하였다(트리스타노의 (Crosscurrent)를 들어 보자).
리 코니츠는 1950년대의 많은 알토 색소폰 주자에 영향을 주었다. 코니츠는 뉴욕
을 중심으로 활약했지만 그의 영향은 주로 캘리포니아에서 나타났다. 웨스트 코스
트류의 알토 플레이어인 버드 생크(Bud Shank)와 레니 니하우스(Lenne Niehaus)
는 자기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기까지 코니츠와 파커 양쪽의 스타일에서 흡수
하였다. 아트 페퍼(Art Pepper)는 코니츠와 테너 색소폰 주자 주트 심즈, 그리고
찰리 파커로부터 영향을 받아 매우 강력한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1950년대 중기 특히 1954년 이후 코니츠는 1970년대까지 스타일을 조금씩 변화시
켜 갔다. 그리고 트리스타노에 의해 영감되어진 내용의 충실한 라인이 서서히 약
해져 갔으며, 뛰어난 스피드나 톤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의 연주는 항상 정적을
유지하며 트리스타노와 함께 했던 무렵보다도 리듬이 다채로워졌다. 또한 그의 음
악은 때때로 블루지견ruesy)했다. 트리스타노와의 연주에서 벗어난 코니츠의 최고
작품은 마일즈 데이비스의 'Birth of the Coot'(1949-50),코니츠-제리 멀리간-
쳇 베이커가 레코딩한 rKoIlltz Meets Mulllgan'(1953),그리고 클로드 손힐과 레코
딩한 'The Real Birth of◎e CoolJ(1947)등의 레코딩에서 들을 수 있다.
원 마쉬(씬arne Marsh 1927--1987n-테너 색소폰 주자 윈 마쉬는 레스터
영에 가까운 톤과 비브라토를 갖고 있었으며, 코니츠와 마찬가지로 트리스타노와
비슷한 구성의 라인을 연주하였다. 마쉬와 코니츠는 트리스타노의 이론으로 비여
진 멜로디를 종종 일치하여 연주하였는데, 그 연주가 매우 정확했기 때문에 마치
한 대의 악기로 불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들의 악기 주법에서의 기교와 트리스
타노 사운드에 대한 친밀성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연주, 특
히 격렬한 업 템포에서는 어느 라인이 비여진 부분이호 어느 라인이 임프로비제이
션인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마쉬와 코니츠의 ◎주에는 푸가Cf9 스타일과 비
슷한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우연히 생긴 것은 아니며 그들은 실제로 푸가 임프로
바이즈를 연습하고 있었다. 마쉬의 연주는 1970년대의 'Supersax'라는 그룹으로 주
목되었다. (SUPelSaX)는 찰리 파커의 솔로를 하모닉하게 편곡하여 연주하였다. 마
쉬는 1940년대보다도 1970년대 쪽이 리듬적으로 편안하고 보다 대담하였다. 그는
항상 독창적인 임프로바이저로서 활약하였다.
빌리 바우어(Billy Bauer 1915---기타리스트 빌리 바우어는 밥 기
타리스트 빌 디아랑고(Bill DeArango)나 탈 팔로우와 같이 연주에 있어서 설득력
있는 스피드를 갖고 있었다. 바우어의 연주에는 트리스타노,코니츠, 마쉬의 복잡
한 라인과 굉장한 템포를 들을 수 있다. 트리스타노,코니츠,마쉬 세 사람의 중
요한 선배에 대해서는 트리스타노로부터의 영향이 비교적 적었으며, 거기에 밥의
영향과 찰리 크리스찬의 영향이 더 있었다.
트리스타노는 재즈 연주에서는 보통 사용되지 않는 멜로디 개념에 덧붙여 미리
짜여진 멜로디나 코드 진행에 대해 보다 자유로운 임프로비제이션을 최초로 레코
딩한 한 사람이 되었다. 그 음악은 보다 정확하고 일정한 템포와 조(◎) 감각을 요
구하는 곡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1940년대 대부분의 재즈와
비교해 보면 보다 자유스러웠다(1960년대와 70년대에는 오네트 콜맨 세실 테일러
등이 통상적인 코드 진행을 설정하지 않고 임프로바이즈했다). 트리스타노는 그
경력에 비하면 레코딩은 그리 많지 않아서 그의 작품을 팔 수 없게 된 이후로 몇
장의 레코드는 수집가의 아이템이 되었다. 트리스타노는 오랜 기간 교사로서 활동
을 계속했고 특히 1951년 이후에는 가르치는 일이 그의 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트리스타노는 코니츠를 통해 빌 에반스에 영향을 주었다. 빌 에반스는 피
아니스트로서 1960년대에 매우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에반스는 1959년 무렵부터
독자적인 스타일을 강조했지만 50년대 말에 조지 러셀 -토니 스코트와의 공연에는
트리스타노와 아주 비슷한 프레이즈가 들린다. 트리스타노의 피아노 스타일은 두
사람의 강력한 재즈 피아니스트 살 모스카(Sal Mosca)와 로니 볼(Ronne Ball)에
직접 영향을 주었으며, 모스카는 코니츠와 마쉬의 몇 장의 앨범에 참가하고 있다.
쿨의 탄생(Birth of The Cool)
찰리 파커 그룹에서 떠난 마일즈 데이비스는 사이드맨으로 연주하는 일은 드물
었다. 1949년과 50년 그는 캐피틀(Capito꾸에서 그 자신의 9인 편성 밴드를 조직하
여 레코딩했다. 그 작품은 'Birth of the Coolr로 1950년대 재즈에 중대한 영향을 주
었으며, 1940년대 피아니스트 겸 작-편곡가인 클로드 손힐과 편곡자인 길 에반스
에 의해 개척된 개념이 엿보인다. 또 거기에는 다른 요소도 들린다. 즉 레니 트리
스타노에 의해 영감 받은 부분과 코니츠의 라인과 그의 가볍고 드라이한 비브라토
가 있는 톤이 쿨 사운드의 기초가 되었다. 알토 색소폰의 코니츠와 트럼펫의 마일
즈 세션에는 제리 멀리간도 있었다. 그 역시 가볍고 드라이한 톤을 갖
고 있던 바리톤 색소폰 주자로 손힐과 연주하거나 그를 위해 편곡을 쓰거나 했다.
Z룹의 편성은 테너 색소폰이나 기타가 들어 있지 않고 프렌치 호른, 튜바, 트롬본
에 리듬 섹션, 그리고 앞의 세 사람의 구성이었다.
마일즈 -코니츠 멀리간이 그들의 솔로에 도입한 억제된 필링과 드라이한 음은
정말 섬세하고 쿨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이 9중주단의 사운드는 크지 않았지만
금속적으로 단단한 사운드였으며, 그 음악은 경쾌하고 지적으로 세련된 동시에 클
래식의 실내악적인 면도 있었다. 클로드 손힐 길 에반스 , 레니 트리스타노의 영
향은 1940년대 후기의 젊은 재즈 편곡자에 강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그 무렵 가장
새로운 사운드였다. 손힐의 밴드는 독자적인 관현악법을 쓰고 있었다. 때때로 통
상적인 트럼펫, 트롬본, 리듬 섹션의 편성에 6대의 클라리넷, 2대의 프렌치 호른,
튜바 등이 첨가되었다. 이 악기의 조합과 클로드 드뷔시의 음악을 사랑하여 만들
어진 음이 손힐 사운드의 특징이다. 예를 들면 프렌치 호른이 리드하거나 클라리
넷과 프렌치 호른이 멜로디를 일치하여 불거나 했다. 그리고 색소폰이 프렌치 호
른과 클라리넷의 뒤에 따랐다. 또 때로는 저음부(테너 색소폰, 바리톤 색소폰, 튜
바)가 동음으로 멜로디를 불었다. 튜바로 멜로디를 불게 하는 것은 길 에반스의 아
이디어였지만 프렌치 호른이나 클라리넷을 첨가하는 아이디어는 손힐이 먼저였다.
