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세 때 초상화
젊은 시절
* 젊은 시절 김창수 [ 백범 김구 ]
* 단재 신채호 1931 조선사 연재
1946 조선상고사 집필
흉노 선비 몽골은 아국의 갈래이다 .
* 이중하 외교의승리와 명분 획득
임오군란과 대원군의 청납치 삼일천하 김옥균
등의 혼돈의 정국 속 업적이기에 더욱 빛난다 .
* 이범윤 [ 1903년 기점으로 1940 사망 ]
국가를 위하는 군인의 표상이며 , 충신의 표상과 같다 .
* 홍범도 [ 1910 봉오동 청산리 , 이동휘 자유시 참변 이후
고려.한족 공산당 통합 1922 후진양성 1943 사망까지 ]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애국이 무엇이며 애민이 무엇인지
보여준 인물 [ 시점 기득권층의 우월감을 그리어 보면 ...
같은 길을 가는데도 버릇없다하여 사망한 의병이 있던 시절
너무나도 쉽지 않은 길을 걸은 것이다 .
* 최재형 1860 ~ 1920 연해주로 이주 , 러정부 군납업자
거상으로 성장 독립항쟁의 뒤에는 항상 군자금 조달이라는
족적과 연추의 근거에 인사들의 주거지 역활 , 상해임정
초기 자금조달 재무총장 재의 사양 등 3.1.운동 1주년 기념
만세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살해되기까지 ...
있는자의 의무가 책임이 무었인지 보여주는 표본과 같다 .
* 젊은 시절 안응철 [ 안중근 ]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국민의 의무를 다하였기에 후회 없음을 말한 이 ..
* 송학선 의사 1926.6.10 만세운동
독립열망 기폭재 역활
* 대한제국군
* 별기군
* 대한제국군
* 대한제국 수군
* 대한제국군 보유 M1871 소총
* 양무호
* 구한말 개항장 전경
* 구한말 제물포 정경
*** 육군편제[ 1888년 기준 ]
시위대 , 진위대 , 친위대
* 시위 대대 : 4개 중대 구성[ 총원 824명 ]
연대 구성 : 3개 대대 구성 [ 총원 2513명 ]
* 여단 구성 : 2 1 1 1 1 구성 [ 총원 7,268명 ]
보병[ 2개 연대 ]
기병[ 4개 중대 구성 > 대대 총원 566명 ]
포병[ 4개 중대 구성 > 대대 총원 682명 ]
공병[ 4개 중대 구성 > 대대 총원 842명 ]
군악[ 1개 중대 구성 > 중대 총원 152명 ]
* 친위 대대 : 연대 포함 시위대 구성과 동일
* 진위 대대 : 본부 11명 + 4개 중대 구성 총원 : 615명
연대 구성 : 3개 대대 + 포병 중대 구성 총원 : 2,013명 [ 조선 반도 ]
3개 대대 + 포병 대대 + 기병 대대 -------- [ 북방 간도 ]
포병 대대 > 2개 중대 [ 336명 ]
기병 대대 > 2개 중대 [ 278명 ]
총원 : 2,459명
* 기병 연대 : 3개 대대 + 포병 대대 총원 : 2,315명
대대 = 4개 중대[ 566명 ] + 연대본부 11명
* 포병 연대 : 3개 대대 + 공병 중대 총원 : 2,297명
대대 = 4개 중대[ 682명 ] + 공병 중대[ 210명 ] + 연대본부 11명
*** 역사의 진실속 고종황제와 의안대군 일문의 군봉 역학 관계와
일문 어른들의 독립운동의 상관성과 화수회의 역활 파악 필요성
* 대한제국 군대 해산과 진위대의 독립운동 활동 변화과정 속
김옥균 - 이상설 - 박영효[ 철종의 사위 ] - 이준용[ 대원군 장손자 ] - 고종
대한제국군 - 해산 - 진위대 변화 >>> 무장 항일 투쟁
[ 간민회 - 대한국민회[ 국민회군 ] - 대한국민회의 독립군 통합정책 :
대한북로독군부 탄생 - 홍범도 , 최진동 , 안무 ]
* 시위여단 [ 황실 보위 임무 ] : 7268명
* 친위여단 [ 황성 및 주변방어 ] : 7268명 [ 중앙군 ]
* 진위대 [ 조선 반도 전역 ] : 36,234명 [ 18개 연대 ] [ 지방군 ]
