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14:9-15 천하의 왕 이장우 목사 창원늘푸른교회. 5. 3.
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10 온 땅이 아라바 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편 림몬까지 미칠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문 자리와 성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라 11 사람이 그 가운데 거하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안연히 서리로다 12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이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 살이 썩으며 그 눈이 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 혀가 입속에서 썩을 것이요 13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들로 크게 요란케 하시리니 피차 손으로 붙잡으며 피차 손을 들어 칠 것이며 14 유다도 예루살렘에서 싸우리니 이 때에 사면에 있는 열국의 보화 곧 금 은과 의복이 심히 많이 모여질 것이요 15 또 말과 노새와 약대와 나귀와 그 진에 있는 모든 육축에게 미칠 재앙도 그 재앙과 같으리라.
지난주 오후에 에스겔서를 보면서 유다가 심판을 받고 나서 열국이 다 심판을 받습니다. 열국이 심판을 받는 이유는 유다가 멸망할 때에 그 모습을 보고 비웃거나 망하는 일에 일조한 나라들을 다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나라와 임금이 바로 두로였습니다.
에스겔 28:1-9절을 봅니다. “봉독” 두로 왕의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나는 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그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큰 지혜와 장사하여 재물이 더하여짐으로 교만하여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로 왕을 심판하여 죽게 하시면서 네가 하나님이라고 하겠느냐고 합니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서 아름답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교만하게 되어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대선 주자로 나설만한 정치권력도 없고, 자기 아들 맞았다고 조폭들이 행하는 것처럼 보복하는 재벌도 아니기에 교만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여기십니까? 결코 아닙니다. 우리도 그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교만들이 똘똘 뭉쳐져 있는 것입니다. 다만 여건이 주어지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이렇게 살고 있을 뿐이지 우리에게 그런 권력이나 재물이 주어진다면 두로 왕처럼 내가 신이라고 하지 않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다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을 때의 유혹이 무엇이었습니까?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이었습니다. 그 유혹대로 지금도 모든 인간들은 스스로 신이 되기 위하여 모든 노력들을 다 경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최선을 다한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최선입니까? 인간이 최선을 다해도 결국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입니다. 이번에 장례를 치르면서 더욱 실감하지 않았습니까!
본문 말씀을 봅니다. 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고 합니다. 천하에 홀로 하나이신 왕이시라는 것은 다른 왕을 일체 인정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왕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홀로 하나이신 여호와가 왕이라는 말씀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유대인들도 참 하나님은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 여호와라고 하고 여호와의 증인들도 그렇게 말하는데 홀로 하나이신 천하의 왕이 도대체 누구라는 것입니까?
구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2편에서 보면 열국의 왕들의 소동을 비웃으시면서 시온에 왕을 세우십니다. 그 왕이 아들이며 그 아들에 입 맞추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급하다고 합니다. 이 왕이며 아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일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온 천하의 왕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이란 이미 예수님의 초림 때에 이루어진 내용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자들은 주의 영이 임한 자만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차 재림하실 때에는 믿지 아니하는 모든 자들까지 다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심을 알고 그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 되시는 것입니까? 야곱의 유언을 보면 홀이 유다 지파에게서 나온다고 합니다. 홀이란 왕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통치자의 지팡이가 나오리라는 예언을 따라 유다 지파에게서 다윗이 나옵니다. 다윗의 언약을 통하여 다윗의 후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십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다윗이 주라고 부르신 분이십니다. 이 분이 바로 천하의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왕적 행사를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요한복음 5:26-27절을 봅니다.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의 권세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영생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서는 인자가 하늘의 보좌에 앉으실 것과 장차 큰 권능과 능력으로 임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인자됨을 인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날에 천하의 왕이 되신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온 천하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통일하셔서 그 나라를 아버지께 바친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5:22-28절입니다. “봉독” 예수님께서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실 때까지 왕 노릇 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하나님께 복종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서열이 생기는 것입니까? 다른 말씀을 보면 또 그렇지는 않습니다.
유다서 1:4절과 24절을 보시면 이렇게 나옵니다. 4절에서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24절에서는 이렇습니다.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찌어다 아멘” 예수님도 홀로 하나이신 주재라고 하고 하나님도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우리 산수로는 이해가 안 될 문제입니다. 저는 이것을 ‘홀로’라고 보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아무른 문제없이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홀로 하나이신 천하의 왕이 드러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밝히 드러난 것이 신약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홀로 하나이신 천하의 왕이 더욱 분명하게 온 천하에 다 드러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분명하여 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구약 선지자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다 함께 담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15-16절입니다.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 여기서는 하나님을 만왕의 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본 자가 없습니다. 이 하나님이 나타나신다고 합니다. 그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요한계시록 17:14절입니다.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어린 양이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홀로 하나이신 만왕의 왕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이 벽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인데 어떻게 예수가 하나님일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개념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십니다.
10절입니다. 예루살렘만 우뚝 높아지고 주변은 모두 아라바처럼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아라바 광야는 낮은 평지이기에 다른 산들조차 낮아져서 예루살렘만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홀로 하나이신 천하의 왕이 오시면 지금의 예루살렘의 지형이 우뚝하게 보이도록 다른 지역의 땅들이 낮추어진다는 그런 물리적인 말씀은 아니겠지요! 그러면 무슨 의미입니까?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구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예루살렘에서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거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2:2-3절입니다. “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구원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보이시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꼭대기에 굳게 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홀로 하나이신 왕이 통치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하에 복음이 증거되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완전한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의 통치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5:17-25절입니다. “봉독” 구약의 언어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해함과 상함이 없는 곳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다시는 저주가 없는 것입니다.
스가랴 14:11절을 봅니다. 그 가운데서 다시는 저주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이 안연히 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예루살렘이란 지상적인 것이 아니라 천상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을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할 때에 다시는 저주가 없는 곳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1-4절입니다. “봉독” 이곳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한계시록 22:3절에서 다시는 저주가 없다고 합니다. 이 저주가 없는 곳이 어디입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입니다. 우리의 주가 되십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어떤 일이 있습니까? 그곳에는 저주가 있습니다.
스가랴 14:12-15절을 봅니다. 얼마나 무서운 재앙입니까? 사람이 서 있는 채로 눈이 썩고 혀가 썩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크게 요란케 하여 피차 손을 잡으며 피하 서로 치는 것입니다. 서로 죽이기 위하여 손을 잡는 것입니다. 짐승들에게까지 이런 재앙이 닥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을 쳤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쳤다는 것은 지난주일 오후에 에스겔서에서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그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주시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의 중심인 예루살렘을 친 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대는 무엇을 친 것이 죄가 됩니까? 언약의 완성자이시며 새 언약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이 이미 정죄와 심판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거든 저주를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와 예루살렘은 열국은 금, 은과 의복이 심히 많이 모일 것이라고 합니다. 전쟁의 승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승리입니다. 그 안에서는 다시는 저주가 없는 것입니다. 그 분이 천하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를 왕으로 모시고 삽니까? 자기 자신이 왕이 되어 있는 자는 심판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왕이 되어 있는 사람은 보이는 모든 것을 다 자기의 안목의 정욕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혀는 아무 두려움이 없이 자기 속의 온갖 더러움을 다 배설하는 혀가 됩니다. 그러나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는 자기의 입술을 가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을 뿐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