색소폰과 클라리넷은 낮은 음역에서 대뚜분이, 때로는 전혀 비브라토를 ??않고
연주할 때도 있었다. 브라스의 자극적인 음을 사용하는 빅 밴드의 편곡에 대해 손
힐은 조용하면서도 파스텔 색깔을 연상시키는 빅 밴드 사운드를 창조했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그의 뛰어난 작품 'Birth of The CoolJ의 세션에 있어서 손
힐-에반스-트리스타노의 영향을 강조해 갔다. 1940년대 후기의 레코딩은 모두
이들 개념을 도입한 그룹에 의해 이루어졌다. 마일즈 9중주단의 레코딩은 모든 그
룹의 모델이 되었는데 이것은 마일즈가 재즈의 위대한 혁명가라고 할 수 있게 된
최초의 사건이었다. 마일즈 9중주단에 의해 연주된 곡은 트리스타노의 연주 형식
이나 스윙 형식의 곡이라기보다는 예전 밥 형식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는 밥에서는 그다지 강조되지 않았던 편곡 부분'이 교묘하게 엮어져 있었다. 마일
즈 -길 에반스 -제리 멀리간-존 루이스, 그리고 쟈니 캐리시(Johnny Cansi)가 9
중주단을 위해 악보를 썼으며, 특히 멀리간은 5곡의 편곡을 썼다. 1946년 피아니스
트 데이브 브루벡이 'Birth of The CoolJ과 유사한 작품을 레코딩한다. 1950년에는
바리톤 색소폰 주자 제리 멀리간, 프렌치 호른 주자 겸 작곡가이자 손힐 밴드의 베
테랑 멤버 존 그래스(John Graas),트럼펫 주자 겸 작곡가 쇼티 로저스와 피 외 몇
사람이 작-편곡을 담당하여 마일즈 9중주단과 같은 밴드를 만들었다, 마일즈는
그 9중주단을 오래 계속하지 않았고 1950년대 후기의 길 에반스와의 빅 밴드를 제
외하면 그 후는 작은 그룹에서 편곡을 중요시하기보다 오로지 임프로비제이션에
전념해 갔다.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West Coast Style)의 형성
쿨 재즈의 탄생은 소위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1950년대에는 캘리포니아 뮤지션의 연주를 좌우하고 있었던 재즈 스타일은 부드럽
고 건조한 감촉의 경쾌하고 가벼운 톤을 사용하고 있었다. 밥의 멜로딕하고 하모
닉한 전개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은 밥 임프로비제이션
보다 매끄럽고 곡조에 맞는 사운드를 갖고 있었으며, 밥의 강렬함과는 대조적으로
때로는 릴랙스한 느낌도주었다. 레스터 영,마일즈 데이비스 리 코니츠등은 웨
스트 코스트 스타일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웨스트 코스트 트럼펫 주자는 마일
즈 데이비스와 디지 길레스피, 특히 마일즈로부터 많은 부분을 흡수하고 자신들의
스타일에 도입하였다. 테너 색소폰 주자는 덱스터 고든이나 럭키 톰슨보다도 레스
터 영으로부터 보다 많은 고무를 받았으며, 편곡자는 클로드 손힐과 길 에반스로
부터 많은 것을 흡수하였다. 몇 몇 밴드는 1949년부터 1950년 이후의 마일즈 9중주
단을 모델로 하고 있다.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로 알려져 있는 재즈 스타일은 흑인 플레이어보다도 주로
백인 플레이어에 의해 연주되었다(그 당시 한국 전쟁으로 환기된 할리우드의 스튜
디오 뮤지션들이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의 중심적인 존재였다. 이들 플레이어 중에
는 우디 허맨이나 스탄 켄튼 등 백인 빅 밴드 멤버가 많았다). 웨스트 코스트 스타
일이 195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연주되었던 재즈의 유일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찰
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는 캘리포니아에서 연주했던 적이 있었고 테너 색소폰 주
자 위델 그레이나 덱스터 고든은 버드나 디지보다도 더욱 오래 거기에서 활동했
다. 딕시랜드도 또한 매우 인기있었다.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 플레이어의 특징이
된 가볍고 드라이한 연주는 색소폰 주자 알 콘(Al Cohn),피아니스트 냇 피어스
(Nat Pierce)뿐만 아니라 코니츠의 영향을 받았던 몇 몇 이스트 코스트 플레이어에
게서도 들을 수 있다.
제리 멀리간(Gerry Mulligan 1927---제리 멀리간은 1949년부터 50
년까지 마일즈 9중주단의 바리톤 색소폰 주자이자 작,편곡의 중심적 존재였다
((Boplicity)). 그는 클로드 손힐이나 스탄 켄튼의 빅 밴드를 위해서도 악보를 썼
다. 멀리간은 드라이하고 가볍고 명랑한 음색을 내고 여유있게 진행되는 임프로비
제이션을 전개하였다. 멀리간은 1952년에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고 그의 바리톤 색
소폰에 관악기, 베이스, 그리고 드럼의 편성으로 피아노를 제외한 일련의 쿼텟을
리드했다. 멀리간 쿼텟은 점차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과 마찬가지로 인기를 얻었
다. 멀리간이 피아노를사용하지 않았던 것이 많은관심을모았는데 그후 몇 개의
그룹(오네트 콜맨,앨버트 아일러 -아치 세프-아트 앙상블 오브 시카고iArt En
semble of Chicago)등)이 피아노를 빼고 더욱 과격한 사운드를 창출한 것은 흥미
깊은 일이다.
멀리간의 곡에는 레니 트리스타노의 곡처럼 복잡하게 짜여진 것도 없고 밥 작품
에 보이는 굴절된 난해함도 없다. 거기에는 멀리간의 임프로비제이션에서 들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부드럽고 조용한 것이 있었다, 동시대의 이스트 코스트의 아트
블래키나 필리 조 존스(Philly Jo Jones)등과 비교하면 멀리간의 드러머 치코 해밀
튼이나 래리 번커(Lany Bunker)의 연주는 보수적이었다. 멀리간의 트럼펫 주자의
한 사람인 쳇 베이커는 부드럽고 달콤한 무드를 갖고 있었는데 그의 쿨하고 릴랙
스한 스타일은 종종 빅스 바이더벡이나 초기 마일즈 데이비스와 유사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1953년 멀리간 최고의 레코딩은 튜바나 호른을 넣은 10인 편성의 밴드에 의한 것
인데 이것은 1949년부터 1950년에 걸친 마일즈 9중주단의 악기 편성과 비슷했다.