[ 북방 간도 전역 ] : 27,049명 [ 11개 연대 ]
* 기병연대 : 6,945명 [ 3개 연대 ]
* 포병연대 : 11,485명 [ 5개 연대 ]
* 제주 진위대 : 615명
* 대마 진위대 : 615명
*** 광무 7년 [ 1903년 ]
이범윤 장군 고종 간도관리사 임명 [ 홍안장군 50대 초 ]
정부 승인 자치 민병대 구성 충의대[ 사포대 ] 400명
정부의 지원하 유지 중 마적 , 청 폭정 속 >> 간도 주권 선언 [ 납세의무 없다 ]
러일전쟁 발발 때[ 1904년 ] 고종 명에 의해 한러 연합군 형성 , 의병 유입 군대 증강
훈춘부 , 함경북부 , 연해주 일대 활동 청 관청[ 자경대 출발 마적 ] , 일본군 모두 공격
일 제국 행정 장악 [ 한일의정서 ] 고종 명 빙자 소환에 불응 연해주로 이동 의병 활동
경성을 거점으로 천여명 이상 주둔 항쟁 러시아 군사교육 [ 고종지원 무장 러소총 주종 ]
후일 연해주 독립운동 지도부 알력 중심에서 조정역 [ 한러 연합군 공식 비공식 중간 ]
보부상이 군수 지원 물자 조달 , 이장군 러시아 지휘권 한반도 내 [ 연해주 아니시모프 휘하 ]
* 회령을 근거지로 화룡[ 삼도구 ] , 용정 , 안도 [ 백두산 북쪽 일대 , 토문강 홍기하 해란강 ]
백두산 남쪽 삼수 , 갑산 , 해산 , 무산[ 함경북도 지역 , 두만강 지역 , 마적 월경 약탈 ]
화룡 , 안도 , 용정 , 연길 , 도문 , 훈춘 두만강 따라 인접 북쪽 해란강 따라 형성
고동하 , 장인하 : 혜란강 북쪽 /// 동성진 : 훈춘 북쪽 인접 연해주 남쪽 속하는 지역
*** 고종 황제는 일반 관료에게도 군대 계급 부여
일례로 안중군 의사 정식 작위가 대한의군 참모중장[ 시점 30세 ]
근황 세력의 소장파 관료들 전원이 군대 계급을 겸임 하였다 . [ 2-30대가 주축 ]
* 시점의 매국 단체 일진회 친일파 앞잡이로 기록에 의하면
가장 일순위 척결 대상 주민속 동정 살피는 가운데 밀고 , 첩보 활동
행정력 장악 시점으로 , 수탈과 억압에 의한 간도 이주 촉발 , 러일전쟁과 혼돈의 시기
현 시점 길림 지역 중심
* 고종의 시각과 인식
러일 전쟁을 양자가 아닌 삼국 전쟁으로 인식 러군 남하시 적극 협조 하달 [ 밀명 ]
고종의 친정 이후 계획 실시 근대화 [ 근대화 전문 추진 기구 : 통리기무아문
의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구로 궁내부 중심 통치 의정부는 외면 즉 불신 ]
* 1882년 기점으로 개혁 , 개화 반한게 보수 구신들의 갑신정변
친정 10년 [ 박영효 일파 서재필 , 서광범 , 김옥균 등 ] 실패 원인은
수많은 비난에도 끌어 안고 총애한 이들의 역모 사건 으로 근대화 좌절
역사의 일제 치하란 결과물 [ 개화파 도주 일본 >> 일본과 손잡고 침략 선봉 ]
* 이후 만민공동회 형성[ 정부와 소통 민의 전달 ] >> 개화파 밀입국 개입 >>
보수 구신들의 역공 >> 좌절 [ 박영효 회유 젊은층 대표 인물이 이승만 ]
집권 불가능 인식 후 관료와 인사 테러 자행 [ 박영효 일파의 개화파 ]
* 근대화의 첫 단추로 의제개혁[ 복식 개혁 ]을 추진한 고종의 의도는
신분제 철폐가 핵심 >> 기득권 세력의 반발
* 시점 간도지역 지명 제각각 만주족 , 지나 , 한족
예로 연길은 연집강 , 지단성 , 지타소 청 정부 1902년 연길청 설치 이후 고착
*** 홍범도 평양출신 1907년 독립군 활동 시작
을미의병 1895년 공장 노동자 , 스님 포수 , 광부 , 화전민 , 등 류인석 진영에서
의병 활동 삼수 , 갑산 , 북청 , 혜산 지역 [ 함경도 ] 오가며 70여명 포수 모아
안산 사포계 조직 연대장 신분 취득 [ 직능 대표 일종의 협회 협회장 ]
*** 대한제국군 개인화기 다양
대부분 볼트액션식 소총으로 러시아의 제베르그단 일본의 아리카사 30년식 , 무라다
