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부산에서 마산으로 옮겨온 요트는 짚시...30피트급 크루즈요트이다.
이 배는 작년 봄 일본 북 큐슈에서 한국으로 시집왔다. 서울에 사는 선주의
부탁으로 이 배를 마산으로 옮기기로 한것이다. 2007년12월14일 금요일
요트경기장 사무실로 찾아가 계류비를 정산하였다. 1개월분에다 8일이
더 있었다. 부가세를 포함하여 나온 계류비는 45만원 돈이다. 오르기 전이라면
20만원정도 될것인데 계류비가 만만치 않다.
어쨌던 계류비를 정산하였다. 그런다음 배로 와서 점검을 하였다.
공구가 부족했고 오래동안 타지않아 밧데리가 방전되어 있었다.
새로 밧데리를 하나 구입하여 캐빈에다 놓아두고 연료와 기타 장비들을
점검하였다. 저녁에는 범주협회에서 주최하는 요트인의 밤에 참가하였다.
다음날 새벽에 마산에서 차를 타고 와야하고 또 저녁에 마산으로 돌아가야
하는 번거러움과 수고로움에 부담을 느껴 8시30분경 막 무르익으려 하는
파티장을 빠져 나와 마산으로 돌아왔다. 토요일 아침 6시30분경에 일어나
허겁지겁 아침을 먹고 옷가지등을 챙겨 7시10분경 부산으로 향했다.
신마산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자유수출공단을 지나 창원을 통과하여
창원터널을 500원주고 지나갔다. 내리막길을 쏘아서 장유 톨게이트에서
고속도로로 올렸다. 10여분만에 서부산 톨게이트에 도착하여 1400원의
도로비를 내고 동서고가도로로 이어졌다. 5분쯤 달려 요금소에서 600원을
던지고 서면을 지나 우측으로 빠져 황령산 터널로 진입하였다. 터널을
나오니 다시 길을 막아놓고 돈을 겆고 있었다. 600원을 주니 덜컥하고
막고있던 막대기가 올라갔다. 내리막길로 쭈욱 내려와 대남 지하차도를
지나 평소에 잘 이용하지 않는 광안대교로 차를 올렸다. 시원하게 툭터인
바다를 보면서 달려 수영로타리로 빠져나올려니 예쁜아가씨가 천원을
요구한다. 돈이 아깝지 않았다. 고가도로를 내려 유턴을 하여
쭉내려가 좌회전을 하여 200미터쯤 가서 다시 좌회전신호를 받아
3차선으로 붙은뒤 100여미터쯤 진행하다 우측에 있는 조선소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는 요트경기장을 담당하고 있는 해경 신당
출장소가 있다. 같이 마산으로 항해하기로 한 서승형씨와 만나
원거리 수상레저 신고를 하였다. 이때가 8시 30분. 집을 출발하여
한시간20분이 걸렸다. 조선소를 나와 300미터쯤 오던길을 더 달려
요트경기장에 도착하였다.
배에 와서 밧데리를 바꾸고 시동을 하였지만 잘 되지않았다.
아마도 오래동안 타지않아 연료라인에서 압력이 빠져 있는 모양이었다.
연료휠타를 점검하고 에어를 뽑기위해 노즐윗부분의 볼트를 느슨하게
한다음 펌프을 하여 연료라인에 연료를 차 오르게 하였다.
이래 저래 시간을 흘러갔다. 탕 탕 탕....커이 커이....퓨카....
몇번 스타트 모타를 돌려 시도했지만 연료분사가 제대로
안되는지 시동이 되지않는다. 엔진위에 엔진의 시동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있는 밸브를 모두 열어서 빈 피스톤을 빠르게
돌린다음 놓았다. 위이잉잉잉......텅 텅 얀얀얀...부르릉...츄가 츄가
힘차게 엔진이 돌아갔다. 얀마엔진이 돌아가는 소리는 언제들어도
가슴이 뛴다. 출발을 위한 처음...엔진 시동이다. 이게 안되면
출발이 안되는 것이다.
바람이 거의 없어 하버에서 출발하기전 메인세일을 올렸다.
시계가 10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출발예정 시간보다 2시간이나
늦어졌다.
배를 폰툰에서 밀어낸뒤 클러치를 털커덕하고 밀어넣었다. 거울처럼 잔잔한 요트경기장안의
물위로 작은 파장을 일으키며 천천히 출구쪽으로 나아갔다. 올려진 계류줄을 풀어 콕핏아래에
보관하고 휀다를 끌어올려 완전히 풀어서 보관하였다. 요트장을 빠져나가 오륙도 방면으로
코스를 잡았다. 스타보드텍(세일을 왼쪽으로 전개하고 오른 쪽에서 바람을 받음:아래그림참조)
으로 크로스홀드(바람을 받으며 풍상으로 갈수있는 최대의 각도)정도로 겨우겨우 올라갈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가까이 있는 육지의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누릴수 있는 잠깐의 행복이었다.