멀리간의 작품은 가볍고 드라이한 사운드를 갖고 단순하고 릴랙스한 연주를 하던
'더 콘서트 재즈 밴드(The Concert Jazz Band)n라고 불리웠던 그의 이스트 코스트
를 근거지로 한 빅 밴드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이 밴드는 1960년대 초
기에 나타났던 밴드에서는 가장 새로운 밴드의 대표격이었다. 멀리간은 밴드를 위
한 작곡과 편곡을 밥 의-룩마이어 ,게리 맥파랜드iCary McFarland)-쟈니 캐리시
등과 분담해 처리했다.
밥 브룩마이어(Bob Brookmeyer 1929---트롬본 주자 밥 브룩마이
어는 멀리간의 피아노 없는 쿼텟과 '더 콘서트 재즈 밴드'의 전속 멤버였다, 그의
멜로딕하고 때로는 유머 넘치는 연주로 인한 릴랙스한 '레이드 백 스타일(raid
back style)'은 멀리간과 잘 일치했다. 브국마이어는 초기 재즈나 스윙에 크게 영
향을 받았던 소수의 모던 플레이어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톤 컬러를 바꾸기 좋아
했으며 편곡은 깨끗 하고 지적이며 때때로 길 에반스를 연상시킨다. 브룩마이어와
멀리간은 트럼펫 주자 클락 테리나 테너 색소폰 주자 주트 심즈가 굳게 두드러져
있음에도 상관없이 '더 콘서트 재즈 밴드' 제1의 솔로 주자였다. 후에 드룩마이어
는 1960년대와 70년대의 태드 존스-멜 루이스 빅 밴드를 위해 악보를 써 주거나
함께 연주를 하기도 한다.
웨스트 코스트 (West Coast)스타일 뮤지션
TNmpa
Chat Baker
Conta Candoli
Jade Sheldon
Shorh/ Rogers
Stu Williamson
으obsrookmeyer
Frank Rosolino
'으ob Enevoldsen
Milt Bernhart
Tnor Sex
므ill Perkins
Richie Kamuce
Bob Cooper
Jack Montrose
Buddy Collette
Dave Pell
Bill Holman
Jimmy Giuffra
Zoot Sims
AItoSu
Art Pepper
Bud Shank
Herb Galler
Lennie NiehauS
Paul Desmond
BsritoneSax
Gerry Mulligan
Bob Gordon
GU◎-
Howard RobertS
므arney Kessel
Hampton HaweS
Claude WilliamSOn
Russ Freeman
Fate Jolly
Vince Guaraldi
Carl Perkins
Andre Previn
Dave Brubeclr
BOIll
Red Mitchell
Red Callender
teroy Vinneger
Buddl Clark
Carson Smith
Howsrd Rumsey
Cortis Counce
Joe M[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ondragon
Monty Budwig
DNmr
Shelly Manna
Mel Lewis
Stan Levey
Larry Bunker
Chico Hamilton
Comporn-Arrnng-
Gerry Mulligan
Dave Brubeck
Shorty Rogers
Dave Pall
John Graas
Jimmy Giuffre
Bill Holman
Marty Paich
Dave Brubeck
치코 해밀튼(Chico Hamilton 19리- )-가장 새로운 웨스트 코스트
캄보의 하나는 이전 멀리간 쿼텟의 드러머였던 치코 해밀튼이 이끌고 있었다, 멀
리간 쿼텟과 마찬가지로 해밀튼 퀸텟도 피아노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 캄보는 기
타, 첼로, 베이스, 드럼, 그리고 색소폰, 플루트, 클라리넷을 바꾸어 부는 호른맨
선OTllma낏의 편성이었다. 착실하게 정리된 편곡과 뛰어난 뮤지션을 갖추고 해밀
튼 퀸텟은 클래식의 실내악에 가까운 재즈 스타일을 만들어냈으며 때에 따라 몇가
지 멜로디가 동시에 연주되었다. 이 테크닉은 '카운터 포인트(cormterpoint) '라고
하는 초기 재즈 임프로비제이션의 특징이었는데 멀리간과 그의 호른맨도 이 카운
터 포인트의 부활에 흥미를 보였다. 해밀튼 퀸텟은 첼로 주자 프레드 카츠(Fred
Katz),기타리스트 짐 홀(Jin H래-베이스 주자 카슨 스미스(Carson Smith),리드
맨 버디 콜레트를 영입했다. 그들은 모두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의 필링에 매혹당
한 임프로바이저였다. 그 후 치코는 그룹의 성격을 바꾸어 에릭 돌피나 찰스 로이
드(Charles L1Oyd)등 외향적인 색소폰 주자를 영입했다. 그러나 버디 콜레트가 있
는 동안은 전체적으로 안정된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데이브 브루벡(Dave Brubeck 1920---캘리포니아에서 활약하는
피안니스트 겸 작-편곡가 데이브 브루벡은 1949년부터 50년에 걸친 마일즈 9중주
단의 스타일에 치우쳐 있던 일련의 스몰 밴드를 1940년대 후기에 걸쳐 이끌었다.
1951년부터 1967년에 있어서는 알토 색소폰 주자 폴 데스몬드(Paul Desmond)와 함
께 쿼텟을 이끌기도 했다. 데스몬드의 가볍고 드라이한 톤은 리 코니츠와 유사하
지만 그의 임프로비제이션 방법은 그만의 독특한 것이었으며, 매우 간결하고 쿨하
며 멜로딕했다. 데스몬드는 악기의 극히 높은 음악인 알티시모(altissim잇 수준까지
탐구한 최초의 알토 플레이어였다. 데스몬드의 솔로에는 알토 색소폰의 통상적인
음역보다 확실히 높은 음이 사용되고 있다. 그는 브루벡 쿼텟 최대의 히트를 낳은
(Take Fiv쓱를 작곡하였다. 물론 브루벡도 많은 곡을 만들었으며 그의 멜로딕한
곡이나 임프로비제이션은 뛰어났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브루벡의 (In Your Own
street)와 (TheD◎쓸를 레코딩했는데 (The Duk쓰는 길 에반스가 편곡하였다. 브
루벡의 작품에는 클래식 음악과 유사한 부분이 많았으며 실제 그의 피아노 연주의
대부분은 극히 클래식적인 리듬 감각을 갖고 있다. 그는 유능한 피아니스트였지만
동시대 웨스트 코스트계 피아니스트인 클로드 월리엄슨(Claude Wilhamson)이나
햄프튼 호즈(보ampton Hawes)와 같은 연주는 하지 않았다.
오랜 기간 브루벡의 드러머였던 조 모렐로(Joe Morello)는 놀라울만한 스피드와
정확성을갖고 있었다. 그가맥스로치 -아트블래키,필리 조존스,토니 월리엄
스 -엘빈 존스(E1n Jones)등의 헌신적인 드러머들 이상으로 주목을 모은 것은
매우 흥미 깊은 일이다. 버디 리치 등 인기있는 다른 드러머와 마찬가지로 모렐로
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지만 리듬 섹션의 멤버로서는 보수적이었다. 모렐로와
리치 양쪽 모두 솔로로 큰 평가를 얻었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그의 솔로는 리
듬 섹션의 기성 연주 개념에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당시 모던 재즈 드러밍의 한 방
향과도 접맥된다. 브루벡이 절대적인 인기를 얻게 된 한 요인에 3, 5, 7이라는 듣
기에 익숙하지 않은 박자를 재즈에 사용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박자를 사용한
L의 앨범 'Time Out'r과 'Time Further OutJ은 큰 인기를 모았다. 그가 데스몬드
의 (Take Fly쓱에서 5박자의 연주를 한 것 또한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전반의
재즈에 있어서 혁신적인 성과로 주목되었다. 브루벡은 1950년대의 가장 인기있는
재즈 뮤지션의 한 사람이었다.
