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받은 것에 감사하십시오
(에스라 3:8-13)
오늘도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모든 성도님들 가정에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서로 축복해주실까요?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멀리까지 가는 경우도 종종 있지요. 그렇다면 세상에서 맛있는 음식을 가장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요?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겠지요. 아마 왕 같은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가장 많이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에 한 왕이 있었습니다. 물론 늘 좋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음식이 맛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왕은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신하들은 온갖 재료를 다 동원해서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만들었지만 왕은 여전히 맛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오는 사람에게는 큰 상을 내리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명인들이 앞을 다투어 와서 음식을 만들어 바쳤습니다. 그러나 왕은 맛이 없었습니다. 왕은 몹시 실망했고 신하들은 전전긍긍했습니다.
이때 한 노인이 왕을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제가 천하의 진미를 만들어 바치겠습니다.” 왕은 반신반의하며 물었습니다. “네가 정말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느냐?” 노인은 자기가 만든 음식은 분명히 왕이 맛있게 먹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왕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한번 만들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자기 음식을 먹으려면 3일 동안 왕의 몸을 자기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왕은 좀 의아했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심에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노인은 왕의 시중을 들면서 3일 동안 음식을 주지 않았습니다. 왕은 한번 약속한 일이라 꼼짝 못하고 3일 동안 굶었습니다. 그 후에 노인은 서민이 먹는 평범한 음식을 만들어 왕에게 바쳤습니다. 왕이 어떻게 먹었겠습니까? 정말 천하의 진미라고 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왜 왕은 왕궁의 그 좋은 음식이 맛이 없었겠습니까? 항상 좋은 음식으로 배가 불렀기 때문입니다. 왜 노인이 만든 평범한 음식은 그렇게 맛있었겠습니까? 3일을 굶으며 배가 고팠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음식의 가치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왕이 늘 먹던 왕궁의 음식과 노인이 만들어준 음식 중에 어느 게 더 가치가 있습니까? 객관적으로는 왕궁의 음식이 더 가치가 있지요. A이런 가치를 사실가치라고 합니다. 사실가치는 왕궁의 음식이 월등히 높습니다. 그러나 왕이 주관적으로 맛있다고 느끼는 가치는 어느 음식이 더 높습니까? 서민 음식이 더 높지요. 왜 그렇습니까? 배고플 때 먹었기 때문입니다. B이렇게 사람의 형편에 따라 주관적으로 느끼는 가치를 효용가치라고 합니다.
왕만 그렇겠습니까? 아닙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배가 부르면 좋은 음식도 맛이 없습니다. 가치도 없습니다. 누구나 배가 고프면 평범한 음식도 맛이 있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음식만 그렇겠습니까? 아닙니다. 다른 것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영하 10도의 추위에 와이셔츠만 입고 있으면 싸구려 파카라도 얼마나 가치가 있습니까? 그러나 이미 좋은 옷을 잔뜩 입고 있으면 아무리 비싼 파카라도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언제 더 감사하겠습니까?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때 비싼 음식을 사주는 게 더 감사하겠습니까, 배가 심히 고플 때 싼 음식을 사주는 게 더 감사하겠습니까? 옷을 많이 입어서 춥지 않은데 비싼 파카를 주는 게 더 감사하겠습니까, 옷이 없어서 떨고 있는데 싼 파카를 주는 게 더 감사하겠습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지요. 우리는 비싼 것을 받을 때보다 꼭 필요한 것을 받을 때 더 감사한 것입니다. C사실가치가 높은 것을 받을 때보다 효용가치가 높은 것을 받을 때 더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십니까? 비싼 것을 주십니까, 꼭 필요한 것을 주십니까? 예수님이 어떻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까? 우리가 주기도에서 어떻게 기도합니까? 무조건 많은 양식을 달라고 기도합니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합니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지요.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양식을 주고 싶어 하신다는 뜻입니다. 사실 많은 성도님들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꼭 필요한 만큼만 주세요.” 그런데 여러분 비싼 것은 사실가치가 높은 것이고 꼭 필요한 것은 효용가치가 높은 것입니다. D하나님은 우리에게 효용가치가 높은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꼭 필요한 것만 주신다면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두 가지 자세가 필요합니다. E첫째, 나에게 필요한 것 이상의 축복은 다른 사람에게 나눠줘야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양식이 풍족해서 더 필요가 없는데 세상에는 양식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럴 때 나에게 양식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나님이 꼭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 양식을 내가 받지 말고 양식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줘야 하는 것입니다. 양식만 그런 게 아닙니다. 어떤 것이든지 나는 풍족한데 남은 부족하다면 그것을 부족한 사람에게 나눠줘야 하는 것입니다.