소총 등 그외 프랑스 , 영국제 다양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이주 말년 보냄
* 일진회 시점 함경도에만 수십만 러일 전쟁 발발과 함께
북진 수송대 조직 20만 함경동 년 11만 5천 동원 기록 , 만주 , 연해주 , 간도 활동
통역 , 첩보 활동 , 군수물자 운송 그외 주민 감시와 밀고 등 최악의 매국자들 평가
*** 시점 북간도 1905년
중국인 2800호 1만8천여 , 한인 1만4천7백호 7만2천5백여 기록 10만여
허나 추정 시점 20만 이상으로 본다 . 일제 치하 안정된 북간도로 기하 급수적 이주
해란강을 따라 서전벌 이라는 옥토 형성 [ 개간 화룡 ~ 용정 ~ 연길 : 200리 ]
* 중국인 유입 촉진과 함께 한인 재산 약탈 중국인 유지와 청 관청 모의
마적 형성 토지 몰수 등 살인 실행 이후 일본군부 장악 동일 수법 사용 극대화
[ 고용 마적 혹은 가병 , 자경단 위장 동원 , 일본은 군인 위장 마적도 ]
청 ,러 , 일 동일하게 동북지역 한족 잔재 말살정책 전개 기록됨
근대사 속 대한인의 아픔과 고난의 시기
*** 외국인 시각에서 본 대한인
호기심이 많고 다른 동양인[ 중국인 , 일본인 외 ]들 보다 학구열이 높으며
키가 크고 대체로 순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 . [ 평균 남성 167cm 기록 ]
고종이 세운 외국어 학교 외국인 교사들의 기록
[ 6종 불어 , 독어 , 중국어 , 영어 , 일어 , 러시아어 ]
*** 을사늑약이나 1910년 경술국치는 대외적인 확인 절차에 불과 하였다 .
일본에 매수된 친일파들에 의하여 국정은 장악되고 고종의 친위 세력 및
근황군은 납치되어 일본에 잡혀가거나 망명을 종용 받았으며 추방 당하였다 .
* 탁지부 대신겸 육군 참장[ 준장 ] 이용익 [ 영어의 몸 ]
참령 현상건 , 참장 이학균[ 상해 망명 ] ,
진위대 4연대장 겸 보부상 영수인 김영수 [ 지위 박탈과 한성 추방 ]등
* 궁내부 주사 송선춘 , 한양출신 조병한 고종의 특사이자 연해주 지역 활동한
제국익문사 요원 [ 1902년 고종이 설립한 제국첩보조직 ] 애국심과 충성심이 투철한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 위주로 조직한 총원 61명으로 구한말 제국익문사비보장정 이라는
조직의 강령과 체계 정보 수집 보고 요령 등 첩보 조직운영 조항 기록이 작성된
문서가 발견 됨으로서 드러났다 . 화학비사법에의한 보고 [ 불에 달구어야 나타나는 글 ]
안중근 장군 의거 때 행적이 잠시 드러나는 이들 [ 안중근 구제 활동 , 가족에게 고종의
비자금 전달 , 변호사 선임 비용 조달 , 재판정 러시아로 옮기도록 노력 , 러시아 연추에
안중근 장군 거주지 마련 생활비 조달 등 ] 독립 지도부와 접촉민 연대 활동
* 상기의 정황들을 근거로 볼 때
고종은 고립무원의 상황하에서도 끊임없는 자주적 주권 확립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일부 곡해하는 내용의 기록들이 있으나 ,
고종의 시점 상황은 일본을 주도로 러시아 , 프랑스 , 미국의 내정 간섭과 강요
뿐만 아니라 국내 각종 세력의 견제 속에서 심지어는 명성황후의 시해 사건을
사례로 볼 때 일본의 주도적 행위에 동조한 동족이 있었고 그 면면이 흥선의
세력 뿐만 아니라 다른 왕족의 왕권 찬탈 세력까지 동조한 기록이 있을 정도니
알만하고 그 속에서 끊임없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심지어는 황위를 계승하는
수단까지 동원 하였으나 종국에는 독살 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점을 미루어
본다면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라 하겠다 .