지미 쥬프리(Jimmy Guifree 1921 -- ) -- 우디 하맨의 빅 밴드의 유명한
(Four또rothers)의 작,편곡자는 색소폰, 클라리넷 주자 지미 쥬프리이다. 그는 쿨
스타일의 가장 다재 다능하고 독창적인 플레이어였다. 쥬프리는 작곡자 그리고 즉
흥 연주자로서 스윙, 밥 스타일, 쿨,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 20세기 클래식 음악
스타일, 빅 밴드, 스몰 밴드, 그리고 솔로 스타일의 각각에서 작품을 창조하였다.
쥬프리는 플루트, 클라리넷, 그리고 모든 색소폰을 기존 개념에 맞지 않는 사운드
로 연주하였다, 그가 좋아한 음색은 웨스트 코스트 뮤지션의 음색보다 밝고 부드
러웠다. 쥬프리는 재즈계에서 가장 사려 깊은 임프로바이저의 한 사람이며 실제
L는 작곡가의 입장에 서서 연주하고 있었다, 그의 많은 작품은 신선하고 멜로딕
하며, 그 중에는 민속 음악적인 것도 있다. 카운트 비이시 -셀로니어스 몽크 , 마
일즈 데이비스와 같이 쥬프리는 멜로디를 그의 음악 개념의 중심에 놓았다.
쇼티 로저스(Shorty Rogers 1924---트럼펫 주자 겸 작-편곡자인
쇼티 로저스도 쥬프리와 마찬가지로 우디 허맨을 위해 악보를 썼다. 그는 재즈 퀸
텟을 이끌었고 그의 '자이언츠(Ciants)'와 함께 1949년에서 50년의 마일즈 9중주단
과, 1953년의 멀리간의 10인 편성 밴드와 아주 비슷한 음악을 만들었다('Shorty
Rogers and HiSGiantsJ ).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 중에서 가장 모험적인 작품은 로저
스나 쥬프리, 그리고 비브라하프 주자인 테디 찰스(Teddy Charles)의 레코딩에서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레니 트리스타노의 (Intultlon)과 (Digression)
('Crosscurrents-이후 처음으로 시도된 코드 진행의 약속이 없는 임프로비제이션
이었다. 그들의 1954년 작품은 Free jazz'개념에 기초를 두었다('"The Three" and
"The Two"J i. 로저스는 또 빈번한 코드 체인지 대신에 모드를 기본으로 한 임프
로비제이션을 레코딩하였는데('Collaboratlon : West'l),이러한 것들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유행했던 모드(mod 를 기본으로 한 임프로비제이션 스타일을 시사한
1958년 마일즈 데이비스의 'Mllestones'l를 예언하였다. 로저스가 그의 트럼펫 스타
일을 1940년대 후반 마일즈 데이비스의 어프로치에서 이끌어내고 있다는 것도 재
미있는 일이다.
하드 밥(Hard Bop)
1950년대는 웨스트 코스트와 하드 밥(밥 또는 비밥으로도 부른다)의 두 개의 재
즈 스타일이 점유하고 있었다. 밥은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보다 조금 늦게 시작하
여 부분적으로 오래 지속되었다.
밥과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은 몇 가지 점에서 다른 점이 있다.
1)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은 밝고, 가볍고, 부드러운 톤 컬러에 특징이 있지만 하
드 밥은 어둡고 중량감이 있고 딱딱한 톤 컬러가 특징이었다.
2)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의 밝고 쿨하고 아름다운 선율의 단순한 임프로비제이
션과는 대조적으로 하드 밥은 어려운 주법에 격렬하고 복잡한 임프로비제이션을
하였다.
3)웨스트코스트 스타일은 레스터 영 ,카운트 베이시 ,레니 트리스타노,리 코
니츠, 그리고 마일즈 데이비스의 'Birth of◎e Coot세션에서의 톤이나 무드로부
터 발전한 것에 비해 하드 밥은 직접 밥에서 발전했다.
4)하드 밥은 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보다는 디트로이트나 필라델피아, 뉴
욕에서 인기를 얻었다.
5)하드 밥은 흑인, 백인 양쪽 뮤지션이 연주하고 있었지만 흑인이 우세했고 웨
스트 코스트 스타일은 백인이 우세했다.
a)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이 만들어낸 우아한 실내 음악적인 필링과는 대조적으
로 하드 밥은 흑인 가스펠송에 가까운 요소를 갖는 펑키하고 흙냄새 풍기는 느낌
을 만들어냈다,
웨스트 코스트 알토 색소폰 주자들은 주로 리 코니츠나 찰리 파커로부터 그 스
타일을 발전시켜 갔지만 하드 밥 알토 색소폰 주자들은 코니츠로부터는 영향을 받
지 않았다. 웨스트 코스트의 테너 색소폰 주자들은 파커나 레스터 영을 연주의 모
델로 삼았으나, 하드 밥 테너 색소폰 주자는 파커 ,돈 바이어스,덱스터 고든.소
니 스티트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하드 밥 트럼펫 주자에게도
영향을 주었지만 웨스트 코스트 트럼펫 주자에 줄 정도의 영향력은 없었다. 하드
밥 트럼펫 주자는 디지 길레스피 -패츠 나바로, 그리고 나바로 최고의 제자 클리
포드 브라운 등의 스타일을 좋아했다(아마 클리포드 브라운에 있어서 마일즈 데이
비스는 부가적인 영향을 주었을 뿐으로 패츠 나바로와 같은 강한 영향력은 없었
다), 하드 밥은 밥에서부터 부드럽게 발전해 나갔다. 트롬본 주자 JJ.존슨, 트럼
펫 주자 케니 도햄, 테너 색소폰 주자 소니 롤린스, 그리고 드러머 맥스 로치 등은
밥 시대에 명성을 얻었으며, 하드 밥에 있어서도 그들의 스타일에 새로운 면을 추
가하여 그 명성을 유지시켰다, 하드 밥 스타일의 두드러지는 특성의 하나는 펑키
하고 토속적인 프레이즈와 가스펠 음악에서 나타나는 하모니이며, 대부분의 하드
밥 플레이어가 이 특징을 갖고 있었다.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 1928---처음에는 버드 파웰의 제자
였던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가 모던 재즈의 펑키한 멜로디나 가스펠적인 하모
니의 개척에 공헌하였다. 실버는 1940년 어스킨 호킨스(Erslune Hawkins)의 (After
Hours)레코딩에서 애버리 패리쉬(Avery Panish)의 피아노 솔로를 공부하였는데,
이것은 모던 재즈에 받아들여진 최초의 펑키 피아노 스타일이었다. 실버가 그의
스타일에 소화시킨 그 주법은 재즈 피아니스트와 관악 주자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피아니스트 진 해리스(Ciene Hams)-램지 루이스(Ramsey Leuls)-레스 맥캔(Les
McCann),오르간 주자 지미 스미스(Jlmmy Srmth)-리차드 '그루브' 흠즈(Richard
'Groove' Holmes)-잭 맥더프(jack McDuff)등은 펑키한 멜로디나 실버에 의해 개
척된 가스펠풍의 하모니를 스타일의 기본으로 삼았다. 원래는 펑키한 스타일이 아
니었던 1950년대의 밥 피아니스트도 실버 스타일의 요소를 흡수하였다. 빌 에반
스-허비 핸콕-맥코이 타이너 -칙 코리아를 포함한 1960년대의 피아니스트들도
종종 실버의 펑키한 스타일을 사용하였으며, 특히 코리아는 초기 스타일에 실버의
영향을 받고 있다. 술집이나 호텔의 칵테일 라운지에서 연주하고 있던 수많은 피
아노나 오르간 플레이어들도 그 블루지한 분위기를 자신들의 스타일에 혼합했고,
빅 밴드의 편곡자들도 또한 그 스타일을 편곡 중에 짜 넣었다.