배는 가고자 하는 방향보다 점점 남쪽으로 밀리어 오륙도와 차츰 멀어졌다.
짚세일을 내리고 1단축범된 메일세일만으로 엔진을 가동하고 목적지로 향하였다.
광안대교가 있어 부산에서의 세일링은 조금더 즐거움을 더해준다.
오륙도의 솔섬과 수리섬 사이를 11시경에 통과하였다. 오토파일럿을 작동하고 교대로
30분씩 워치를 서기로 하였다. 먼저 케빈으로 들어와 좀 쉬었다.
다음은 검색창을 통해 찾아낸 오륙도에 대한 설명이다.
"1972년 6월 26일 부산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었다. 면적 0.02㎢, 최고점 68m(굴섬)이다.
예로부터 부산의 상징물이었다. 영도구(影島區)의 조도(朝島)와 마주보며, 부산만 북쪽의
승두말로부터 남동쪽으로 6개의 바위섬이 나란히 뻗어 있다. 이 섬들은 육지에서 가까운
것부터 방패섬(2,166㎡)·솔섬(5,505㎡)·수리섬(5,313㎡)·송곳섬(2,073㎡)·굴섬(9,716㎡)·
등대섬(3,416㎡)으로 나누어진다.
오륙도라는 이름의 유래는 방패섬과 솔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두 섬은 아랫부분이 거의
붙어 있어 썰물일 때는 우삭도라고 하는 1개의 섬으로 보이고, 밀물일 때는 2개의 섬으로
보인다. 이처럼 조수의 차이에 따라 섬이 5개 또는 6개로 보이기 때문에 오륙도라고 하게
된 것이다. 송곳섬은 작고 모양이 뾰족하며, 굴섬은 가장 크고 커다란 굴이 있다.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등대섬은 평탄하여 밭섬이라고도 하였으나, 등대가 세워진 뒤부터
등대섬이라고 한다. 등대섬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무인도이다.
섬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12만 년 전까지는 육지에 이어진 하나의 소반도(小半島)였다가
유구한 세월 동안 거센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육지에서 분리되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육지인 승두말과 인접한 방패섬과 솔섬의 지질 구성이 동일하다는 사실로도 증명된다.
섬 주변은 조류가 매우 빨라 뱃길이 위험하였기 때문에 옛날 이곳을 지나는 뱃사람들은
항해의 무사함을 기원하기 위하여 해신에게 공양미를 바쳤다고 전해진다.
해운대에서 유람선이 이곳을 운항하며, 용호동에서 이곳으로 운항하는 낚시배가 있다.
부산항 입구의 항로를 가로질러 태종대 앞으로 가고 있을때 상선한척과 코스가 엉켜
배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있다가 상선뒷쪽으로 가야만했다.
바람의 각도가 좋지않아 올려놓은 메인세일이 성가시게 펄럭거렸다. 각도를 크게 변경하여
태종대 안쪽으로 잡아 포트텍상태로 달리다 육지가까이에서 다시 텍을 바꾸었다. 그러다
보니 태종대 등대와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등대아래 해녀들이 운영하는 간이 해산물
판매소가 있었다. 손님들이 쇠주를 마시고 안주로 먹기위해 젓가락에 잡혀있는 것이 해삼인지
멍게인지를 구분할수 있을 정도로 그 거리가 처음으로 근접하게 되었다. 군침이 흘렀다.
승형씨가 가지고온 김밥을 꺼내 위로했다.
11시30분경 태종대를 돌아서 정확히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코스가 겨우 메인에 바람을
받아 갈수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가끔씩 바람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원래항로에서 멀어
지지만 방향을 돌려야 했다. 코스가 최악이었지만 그나마 파도가 1.2-1.5정도라 많은 펀칭없이
나아갈수 있었다.
12시 30분경 다대포쥐섬과 나무섬사이를 통과하여 지나갔다. 기상예보에서는 오후 두세시경에
바람이 시속27노트(초속 13미터 정도)정도로 올라간다고 하였다. 바람이 조금씩 강해지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해면이 점점 거칠어져 스프레이처럼 바닷물을 서풍으로 날려 오른쪽뺨을 적셨고 그 횟수는
갈수록 많아졌다. 콧핏에 보관되어 있던 아크릴로 된 출입문을 가져와 파도막이로 용도변경
하였다. 볼이 얼얼하고 코가 시릴정도로 차가운 날씨였지만 임시로 설치된 구조물 덕분에
해피해피 투명아크릴이라 전방주시도 좋고 앗싸...잠시 기분이 좋아졌다.