F둘째,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우리는 효용가치가 높은 것을 받을 때 감사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1만원짜리 선물과 100만원짜리 선물을 받으면 어느 선물에 더 감사하겠습니까? 100만원짜리 선물이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사막에서 목말라 죽어간다면 1만원짜리 생수와 100만원짜리 코트 중에 어느 것에 더 감사하겠습니까? 우리는 효용가치가 높은 것을 받을 때 더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십니까? 하나님은 효용가치가 높은 것을 주십니다. 여러분이 경험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비싸고 사치스러운 것을 주시는 분입니까, 그 때 그 때 꼭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입니까?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지요. 하나님은 비싸고 사실가치가 높은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꼭 필요하고 효용가치가 높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시시해 보여도 절대 시시한 게 아닙니다. 실제 효용가치가 굉장히 높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몰라서 시시하게 보이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항상 효용가치가 높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만 알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감사에 대해서 세 가지를 가르쳐줍니다. 그 중에 첫 번째로 가르쳐주는 게 바로 이것입니다. G하나님이 주신 것은 시시해 보여도 실제로는 효용가치가 지극히 높은 것이니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뉜 후에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모두 계속 죄를 짓다가 결국 망하게 됩니다. 북 이스라엘이 먼저 앗수르에게 망하고 135년 후에는 남 유다도 바벨론에게 망합니다. 두 나라 중에 믿음의 정통성을 가진 나라는 남 유다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도 남 유다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 유다까지 망하여 성전도 파괴되고 많은 사람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래서 유다 땅에는 성전도 없어졌고 신앙생활도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고통을 끝없이 주지 않으시고 다시 회복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바사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포로로 잡혀온 유다 백성을 본국으로 돌아가게 해준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들은 포로생활 중에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앞으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기로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본국에 돌아오자 성전을 다시 지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위 다른 민족들의 방해로 성전을 짓지 못했습니다. 에스라 4:4-5입니다.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이렇게 방해를 받다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다시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두 번째 성전인데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본문은 바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이는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이 솔로몬의 성전에 비하면 어떻습니까? 외모는 비교도 안 됩니다. 이 성전의 사실가치는 정말 보잘것없습니다. 그러나 이 성전이 당시 유다 백성들에게는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예루살렘에 성전이 없어서 유다 백성들은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구요. 그런데 지금 다시 성전을 짓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성전은 유다 백성들에게 말할 수 없이 중요합니다. 보잘것없는 건물이지만 유다 백성들에게는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받은 죽 한 그릇처럼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에게 큰 성전을 짓게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꼭 필요한 성전을 짓게 해주셨습니다. 사실가치는 낮지만 효용가치는 말할 수 없이 높은 성전을 짓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이 작은 성전의 기초만 놓고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즐겁게 찬양을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렇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재물을 주시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높은 지위도 주시지 않고 강건한 몸도 주시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반드시 주십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재물을 주시고, 꼭 필요한 직분을 주시고, 꼭 필요한 건강을 주십니다. 그게 대단하지 않아도, 심지어 남들이 가진 것보다 못해 보여도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7:11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에 항상 감사를 드려야지요. 왜냐하면 그것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하고 효용가치가 높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H여러분 정말 꼭 필요한 것을 받은 사람은 더 큰 것을 받지 못했다고 원망하지 않습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던 사람이 구조된 후에 왜 큰 배로 구원해주지 않았느냐고 원망하겠습니까? 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녹두죽을 주면 왜 전복죽을 주지 않느냐고 원망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은 이렇게 가장 절실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바로 알고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주신 것에 항상 최선의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이 두 번째로 가르쳐주는 것은 비교의식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재미있는 모습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 일부 사람들은 통곡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a입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첫 성전을 보았던 사람들이 왜 통곡했습니까?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I하나는 지금 성전이 솔로몬의 성전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속상해서 통곡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들의 죄 때문입니다. J이들은 자기들의 죄 때문에 그 큰 성전이 파괴되었고 지금 이렇게 초라한 성전을 짓게 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이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워서 통곡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망의 눈물이 아닙니다. 안타까움 속에 앞으로는 정말 신앙생활을 잘해야겠다는 결단의 눈물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모습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주의해야 할 게 한 가지 있습니다. K그것은 감사한다고 해서 만족하며 주저앉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사람이 감사한다는 것은 만족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만족하다가 잘못하면 더 이상 발전하지 않게 됩니다. 지금 유다 백성은 작은 성전이라도 짓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섬기기에 이 성전이 부족할 때는 더 큰 성전을 준비해야겠다는 마음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굶주릴 때 밥 한 그릇을 얻으면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는 더 열심히 일해서 굶주리지 않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많은 양식을 생산하여 어려운 사람을 도와줘야겠다고 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북방에 사는 어부가 남방에 갔다가 한 어부를 만났습니다. 