일반 대중에 인기가 있었던 하드 밥 레코드는 단순하고 펑키한 작품이었다. 몇
개의 히트곡은 알토 색소폰 주자 캐논볼 애덜리가 이끌었던 캄보에 의해 만들어졌
다. 거기에는 그의 (sack o' Woe),동생인 냇 애덜리의 (Tive Samb쏘와 (Work
song),그의 캄보의 피아니스트 라비 티몬스(Bobby Timmons)가 만든 (Dat Dere)
와 (Dis Her쓸 등이 있다. 1960년대의 펑키 하드 밥 곡은 재즈로는 드물게 쥬크 박
스에 걸리는 적도 있었다. 그러한 곡으로는 애덜리의 피아니스트였던 조 자비눌의
작품 (Mercy,Mercy, Mer민-호레이스 실버의 작품 (Senor Blues), (Song for
My Father),트럼펫 주자 리 모건의 작품 (sidennel) (이 곡은 그 자신의 그룹과,
편곡자인 퀸시 존스가 이끄는 스튜디오 그룹 양쪽에서 레코딩되었다-플루트 주
자 허비 맨의 베이스 주자 벤 터커(Ben Tucker)의 작품 (Comin' Home Baby)등
이 었다.
하드 밥(Hard Bop)스타일 뮤지션
TNmpat
Clifford Brown
Kenny Dorham
Miles Davis
Blue Mithchell
Donald Byrd
Thad Jones
Art Farmer
Bill Hardman
Joe Gordon
Carmell Jones
Lee Morgan
Freddie Hubbard
Tommy Turrentina
므enny므ailey
Booker Little
Nat Adderley
Be폰one Sex
Pepper Adams
Cecil Payne
Nick Brignola
TenM nx
Sonny Rollins
John Coltrane
Jimmy Heath
Frank Foster
Clifford Jordan
Teddy Edwards
Benny Golson
Billy Mitchell
George Coleman
John Gilmore
OliverNelson
Stanley Turrentin8
Junior Cook
급ooker Ervin
Joe Henderson
WayneShorter
Hank hAobley
Harold Land
J.R.Monterose
Tina Brooks
Yusef Lateef
J.J.Johnson
Curtis Fuller
Jimmy Knepper
Jimmy Cleveland
Frank Rehak
Tom Mclntosh
Tommy Flanagan
Barry Harris
Cedar Walton
Duke Pearson
Bobby Timmons
Red Garland
Wynton Kelly
Joe Zawinul
Junior Msnce
Kenny Drew
Horace Parlan
Les McCann
Gene Harris
Ramsey Lewis
Horace Silver
Afto Snx
Cannonball Adde-ley
Jackie Mclaan
Lou Donaldson
Gigi Gryce
Frank Strozier
Phil Woods
B-
Paul Chambersl
Sam Jones
Doug Watkins
Wilbur Ware
Bob Cranshaw
Gene Taylor
Reggie Workman
Percy Heath
Jymie Merritt
Butch Warren
DNms
Philly Joe JoneiS
Roy Brooks
Louis Hayes
Art Taylor
Roy Haynes
RogerHumphrieS
Elvin Jones
Lex Humphries
Max Roach
Art Blakey
Mickey Roker
AIHe만h
Ben Riley
Jimmy Cobb
Frankie Dunlop
Horace Silve-
Benny GelsOn
Gigi Gryce
OliverNelson
CannonballAddarley
Nat AdderleY
Wayne Shor-eT
므obby TimmOnS
J.J.Johnson
Jackie Metean
Tom MclntoSh
Olgnn
Jimmy Smith
Jack McDuff
Richard"GrOeve" Holmes
Don PattersOn
Jimmy McG-iff
Shirley Scon
Gu◎-
Wes MontgOmeryl
Kenny Burre--
Grant Green
하드 밥 트럼펫 주자 (Hard Bop Trumpeter)
클리포드 브라운(Clifford Brown 1930--1956)-많은 하드 밥 트럼펫 주
자의 모델이 되었던 사람은 클리포드 브라운이었다(그 자신은 패츠 나바로와 마일
즈 데이비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브라운은 뛰어난 스피드와 믿기 어려운 정력
을 갖고 있었으며, 그의 연주는 풍부하고 힘이 있었다. 브라운의 톤은 부드럽고 따
뜻한 맛이 있었고 디지나 마일즈보다도 더욱 넓어지고 여유 있는 비브라토를 갖고
있었다. 그는 일관한 스타일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대부분의 레코드에서 '똑
같은 브라운'을 들을 수 있다. 많은 감상자가 1950년대, 60년대, 그리고 70년대의
어느 트럼펫 주자보다도 그의 레코딩이 뛰어나다고 느끼고 있다. 브라운은 어려운
코드 진행에서 솔로 라인을 창조하는 데 길레스피나 파커에 필적하는 능력을 갖추
었다.