[ 모든 것을 가리고 정권을 장악한 흥선의 예로 보듣 , 고종의 행적도
불가피한 암행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여러 정황으로 보아도 드러난다 . ]
* 하나더 첨언하면 친일 부역자라는 이들의 명칭인 일진회를 들수 있는데 ,
합방 이후 이들은 백만에서 이백만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
* 결론적으로 대한제국의 멸망과 일제치하의 36년은
국론의 분열과 권력욕이 낳은 결과물이며 한번의 기회가 있었다
할 수 있으나[ 고종의 친정 ] , 이 또한 근위세력의 배신으로
기존 보수 기득권에게 명분을 줌으로써 좌절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
*** 1905년 6월 시점 동북아 정세
* 일본은 러일 전쟁후 국체고갈 해전은 승리 하였으나 육전 패배와 동일
사상자 70만 사망 13만5천 총체적 난국 증원 불가
이후 황실 내장원의 비자금과 내탕금을 노린다 . 그외 수탈 극대화
[ 내장원은 국가재정 공식기구 탁지부를 불신 재정 또한 관리 하였다 .
일례로 독일 공사 잘데른의 도움을 받아 상해 덕화은행[ 도이치뱅크 ]에 비자금을 예치하나
묶이게 되고 종국에는 독일과 일본이 나눈 사실이 있다 . >> 100만 마르크 약 오백억
독일 정부 - 일본 정부 나베시마 [ 불법 자행 주체 ]
그외 러청은행[ 러시아 청 합작은행 ] 30만엔 헤이그밀사나 이한응[ 자결 ] , 이용익 ]
* 러시아 : 이범진 , 영국 이한우 , 미국 헐버트 선교사 을사늑약 부당함 알리며
협조 구하는 특사들 , 이범익 암살됨 [ 고종 비자금 재정 담당 ]
을사늑약이후 통감부 설치 제국 재정 압박 [ 황실 재산 국유화 후 수탈 이러한 사례는
대한민국 수립 후 이승만도 자행한 일 박정희도 농지개혁시 동일 불법 자행 ]
*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 제국주차군 사령관 하세가와 , 메가다 고문
우리 민족사 속에서 위대한 군주에 속하는 고종을 뒤흔든 자들
* 세종이 아비인 세조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사서를 조작하고 한국판 분서갱유의
주범이며 민족사의 서적들을 멸실에 앞장선 왕중 하나임을 안다면 조선사에서
태조 , 중종 , 효종 , 고종 등이 펼친 과정을 살피길 바란다 .
우리가 단종 이후 , 인종 이후 , 중종 이후를 살피어야 하는 역사의 진실 찾기와 같다 .
* 영국 영일동맹 , 러시아 포츠머스조약 , 미국 가쓰라태프트조약
이것이 서양 열강의 진면목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힘의 논리에 의한 약탈은 인간의 본질과 같은 욕망에 근원한다 .
* 러시아는 피의일요일 이라하여 전국적 소요사태와 혁명 분위기
사상자 40만 증원 불능
* 루즈벨트 친일 인사 후일 가쓰라 - 태프트 밀약이 대표적 사례
하버드 동창 카네코 특사 평화회담 중재 요청
* 동북아 시점 치안공백 북간도지역 무정부 상태 러일 양국 모두 일시적 재 개전 불능
일본의 대한제국 수탈 가속화 불가피 한인의 대규모 탈주 간도 이주 필연
연길청 일천 , 훈춘부 도통 오천 청군이 전부
* 고려방자 [ 까오리팡즈 ]라 지칭되는 분류는 동북인 [ 하북인 포괄 ]
즉 동북삼성과 산동인을 지칭하는 비하 의미의 욕이다 .
* 시점 동북 삼성 인구는 700만 이라 기록
간도 중국인을 비롯 몽골인 , 여진인 북부 흑룡강 일대 토착 소수민족과 중국인으로 구성
* 마적의 시초는 토착 민족들이 중국 유민들의 유입으로 형성된 마을를 핍박하자
자경대 조직 마을를 지키던 것이 발전하여 형성 문제는 마적과 민초를 구분 할 수 없는 상태
일례로 일본군이 마적을 토벌할 때 중국인 마을 전체를 학살 하였다 .
*** 용정 중심 간도지역은 없는 광물이 없다 할 정도로 다양하고 풍부한 매장량 자랑
금 , 은 , 구리 , 니켈 , 철 , 석회석 , 몰리브덴 , 연[ 납 ] , 아연 , 알루미늄 , 등
훈춘은 역청탄[ 유연탄의 일종 코크스의 연료 갈탄층에 ] , 사금구 송하평도
연길은 석유와 천연가스 [ 1억톤 현 시점 민국 1년 소비량 지하 천이백미터 ]
* 장인하 남쪽 명월구 남쪽 천보산 용성납자 [ 부르통하 ] 역참이 있고
청 서태후가 애지 중지한 은광산이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