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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3장, 4장, 5장
공동체 안에서의 불화의 죄, 혀길들이기, 세속화에 대한 경고, 부자들에 대한 경고, 믿음의 기도
<혀 길들이기>
야고보는 작은 것이 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원리를 밝힌 다음 더 구체적으로 이 원리를 혀의 파괴하는 능력에 적용합니다.
1~12절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선생들은 초대 교회에서 중요했고 야심있는 사람들은 잘못된 이유로 선생의 지위를 얻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더 큰 기대에는 더 큰 책임이 따르며 선생들은 더 많은 일에 대한 책임이 있으므로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1절).
'말에', 한 사람의 말은 그의 성품을 반영하며 따라서 그의 존재 전체의 열쇠입니다. 야고보는 선행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실수가 많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따라서 선행에 대한 야고보의 요청을 완벽하게 기대하는 것으로 간주해선 안됩니다. 야고보가 자기 입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할 때 이는 아마도 절대적인 온전함을 염두에 둔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천국에서나 이룰 수 있는 온전함입니다. 하지만 신자들은 언제나 거룩함에 있어서 성장하려고 애써야 합니다(2절).
말의 입에 있는 '재갈'과 배에 '작은 키'는 커다란 물체를 조종하는 아주 작은 것들의 예입니다. 몸에 작은 기관 중의 하나인 혀에는 그와 비슷하게 한 사람의 모든 인격과 행동을 좌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3~4절).
'큰 것을 자랑하도다', 교만은 혀를 잘못 사용하는 주된 이유입니다. 불의 이미지로 형성되는 점진적인 일련의 예들 속에서 혀의 온갖 끔찍한 잠재적 위험성이 제시됩니다. '작은 불'은 교만한 "자랑" 또는 그 밖의 부주의한 혀의 사용이며 큰 산불은 그 결과로 나타나는 대화재입니다. '불의의 세계', 혀는 세상의 모든 악을 나타내며 표현합니다. '삶의 수레바퀴'(직역하면 '존재의 순환')란 아마도 삶의 '영고성쇠'를 뜻할 것입니다. 혀는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도 삶의 모든 측면을 뒤집어놓습니다.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악한 말은 사탄에게서 나온 것이므로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5~6절).
예배 시간에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 뒤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누군가를 저주하는 것은 위선이자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저주'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누군가를 저주하는 일반적인 관례를 뜻한다면 이는 이중적으로 극악한 행동입니다(9절).
자연스럽게 대조되는 우수꽝스런 세 가지 예를 통해 야고보는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는 요점을 납득시킵니다. 샘은 건조한 팔레스타인에서 생존의 열쇠였고 마을과 동네에 배치는 샘의 존재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감람 열매.... 무화과', 어떤 나무도 두 종류의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참된 신자도 하나님을 찬송하고 타인을 저주하는 일을 동시에 하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11~12절).
<위로부터의 지혜>
위로부터 난 것은 화평을 가져오는 반면 땅의 것은 혼란을 가져옵니다.
13~18절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지혜와 총명....행함', 야고보에게 있어서 지혜는 단순히 지적인 것이 아니라 행위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지혜의 온유함', 헬라인들은 온유함을 악함으로 간주했지만 예수님은 이를 주요한 기독교적 믿음으로 격상시키셨습니다. 온유함은 비겁함이나 수동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서 나오며 따라서 열심 어린 자기 홍보에서 자유로워지는 데서 나옵니다(13절).
'땅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야고보는 세속적인 행동을 점점 더 악화되는 '진전'의 관점에서 묘사하면서 5~6절의 목록을 상기시킵니다. 그런 행동은 궁극적으로 영적인 것과 반대되는 세속에 얽매여 있고 절대적으로 육욕적인 것이며 그 기원은 우주적인 어둠의 세력에 있습니다(15절).
사탄이 조종하는 그와 같은 갈등의 최종적인 결과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혼란"이란 교회 안에서의 무질서 분쟁의 광란을 뜻합니다(16절).