클리포드 브라운은 1956년 6월 아직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도날드 버드
(Donald B1y1,-빌 하드맨(Bill Hardman),루이 스미스(Louls Srmth),카멜 존스
(Carmell Jones),그리고 리 모건 등 다음 세대를 맡는 연주가들이 브라운의 영향
을 강하게 받았다. 프레디 허바드 역시 초기의 연주에서는 브라운의 영향이 보였
지만 그 후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창출해 나갔다. 태드 존스는 길레스피 이후 가장
재능이 풍부한 트럼펫 주자였지만 브라운이나 허바드 정도의 영향력을 갖지 못했
다. 그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은 그에게 여러 가지 결점이 있었기 때문이 아
니라 그의 스타일이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의 독특한 아이디어
와 기교를 흡수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필라델피아와 디트로이트 출신의 하드 밥 플레이어
Phifn칠phi
Clifford BroWn
Las Morgen
McCoy Tyne「
Dnit
Thad Jones
Elvin Jone-
HannJone8
므any HarriS
Charles MePhenon
Roland HannB
Philly Joe JOnBS
Jimmy Heath
Percy Heath
Tommy Flanegan
Paul ChambErr
Ron Carter
Louin Hayea
Yusef LateBf
Kenny BurrBII
클리포드 브라운
John ColtsBne
Bobby TimmOnS
므enny GolSOn
Donand Byrd
Billy MitchaII
Doug Watk-ns
Pepper Ad8mS
Curtis Fulls-
아트 파머(Art Farmer 1928---아트 파머는 재능 넘치는 독창적인
하드 밥 트럼펫 주자이다. 파머는 클리포드 브라운이나 태드 존스에 비해 톤이 관
악기적이 아니고 강력한 힘도 없기 때문에 하드 밥 플레이어라는 느낌이 들지 않
는다. 그의 톤은 초기 마일즈 데이비스의 부드럽고 가벼운 톤에 가까웠으며, 브라
운과 마찬가지로 시종 일관한 성격의 즉흥 연주를 했다. 파머는 1959년부터 62년에
걸쳐 하드 밥 신에 있어서 최량의 편성으로 높은 수준을 가진 캄보 '재즈텟
(Jazztet)'을 이끌었으며, 테너 색소폰 주자인 베니 골슨이 그의 파트너였다. 1970
년대는 미국보다도 유럽에서의 연주 활동이 많아졌다,
프레디 허바드(Freddie Hubbard 1938---대부분의 하드 밥 트럼
펫 주자는 클리포드 브라운을 변형시킨 사운드였지만 프레디 허바드는 확실한 독
자적인 스타일의 표현법을 사용하였다. 허바드의 톤은 진짜 브라스 악기라는 느낌
을 주었고 라인은 항상 활동적이었다. 1960년대 중기의 그의 솔로에는 독자적인 프
레이즈가 거의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그는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트럴펫을 사
용했는데 그것은 그의 음악 정신의 기본이 되었다. 예를 들면 쉐이크(shane,음을
진동시켜 부는 주법」의 빈번한 사용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원래 그는 하드 밥
플레이어지만 프리 폼 재즈나 밥 이외의 스타일에도 관심을 보였다. 허바드의 영
향은 1970년대의 유명한 트럼펫 주자에게서도 나타난다. 우디 쇼(Woody Shaw)-
마이클 로렌스(Michael Lawrence)-케니 휠러(Kenny Wheeler)-찰스 설리반
(CharlesSullivan )-랜디 브렉커(Randy Brecker)-마빈 피터슨(Marvin Peterson)-
오스카 브래쉬어(Oscar Brashear)-톰 브라운(Tom Browne)등의 연주에 허바드의
영향이 보이며,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윈튼 마살리스(Wynton Marsalis)가 마일즈
와 허바드의 스타일을 결합하여 이 전통을 유지시키고 있다.
테너 색소폰 주자(Tenor Saxnphonzst)
하드 밥은 많은 뛰어난 테너 색소폰 주자를 탄생시켰다. 초기 재즈의 트럼펫이
나 1970년대의 드럼이 그러했던 것처럼 테너 색소폰은 하드 밥 스타일의 중요한 악
기였다, 적어도 20여명의 중요한 테너 색소폰 주자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소니
롤린스와 존 콜트레인은 뛰어나게 우수했다. 콜트레인의 하드 밥에의 어프로치는
다음 장에서 상세히 다를 것이다.
소니 롤린스 (Sonny Rollins 1929 --)-- 소니롤린스는 실로 개성적인
재즈 뮤지션으로, 그의 장점은 테너 객소폰 주자로서 배타적이지 않았다는 점이
다. 롤린스의 솔로는 논리적으로 충분히 생각되어진 것으로 많은 색소폰 주자가
하이 스피드의 연주를 할 때 관용적인 프레이즈나 테크닉적으로 무리 없는 멜로디
패턴에 맛추려고 하는데 비해 그는 정신의 충실함을 무기로 도전해 갔다
('Saxphone Colossusn, 'Way Out nestJ). 롤린스의 작곡은 몽크의 작곡과 마찬가
지로 단순했으며 악센트 위치를 바꾸는 등 많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였
다. 그러나 그 일반적이 아닌 구성은 실로 교묘하게 처리되어 있기 때문에 표면적
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의 곡 (Valse Hot)은 이러한 관점의 롤린
스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예로, 그 단어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로 싱커페이션되어
있는데 각 비트 혹은 강세가 아닌 부분에 악센트를 둔다. (Vale Hot)의 프레이즈
는 부자연스러운 곳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롤린스의 곡을 몇 곡 레코딩했다. 특이한 구성의 (Alrenln)
(Nlgena를 거꾸로 표기-일반적인 코드 진행에 의한 16소절 A-A -B-겨형식의 곡인
(Doxy),그리고 (I Got Rhythm)의 코드 진행을 기본으로 하여 만든 (Olec) 등을
마일즈는 롤린스와 레코딩했고 그 중 (싫eo), (Alresl룬은 존 콜트레인과 함께 다
시 레코딩하였다. (Ole꼬는 그 뒤에도 마일즈와 테너 색소폰 주자 행크 모블리
(Hank MObley)에 의해 다시 레코딩되었다. 마일즈나 다른 뮤지션들과의 레코딩에
덧붙여 롤린스는 클리포드 브라운-맥스 로치 퀸텟의 멤버로서 훌륭한 레코드를
남겼다. 브라운-롤린스에 의한 (E(lss and Run), (Pent-Up House), (Valse Hot)
등의 레코딩은 1950년대 최고의 트럼펫, 테너 색소폰 세션이 되었다. 브라운과 롤
린스는 모두 뛰어나고 경쾌하며 풍부한 상상력을 갖고 연주했다. 롤린스는 재즈의
훌륭한 임프로바이저의 한 사람이다. 그는 테너 색소폰을 자유 자재로 구사하는
테크닉으로 강렬한 업 템포에 있어서도 코드를 무리 없이 짜나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코드 진행을 초월했던 것과 거기에 새로운 멜로디를 자연스럽게 맞추
었던 것이다. 롤린스의 임프로비제이션은 멜로딕했으며 그는 찰리 파커 이후에 나
타난 많은 색소폰 주자 중에서도 특히 창조성이 풍부한 플레이어의 한 사람이었
다.
롤린스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자유 자재로 연주할 수 있었다. 템포, 코드 체인
지, 멜로디에 대해 순간적인 대응력과 아이디어를 보였다. 그는 레가토 스타일 대
신에 종종 스타카토 프레이즈를 애용했던 점에서 많은 밥 테너 색소폰 주자와는
달랐다. 그는 교묘한 어택 방법을 사용했으며 그의 비브라토는 느리고 매우 안정
되어 있었다. 롤린스의 톤은 거칠어서 콜트레인과 같은 섬세한 풍요로움은 없었는
데, 그것은 테너 색소폰 주자로서는 극히 독특한 것이었다. 롤린스는 긴 공백기를
거치고 더욱 충실한 연주를 들려 주었는데 특히 짧은 프레이즈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사일런스(silene릿는 매우 중요하다. 그는 때때로 싱글 노트를 반복하고 다
른 리듬이나 톤 컬러로 거기에 어택하였다. 웨스트 코스트의 바리톤 색소폰 주자
제리 멀리간처럼 롤린스는 마치 여러분이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까지도 들을 수가
있을 정도로 논리적인 솔로를 전개하였다. 롤린스는 1949년에 활발하게 레코딩을
시작하였으며 1950년대의 테너 색소폰 주자에게 상당한 충격을 가져왔다. 그는 찰
리 파커 ,소니 스티트,존콜트레인 등에 이어 많은 색소폰주자의 주목을 받았는
데, 예를들면팻 라바베라(Pat LaBarbera)-존클레머(John띤emmer)-빌리 하퍼
(B기y HaIper)등 1970년대의 훌륭한 색소폰 주자들은 좋아하는 플레이어로 롤린스
를 꼽는다.