출발과 동시에 트롤링낚시를 내렸지만 무소식이다. 요트장과 서쪽으로 경계를 접해있는
신당어촌 포구에 있는 해광조선소에서 못쓰는 낚시라면 가져가라고 해서 선물로 받은
어부 전용 삼치채비였지만 좀처럼 어신을 보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시즌에는
아무도 삼치트롤링을 하지않는다.
낙동강하류쪽을 지나 갈 무렵 어신이 왔고 속도를 늦춘다음 낚시줄을 끌어올렸다. 차가운
바닷물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다랑어가 아닌가 했지만 의외로 삼치가 올라왔다. 반가웠다.
"음...아직도 삼치가 있네...그렇구나" 속으로 되뇌었다. 우리는 올라온 삼치와 기념촬영도
하며 힘든 항해의 피로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40센티를 되어보였다. 콕핏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어도 신선도가 변하지 않을 날씨였다.
녀석을 눕혀놓은뒤 다시 낚시줄을 내렸다. 내심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다랑어를 기대했다.
몇년전 이맘때쯤 섬일주를 한답시고 부산에서 울산으로 항해할때 1시간여 만에 5마리의
다랑어를 잡은적이 있었다. 그때 신 김치를 넣고 끓여먹는 다랑어 김치찌게 맛이 그리웠다.
오토파일럿의 피로를 덜어줄겸 가끔씩 승형씨가 직접 키를 잡았다. 작은 가방하나만
달랑들고 왔지만 마산까지 항해하는데 필요한 준비물은 다 있었다. 항해의 횟수가
늘어갈수록 뭘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아가는것이다. 초보자시절에는 누구나 큰 가방속에
정작 필요한 장비가 없어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 보면 승형씨에게서 서서히 뱃사람
냄새가 나는것 같다.
가덕도의 끝단이 가까워 올무렵 바람이 초속12미터에서 15미터을 오르내리면 리깅사이를
훑으며 날카로운 금속성소리로 아우성쳤다. 조금만 더 늦게 출발했더라면
다대포앞에서 부터 힘든항해가 되었을뻔 하였다. 메인세일을 1단 더 축범하고 코스를
북쪽으로 더 돌려 가덕도 동편해안선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바람도 많이 불고 기온도
차가워 낚시나 해상레저를 즐기기에는 썩 좋은 날씨가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갯바위가
보일만큼 다가갔을 때 바위틈 포인트마다 낚시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바람은
서풍이었지만 남쪽 끝을 돌아올 바람이 낚시하는 바로 앞까지 백파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뭐가 낚이고 있는지 모르지만 낚시하는 사람들의 열정을 정말 대단한것 같다.
가덕도 남단으로 방향을 다시 돌려 잡았다.
구조변경없이 설치한 불법구조물 덕분에 그마마 콧핏에 앉아서 버틸수있었다.
트롤링낚시의 고무줄이 쭈-욱 늘어나 당겨올렸다. 루어낚시가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큰놈에 걸렸었는 모양인데 아깝게 놓친것 같았다. 가덕도를 돌아 내만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더 이상 트롤링은 되지 않는다. 트롤링낚시를 철수하였다.
가덕도 등대 바로앞에는 한눈에 표시가 날만큼 조류와 파도가 뒤엉켜 일렁이고 있었다.
그 너비가 학교 운동장 정도 되는것 같았다. 그 곳을 약간 피해 먼 바다쪽으로 조금 벗어나
지나갔지만 파도가 날려왔다. 얼마전 디카가 있음에도 방수카메라를 하나 더 장만한
덕분에 파도에도 카메라를 들이 될 수 있어 기뻤다.
14시30분경 막 잔치를 시작하려는 성난바다를 간신히 벗어나 코스를 북서쪽으로 돌려
내만쪽으로 들어섰다. 여전히 바람은 강하게 느껴졌지만 밖과는 차원이 달랐다.
파도의 높이도 낮고 바람의 끝도 죽어 있어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그야말고 지옥과
천국의 차이였다.
가덕도에서 마산으로 이어지는 수로를 따라 올라갔다. 바다는 완전히 잔잔해졌다.
앞서가는 해군함정을 따라 얼마간 나아갔다. 어느새 해가 뉘웃뉘웃 짧아진 낮의
길이가 실감난다. 16시를 넘어서자 햇살이 약해지고 서녁하늘이 벌겋게 물들어
갔다.
17시경 마산 남포항에 도착하였다. 오랜만에 하는 항해라 다시금 신선하게 바다를 느낄수
있었다. 육지를 가까이 두고 가는 항로여서 혹시나 하는 두려움도 전혀없어 오직 겨울바다에
전념하여 하루동안 바다와 배와 벗과 내가 하나됨을 추구할수 있었다.
아직도 볼에 찬기운이 맴도는 듯 하다.
(2007년 12월중순 부산에서 가덕도 항해를 마치고...... 윤선장)
첫댓글 역쉬 사진과 함께보니 눈이 즐겁습니다 ^^ 잘 봤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