16절의 '혼란'에 대한 해답은 성경에서 시작하여 화평에서 끝나는 성경적 특성을 낳는 '위로부터 난 지혜'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는 경견한 성품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성결함(흠 없음)은 일차적인 미덕이며 나머지는 이 도덕적 성결함의 여러 측면을 제시합니다. '화평하고' 이는 "다툼"과 그것이 나는 불화의 정반대입니다(17절).
<세속화에 대한 경고>
1~17절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화평을 이루는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싸움'과 '다툼'은 정욕이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 안에서 서로 '싸우는' 일을 하게 하는 자기중심적인 욕망으로 인해 발생합니다. "싸우는"이란 말은 불화를 뜻하는 극도로 폭력적인 표현이며 어떤 이들은 심지어 이 말은 사람들이 말 그대로 서로를 죽이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까지 생각하지만 이는 억제되지 않은 적대 행위와 파괴적인 효과를 뜻하는 비유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합니다(1절).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이는 신자들이 서로 싸우지 말고 자신이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의 많은 복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이 악하고 이기적인 욕구를 허락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간 구하는 일이 사람의 욕구에 정결케 하는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말하려 하는 것입니다(2절).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모든 기도가 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기도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잘못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 나라에 대의를 증진시키려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중심적인 정욕이나 욕망을 만족시키려고만 합니다. 야고보는 모든 쾌락이 다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하지 않는 쾌락만을 잘못 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3절).
'간음한 여인들', 이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불성실함을 묘사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을 상기시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의 사고방식과 세속적인 행동을 본받고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됨으로써 '세상과 벗'이 되기를 선택했습니다. 그 마음이 이 세상에 고정되어 있는 불신자들의 기대를 만족시키면서 그와 동시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란 불가능할 것입니다(4절).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나님은 인류를 "영"으로 창조하셨고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깊이 원하십니다(5절). '마귀를 대적'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 복종하고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탄은 패배할 것이고 실제로 그리스도에게서 사탄이 패배했듯이 패배할 것입니다(7절).
'깨끗이' 하고 '성결하게' 한다는 것은 의식적 정결함과 윤리적 정결함을 뜻하는 구약적인 어휘입니다. '웃음'은 야고보의 신자들이 일상적으로 자신들이 죄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에 대한 유일한 올바른 반응은 구약에서 자주 나타나듯이 '슬퍼하며' '애통하며' 우는 것입니다(8~9절).
사람이 "율법을 판단"하기 시작할 때 그는 입법자와 재판관이신 오직 한 분의 자리를 찬탈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홀로 율법을 주셨고 하나님 홀로 모든 것의 재판관이십니다.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이는 아마도 분열을 일으키며 자랑하는 자들에게 미래의 심판에 대해 경고하는 암묵적인 메시지일 것입니다(12절).
<부유한자가 자신의 일에 대한 자랑 경고>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표면적으로 이 말은 마치 사업 감각이 좋은 것처럼 들리지만 하나님을 무시하는 세속적인 세계관을 숨기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아마도 부유한 상인 계층에 속하는 그리스도인들일 것입니다. 반면에 5:1~6에 언급된 부자들은 아마도 신자가 아닐 것입니다(13절).
'너희가', 이 장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일들을 좌우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섭리적 통제와 '생명'의 일시적인 성격을 깨닫지 못합니다. 생명은 마치 어느 순간에라도 사라질 수 있는 '안개'와 같습니다. 계획하고 투자하는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오만한 자기 과신과 자랑은 잘못된 것입니다(14절).
<부자들에 대한 경고>
야고보는 사업가들에게서 갈릴리 지방 대부분과 실제로 로마 제국의 대부분을 지배했던 부유한 지주들에게로 관심을 돌립니다. 야고보는 그들의 물질주의적인 부의 축적, 노동자들에 대한 사취, 무죄하고 의로운 사람들의 죽음을 가져온 그들의 방종한 행동을 비판합니다.