조 헨더슨(Joe Henderson 1937---때때로 롤린스나 콜트레인을 연
상시키나 대체로 독자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뮤지션이 조 헨더슨이다('Power to
the Peep-eJ). 헨더슨은 웨인 쇼터와 함께 롤린스와 콜트레인 이후 하드 밥에 의해
탄생한 가장 독창적인 테너 색소폰 주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톤은 면도칼처럼 예
민한데 각각의 비트를 매우 분명하게 소분할하는 그의 특징이 연주의 날카로운 감
각을 강하게 해준다. 그리고 높은 수준의 악기 테크닉은 뛰어난 정확성과 빠르고
복잡한 음의 흐름을 연주할 수 있도록 한다.
헨더슨은 롤린스와 마찬가지로 강렬하고 자극적인 라인을 연주할 수 있다. 그
연주에는 여러 가지로 움직이는 레가토 라인과 교대로 싱커페이션된 스타카토 라
인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스트레이트한 8분 음표를 스윙하는 8분 음표로 바꾸고
거기에 16분 음표를 삽입하기도 한다. 쉐이크나 트릴-린의 드라마틱한 이용도 헨
더슨의 특징 중 하나이다. 그는 동물의 울음 소리와 같은 트릴을 사용하며, 비브라
토도 그 때에 맞추어 변화시킨다. 헨더슨은 하드 밥의 주류에서 활동을 시작했지
만 그 스타일에는 1960년대의 오네트 콜맨 , 앨버트 아일러 ,존 콜트레인에 의해
전개된 새로운 스타일이 잘 섞여 있었으며 그가 가져온 영향은 1970년대에도 들을
수 있다.
알토 색소폰 주자(Alto Saxophrmist)
캐논볼 애덜리(Cannonball Adderley 1928--1975)-캐논볼 애덜리는 찰
리 파커가 죽은 후 알토 색소폰을 연주하는 최고 임프로바이저의 한 사람으로 실
제로 애덜리의 스타일은 어느 정도 파커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매우 인기
가 있었던 몇 개의 뛰어난 하드 밥 캄보를 이끌고 있었지만 솔로로서 캐논볼의 가
장 ◎나는 레코드는 마일즈 데이비스 그룹의 멤버일 때 만들어졌다. 애덜리가 마
일즈와 함께 연주하고 있던 무렵 테너 색소폰 주자 존 콜트레인 역시 그 그룹에 재
적하고 있었다(rMilestonesJ).애덜리가 콜트레인에 뒤떨어지지 않고 때로는 콜트
레인을 능가했다는 사실은 애덜리의 임프로비제이션이 뛰어났음을 나타낸다.
애덜리는 파커나 콜트레인과 마찬가지로 높은 수준의 연주 테크닉과 함께 독창
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그의 톤은 매우 풍부하고 테너 색소폰의 사운드와
같이 들리기도 했다. 또 그는 흙내 나는 레가토 스타일과 놀랄만한 힘의 소유자였
다. 애덜리의 스타일은 파커의 영향(1955년의 극히 초기-콜트레인의 아이디어
(1958년 이후: 그리고 그 자신의 독톡하고 쾌활하고 리드믹한 구성이 흔합된 것이
다. 그를 콜트레인이나 리 코니츠와 구별하고 또 어느 정도 파커와도 구별하는 포
인트가 되는 것은 그가 펑키하고 멜로딕한 음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애덜리는 그
의 크고 넘칠듯한 톤을 완전히 사용하여 블루지하고 펑키한 정감 있는 연주를 전
개했으며, 그것은 또 자유 분방하고 힘이 있었다.
재키 맥린(Jackie Mciean 1932---재키 맥린은 매우 중요한 또 한
사람의 알토 색소폰 주자이다. 처음에는 파커를 모방했던 맥린은 독자적인 스타일
을 만들어 1960년대에 유명해졌던 새로운 스타일을 완성시켜 갔다. 그는 드라이하
고 경쾌한 톤으로 실로 뛰어난 연주를 하였으며, 스타일은 매우 격렬했다. 맥린은
또 충실한 하드 밥 작곡가로서 자신의 앨범을위해 많은곡을쓰고 그 중 몇 곡은
다른 리더에 의해서도 레코딩되었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맥린의 (oonna)( (Di료로
서도 알려져 있다)나 (Linle Melonae), (Minor March), (Dr. Jackle)((Dr.Jekyll)로
도 알려져 있다) 등을 레코딩하였다.
하드 밥 드러머(Hard Bop Drummer)
아트 블래키(Art Blakey 1919--1990)-드러머 아트 블래키는 뛰어난 하드
밥 플레이어의 주류를 포함하는 정력적인 퀸텟이나 섹스텟을 리드하는 동시에, 솔
로 주자와의 활발한 상호 작용을 만들어낸 재즈 드럼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블래
키의 드럼은 종종 트럼펫이나 색소폰과 마찬가지로 그의 캄보 사운드의 줄심이 되
었으며, 리듬 섹션에서의 그의 연주는 매우 활력이 있고 다이나믹하다, 트럼펫 주
자 클리포드 브라운이나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와의 1954년의 연주 'Nig◎ at
BlrdlandJ는 그러한 주법이 일반적이 되기 수년 전에 그가 리듬 섹션 드러밍의 신
경지를 이루었다는 것을 보여 준파, 블래키 그춥의 트럼펫 주자에는 클리포드 브
라운-도날드 버드-빌 하드맨-리 모건,프레디 허바드,우디 쇼 등이 있었다.
또색소폰주자에는재키 맥린-행크모블리,웨일 쇼터,베니 골슨, 그리고쟈니
L리핀(Johnny Griffin)등이 있다. 피아니스트에는 호레이스 실버 , 키스 자렛 . 시
더 월튼(Cedar Walton)등 뛰어난 플레이어가 많았다. 블래키의 사이드맨 구성은
그의 그룹의 사운드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최고 작품 몇 곡은 호
레이스 실버와 베니 골슨, 그리고 웨인 쇼터의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필
리 조 존스는 리듬 섹션 연주에서는 블래키와 비슷한 위치로 활약했으며, 드럼 소
리의 높고 낮음은 1955년부터 58년의 마일즈 캄보에 큰 활력을 주었다.
맥스 로치(Max Roach 1924---맥스 로치는 후기 밥계에 있어서 중
요한 인물이며 하드 밥의 리더격인 존재이다, 그의 드러밍은 빠르고 매우 깨끗 했
다. 리듬 섹션 플레이어로서의 그는 아트 블래키나 필리 조 존스에 비하면 보수적
이어서 대다수의 드러머와 같이 자신의 테크닉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솔로 주자로서 뛰어난 존재였고 솔로에 관해서는 사소한 데까지 신경을 썼으며 멜
로디를 좋아했다. 로치는 하드 밥 최고의 그룹인 브라운-로치 퀸텐iThe Brown
Roach QUmtet)을 이끌었는데, 이 퀸텟은 높은 수준의 연주로 많은 훌륭한 레코드
를 남겼다. 1956년에 브라운이 죽고 난후로치는트럼펫 주자인 케니 도햄 토미
터렌타인(Tommy Turrentine)-부커 리틀(Booker Llttlei,테너 색소폰 쿠자인 소니
롤린스,스탠리 터렌타인(Stanley Turrentine)-클리포드 조단iCllfford Jordani-조
지 롤맨 등과 한께 그룹 활동을 계속하였다.