마침 남방 어부는 갯바위에 누워서 놀고 있었습니다. 북방 어부가 말했습니다. “아니 아직도 해가 중천인데 고기를 더 잡지 않고 놀고 있어요?” 남방 어부가 말했습니다. “오늘 잡을 것은 다 잡았거든요.” “그래도 잡을 수 있으면 더 잡아야지요.” “더 잡아서 뭐하게요.” “돈을 더 많이 벌어서 나중에 편히 놀고 지내야지요.” 그러자 남방 어부가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북방 어부가 지금 고생하고 노후에 놀려고 하는 것을 남방 어부는 지금 이미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누가 더 지혜롭습니까? 남방 어부지요. 이 이야기는 지혜로운 삶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주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잘못된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자기만 편하게 살려고 고기를 잡는다는 것입니다. 정말 자기만을 위해서 고기를 잡는다면 남방 어부가 더 지혜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웃을 위해서 고기를 잡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세상에 굶주리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필요한 만큼만 잡고 말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고기를 남획하자는 게 아닙니다. 이웃을 위해서 일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만 잘 살려고 일합니까? 아니잖아요? L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높은 비전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해주신 것에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만족하지 말고 더 크게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려는 비전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통곡하는 모습에는 한 가지 경계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지금 성전이 작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들은 꼭 필요한 것을 받았는데도 감사하지 못할까요? 과거의 성전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M우리는 비교의식 때문에 감사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받아도 더 좋은 것을 받은 사람과 비교하면 감사가 사라지고 불평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음 두 가지 세상 중에 어느 세상에서 살고 싶으십니까? 1) 나는 연봉을 5천만원 받고 남들은 연봉을 3천만원 받는 세상. 2) 나는 연봉을 1억원 받고 남들은 연봉을 2억원 받는 세상. 미국의 명문대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대부분 1번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많은 복을 받아도 남들보다 못하면 싫은 것입니다. 비교의식 때문입니다. 비교의식이 있으면 감사할 일에도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감사의 삶을 살려면 비교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비교의식을 버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주신 게 어떤 것인지를 알면 됩니다. N여러분 우리는 객관적인 가치만 비교할 수 있습니다. 주관적인 가치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200원짜리 감기약과 5000원짜리 간염약이 있다면 객관적인 가치는 비교가 되지요. 간염약이 훨씬 더 가치가 있지요. 그러나 주관적인 가치는 비교가 안 됩니다. 감기환자에게는 가격과 관계없이 감기약이 가치가 있고 간염환자에게는 간염약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것을 주십니까? 비싼 게 아니라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을 주시고 간염에 걸리면 간염약을 주십니다. 내가 감기에 걸려서 하나님이 감기약을 주셨는데 왜 200원짜리를 주시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까? O이렇게 하나님은 객관적인 가치가 높은 게 아니라 주관적인 가치가 높은 것을 주시기 때문에 내가 받은 것을 남이 받은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받은 것이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물론 내가 그렇게 느낀다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느끼기 어렵다면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을 믿고 하나님이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셨을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좋은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까? 히브리서 11:1a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P본문이 세 번째로 가르쳐주는 것은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지금 성전의 기초만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감사하며 찬양했습니다. 사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모릅니다. 실제로 대적자들은 또 다시 성전 짓는 것을 반대하며 바사왕에게 고발했습니다. 그러자 바사왕은 성전 건축을 중단시킵니다. 에스라 4:21입니다. “이제 너희는 명령을 전하여 그 사람들에게 공사를 그치게 하여 그 성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고 내가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 그러나 결국 바사왕은 옛날 고레스왕의 조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전 건축을 허락할 뿐 아니라 오히려 성전 건축을 도와주라고 명령합니다. 에스라 6:8입니다. “내가 또 조서를 내려서 하나님의 이 성전을 건축함에 대하여 너희가 유다 사람의 장로들에게 행할 것을 알리노니 왕의 재산 곧 유브라데 강 건너편에서 거둔 세금 중에서 그 경비를 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주어 그들로 멈추지 않게 하라” 유다 백성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셨다고 믿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감사했습니다. 그랬더니 결국 두 번째 성전을 완공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두 번째 성전이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이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생활에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세 번 성전이 건축되었습니다. Q첫 번째가 솔로몬의 성전이고 두 번째가 스룹바벨 성전이고 세 번째가 예수님 시대에 헤롯이 지은 성전입니다. 이 세 성전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성전이 본문의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그러나 세 성전 중에 가장 오랫동안 유지된 것은 두 번째 성전입니다. 외모나 사실가치로는 가장 보잘것없는 성전이었지만 실제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큰 축복이 되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은 원래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백성이 인정하고 감사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보잘것없는 기초만 놓고 완공도 되기 전에 믿음으로 감사하며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우리가 받은 것이 남들 것보다 작아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은 나에게 가장 좋은 것입니다. 지금 완성되지 않았어도 가장 좋을 때에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굳게 믿고 주님이 주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며 지금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것을 믿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우리 자신도 큰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세상에 나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며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혹시 하나님이 나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작은 것을 주셨어도 그것이 나에게는 가장 필요하고 효용가치가 높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도 가장 좋은 때에 완성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을 신뢰하고 항상 지금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