1~6절
5: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4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6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울고 통곡하라', 주의 날이 이를 때에 하나님께 기소될 이들에 대한 시적인 표현입니다. '너희에게 임할 고생', 이 표현은 이 세상에서의 불행보다는 마지막 심판을 가리킵니다(1절).
'재물, 옷, 금'은 이 지주들의 호화롭고 물질주의적인 생활 방식을 요약해 줍니다. 이런 것들은 영원히 없어질 뿐만 아니라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마지막으로 재판받을 때 증거가 될 것이고 그들이 영원토록 지내게 될 곳인 불에 못인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할 것입니다(2~3절).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 이 지주들은 자신들의 사치한 생활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밭에서 일하는 자들과 추수하는 자들의 삯을 떼 먹어왔고 이제 삯을 떼인 이들의 우는 소리가 곧 이 일에 대처하여 행동하실 최후의 심판자의 귀에 들립니다(4절).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부자들은 그들의 들판에 있는 소들처럼 호화로운 음식을 잔뜩 먹으며 자신들이 마지막에 죽임을 당할 운명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외인', 하나님께 용서받은 백성 중에 한 사람인 동시에 부자들이 내린 사형 판결에 대해 무죄한 사람이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는....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의인은 복수하지 않습니다(6절).
<고난 가운데서의 인내>
7~12절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고난 가운데서의 인내', 야고보의 관심은 부자에서 가난한 자, 억누르는 악인에서 억눌림 당하는 의인, 주제 넘음에서 인내로 바뀝니다. 그들은 반격하는 대신 참을성 있게 인내하고 자신들을 변호해주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원망하지 말라' 분열을 조장하는 불평을 요약해주는 말입니다. 원망한 사람들의 좌절감이 폭발하여 서로 대립하는 고난의 때에 특히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7~12절).
<믿음의 기도, 권면>
13~20절
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믿음의 기도', 병든 사람의 믿음이 아닌 기도하는 사람의 믿음입니다. 이 경우에 야고보는 병자가 믿음을 발휘하는 데 있어서 장로들을 청하라는 것 외에는 어떤 조건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아픈 그리스도인은 종종 개인적으로 기도하기가 어렵다고 느낍니다. '일으키시리라', 이는 아마도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닐 것입니다. 1) 병든 사람은 육체적으로 고침 받을 것입니다. (2) 병든 사람을 영적인 구원이나 구원의 복에 있어서의 성장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사하심을 받으리라').
복음서 전체에 걸쳐 드러내는 것처럼 예수님은 육체적 영적으로 모두 치유하셨고 여기서도 그와 같은 이중적인 의미가 존재할 것입니다. 야고보는 사람들이 장로들을 청하거나 스스로 충분한 믿음을 가지거나 충분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려고 애쓰기만 하면 모든 질병이 고쳐질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치유가 일어날 때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은 질병과 건강을 포함한 모든 상황을 주관 하십니다. 그러므로 병자의 믿음 부족이 그 병자가 고침받지 못할 수도 있는 이유라는 결론은 도취되지 않습니다(15절).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때로 치유가 일어나려면 그 전에 공동체 안에서의 고백이 필요합니다. 죄가 질병의 원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기도하라', 이는 모든 신자를 대상으로 한 말이며 야고보는 치유를 위한 기도가 장로들에게만 국한되기를 기대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의인은 하나님이 그들의 간구를 허락하시므로 기도에 있어서 '역사하는 힘'이 클 것입니다(16절).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육체적 사망이 아닌 영적인 사망에서 시의적절한 개입은 "그의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가져올 것입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사람은 타락한 자를 회복시키는 사람입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주님만이 사람을 구원합니다. 그 사람을 회복시키는 자는 방황한 사람의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입니다. 잘못된 길에서 돌아오는 자는 용서를 받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덮으시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용서의 대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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