하드 밥 피아니스트(Hard Bop Pianist)
하드 밥 피아니스트는 버드 파웰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중에서 토미 플라
나간은 파웰-테이텀 -테디 윌슨으로부터 배운 아마도 가장 훌륭한 하드 밥 피아
니스트일 것이다. 그는 또 윌슨에게서 영향을 받았던 행크 존스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배리 해리스(Bany Harris)는 아마 1960년대를 통해 하드 밥 사이드맨으로
서는 가장 활약했던 사랄일 것이다. 레드 갈란드는 파웰이나 그 외 여러 영향을 받
아 그 자신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창출하였다. 호레이스 실버도 최초에는 파웰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반주 스타일은 빅 밴드 편곡과 비슷했다. 실버는 트럼펫 주자
블루미첼(Blue Mitchell)-아트파머,톰하렐(Tom Harrell),우디 쇼,랜디 브렉
커, 그리고 색소폰 주자 행크 모블리-밥 버그(Bob Berg)-주니어 쿡(Junior
Cook)-조 헨더슨-마이클 브렉커(Michael Blecker),드러머 로이 브룩스(Roy
Brooks )-루이 혜이즈(Louls딘ayes)-알 포스터(Al Foster)-빌리 코브햄(Billy
Cobham)등의 하드 밥 플레이어들을 멤버로 한 일련의 수준 높은 퀸텟을 이끌었
다. 실버는 가장 많은 하드 밥 곡을 만든 작곡가이다. 그의 유명한 곡으로는
(Doodlin'), (Sister Sadie), (The Preacher), (Filthy McNasty), (Song for My
Father),(Seiior Blue◎ 등이 있다. 그의 많은 앨범은 독창성이 넘쳐 흐른다.
작 -편곡자들(Composer Arrannrs)
하드 밥 임프로바이저는 밥 플레이어만큼 팝의 코드 진행에 의존하지는 않았으
며 독자적인 작품이나 오리지널 코드 진행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 중에는 종래의
32소절이나 12소절 이외의 형식의 곡도 있었다. 클리포드 브라운의 noy Sprin끄은
A-B-C-A형식으로 B와 C가 A와는 다른 조가 된다. 지지 그라이스의 (Minority)
는 16소절로 전부 A이다. 호레이스 실버의 (Nica's Drram)은 A-A-B-B-A형식으로
A가 16소절,B가 8소절 길이가 된다. 테너 색소폰 주자 베니 골슨이 트럼펫 주자
인 클리포드 브라운에게 바친 (I Remember Clifford)는 재미있는 코드 진행으로 그
형식은 6소절 섹션, A섹션의 반복되는 8소절, 8소절의 브릿지, A섹션, 그리고 6소
절 섹션으로 돌아온다. 한편, 골슨은 아트 파머-베니 골슨의 재즈텟(Jazztet)에 의
해 연주된 많은 곡의 편곡을 담당하였다. 'The Jant'은 훌륭한 사이드맨을 기용
한 세련되고 풍부한 상상력을 갖춘 그룹이었다. 트롬본 주자인 커티스 풀러(Curtis
Fuller),피아니스트 맥코이 타이너, 후임의 시더 월튼, 그리고 트롬본 주자이자
뛰어난 작-편곡가이기도 한 톰 매킨토쉬(Tom McIntosh)등도 그룹의 멤버로서
이름을 날렸다.
베이스 주자(Bassist)
폴 챔버스(Paul Chambers)-샘 존스(Sam Jones)-하드 밥은 충실한
베이스주자를 많이 배출시켰고 게다가그 중 몇 명은뛰어나게 멜로딕한솔로주
자였다. 폴 챔버스는 그 풍부한 음량과 어두운 사운드와, 피치카토나 아르코(arco)
주법에 의한 관악기 같은 밥 솔로로 많은 밴드 리더들을 감동시켰다. 챔버스는 훌
륭한 연주 테크닉과 밥 솔로를 관악기와 같은 독특한 것으로 만들어 재즈 베이스
솔로의 가능성을 넓혔다. 그는 마일즈의 그룹에서 약 8년간 팔약하고 그 외 리더로
서도 많은 레코딩에 참가하였다. 샘 존스도 특히 주목할 만한 하드 밥 베이스 주자
로서 폴 챔버스와 마찬가지로 많은 레코딩 세션에 참가하였고 그의 활약은 1970년
대까지 계속되었다.
트롬본 주자(Trombonist)
JJ. 존슨은 하드 밥에 있어서도 1940년대 후기와 마찬가지로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sidelvmder) (1960년대에 리 모건이 만든 동명곡과는 다르다)를 비롯한 많은
하드 밥 작품을 썼고 특히 연습을 거듭하여 호흡이 잘 맞는 그룹을 이끌었다, 존슨
의 그룹에는 드러머 엘빈 존스, 트럼펫 주자 냇 애덜리 , 프레디 허바드, 피아노 주
자 토미 플라나간-시더 월튼, 테너 색소폰 주자 바비 자스퍼(Bobby Jasper)-클
리포드 조단 등이 참가하고 있었다. 또 베이스 주자 폴 챔버스, 드러머 맥스 로치
등 훌륭한 멤버와 함께 여러 장의 레코드를 남겼다.
커티스 풀러(Curtis Fuller 1934-- )i-트롬본 주자인 커티스 풀러는 존
슨에 견주어지는 하드 밥 시대 트롬본의 리더적인 존재가 되었다. 풀러의 전체적
인 사운드는 JJ.존슨과 아주 유사했지만 톤은 보다 부드럽게 확산되었으며 흐르
는 음의 감촉은 실로 섬세하였다. 그는 존슨 이상으로 다른 연주를 할 수 있었지만
어택(attaC◎이나 릴리즈(releas릿는 존슨만큼 빠르지 않았다. 풀러는 사이드맨으로
서는 존슨보다 잘 알려져 있었으며 아트 파머-베니 골슨의 재즈텟('Meet the
JrlZtetJ)이나 아트 블래키와 블루 노트에서 레코딩한 여러 밴드 리더들과 만든 레
코드에서 좋은 연주를 들려 준다.
하드 밥 기타리스트(Harrd Bop Guitarist)
케니 버렐(Kenny Burrell)-웨스 몽고메리(씬es Montgomery)-케니
버렐이나 웨스 몽고메리 두 하드 밥의 선두 기타리스트의 가장 창조적인 시기는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기가 된다. 버렐은 찰리 크리스찬과 장고 라인하르트,
그리고 오스카 무어(Oscar Moole)등의 영향을 받았다. 호레이스 실버의 펑키하고
멜로딕한 음의 구성은 버렐 연주에서 종종 들리지만 버렐은 충실한 내용과 깊이가
있는 펑키하지 않은 솔로도 또한 전개하였다('Kenny Burrell/John Coitrane'l).
웨스 몽고메리는 아마도 최고의 하드 밥 기타리스트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는 버브와 A&M에서의 레코딩으로 특히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으나 그 레코딩이
그의 위대한 재능을 그다지 잘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 레코드에서 우아하
게 연주하고 있지만 1950년대 후기와 60년대 초기의 그의 작품은 재즈적인 경향이
매우 엷어졌다. 몽고메리는 찰리 크리스찬의 흐름을 이어받아 릴랙스하고 멜로딕
한 스타일을 창조하였다. 그의 톤은 등글게 확 찼으면서도 또렸했으며 지나치게
충격적이지 않았다. 그의 연주는 경쾌하게 스윙하고 있었으며 옥타브 주법은 재즈
기타로서는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 주법을 대중화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The InCredible Jazz Guitar of Wes Mon굴omeryJ, rWhile We're Young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