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속의 시 한편 • 44>
44. 『얼룩을 읽어주세요-신춘문예공모나라 작품집 8집』 中 「사과가 애플이라면 애플도 사과일까요 / 홍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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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애플이라면 애플도 사과일까요 / 홍서연
누군가는 애플을 열고
누군가는 애플을 열기 위해 돌을 깬다
본사는 주문을 넣고 콩고민주공화국의 아이들은 광산으로 간다
아이들이 광산으로 들어가는 것은 애플로부터 사과 한 조각을 깨기 위해서다
아이가 아이를 업고 포대를 들고 코발트 광산으로 들어간다
한쪽 시력을 잃고서야 광부가 된 어린 꽃!
사과의 귀에선 타닥타닥 돌 깨는 소리 들리고
자본이 밀어버린 검은 초원
광석을 골라낸 자갈이 물줄기를 막아버린 시냇가
뼈대만 남은 집마다 사막의 개미집처럼 늘어나는 작은 광산
갱도 속에는 삭은 빛 하나
코발트는 지구에서 가장 먼 사과로부터 쏟아진다
어떤 아이의 꿈은 단괴의 모서리가 되었다
어린 광부가 내리친 곳이다
와르르 쏟아지는 사과
코발트를 오래 들여다본 어린 노동자들은 눈이 먼다
깎으면 깎을수록 애플의 푸른빛, 곧 검게 변할 사과를 들고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사과는 애플인데 애플은 왜 사과가 될 수 없을까
어린 광부는 애플을 모르고
애플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과 따위엔 관심이 없다
아이의 너덜거리는 신발처럼 걸쳐진 나라,
그곳엔 검은 꽃들이 수두룩하다
『얼룩을 읽어 주세요-신춘문예공모나라 작품집 8집』 (커뮤니케이션 볼륨,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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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
빌 게이츠를 회장으로 두었던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하청 공장 중에 중국의 폭스콘 공장이 있다. 2012년이었다. 16명의 노동자가 연쇄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저임금 때문이었다. 10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이 있을까. 그건 마이크로소프트사이고 애플사는 다를까.
이 시를 통해 보면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우리는 컴퓨터, 휴대폰, 이어폰 등등을 애용하면서 애플의 신화에 한몫하지만, 정작 반대편을 살피지는 않는다. 그저 마이크로소프트사나 애플사의 회장들이 기부하는 금액을 보며 손뼉만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시인은 「사과가 애플이라면 애플도 사과일까요」를 통해 세상이 달라지리라는 희망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독자로 하여금, 우리는 최소한 “애플”에만 눈이 멀 것이 아니라 반대편의 그들에게 진정한 “사과”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시집 감상>
신춘문예공모나라 여덟 번째 작품집을 읽는다. 카페 회원들의 작품집을 엮은 것이다 보니 참 다채롭다. 다양한 시편들을 읽는 재미에 흠뻑 빠져들었고, 7집보다 더 재미있었다. 그리하여 다시 읽어 본 시들이 많다. <목련> <밤을 흔들어서 듣기> <또는, 눈사람의 기분> <문경새재, 바람의 흔적> <꼭> <감주인> <당신은 본래> <압화> <영혼 수선공> <딸기독화살개구리> <대금 소리> <봄이 왔다> 등등
(배세복)
첫댓글 다시 보니 새롭네요. 잘 읽었습니다.
니체님, 답글 감사합니다. 저도 시인의 시선에 한참 머물렀답니다^^
애플을 떠올리면 저조차도 휴대폰이 먼저 떠오르는 아이러니라니.. 왠지 섬뜩합니다.
자본은 그렇게도 계속 실체를 숨기네요.
그러지 않게 우리가 쓰고 읽는 수밖에 없을 듯해요.
댓글 감사합니다. 최시인님!!!
꺼이님^^
부족한 졸 시를 올려주시고 감상 평도 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자본은 거미줄보다 더 촘촘하고 끈적하게 노동자의 목을 조일 수밖에 없는 이익 구조 같습니다.
빠져나갈 수 없는 덫처럼요.
덕분에 좋은 시 읽었으니 제가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마지막 두 행 수정하였습니다.^^
@꺼이 진심으로 두손모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